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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살하려했습니까?” “이 섬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어요.”
“뭐가 그리 괴로운가요.” “여기엔 친구가 하나도 없어요. 항상 나 혼자거든요.”
“어떻게 친구를 못 사귀었습니까.” “이웃 사람 중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미국인 거주지로 놀러가든지, 낮에 주부클럽에 가서 친구를 사귈 수도 있었을 텐데요.” “남편이 직장에 차를 가지고 가기 때문이에요”
“남편을 직장에 데려다 줄 수도 있잖아요.”
“차가 오토매틱이 아니어서 운전을 못해요.”
“수동기어 조정법을 배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험한 길에서요? 정신 나갔군요”
스캇 펙이 쓴 ‘아직도 가야할 길’에 나오는 어떤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상담을 받은 부인의 말은 타당합니다. 친구가 없어서 외롭고, 남편이 차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고, 길이 험해서 수동기어 조작법을 배우기 힘듭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정말 그러네요. 틀린 말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우리도 그 부인처럼 지극히 정상적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지요. 열성적으로 일하고 싶은데 회사는 부조리와 불합리가 판을 치고, 평온하길 바라는데 집에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이 가득 합니다. 책을 한 권 읽으려고 하니 갑자기 바쁜 일이 생깁니다. 아이와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업무가 늦게 끝나지요.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쉴 새 없이 일이 생기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상담 받은 부인의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셨나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부인은 그 어느 것도 자기의 책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주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많은 경우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부인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무언가 어떻게 하려고 해도, 세상이 또는 주변에서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나의 편이 아닙니다.
우리 속담 중에 이런 게 있지요. ‘핑계 없는 무덤 없다.’ 무슨 일이든지 다 그럴 듯한 이유가 있다는 속담입니다. 외로움과 무력감에 빠져 자살까지 하려 했던 그 부인처럼 말이죠. 지극히 타당하고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그 부인과 우리는 다를까요? 다르다고 말하고 싶지만, 글쎄요, 그렇게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가 하루에도 몇 개씩 쌓입니다. 핑계가 쌓이는 만큼 무언가 해보려 했던 것들은 흔적 없이 쓸려가 버리죠. 만약, 평생 내세웠던 핑계들을 모아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운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내 비석은 아마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 않을 런지요. 당신은 어떤가요. 혹시 우승을 다투는 건 아닌가요?
나로부터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삶을 방기한 것이다.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구본형,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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