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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0일 07시 12분 등록

구스피릿 35번째 북리뷰

수상록1(몽테뉴, 동서문화사)

 

1. 저자소개

미셸 드 몽테뉴 (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

프랑스 최대의 사상가, 모럴리스트 또는 프랑스의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문학가. 1533년 프랑스 남부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 성에서 태어나 어려서 라틴어 교육을 받았고, 1554년 페리그 재판소에 근무하여 1557년 보르도 고등법원 참사관이 되었다. 1569 15세기 에스파냐 신학자 레이몽 스봉의 <자연신학>을 간행했으며, 1571 37세로 법관생활에서 물러나 독서와 저작 생활로 들어갈 결심을 하였으나 신.구파의 종교전쟁에 휩쓸렸다.

1580년 써 모은 수필을 간추려 <인생 에세이>를 보르도에서 간행하였고, 이 해 신장결석 치료를 겸하여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관광길에 올라 1년 반을 외국에서 보냈다. 이 여행에서 <여행기>가 나왔다. 1586년에 몽테뉴 성으로 돌아가 <인생 에세이>에 증보와 수정을 가하고, 그 뒤 집필을 계속하여 1588 3 107장의 에쎄 <인생 에세이>를 신판을 간행하고, 독서와 글을 쓰면서 지내다 1592년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의 생애

그의 부친은 이탈리아 전쟁 때 그곳의 정력적이고 참신한 문예부흥기의  풍조를 받아들인 진보주의자였다. 그는 창조적 정신을 가지고 생활 개선에 힘썼다. 몽테뉴는 보르도의 기엔느 중학교에 들어갔으나 거의 배울 것이 없었고, 라틴 고전을 탐독할 정도에 이르렀다.

1565년 부친이 죽자, 몽테뉴는 넓은 영지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

그는 그의 친구 라 보에티와의 대화에서 고대 스토아 학파에 감탄하게 되고, 고통을 억누르는 극기 생활을 찬양하며 세네카를 탐독, 카토를 이상적인 영웅으로 받들고, 자살찬미론을 쓰며, 특히 죽음에 대한 관심을 쏟았다.

1588년 파리에서 그는 풍부한 증보와 제 3권이 첨가된 <에세이> 신판을 간행했다. <에세이의 인기를 날로 높아갔다. 몽테뉴는 그의 추종자들 중 마리 드 구르네 양을 파리에서 만나 수양딸로 삼았다.

몽테뉴는 심려와 고생을 피하려고 노력했으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는 불치의 담석증에 걸렸고, 흑사병에 쫓겼으며 내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그에게 명상의 재료를 풍부히 안겨 준 셈이었다.  

사상과 해학 취미

몽테뉴는 사상적으로 영광 같은 허영을 경멸하지만, 영예가 탐락의 일종임을 담담히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편안함을 추구하는 그는 다만 번뇌를 끌어오는 이런 종류의 탐락을 즐겨 추구하지 않을 뿐이다. 그에게는 도덕적 철학적 탐구라는 한층 더 심오하고 심층적인 탐락의 욕망이 더 컸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스토아적 견지에서 귀족의 용덕을 찬양한다. 그는 어떠한 고난도 의무가 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나설 필요가 없다는 데서 벌써 후기의 쾌락주의적 취향이 드러나며 스토아 철학의 자살을 말한다. 그는 인생을 부인하는 것도 가치는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단 살아가는 것이 무거운 짐이며 고통이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즉 삶에서 자기 힘닿는대로 쾌락과 행복을 찾아도 좋다는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고통을 참고 살아감은 용기가 아니고 용서될 수 없는 치욕이요 비굴이다. 그는 인생을 버리는 것을 자포자기로 보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인간의 자유가 가진 최후의 무기라고 본다.

몽테뉴는 안일성을 주장하나 그렇다고 행동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본성으로 보면 행동가를 지향할 수 있는 인품이었다. 그러나 유아시기에 효과 있는 교육 방침에 의해 독서력을 기르고, 문예 부흥의 풍조를 타서 독립 불패의 정신을 가꾸고, 연마된 판단력은 세속적 영달의 허영과 그 이면의 정신적 굴욕을 투시하게 하였을 뿐더러 전통과 인습과 사회적 현실 속에 수많은 모순을 발견케 했다. 그로 인해 그는 모든 번거로운 일에는 도리어 몸을 사리는 성격인 반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성이 살아 있어 외향적 행동보다 내면적인 자아 탐구로 취미를 돌리게 되었다.

그는 사회에서는 사회인답게 살면서 내부에서는 자아의 세계를 감추고 있었다. , 사회와는 타협하며 살아가지만 자기 자신만의 유일한 세계는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아 탐구로 들어서면 회의주의의 냄새도 희박해져 버린다.

몽테뉴의 정확한 눈은 평민층에도 우수한 소질이 있음을 발견했으며, 세상의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그 자신보다 실질적으로 나은 것은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사상을 현실과 타협시키는 내면적 실증주의자이다. , 그는 수많은 후대의 사상들이 씨뿌려진 묘상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또 후세의 명성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다고 공언하는 것은, 살아 있는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것을 고려할 값어치가 없다고 보는 적극적인 실증적 태도이다.

그는 아동 교육론을 시도하여 종래의 독단적 권위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유로운 교육 방법을 종용한다. 학문은 앵무새와 같이 문구를 외는 데 있지 않고 사리를 이해하는 데 있음을 강조한다. 또 교육의 목적은 글을 배우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 그의 관점은 늘 막연히 전체를 포용하기보다는 특수한 실제적인 면을 고찰하는 경향이 있으며, 거기서 전체에 통용될 수 있는 판단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몽테뉴는 신앙에 있어서 확고한 신념은 가지지 않은 것같다. 그는 단지 신앙의 갈등을 현실적인 면에서 고찰한다. 그는 또한 신교도들이 고대 성경에서 기독ㄱ의 참된 의미를 찾아 신앙의 순수한 형태를 찾으려고 성경을 번영하고 연구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본다. 이미 그들 자체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데다가, 인간의 지식으로 하느님의 일을 파악하려는 것은 교만스런 행위라는 것이다. 그에게 신앙이란 신비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야 하고 따져 보아서는 안될 일이었다. , 신앙은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그는 신앙을 인간적인 극과 극의 절대와 인간 현실과의 타협 행위로 보았다.

그는 모든 종료를 같은 격으로 다루어 마치 법률과 같은 성질로 본 것 같다. 결국 종교란 아무 근거 없는 것이고, 사회 생활에서 필요한 것으로 사람들이 지켜야 할 한 방편으로밖에는 보지 않은 것이다.

몽테뉴는 신앙에서 자기가 할 일을 지켰을 뿐이고 남에게 자기의 신앙을 강요할 의사는 갖지 않았다. 타인은 타인의 입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마음 너머에 신앙을 둔다. 신앙은 현실 생활에 연결되어 있다. 몽테뉴의 사색 세계는 밝다. 그는 필요에 응해서 신앙을 생각하는 것이지, 신앙에 끌리는 인간은 아니다.

몽테뉴는 철학하기를 즐기나 자신을 철학자로 자처하지는 않는다. 문예부흥기의 인간의 정력이 그에게는 오로지 독서와 사색으로 경주되었다.

몽테뉴는 자연 속에서의 경험을 존중하며 실증적으로 사색한다. 그것은 지식에 의해서 변질된 인간성보다도 본성대로의 인간성을 높이 평가하는 일이 된다. 이 점에서 그는 충분히 루소의 선구자가 된다. 그러나 그는 루소보다도 한층 더 적나라한 본성론자이다. 왜냐하면 그가 폭로하는 본성은 루소의 것과 같이 순화되고 미화된 본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일은 그는 도덕적으로 추악한 일을 다루기를 꺼리는 반면에, 세인들의 추악으로 부르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점잖은 사람들이 꺼리는 외설한 문장을 다루기 좋아한다. 그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가식적으로 감추며, 이 본성이 드러나는 것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것에 항의하고, 남이 꺼리는 이 문제를 즐겨 다루는 것도 보성을 존중한 것에서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몽테뉴는 사람에게 불행을 끌어오는 원인이 되는 모든 격정을 배격하고 중용과 절도의 길을 권장한다. 결국 그는 이성의 힘을 시인하며, 이성으로 인간은 행복을 찾을 수 있고 또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모든 면에서 불필요하게 인간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를 고발하는 반면, 자유가 방자함을 초래하지 않도록 중용을 권고한다. 그는 실증적 사고 방식에서 물질주의로 타락하지 않고 사이비 도덕을 공박하며, 인간에게 더 많은 선을 찾아 주려고 하는 진정한 의미의 에피쿠로스의 계승자이자, 오히려 그보다도 더 과감하고 조심성 있는 쾌락주의자이다.

< 출처 : ‘몽테뉴 수상록중 몽테뉴의 생에와 사상에서 발췌 >

 

 

 

2.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이 책을 읽는 이에게

이 책을 읽는 이여, 여기 이 책은 성실한 마음으로 썼음을 밝힌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내 집안일이나 개인적인 일을 말해 보는 것밖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있지 않았음을 말해 둔다. 이것은 추호도 나의 선대를 위해서나 내 영광을 생각해서 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내 힘에 겨운 일이다. 다만 나의 집안들이나 친구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오래잖아 그렇게 되겠지만) 그들이 내 어떤 모습이나 기분의 몇 가지 특징을 이 책에서 찾아보며,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을 더 온전하고 생생하게 간직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호평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자신을 좀더 잘 장식하고 조심스레 연구해서 내보였을 것이다. 모두들 여기 생긴 그대로의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꾸밈없는 나를 보아 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내가 묘사하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 결점들이 여기에 있는 그대로 나온다. 터놓고 보여줄 수 있는 한도에서 타고난 그대로의 내 생김을 내놓았다. 만일 내가 아직도 대자연의 태초의 법칙 아래 감미로운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국민 속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기꺼이 자신을 통째로 적나라하게 그렸으리라는 것을 장담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이여, 여기에서 나 자신이 바로 내 책의 재료이다. 이렇게도 경박하고 헛된 일이니, 그대가 한가한 시간을 허비할 거리도 못될 것이다. 그러면 안녕. - 1583 3 1몽테뉴

1

1. 인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똑 같은 결과에 도달한다.(17)

우리는 누군가를 모욕해서 그의 앙심을 사고 그의 손에 잡혀 꼼짝 못하게 된 경우, 그의 마음을 눅이는 가장 보편적인 방편은 그저 그 앞에 굴복하여 가련하고 측은하게 보이거나 그의 동정심으 일으키는 일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담력으로 굳은 지조를 보여 같은 효과를 얻는 수도 있다.(17)

스토아 학파는 연민을 악덕한 심정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불행한 자들을 구해 주려고는 하지만 마음을 굽혀 그들을 동정하려고는 하지 않는다.(18)

스토아 학파 : 기원전 3세기 제논에서 시작되어 기원후 2세기까지 이어진 그리스 로마 철학의 한 학파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그리스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주요 학파이다. 헬레니즘 문화에서 탄생해 절충적인 모습을 보이며, 유물론과 범신론적 관점에서 금욕과 평정을 행하는 현자를 최고의 선으로 보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토아학파 [Stoicism, ─學派] (두산백과, 두산백과)

참으로 인간이란 헛되고 가지각색이며 변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기에 어떠한 견실하고 고른 판단을 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19)

나는 이 감정(슬픔)에서 벗어난 축에 든다.(21)

그리고 스토아 학파는 이것(슬픔)을 겁많고 비굴한 소질이라고 보며, 그 파의 학자들에게 이 감정을 금하고 있다.(21))

이 마지막 불행은 눈물로 마음속이 표현되지만, 처음의 두 사건은 마음 속을 표현할 한계를 넘은 것이오”(21)

프삼메니투스가 자신의 형, 동생이 죽는 모습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하인이 우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 캄비세스의 물음에 대한 답.

비참한 일을 참는 것은 극도에 달하면 사람의 정신 전체를 뒤집어엎고, 그 행동의 자유를 잃게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대단히 언짢은 소식을 듣고 놀랐을 때에, 몸이 얽매여 얼어붙듯 하며 모든 동작이 오그라져 붙었다가, 눈물과 통곡으로 토해 내면 설움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얽매였던 마음도 풀리고 몸도 편해지는 식이다.(22)

가벼운 근심은 쓸데없이 많은 말을 하게 하고, 깊은 근심은 멍하니 정신을 잃게 한다.(세네카)(23)

3 우리들의 감정은 세상 너머에까지 이른다.

우리의 눈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지 않고 늘 저 너머에 있다. 공포나, 욕망, 희망등이 우리들을 늘 미래로 비약시킨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현실에 관한 고찰과 마음을 가리고, 장차 올 일, 다시 말하면 우리가 장차 세상을 떠날 날의 일에 관심을 갖게 한다. (24)

앞으로의 일을 근심하는 모든 정신은 불행하다(세네카)(24)

자기 일을 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가 무엇인가, 그리고 자기에게 적당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아는 자는 남의 일을 자기 일로 혼동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가꾸며, 쓸데없는 일이나 생각을 제안받기를 거절한다.(25)

우리는 움직이고 있는 동안 자기에게 좋을 대로 앞을 내다보며 살아간다. 그런 한번 존재 밖에 있게 되면, 현재의 것과는 아무런 연락도 가지 수 없다. 그러면 그가 존재하지 않게 된 이후에만 행복할 수 있을 바에야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솔론에게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26)

소크라테스는 임종 때, “어떻게 묻어 줄까?”하고 크리톤이 묻자, “자네  마음대로 하게라고 대답했다. (30)

많은 사물들이 죽은 다음에도 아직 생명과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를 맺고 있음을 대자연은 우리에게 보여 준다. 포도주는 그 포도나무의 계절적인 변화에 따라 지하실에서 품질이 변해 간다. 멧돼지 고기는 살아 있는 살의 변화하는 법칙에 따라 소금에 절인 통 속에서도 그 상태와 맛이 변해간다고 한다.(31)

일어나는 일들에 화를 내서는 아니되느니 신들은 우리들의 분노 따위에는 개의치도 않는 것을.(작자미상)(34)

크세노폰은 위대한  장수이며 소크라테스의 제일급 제자에 속하는 철학자(38)

운으로 되었건, 꾀로 되었건 승리는 언제나 칭찬 받는다.(아리오스토)(38)

더욱 훌륭한 태도를 보여준 것은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그는 폴러페르콘이 야름을 타서 다리우스 왕을 치자는 제안에 대답하여 안 된다. 승리의 도둑질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다.(39)

7 생각이 우리들의 행동을 판단한다.

죽음은 우리들의 모든 의무를 면제시킨다고 한다. 영국 왕 헨리 7세는 그의 적인 백장미파의 포크공작이 네덜란드에 피신해 있는 것을, 공작의 생명은 보장하겠다고 막시밀리안 황제의 아들 돈 필리프와 화해 협상에서 약속하고 그를 넘벼받았다. 그러나 왕은 죽기 직전에 자기 아들의 유언으로 자기가 세상을 뜨거든 즉시 포크 공작을 처리해 버리라고 명령하였다.(39)

속죄는 부담을 요구한다.(40)

나는 가능하면 살이 있을 때 말해 놓지 않은 것을 내 죽음이 말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40)

마음은 일정한 목표가 없으면 갈피를 집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말처럼 사방에 있다는 것은 아무 곳에도 있지 않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41)

한가함은 항상 정신을 산란하게 한다.(루카누스)(41)

나는 문법학자들이 거짓을 말한다거짓말 한다사이에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은 거짓을 말한다는 것은 그릇된 일을 말하면서 그것이 진실인 줄 생각한 것이고, ‘거짓말 한다라는 말의 정의는 자기 양심에 반대되는 뜻을 품었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바와는 반대되는 일을 말하는 경우를 가리킨다고 그들은 말한다.(44)

사실 거짓말은 저주받을 악덕이다. 우리는 오로지 언약을 지킴으로써만 사람이 되며 서로 믿고 살아갈 수 있다. 거짓말의 가중함과 그 무서운 결과를 잘 알고 있다면, 우리는 다른 범죄보다도 이런 짓을 마땅히 화형에 처해야 할 일이다.(45)

확실히 그릇된 말은 침묵보다 얼마나 못한 것인가!(46)

어떤 것은 잘 지어 보려고 애를 쓰며 자기 일에 너무 긴장하고 억눌린 마음 때문에 자연스러운 웅변을 억누르고 꺾어 빽빽하게 만들고, 마치 풍부한 물이 억지로 맹렬하게 밀려 나가다가 좁은 홈통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격이 된다.(48)

억지로, 그리고 부자연스럽게 쓴 글에 대하여….

사실 하루 종일 활을 쏘다 보면 언젠가는 과녁에 적중하는 수도 있다.”(키케로) 나는 이런 것이 우연히 맞을 때가 있다고 해서 존중하지는 않는다.(52)

왜냐하면 마음에 충격을 받은 인상이 그에게는 피상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그대로 이성의 바탕에까지 침투해 독을 부어 넣어서 그를 추락시키기 때문이다.(55)

나는 날마다 분개시키는 것보다는 그를 한 번 분개시키는 편이 낫다.(56)

몽테뉴는 이런 사람이다.

14 선악의 취미는 대부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사물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에 속을 태운다.(57)

우리가 불행 또는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자체로서 불행도 고통도 아니고, 다만 우리의 생각이 그것에 이와 같은 소질을 주는 것이라면, 이 소질을 고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58)

그런데 어떤 자들이 전율할 것 중에도 가장 끔찍한 것으로 부르는 죽음을 , 다른 자들은 인생의 고초에서 벗어나는 단 하나의 안식처이며 자연의 최고선이며, 우리들의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곳이며, 모든 불행에 대해 공통되는 효과적인 처방전이라 부르는 것을 모르는가? 그 어떤 자는 벌벌 떨며 공포 속에서 이 죽음 기다리는데, 어떤 자는 그것을 삶보다도 더 쉽게 당해 내고 있지 않는가?(58)

이 일은 무서운 광경을 빚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본연의 애정과 예부터 내려온 싱앙에 대한 열성이 이 가혹한 명령에 대항해 싸운 것이다. 아비와 어미들은 서로 목숨을 끊는 것은 예삿일로 보였으며, 그보다 더 심한 예로 이 가혹한 벌을 받지 않으려고 어린애들을 우물에 던져 넣는 것이었다. (62) => 자식과 부모사이의 관계를 가지고 협박/개종시키려던 에마뉴엘 왕의 정책에 극단적인 방법으로 저항한 유대인들.

죽음은 한순간의 이동인 만큼, 생각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63)

자연의 조화로 심한 고통은 짧고, 가벼운 고통은 길다는 것이다.(65)

우리가 도망치면 적이 더 악을 쓰며 추격해 오는 것과 같이, 고통도 우리가 그 밑에 떨고 있으면 더욱 거만해진다. 고통은 잘 버티는 자에게 더 순해질 것이다.(66)

나는 얼굴빛을 희게 하려고 모래를 먹는 재를 삼키는 여자, 일부러 배탈을 내는 여자들을 보았다. … 터키인들은 사모하는 여인을 위해서 커다란 흉터를 만든다.(69)

생각은 강력하고 과감하여 일정한 정도가 없는 힘을 가진 적이다.(70)

사실 사람이 인색해지는 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을 것이 많아서 그렇게 된다.(71)

플라톤은 육체적 또는 인간적으로 보배로운 재물을 건강, 미모, 체력, 부유의 순서로 늘어놓는다.(74)

나는 그날그날을 살아갔다. 그리고 현재의 일상적 필요에 충분하면 만족한다.(75)

위대하고 고매한 일들을 판단하려면 그만큼 위대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것인 악덕을 그런 일에 전가시킨다. 꼿꼿한 삿대는 물 속에서 굽어 보인다. 사물은 본다는 것보다도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이다.(77)

누구나 오래 불행하다는 것은 모두 자신의 탓이다.(77)

아무튼 공포심은 이상한 격정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우리들의 판단력을 빠르게 탈선시켜 어긋나게 하는 것은 없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83)

옛날 솔론이 자기에게 한 말에, 사람은 운이 아무리 좋아도 그 인생의 마지막 날을 보기 전에는 그를 행복한 이라고 부를 수 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인간의 일이 불확실하고 변화무궁하며 아주 가벼운 동기로 어떤 형세에서 전혀 판이한 다른 형세로 변해 가기 때문이라고 하더니, 이제 자기의 불행이 이예고에 적중되었다는 것이다. (86)

우리 인생의 행복은 천성을 잘 타고난 정신의 안정과 만족, 그리고 조절된 심령의 결단성과 확신에 달려 있는 만큼, 최종 막의 가장 어려운 대목이 상연되는 것을 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인 진실인 듯 싶다.(87)

다른 사람의 인생을 비판하는 경우, 나는 항상 그 끝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본다. 나 자신의 인생에 관한 주요한 관심은 이 종말이 좋을 것, 즉 묵묵히 고요하게 죽어가는 일이다.(88)

20 철학에 마음을 쏟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매일매일이 그대에게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기대하지 않는 시간이 오는 것을 감사로 맞이하리라.(호라티우스)(95)

너무 먼 앞을 내다보며 계획할 것은 아니다. 또 적으나마 그 결말을  보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골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행동하려고 세상에 나왔다.(98)

짧고 격렬한 죽음이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99)

인생은 그 자체로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대들이 인생에게 차려주는 자리의 좋고 나쁨에 따른다. // 그대가 하루 살았다면 다 살아본 것이다. 하루나 다른 날들이나 마찬가지이다. 낮의 밝음에 다를 것이 없고, 밤의 어두움에 다를 것이 없다. 이 태양, 이 달, 이 별들, 이런 배치들, 이것은 그대 조상들이 누려 온 것이며, 그대 후손들이 다루어 갈 것이다.(103)

피타고라스의 며느리는, 여자가 남자와 잘 때는 치마와 함께 부끄러움을 벗어던지고, 속치마를 입을 때 부끄러움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112)

짐승들도 사람과 같이 상상력에 지배당한다. 그 증거로 개들 중에는 주인이 죽으면 슬퍼서 죽어가는 놈도 있다. 어떤 개는 꿈꾸다가 짖고 꿈틀거리며, 어떤 말은 자가다 울고 허우적거린다.(115)

영화 올드보이에도 오달수가 말하다. “있잖아.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하지 말아봐. X라 용감해질 수 있어.’ 여기서도 ‘X가 나온다. 김별아의 말한 시냇물이 X X X라 흐른다고 비판했던 글이 생각난다.

습관은 모든 사물들 가운데 최강의 상전이다.(120)

우리의 가장 큰 악덕은 연약한 소년 시절에 주름잡히는 것이며, 우리의 가장 중요한 훈육은 유모의 손에 달렸다고 본다.(121)

핀다로스가 습관을 우주의 여제라고 불렀다고 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127)

습관이 사물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129)

합법적인 태도는 냉철하고 무게 있고 제약된 태도이기 때문에 방자하고 광분한 태도를 버티어 내기에는 적당치 못하다.(136)

우리는 기억력을 채울 생각만 하고, 이해력과 양심은 빈 채로 둔다. 마치 새들이 모이를 찾으러 나가서 그 모이를 새끼에게 먹이려고 맛보지 않고 입에 물어오는 것과 똑같이, 우리 학자님들은 여러 책에서 학문을 쪼아다가 입술 끝에만 얹어 주고, 뱉어서 바람에 날려 보내는 짓밖에 하지 않는다.(151)

내가 여기 글을 쓰는 것도 똑 같은 수작이 아닐까? 나는 이책 저책,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을 도둑질해 다니며, 그것을 담아 둘 곳도 없어서, 내게 저장해 두지 못하고 여기다 옳겨놓는 것이다. 사실 이 문장들은 전에 있던 자리에서나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내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현재의 지식으로만 배우는 것이고, 과거의 것은 미래의 것과 똑같이 지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151)

지식은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불이 필요해서 이웃집에 불을 얻으러 가서는, 거기서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불을 보고 멈춰서 쬐다가 얻어 온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152)

반성하자 반성하자  반성하자

역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읽을 거리이고, 시 역시 특별히 즐겨서 읽습니다. 왜냐하면 클레안테스가 말하듯, 마치 소리가 나팔의 좁은 홈으로 몰려서 빠져나갈 때에 더 날카롭게 힘차게 나오는 것처럼, 문장은 시의 형식과 음률의 수에 억제되어 더 박차게 솟아나오며, 내게 더 강하게 감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여기 시험해 보는 바인데, 내가 타고난 자질로 말하면, 이런 무거운 책임은 지기 힘든 일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은 모색하며, 요동하며, 발에 채며, 헛디디며, 간신히 나가기 밖에는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해 보아도 나는 전혀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다.(161)

명문가의 자손되는 분이 소득을 위해서가 아니고, 외면적인 편익을 도모함도 아니며, 단지 학문 자체를 위해서 학문하고, 학자가 되기보다는 원숙한 인간이 되고자 하며, 내면적으로 자신을 풍부히 장식하기 위해서 학문을 하는 경우에는, 그를 위해서 지도자를 택할 때에 머리가 가득찬 사람보다는 머리가 잘된 사람을 조심해 택해야 할 것이며, 이 두가지를 모두 요구할 것이로되, 거기에 학문보다 습관과 이해력을  가지고 새로운 방법으로 자기 직책을 수행하게 할 것입니다.(166)

할 수 있으면 택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의문을 붙여 둘 일입니다. 무엇이 확실하고 확정적이라 보는 자는 미친 자들뿐입니다.(167)

다른 이를 좇는 것은 아무것도 좇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무것도 탈피하지 못하니, 실로 그는 아무것도 찾지 못합니다.(167)

하고 싶으면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얻었는가는 과감하게 잊어버리고, 자기가 스스로 적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진리와 이치는 각자에게 공통입니다.(167)

철학의 목적은 도덕입니다. 도덕에 접근한 자들은 반대로 그것이 기름지고 꽃피는 아름다운 평원에 있으며, 거기서 감히 모든 사물들을 눈아래로 내려본다고 생각합니다.(179) =>179~180

사람들은 인생이 끝날 무렵에 인생을 가르칩니다.(181)

무엇이 어떻든 나는 아이를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이를 혹독한 학교 선생의 우울한 기분에 맡겨 두기를 바라지 않습니다.(183)

학교란 정말로 어린애를 가두어 두는 감옥입니다. 그들이 방탕아가 되기 전에 처벌하여 방탕아를 만듭니다.(185) 16세기에도 이런 생각을……

사물을 알아보면, 언어는 부르지 않아도 따라 온다 (호라티우스)(189)

그것은 다 꾸며서 준비되었으나, 아직 시로 꾸며 놓지 않았을 뿐이오” (…) 사물들과 재료들을 마음속에 배치해 놓고는, 나머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입니다.(190)

내가 좋아하는 화법은 입으로 내는 것이건 종이 위에 실린 것이건, 단순하고 순박한 화법이며, 멋이 풍부하고 줄기차고 간결하고 속이 찬 것으로, 묘하고 매끈하기보다는 강렬하고 무뚝뚝한 것입니다. (191)

부친께서는 무엇보다도 내게 학문과 숙제를 내주는 데도 내 의사를 강제하지 않고 나 자신의 의욕으로 맛보게 하며, 혹독한 강제 없이 내 마음을 순하고 자유로이 가꾸라는 의견을 선택했습니다.(194)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린애의 교육에는 욕망과 애정을 돋우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198)

몽테뉴는 사상록 1권에서 장장 40페이지에 가까운 페이지를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할애 했다.

우리는 사물들의 크기보다 그 새로움에서 원인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200)

오만과 호기심은 우리 마음에 대한 두 가지 천벌이다. 호기심은 우리들이 무슨 일이건 참견하려 하게 하고, 오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확실하지 않은 채 두지 못하게 한다.(203)

우정은 전반적이고 보편적이며, 그러면서도 절제 있고 고른 열이고, 견고하고도 침착한 열이며, 거기에는 거칠고 찌르는 것이 없이 아주 보드랍고 매끈한 심정이다.(206)

우정은 고매하고 숭고한 비상으로 그 향하는 길을 유지하며, 사랑이 멀리 저 아래 길을 뚫고 가는 것을 경멸하며 내려다보고 있다.(207)

대체로 보통 친우 또는 우정이라 부르는 것은 어느 기회에 편의상 맺어져서 우리 마음이 서로 사귀는 친교와 친밀성에 불과하다.(209)

사실 내 일평생을 이 인물과 감미로운 사귐으로써 지내며 누릴 수 있던 4년 동안의 세월에 비교해 본다면, 이 한평생이 구름과 안개에 싸인 컴컴하고 지리한 밤에 지나지 않았다.(215)

이 인물은 하느님이다.

만일 도덕에 절도를 잃으면 현자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정의자도 불의자로 불릴 만하다.(호라티우스)(219) 절도 : 일이나 행동따위를 정도에  알맞게 하는  규칙적인 한도

결혼이라는 것은 신앙적인 경건한 결합이다. 그 때문에 거기서 얻는 쾌감은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정직하며, 어느 점에서는 엄격성에 관련이 있는 쾌감이라야 한다.(220)

아틀란티스에 대하여(224)

(스키타이 족들은) 각자 자기가 죽은 적의 머리를 전리품으로 가져와서 자기 집 문에 매달라 둔다. 그들은 포로는 오랫동안 잘 대접해주고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편의를 보아준다. (…) 모인 사람들 앞에서 포로를 칼로 쳐서 죽인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구워서 함께 먹고, 오지 않은 친두구들에게 조각을 보낸다. (….) 극단적인 복수를 보여주기 위한 일이다.(231)

명장 이스콜라스의 패배보다, 어느 누가 더 승리하려는 야심과 영광스런 적개심으로 전투에 돌격한 일이 있었던가?(234)

에피쿠로스(BC341년경~BC270년경,Epikuros(그리스어),철학자) (241)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철학자이며 유물론자. 아테네에 학교를 세우고, 이것을 '정원학교'라 불렀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시조. 헬레니즘 시대란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로부터 시작된 외세의 침입을 받아 그 지배 하에 있었던 시대로, 그로 인하여 그리스 본래의 문화에 외국의 문화가 혼합되었으며, 이 상태는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그리스의 고전적인 철학도 그 모습이 퇴색되어, 주로 개인적인 인생 문제가 주된 관심이었다. 에피쿠로스도 또한 이 인생 문제를 사색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계승하여 공허 가운데에서 운동하는 원자로부터 만물이 생긴다고 하였지만, 원자는 '직선운동에서 빗나간' 자의성을 갖는다고 보고, 데모크리토스의 기계적 결정론에 새로운 견해를 가했다. 인식에 대해서는 감각론을 주장하고 감각은 그 스스로 참을 전한다고 말하면서, 오류가 생기는 것은 감각을 해석하는 방법에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식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무지나 미신에 기초한 신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것은 평정하고 자율적인 심신의 안정 상태, '아타락시아'라 하고, 이것을 쾌락이라 칭하였다. 그가 주창한 쾌락주의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피쿠로스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수치스런 일이, 학문의 성과로 대단히 훌륭한 인물인 이탈리아의 릴리우스 그레고리우스 자랄두스와 독일의 세바스티아누스 카스탈리오 두 분이 우리 눈앞에서 먹을 것이 넉넉지 못해 굶주려 죽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246)

마음은 때로는 희열하고 때로는 침통하는 모습으로 서로 반대되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 밑에 자기 격정을 숨긴다.(페트라르카)(256)

태양빛은 계속된 줄기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태양은 새 빛을 끊임없이 짙게 연달아 투사하기 때문에 그것을 따로따로 알아보지 못한다.(257)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침공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널 때의 군대 형세를 고려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그렇게도 방대한 군사들이 자기 지휘하에 든 것을 보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뿌듯했다. 그래서 얼굴에 유쾌하고 기쁜 빛을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로 그 순간에, 다음 한 세기 동안 사뭇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사라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라 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가슴이 아파왔다.(258)

야심,탐욕,불안,공포,음욕 등은 우리가 딴 나라에 가 있다고 해서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261)

고독함은 탈레스의 본을 따서 자기 활동기의 화려한 세월을 세상에 바친 자들에게 더 적합하고 온당한 것같이 보인다.(264)

세상에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으로 있을 줄 아는 일이다.(265)

살림살이에서나 공부에서나, 사냥에서나 다른 모든 훈련에서도, 쾌락의 극한까지 가보아야 한다. 그러나 고통이 섞여들기 시작하는 곳에서는 더 이상 걸려들지 말아야 한다.(269)

세상 사람들이 그대의 말을 해주기를 찾는 것이 그대에게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대가 어떻게 그대 자신에게 말해야 할 것인가를 찾으라. 자신에게 은퇴하라. 그러나 먼저 그 곳에 그대를 받아들일 차비를 하라. 그대가 그대를 지배할 줄 모른다면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 미친 수작이다.(271)

내 문체는 본시 해학조의 허물 없는 말투이다. 그것은 어느 때나 내 언어가 갖는 버릇이지만, 공적인 교제에는 부적당하다. 그러나 그것이 내 형식이다. 내 문체는 아주 압축되고 흐트러지고 빽빽하고 독특하다. 그리고 얌전한 구절을 예쁘게 꿰어맞춘 것 외에 실속 없는 의식적인 문장은 내 비위에 맞지 않는다.(276)

그러나 인간들의 평가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 울들 말고는 어느 사물이건 그 자체의 소질만으로밖에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말 한 필을 두고, 그 힘차고 숙달된 것을 칭찬하는 것이며, 그 안장을 보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사냥개는 그의 속력을 보고 칭찬하는 것이지 목띠를 보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며, 보라매는 그 날개를 보고 칭찬하지, 그것과 방울을 보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한 인간을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것을 보아서 평가하지 않는가?(281)

막의 뒤에 가서 보라. 그것은 평범한 한 인간에 불과하며, 아마 그 신하 가운데 가장 변변찮은 사람보다도 더 비굴한 인간이리라(283)

신하는 내적 행복을 향유한다. 황제는 표면의 행복을 향유함에 불과하다.”(세네카) 비겁, 혼미, 야심, 울분, 시기심이 다른 자나 마찬가지로 그를 뒤흔든다.(283)

풍부함보다 더 거북하고 싫증나는 일은 없다.(287)

왕들의 호강이라는 것은 거의 공상 속의 호강이다.(288)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에 대한 맹렬한 전투를 결행하기로 결정된 날, 아침 늦게까지 너무 깊이 잠이 들어서 파르메이온이 (싸움에 나갈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에)방에 들어가서 그의 이름을 두서너 번이나 불어야만 했다.(294)

왕들의 족보에는 운명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이름들이 있다. 이집트의 왕들에서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렇고, 영국에서는 헨리가 그렇고, 프랑스에서는 샤를이 그렇고 폴란드에서는 보두앵이 그렇고, 옛날 아키테에느에서는 기욤이 그렇다.(297)

우리는 허둥지둥 분별 없이 추리한다. 우리와 같이 우리의 사고력은 대부분 우연에 매여 있기 때문이라고 <플라톤>속에서 티마에오스는 말한다.(309)

말들 중에는 적이 칼을 뽑아들고 나올 때에 주인을 구하려고 달려들어, 공격해 오는 자들은 발로 차고 이빨로 물어뜯게 훈련된 것도 많다.(309)

나는 우리 국민에게 자기 자신의 풍습과 습관밖에 달리 자기 완성을 위한 스승과 규칙이 없다는 것을 변명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출생할 때부터 받아 온 길로 그들의 목표와 한도를 정하는 것이, 속인들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의 공통된 결함이기 때문이다.(317)

우리의 변화가 너무 급격하고 신속해서, 많은 재단사도 미처 새 것을 꾸며낼 겨를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세상사는 불가피하게 현재의 경멸받던 형식이 바로 뒤에 다시 신용을 얻게 되고, 유행하던 방식이 바로 뒤에 경멸받게 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우리 중에는 이런 모순에 속아서 부지불식간에 외부 세계를 보는 눈뿐 아니라 내부적인 눈이 헛보이게 되지 않을 정도로 총명한 자는 없다.(318)

데모크리스토아 헤라클레이토스는  철학자였다. 그 중에 데모크리토스는 인간 조건을 헛되고 가소롭게 보며, 밖에 나갈 때에는 늘 웃으며 조롱하는 상을 가졌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의 바로 이 조건을 연민과 동정심으로 보았기 때문에, 얼굴이 늘 슬픈 상이었으며,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325)

아리스톤은 수사학을 현명하게 정의하여 사람들을 설복시키는 학문이라고 하였다.(327)

이것(수사학)은 질서 없는 군중과 시민들을 조종하고 선동하려고 꾸며 낸 연장이며, 약과 같이 병든 국가 외에는 사용되지 않는 연장이다.(327)

웅변술은 로마 정국이 가장 나쁜 상태에 있고 내란이 세상을 뒤흔들 때에 가장 번창했다. (327)

전유법, 은유법, 혹은 우의법이라고 문법학자들이 붙이는 이런 따위 이름들을 들어 보라. 무엇인지 희귀하고 괴상한 언어 형태를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것은 그대 집 침모가 나불거리는 말법에 관해서 붙인 명칭이다. (329)

우리의 인식과 향락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인건 만족을 주지 못함을 우리는 느낀다. (…)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사물들이 우리를 만족시킨 거리가 못 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병적이고 혼란스런 상태로 사물들을 파악하기 때문이다.(331)

그것보다는 주관적으로, 아전인수격으로 사물을 파악하기 때문 아닐까……

우리의 욕망은 결단성 없고 불확실하다. 그것은 아무것도 좋은 방식으로 보유하지도 향락하지도 못한다.(332)

(하느님)의 정의와 능력은 불가분이다. 좋지 못한 목적으로 그의 힘을 간청해 보아도 헛일이다. 적어도 그에게 기도드리는 순간에는 심령이 깨끗해서 악덕스런 정열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에게 우리를 징벌하는 채찍을 제공하는 것이다.(339)

우리는 습관이나 버릇이 되어서 기도를 올린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는 기도문을 읽거나 발음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흉내내는 것뿐이다.(339)

우리 아이도 기도를 흉내내는 단계, 나 또한 그렇다.

머릿속은 늘 음탕한 생각으로 웅성거리면서도 하느님 앞에서는 그것을 더러운 일로 판단하는 자가 하느님께 말할 때에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타락한다.(340)

마치 투캅스의 안성기 같이……

나는 인간적이며, 내 개인적인 상념들을 의문과 변경이 불가능하게 하늘이 내린 것으로서가 아니고, 단순히 인간적 상념으로, 그리고 별개로 고찰된 것으로 내놓는다. 이것은 내 생각의 재료이지 신앙의 재료는 아니다. 나는 하느님을 따라서 믿는 것이 아니고, 어린애들이 자기 생각을 내놓듯이 내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기 위한 것이다. 속인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고, 교회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시 신앙적으로 하는 것이다.(344)

늙어서 죽는다는 것은 희귀하고 특이하고 심상치 않은 죽음이며, 다른 죽음들보다도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348)

과거에는 질병과 사고로 죽는 경우가 많아서 이지만,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은 조금 다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사망하긴 하지만 말이다.

가시는 돋칠 때 찌르지 않으면 다시는 찌르는 일이 없다.(349)

시간을 잘 이용하는 자에게는 학문과 경험은 나이와 함께 자랄 수 있다. 그러나 활기와 민첩성과 견고성,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다른 소질들은 시들며 쇠약해 간다.(350)

때로는 신체가 먼저 노령에 항복하고 어느 때는 심령이 먼저 항복한다. 나는 위장과 다리보다는뇌수가 먼저 쇠약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겪는 자는 그 쇠약이 잘 느껴지지 않고 잘 드러나지 않는 만큼, 그 만큼 더 위험하다. 나는 법률이 우리는 너무 늦게까지 일을 시키는 것을 불평함이 아니라, 더욱 오래도록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을 불평한다. 우리 인생의 연약함을 고찰하고 자연의 암초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부딪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출생과 한가함과 훈련에 할당해서는 안될 일로 보인다. (350)

16세기에도 나이든 사람은 젊은 사람들에게 일자리에서 밀렸나보다. ‘일을 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목적이 있다는 것이고, 목적이 없는 배는 표류하게 마련이다. 할 일을 잃고 갈길을 잃어버린 자, 어찌 평안하리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

 

이 책을 읽는 이에게

 1

1 인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똑같은 결과에 도달한다·17

 2 슬픔에 대하여·21

 3 우리들의 감정은 세상 너머에까지 이른다·24

 4 진실한 목표가 없는 심령이 그릇된 목표에 정열을 쏟는 모습·31

 5 포위당한 요새의 장수가 적과의 강화를 위해 성을 나간다면·34

 6 협상하기 위험한 때·37

 7 생각이 우리들의 행동을 판단한다·39

 8 나태에 대하여·40

 9 거짓말쟁이들에 대하여·42

 10 빠른 말법과 느린 말법·47

 11 예언에 대하여·49

 12 불굴에 대하여·53

 13 제왕들의 회견 의식·56

 14 선악의 취미는 대부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달려 있다·57

 15 당치 않게 한 요구를 지키다가는 벌을 받는다·78

 16 비겁함의 처벌에 대해서·79

 17 어떤 대사들의 특징·80

 18 공포심에 대하여·83

 19 사람의 운은 죽은 뒤가 아니면 판단하지 못한다·86

 20 철학에 마음을 쏟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89

 21 상상력에 대하여·107

 22 한 사람에게만 이로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 해롭다·118

 23 습관에 대하여, 그리고 이어받은 법을 쉽사리 변경하지 않음에 대하여·119

 24 같은 결심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다른 결과·137

 25 학식이 있음을 자랑함에 대하여·147

 26 아이들의 교육에 대하여 드 귀르송 백작 부인 디아느 드 포아에게·160

 27 우리들의 능력으로 진위를 가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수작이다·198

 28 우정에 대하여·203

 29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의 짧은 시 스물아홉 편·217

 30 절도에 대하여·218

 31 식인종에 대하여·224

 32 거룩한 절차의 비판에는 참견을 조심할 것·238

 33 생명이 아깝거든 감각적 탐락을 피할 것·240

 34 운은 가끔 이성의 움직임과 같다·242

 35 정치의 결함에 대하여·245

 36 옷 입는 습관에 대하여·247

 37 작은 카토에 대하여·250

 38 우리는 같은 일로 울기도 웃기도 한다·255

 39 고독함에 대하여·259

 40 키케로에 대한 고찰·271

 41 자신의 영광을 양보하지 말 것·277

 42 우리들 사이에 있는 불평등에 대하여·280

 43 사치 단속법에 대하여·291

 44 잠에 대하여·293

 45 드뢰외 전투에 대하여·295

 46 이름에 대하여·297

 47 판단력의 불확실성에 대하여·302

 48 군마에 대하여·309

 49 옛 관습에 대하여·317

 50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하여·322

 51 언어의 허영됨에 대하여·326

 52 옛 사람들의 인색에 대하여·330

 53 카이사르의 말 한마디·331

 54 헛된 묘기에 대하여·332

 55 냄새에 대하여·335

 56 기도에 대하여·337

 57 나이에 대하여·347

 

* 내가 저자라면

Essais(Essay)란 무엇인가. 수상록은 그때 그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로 정의되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필은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을 말한다.      

하지만 몽테뉴의 수상록초판이 간행된 1580년의 <에세>는 당시 시험, 시도, 경험 등을 의미했고, 아직 수필이라는  장르의 명칭이 되지 않았다. 결국 몽테뉴의 수상록은 최조의 수필, 수필의 원초인 것이다. Essay가 수필을 의미하게 된 것도 몽테뉴의 수상록(Essais)’ 때문이다.

20여년간 집필되어 107장을 이루고 있는 이 책은 총 3권으로 나뉘어 진다. 스토아 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초기의 1, 회의주의에 기반을 둔 2, 그리고 오랜 시간을 살며 경험에  의해 많은 생각인 바뀐 뒤 쓴 3권은 에피쿠로스 학파적  쾌락주의가 가미되어 자연주의적 경향을 띈다. 1권은 초기에 쓰인 글들을 모든 것으로 독서의 감성문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며, 공포, 경험,  고독, 관습, 상상력, 식인종, 수면, 슬픔, 우정, 자유, 절도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네카나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의 저서에 언급된 글들을 자주 인용하였으며, 별다른 형식이 없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겨놓았다. 그거 서문에서 말했듯 이 책의 시작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즉 몽테뉴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알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다. 그렇기에 진실되고자 했고, 스스로를 잘보이려 꾸미지도 않았다. 실제 그는 많은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장에서 자신도 그 지식인 중 하나임을 언급하기도 하고, 자신의  종교는 지극히 자의적인 종교임을 밝히기도 한다.

그때 그때 생각나는 주제르 그를 썼지만 저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자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보려했으며 이는 스스로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이 책의 구성은 수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더욱이 최초의 수필이라는 점은 감안하면 무엇이 잘됐고 잘못됐는지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약 133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107편의 수필들이 20여년에 걸쳐서 쓰여진 몽테뉴의 끊임없는 자아성찰에 대해 나 또한 진지하게 바봐야 할 것이다.  그도 그럴게 나 또한 일상적인 일들에서 오는 내 느낌, 내 생각, 사실 등을 글오 옮겨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쓴다면 - 물론 수많은 책들 중의 하나 또는 수많은 컨셉 중의 하나  이겠지만 현재가 아닌 과거를 써보고 싶다. 책에 관심을 가지고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최근 5,6년은 다이어리라는 불완전하고 불규칙적인 방식으로 나의 일상이나 생각을 끄적여보았지만 그 전 30년은 그런 기록들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살아가는 현재가 중요하지만, 어제의 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듯, ‘란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어제의 를 돌아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지금 떠오르는 방법은, 몇몇 영화들을 통해 나와 내 지난 일상을 돌아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든다. 물론, 지금 떠오른 방법일 뿐이다.

 

** ‘식인종에 대하여’, ‘옛 관습에 대하여와 같은 부분에서 나오는 관습과 다양한 문화의 모습을 언급하는 부분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몽테뉴는 몽테스키외보다 약 150여년 전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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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36. 과학,일시정지 / 가치를 꿈꾸는 과학교사모임 쭌영 2014.02.10 5116
1020 (No.37) 헤르만 헤세 [데미안] 더클래식 - 서은경 file 서은경 2014.02.10 2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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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2월 2주] 구본형의 The Boss: 쿨한 동행 file 라비나비 2014.02.10 1886
1015 No 41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1) file 미스테리 2014.02.10 2543
1014 #37. 도와주세요. 팀장이 됐어요 / 신승환 쭌영 2014.02.16 2490
1013 No 42.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2) file 미스테리 2014.02.17 13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