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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0일 07시 16분 등록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모럴리스트( 16세기부터 18세기에 프랑스에서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법을 탐구하여 이것을 수필이나 단편적인 글로 표현한 문필가를 이르는 말. 몽테뉴, 파스칼, 라로슈푸코, 라브뤼예르 등이 이에 속함) 몽테뉴는 자신의 평생을 지극히 개인적인 에세이(수필)로 남겼다. 그 양이 1,300페이지에 이르고, 내용도 사랑, 우정, 가족, 나이듦, 교육 등과 같은 다양한 가치, 그가 살던 시대의 모습을 돌아보고 이를 비판하고, 자신이 읽은 많은 철학자들의 사상들을 돌이켜 보는 등 참으로 다양하다. 그가 평생 자신의 일상과 자신의 생각을 지속적이고 끈기있게 돌이켜보고 쓰고 정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끈기가 부족한 나로서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심리학자 카를 융이나 소설가 괴테, 철학자 몽테뉴 등 역사상 유명한 사람들의 전기 또는 저서를 보면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기록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악몽, 도심에서 벌어지는 왕의 대관식 모습,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 부모 형제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이 위인들의 사상이나 삶에 미친 영향 등등 어찌 보면 사소하고 쓸모없다 생각되는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다. 그들이 이를 추억하고 돌아보고 기록하는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물론이고, 그들의 기억력 또한 놀랍다.

일상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면 나의 일상을 세세하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순간 순간 스쳐지나가는 모습들,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한 느낌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사물과 가치와 순간, 그리고 나와 남의 행동을 허투루 흘려 보낼 수 없다. 순간 순간이 소중해야 일상의 모습을 내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의 일상을 쓴다는 것은 나의 삶을 쓴다는 것이고, 이 행위는 나의 삶을 조금 더 진지하고 소중하게 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런데 일상을 쓰겠다는 사람의 어제를 돌아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도 그럴게 30대 중반을 넘어 후반을 바라보는 나는 30대가 되기 이전까지 기록이란 것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나는 내 30년 삶을 그 때 그 때 되는대로 즉흥적으로 살아온 면 없지 않아 이를 추억하고 끄집어내어 나의 언어로 만드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인다. 생각하려 해도 생각 할 수 없고 이를 끄집어 내어 글로 옮긴다해도 과연 이 기억이 진짜인지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나의 기억인지, 또는 나의 기억이길 바라는 내 마음이 기억의 왜곡을 가져다 준 것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의 삶과 내일의 삶은 그럭저럭 정리하고 기록하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어제의 삶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어제의 삶을 어떻게 다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본다.

일단 끊임없이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내 어린 시절, 나를 둘러싼 환경들-, 도시의 모습, 학교의 풍경 등- 은 어떠했는가. 연도별로 볼 수도 있고 기간별로 끊어서 돌아볼 수도 있다. 때론 나의 가족의 모습을 추억하며 그 안의 또는 그들과 함께 하는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친한 친구와의 우정을 돌아볼 수도 있다. 내 생애 가장 창피한 또는 꽤 창피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나의 일상을 되찾아올 수도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을 돌아볼 수도 있다.

문득 한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나의 어제의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통로(또는 매개체)를 만드는 것이다. 나에게는 일단 영화와 음악이 일순위로 꼽힐 수 있다. 특히 영화는 내 인생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한 영화를 보면 내가 그 영화를 보았던 때의 내 모습, 추억을 기억할 수 있을 듯하다. 예를 들면 난 미저리데미지’, ‘연인같은 영화들은 중학교 시절 홀로 좋아했던 커트머리의 동창친구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언니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이가 나이이니 만큼 그 영화들은 그 아이가 본게 아니라 그 아이의 언니가 본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는 어떤가. 초등학교 3학년 또는 4학년때로 기억한다(아니 5학년때였던가?). 누나에게 공짜표가 생겼다는 이유로 누나의 친구들과 함께 보러 간 영화는 재미있는 듯 없는 듯 하더니 결국 나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왜냐하면 영화의 러닝타임자체가 내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160분이었고, sf난 액션과 같은 흥미위주의 영화가 아니었기에 영화가 상영되는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영화 속 비운의 주인공 마지막 황제 부이(푸이)가 가지고 놀던 메뚜기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을 기억한다. 또한 이 영화는 오래 전에 사라진 강릉의 어느 극장의 이미지도 떠오르게 한다. 이처럼 나는 영화를 통해 나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다.

지난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그럼에도 지난 30년은 내게 꽤 아쉬운 시기이다. 그 때 그 때의 삶에는 충실했지만 다소 즉흥적이었고 수동적이었던 내 삶에 대한 자세로 인해 나를 돌아보는 노력을 소홀히 했고, (이제서야 느끼는 것이겠지만) 내 삶을 효과적으로 불러올 수 있는 기록을 하지 못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이다. 어제의 아쉬움을 교훈 삼아 나의 오늘과 내일을 소중히, 꼭 꼭 눌러쓴 연예편지처럼 그렇게 정성스럽게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어제를 돌아보며 비록 단편적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 둘 주어 담고 끼어 맞추는 것이다. 그럼 결국 인생이라는 나의 퍼즐은 완성이 되고, 나의 삶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몽테뉴가 그랬듯,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은 결국 나를 알기 위해서이다.

 

p.s) 이 글을 쓰며 돌아본 나의 어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영화였다면,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단연 성룡이었다. 작가이자 감독 유하가 이소룡을 추억했다면, 나는 명절 전용 배우인 성룡을 추억하고 있다. – ‘용소야를 보며 문득 떠올리다.

p.s.20 90년대, 2000년대 인기를 끌었던 O.S.T(Original Sound Track)을 듣고 있다. 영화 ‘Love actually’ 의 삽입곡인 ‘Sweetest Goodbye(Maroon 5)’가 흘러나오고 있다. 두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영화 ‘Love actually’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내 귓가에 음악이 흐르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는 것…… 책을 읽을 때는 음악듣는 것이 그렇게 집중에 방해를 하더니, 글을 쓰는데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시 수동적인 읽기보다는 능동적인 쓰기가 몰입에는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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