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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0일 11시 59분 등록

No 41

2014.02.10

Oh! 미경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 지승호 지음/ 시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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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2013년 5월 13일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뜨고, 5주 50시간 4,500매의 기록

모든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에 바치는 헌사이다

나 역시 나의 인문학을 사랑과 자유에 바쳐야 한다

그리고 인문학자들 사이의 공통점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의 디테일이 아닌, 그들을 관통하는 정신이 중요하다

인문학을 평가하는 잣대도 거기에 있다

인간이 죽지 않는 이상

사랑과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

 

1. 저자에 대하여: 강신주, 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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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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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45) 작가의 존재는 특별하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독보적이다. 그는 2002년 9월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시작으로 지난 11년 간 ‘오직’ 인터뷰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가 지금까지 인터뷰해 활자화한 인사가 200명이 넘는다. 단행본으로 출간한 인터뷰집만 총 29권. 게다가 지 작가는 ‘딱 한 사람’만 파고들어 400페이지 안팎의 책으로 낸 게 12권이나 된다. 그는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유일무이한 ‘인터뷰 전문’ ‘인터뷰 전업’ 작가다. 소속된 매체도 없이.

 

그는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도 여러 권 출간했는데, 급기야 최근에는 ‘초대박’을 냈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을 인터뷰한 ‘닥치고 정치’다. 현재 각종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주간 베스트셀러 3위 안에 들어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김어준 총수가 직접 쓴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지 작가가 “이 얘기부터 시작하자” “그건 무엇 때문이지?” “이런 뜻이군” 등으로 묻고 추임새를 넣으면 김 총수가 “그렇지” “그건 아니고” “좋아” 하며 답변을 이어가는 인터뷰집이다.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니 팔라치는 아라파트, 간디, 호메이니, 덩샤오핑과 같은 세계적 거물들을 만난 뒤 ‘역사와의 인터뷰’ 등을 출간했다. 황호택 실장은 월간 신동아에 연재한 명사들과의 인터뷰 기사들을 모아 ‘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그들에게 길을 물으니’ ‘생각의 리더 10인’ 등의 인터뷰 모음집을 냈다. 그러나 양적으로나 집중도 면에서나 지 작가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인터뷰 전업작가가 왜 그렇게 없나.

 

“독하게 이것만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한 힘들 수밖에 없다. 인터뷰어 한 사람이 계속 새로운 책을 기획하고 몇 달간 그 책을 만드는 데만 매달리기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또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눈에 뭐가 씌어서 버텨온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을 벤치마킹하자고 해도 이걸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맨 땅에 헤딩해 왔다.”

-언제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나.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실은 학창시절에 농구만 했다. 당시 교내에서 슛이 제일 좋아서 별명이 이충희를 본 딴 ‘지충희’ 였다. 화염병 한 번 안 던져봤다. 졸업하고 우여곡절 끝에 인터넷 미디어를 운영하며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2000년이 분기점이다. 시사 여성 주간지 ‘우먼타임스’에서 7개월간 일했다. 매체 특성에 맞게 여자들한테 친화적인 남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해서 진중권, 김규항, 유시민씨 등을 만났다. 매주 전면 인터뷰 기사를 썼다. 그 당시에 인터뷰 기사로 한 면을 다 털어 연재하는 건 파격이었다. 인터뷰라는 장르가 참 재미있다고 느껴져서 그 일을 계속하자고 마음먹었다. 2001년에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다른 매체에서 계속 인터뷰 일을 하다 2002년에 첫 인터뷰집을 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곧 다른 출판사에서도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다.”

과묵하지만 수다스러운

 

-지 작가가 인터뷰를 한 인물들을 보면 다들 자신의 주의·주장과 작품으로 먹고 사는 분들이다. 김수행, 장하준, 우석훈 같은 경제학자는 경제학 책으로, 공지영 같은 문인은 소설과 에세이로, 감독들은 자기 영화로 발언하면 된다. 평소 이슈에 대해 실컷 목소리를 내는 논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이 굳이 자기가 살아온 얘기와 주장을 한 권의 책 분량으로 다 털어놓고 맡기는 이유가 뭔가.

 

“어느 때에 자기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또 자기가 사람들한테 오해받고 있는 점, 뭔가 답답하고 억울한 점에 대해 해명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본인이 글을 쓰면 자세가 안 나오고 어색할 수 있다. 장시간의 인터뷰를 한다는 결심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자기 사정을 잘 들어줄 수 있을지, 제대로 기록할지 알 수 없으니까. 인터뷰어가 그냥 막 다가가서 내가 굉장히 스킬이 좋고 상담 잘 하니까 나한테 다 털어놔라, 그런다고 믿고 입을 열지는 않을 거 아니냐. 그런 부분은 인터뷰어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아, 이 사람에게는 내가 얘기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하는데, 나는 꾸준히 작업을 하다보니까 업계에서 신뢰감이 어느 정도 축적돼 있는 것 같다. 얘기 더 듣자고 상대방에게 굽실거리는 것은 아니다. 말투만 예의 바르게 할 뿐이지, 그 사람이 불편해 할 얘기는 다 물어본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테니까.

 

전북대 교수 강준만은 “지승호는 오리아나 팔라치보다 더 윤리적이고, 미국 방송 저널리스트 바버라 월터스보다 성실하다”고 평했다. 공지영은 “오랜 시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묵묵히 인터뷰어의 길을 걸어온 ‘어리석은’ 지승호씨와 나는 기꺼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했다.

 

우석훈의 경험담은 집약적인 평가를 담고 있다. “내가 대담집이나 인터뷰집을 출간하게 될 가능성은 사실상 0%였다. 그만큼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남들 앞에 공개되어 서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내가 인터뷰집이라는, 익숙지 않을 뿐더러 ‘안 한다’는 평소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그가 지승호였기 때문이다. 지승호는 다른 어떤 인터뷰어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인터뷰를 책으로 출간하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자이자, 성실한 출간인이라는 점이다. 실제 성격은 과묵하지만, 매체 속에서의 지승호는 한국의 그 누구보다도 수다스럽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 ‘말 좀 해보세요’라고 말을 시키고, 수다스러운 국면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지승호 말고는 없다.”

참는 인터뷰어에게 복이 있다

 

-인터뷰 사전준비를 어떻게 하나.

 

인터넷에 올라와 있거나 활자화된, 상대방에 관한 각종 자료를 최대한 섭렵한다. 인터뷰 대상이 공지영 작가라면 그의 모든 책을 사서 읽고, 관련된 평론과 인터뷰 기사를 다 찾아본다. 영화감독이라면 그의 영화 DVD를 전부 구해서 본다. 사실 영화감독들 인터뷰집 ‘감독, 열정을 말하다’ 같은 걸 한 번 내려면 DVD값 지출이 인세 수입과 거의 맞먹는다. 공 작가 작품은 중고 책도 있고 해서 다 사는데 20여만원 들었는데, 감독들 작품은 장난이 아니었다. DVD는 한 편에 2만원이 넘으니까. 감독 한 명이 작품을 7∼10편씩 찍었는데, 그런 감독을 7명씩 인터뷰해서 책을 내려니.(웃음)”

 

-질문지는 어떻게 준비하나.

 

질문은 처음부터 잘 정리해서 들어가야지, 헝클어져 있으면 답이 안 나온다. 살아온 순서대로 연대기로 갈 것인지, 그의 작품별로 접근할 것인지, 특정 이슈에 집중할 것인지 등등. 방향을 잡은 뒤 질문 목록을 300개 안팎 준비한다.”

 

-인터뷰는 몇 시간씩 하나.

 

“평균적으로 20∼30시간 한다. 가장 오래 한 게 공 작가인데, 40시간 정도 했다. 한 번에 11시간 한 적도 있다. 낮 12시에 만나서 밤 11시까지.”

 

-인터뷰 마치고 녹취 푸는 데도 오래 걸리겠다. 기자의 경우 2시간 정도 인터뷰해도 녹취 푸는 데 반나절 걸리더라.

“인터뷰 시간의 보통 3배 정도 걸리니까 그럴 거다. 내 경우 집중이 안 될 때는 10분 푸는데 2시간 걸리기도 한다. 녹취를 다 풀면 보통 200자 원고지 2000장 분량이 넘는다.”

 

-인터뷰를 하면서 힘들었던 사람은 누구냐. 기자의 경험으로 생각할 때는 뭐를 물어봤는데 자꾸 ‘핀트’가 안 맞는 얘기를 한다거나, “예” “아니요” 식으로 단답형으로 말하는 사람이 힘들다.

“그 사람 스타일이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그것도 인터뷰어에게 잘못이 있다고 본다. 그 사람의 대답이 그렇다면 질문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계속 방법을 찾아야 하다. 그 사람이 나한테 맞춰서 대답을 잘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 않겠느냐.”

 

-기자들의 업무에서도 인터뷰가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 팀원들 중에서도 인터뷰를 하고 나서 “얘기하는데 자꾸 동문서답하더라” “문장이 제대로 완성이 안 되더라. 한 가지를 얘기하다가 중간에 다른 얘기로 빠지지를 않나” 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지 기자가 알고 있다면 그걸 듣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게 있다. 기자들 같은 경우 바쁘니까 그걸 잘 못 챙기고 인터뷰하러 갈 거다. 준비 안 하고 가니까 당연히 그 사람하고 핀트가 안 맞는 거다. 인터뷰이에게는 다 자기 입장과 상황이 있다. 심지어 인터뷰이가 무식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걸 제대로 표현을 못 하면 인터뷰어가 그걸 끌어내기 위해 그 사람보다 더 베이스(기초)를 많이 깔고 가야 할 때가 있다. 양심이든 종교적 신념이든, 이게 옳다는 직관을 가지고 행동을 하면서도 그 이론을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경우 오히려 인터뷰어가 공부를 해갖고 가서 ‘이래서 이런 걸 하시는 거죠?’ 하고 멍석을 깔아주면 ‘아, 그런 것 같습니다’ 하면서 얘기가 나온다. 그런 준비 없이 기자라고 가서 자꾸 다그치면 답이 안 나오는 거다. 준비를 제대로 안 하고 가면 ‘선수’들한테 말리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이 어떤 오류를 말하면 ‘그건 틀리잖아요’ 하고 지적할 수 있는 체크 포인트를 준비하고 가야 한다.

 

-만나서 힘든 것보다 불쾌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 있죠.”

 

-예전에 누구 만나러 갔는데, 기자가 약속하고 멀리서 찾아갔는데도 자리에 앉아서 일어나지도 않고 떡 하니 다리만 꼬고 있더라. 인터뷰는 그럭저럭 화기애애하게 마쳤지만, 내가 가는데 또 일어나지도 않더라.

“그런 걸 ‘가오’(허세·있는 척)라고 생각하는 거죠. 나 같은 경우는 어차피 내가 듣고 싶은 목적이 있어서 가는 거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 사람의 스타일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만다. 예전에 개그맨 전유성씨가 낸 책 제목이 있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웃음) 나는 인터뷰할 때 상대방이 약속보다 좀 늦게 오면 속으로 더 좋아한다. 자기가 미안하면 나한테 좀 더 잘하겠지 하고.(웃음) 물론 미안해야 할 상황에서도 신경조차 안 쓰는 사람도 있다. 나한테 면박 주는 사람도 있었다. 민망하지만 어떡하겠느냐. 이해하려고 해야지. 그런데 그 사람이 나중에 트위터에 ‘지승호가 대한민국에서 남의 말 제일 잘 듣는 사람’이라고 올렸더라.(웃음)”

100권의 꿈, 마라토너의 꿈

 

-지금까지 몇 명이나 인터뷰했나.

“200명은 넘고 250명 정도 될 거다.”

 

-본인이 만나고 싶은 사람 위주로 섭외하나.

“출판사에서 의뢰해오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더라도 내가 관심이 있어야 한다. 책 완성하는 데 서너 달을 쏟아야 하고, 길면 반년 이상을 매달려야 하는데, 내가 관심 없는 사람한테 그렇게 투자하기에는 정서적으로 힘들다. 만약 그게 엄청나게 돈이 될 것 같다면 그거야 뭐.”

 

-그런데 대상자 성향이 너무 치우쳐있는 거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의미가 있는 사람이 다양하게 있는데 지 작가는 주로 진보 쪽 인사들을 만났으니까. 보수진영 중에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없나.

근데 나는 상대방과 논쟁을 할 필요는 없고, 그 사람이 생각하는 알맹이가 대체 뭔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어떤 트라우마(정신적 상처)가 존재하는 건 아닌지 그런 걸 묻고 싶다.”

 

-29권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뭔가.

“공 작가 책이 8만∼9만부 팔렸다. 사실 공 작가는 나한테 은인 같은 분이다.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웠던 시기였는데, 그 책 수입 덕분에 2년 정도 산소호흡기 달 수 있었다.(웃음) 최근에 낸 ‘닥치고 정치’가 기록을 갱신했다. 출간 3주밖에 안 됐는데 14만부 나갔다. 그 외 ‘PD수첩-진실의 목격자들’ ‘신해철의 쾌변독설’ 등이 2만부 나갔다. 사회과학 분야 출판에서 1만부만 해도 대박이다. 인세는 통상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5대5로 나눈다.”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얻는 이득은 뭔가. 여러 전문가들 만나면서 스스로에게 공부가 되는 측면도 있겠다.

“사실 그게 가장 좋다. 매우 재미있는 공부다. 자료 조사하면서 예습하고, 직접 만나서 실습하고, 녹취 풀고 교정보면서 여러 번 복습하고.(웃음) 그런 재미가 있으니까 지금까지 해왔지, 돈벌이도 안 되는데 단지 의무감 때문에 한다면 못 한다.”

 

-어떤 글을 보니 ‘미디어 황제’를 꿈꿨다는 얘기를 했더라.

“없는 놈이 꿈은 크게 갖는다고. 그나마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곧 30번 째 책을 낼 건데, 건강이 허락된다면 100권까지 내고 싶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터뷰 스타일을 이제 바꿀 생각은 없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달라질 건 없다. 글쓰기 형식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내 자신은 최대한 안 드러내면서 우직하게 가려고 한다. 그게 길게 가는 길이다.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상대방을 들이받으면서 공격적으로 하는 인터뷰어도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단행본 저자로서의 호흡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 굳이 내 스타일을 바꾸지 않아도 만나는 사람에 따라 책 분위기는 자연스레 달라진다. 그 사람의 결에 맞추면 되는 것이다. 나를 만나서 신뢰감을 갖고 편하게 조근조근 풀어낼 수 있도록, 발언이 아주 섹시하지는 않더라도 그 사람의 은근한 매력이 배어나올 수 있도록 하는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 나는 봅슬레이 선수가 아니라 마라토너다. 마라톤이 굉장히 지루할 수 있지만 나는 그 2시간짜리 게임을 보게 만드는 사람이다. 100장짜리 짧은 인터뷰를 몇 편 모은 것하고, 1000장짜리 한 편하고는 다르다. 다른 인터뷰어는 그런 긴 호흡으로 증명해 낸 적이 없다.”

인터뷰 전문가를 인터뷰한 기자의 심정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를 하는지는 29권의 인터뷰집에서 그가 상대방에게 던지는 질문 속의 수많은 인용과 예시들을 보면 곧 알 수 있다.

 

그래서 배우 오지혜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것 같다”고 했고, MBC 김영희 PD는 “너무나 꼼꼼하게 질문을 하셔서 할 얘기를 다 한 것 같다”고 했다. 장하준 교수는 “보충 인터뷰를 이메일로 하자”는 지 작가의 요청에 “이메일보다는 전화로 했으면 한다. 지난번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지 선생님 같은 전문 인터뷰어와 이야기를 하니 제가 단순히 질문에 답한다기보다는 진짜 대화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저도 생각이 정리가 되고 발전이 되더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늘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봉준호 감독 인터뷰를 앞두고 전날 새벽까지 140개가 넘는 질문을 만들어놓고도 ‘이 사람이

날 바보로 보지 않을까’라고 고민하며 한 개의 질문도 던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빠진 적도 있단다. 진정 완벽주의자다. 그는인터뷰를 제대로 하려면 그 사람이 쓴 모든 책을 읽고, 관련 분야의 책을 250권 정도는 읽고 가야 한다”고 한 일본의 대(大)저술가 다치바나 다케시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국민일보 큐키뉴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473798&cp=nv[출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2. 가슴에 와 닿는 글

 

프롤로그/ 세상에 맨얼굴로 당당히 맞서기 위해

 

[5-7]

지난 2년은 지독한 슬럼프였던 것 같다. 여유만 되면 12년을 해온 인터뷰 작업을 잠시 쉬는 안식년을 갖든지, 아니면 그냥 영원히 은퇴하고 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만큼 일에, 사람에,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지쳐 있었다. 인터뷰어는 도구가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저 인터뷰이에게 조명을 잘 비춰주고 묵묵히 서 있는 존재, 그랬더니 어느 순간 나는 유령이 되어 있었다. 그래 유령도, 도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내가 그동안 생각보다 많은 내상을 입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로 행복하지 않았고, 짜증 낼 때가 많았다. 그걸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인터뷰 작업만큼은 마냥 즐거울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인기피증은 더욱 깊어져갔다.

 

그렇게 시선과 말들에 지쳐갈 즈음 새대의 창 출판사에서 강신주의 인터뷰집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잠시 생각한 후 거절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약속을 하는 바람에 해야 할 작업들이 많았다. 그리고 철학과 인문학이 뜬 구름 잡는 애기를 하는 것 같다는 편견과 반감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린 땅을 밟고 살잖아’라고 하는 어쭙잖은 반감.

그런데 우연히 읽게 된 강신주의 책에 꽂혔다.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다. 그래서 반체제적이고, 김수영이 얘기했던 것처럼 불온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철학과 인문학을 쉽게 풀어내는, 동서양 철학을 가볍게 넘나들면서 강신주만의 해석을 내놓는, 고담준론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을 통해 현실을 진단하는 솜씨에 반해버렸다.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답이 왔다. 인터뷰에 응하시겠다고 상견례는 한번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출판사 측 얘기에 강신주 선생으로부터 ‘지승호 씨나 나나 나쁜 사람들도 아닌 것 같으니 날짜 잡아서 그날부터 바로 인터뷰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답이 왔다. 물론 ‘언제든지 수틀리면 엎어야 하니까 계약은 하지말고 인터뷰를 진행하자’고 덧붙인다.

 

첫 인터뷰는 저녁 7시에 시작해서 새벽 2시에 끝났다. 한 주에 강연을 10~15회 한다는 그는 하루에 지방 강연을 두세 차례 소화할 때도 많았고, 하루 5차례 강연하는 날들도 있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온 몸을 쥐어짜서 모든 걸 쏟아내려는 열정적인 그의 강연을 본 적이 있었기에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강연 일정을 다 소화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첫 인터뷰를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코피를 쏟기 시작했다. ‘요즘 상태가 계속 이렇다. 그래서 어제는 코피가 어디까지 나오나. 하고 가만히 둬보기도 했다’는 엽기적인(?)대답이 나왔다. 그럼에도 그는 열정적으로 강연하듯 인터뷰에 응했다. 전날 잠을 자기 못해 인터뷰를 세시간 정도만 하고 돌아와야겠다는 나의 기대(?)는 강신주 선생의 에너지에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그날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두 번째 인터뷰는 저녁 7~새벽4시까지, 세 번째 인터뷰는 새벽5시, 네 번째 인터뷰는 새벽 5시반, 다섯 번재 인터뷰는 새벽6시까지 이어졌다. 그 이후 한 번의 짧은 인터뷰(그것도 두시간이었다)까지 포함해서 장장 50여 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녹취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50시간까지 녹취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녹취를 풀면서 처음으로 나도 모르게 인터뷰이를 향해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이 양반 왜 이렇게 말이 많아?’하고 ^__^

 

[8]

인문정신은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

 

[10]

우리는 순진무구함과 폭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다”- 메를로퐁티.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일 것이다. 알게 모르게 행사되는 타자에 대한 폭력들.

"어떻게 하면 인간이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정호 (유학자)

강신주 역시 그런 고민을 통해 ‘삶이란 고통이자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통찰

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14]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타자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은 때로는 끔찍한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지옥, 그것은 타자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난 강신주는

“그렇지만 돌아보면 타자만 치명적이지만 동시에 멋진 지옥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면서, 동시에 가장 큰 불행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란 감정이다. 타자를 사랑할 때 사랑하는 마음을 제외한 일체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강신주는 “자궁속의 태아는 여성에게 우리 몸에 침입하는 이물질과 유사하게 자신이 아닌 것, 즉 타자로 경험된다. 여성은 이런 타자와 10개월이나 공존한다. 바로 이로부터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 혹은 차이를 견디어낼 수 있는 여성적 감수성이 길러진다”면서 지금은 여성의 감수성을 배워야 할 때라고 힘주고 말한다.

2103년 4월 15일 지승호가 쓰다.

 

chapter 1

인문정신은 당당하다

강신주라는 고유명사

[24]

어떤 철학자 하나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면 철학이 아니라 종교가 돼요. 배타적이 된다고요. 과거의 철학자는 잠시 같이 있는 동반자, 내가 언제든 벗을 수 있는 안경같은 존재여야 해요.

===> 삶은 매순간 성장되어간다.

2013년은 구본형 선생님이 쓴 책을 읽었다.

-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완성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믿게 되면, 순간순간이랴말로 우리가 조금씩 변해가기 위해 쓸 수 있는, 살아 숨쉬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항상 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이 있는 일을 위해 일상의 시간을 몰아서 쓸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것은 그 일을 위해 다른 일을 포기하게 만들고, 포기 마저도 슬픈 행복으로 남게 한다. 깊은 자신만의 욕망을 가져야 한다.

삶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간은 오직 일상 속에만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슈퍼에서 물건 몇 개를 사기 위해서, 몸에 걸치는 옷 몇벌을 사기 위해서 잡동사니 몇 개를 더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시간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팔지마라.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것은 꿈에 쏟은 시간의 양이다.

 

법륜의 즉문즉설을 들으면서 여러 관점에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지혜를 터득했다.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너나 잘하세요” 주위에 피해가 있지 않다면. 가장 기억나는 강연중에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 울고 불고 억울해할 것이 없다. 알아도 모르는 척해라. 정말로 헤어지고 싶다면 1년동안 눈 딱 감고 입에 혀처럼 해줄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줘라. 그리고 나서 1년 뒤 헤어지자고 본인이 말하라. 평생 나를 못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화려한 복수다.

 

고미숙의 인문학 강의와 책을 읽었다.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인연의 장을 달리하라.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면 운명도 달라진다. 화와 복은 사람에게서 오고 간다.

 

[24]

모든 인문학과 문화 예술의 핵심은 고유명사거든요. 소설가가 원하는 것도 그거죠. 제목을 안보고 이름을 안 봐도 내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문체를 작품에서 이뤄냈는가?

===> ‘나’라는 고유명사는 무엇인가?

김수영과 인문정신

[27]

지: “인문정신은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인문정신을 다시 생각하며> 기획회의, 313호, 2012. 2.5

지금의 인문정신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강: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가 있어요. 팽이를 보면서 김수영이 깨달은 게 있어요. 돌고 있는 팽이는 모두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돌잖아요. 그런데 팽이 하나가 다른 팽이의 회전 스타일을 따라서 돌다보면 서로 부딪치게 돼요. 팽이 두 개가 돌다가 부딪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둘 줄 하나가 넘어지거나 둘 다 넘어지잖아요. 독재나 자본주의란 것은 거대한 팽이 놈이 자기를 중심으로 똑같이 돌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똑같이 돌다 보면 결국 다 넘어지죠.

 

자본주의라는 것이 왜 나쁘냐 하면 자본이란 힘으로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돌게 하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 제스처로 못 살죠,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가려면 싸우기도 해야 하고 고통도 많이 생길 텐데, 그걸 감당해야겠죠,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돌면 독재자가 안 생겨요. 민주주의라는 것은 제도의 문제 이전에 개개인이 어떻게 주인으로 서느냐의 문제예요. 나 스스로가 주인이 안 되면 노예가 되어 주인을 찾게 된다고요. 그래서 제가 ‘맨토’를 비판하는 거예요. 좌우지간 스스로 돌아야 해요.

가장 나약한 것이 지식인인데, 어쩌면 겁이 많아서 말이 많은지도 몰라요. 언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항상 침묵이고, 침묵은 실천이거든요.

산에 오를 때 고민이 많으면 잘 못 걸어요. 제대로 걸으면 생각 안하고 앞으로 간다고요. 담론의 궁극적인 목적은 침묵에, 실천에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말이 너무 많아요. 저렇게 말이 많고 생각이 많은데, 걸음을 걸을 수 있을까? 못걷죠. 걷기 힘들어요.

 

[28]

지: 영화 <신라의 달밤>을 보면 ‘너 많이 약해졌구나. 예전에는 말이 많지 않았는데’라는 대사가 있잖아요.

강: 아부하는 사람이 말이 많고,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이 말이 많은 법이에요. 말이 많다는 것은 약함의 기준이에요. 사장은 말 많이 안 하잖아요. 이등병이 말이 제일 많아요. 만나는 사람마다 다 말을 해야 해요.

===> 말이 많다는 것은 약함을 표현하는 거구나.

 

[28]

인문정신이라는 것은 고유명사예요. 사람마다 자기 이름에 걸맞은 스스로의 스타일이 있다는 거죠. 올해 핀 벚꽃이 작년에 핀 벚꽃이 아니고 내년에 필 벚꽃이 아니라고요. 사람도 ‘사람은 다 똑같아’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를 사랑하지 못해요. 나는 나다. 나는 십 년 전에도 없었고, 천 년 전에도 없었고, 천 년 뒤에도 없을 거라는 걸 알면 자기 삶을 살아야 하거든요. 그게 인문정신이에요. 고유 명사를 되찾는 것,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안 하려고 하는 것.

 

사람은 다 달라요. 예술가나 영화감독, 자기 작품 만드는 사람은 생각이 다 다르잖아요. 무조건 자기 스타일대로 살면 다 새로워요. 그래서 새로운 작품이 나오는 거예요. 앞사람을 표절하면 안 된다는 덕목도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흉내 내면 안 돼요. 그게 글이든 영화든 삶의 스타일이든. 형이 결혼했다고 자기도 결혼해? 촌스러운 거죠.

자기 삶에 대한 당당한 애정, 하나밖에 없다는 소중함을 가지면 자본이든 권력이든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아요. 자긍심이 있어야 해요. 자유정신만이 자긍심을 가져요. 누가 나를 죽인다 해도 ‘땡큐’인 거죠. ‘내가 무서운가 보다. 내가 당당하게 사는데 내가 죽는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야’이런 정신이죠.

 

[29]

석가모니가 죽어가면서 부처는 각자 얼굴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니까 자기 스스로 서라고 했는데요. 이 말은 곧 개개인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거예요. 제자들이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요?”하고 물으니 부처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고 하잖아요. ‘이놈들아, 누가 나 따라 하라고 했어?’ 그런 거죠.

 

[30]

비겁하다. 한번밖에 없는 삶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흉내 내고 산다. 무서워서 그 사람이 얘기했던 제스처로 산다

 

[31]

랑시에르는 직접민주주의예요. 한 사람 한 사람이 길거리에 서서 폴리스의 정치가 아니라 폴리틱이 돼야 한다는 거예요. 폴리스의 정치는 치안이에요. 지금 정치는 치안이란 말이에요. 대의민주주의적 법 만들고, 법 만들면 경찰이 집행하고. ‘이 법은 누가 만들었지?’ 이렇게 묻지 못해요. 그러니까 점령을 해야 해요. 정치를 양도하면 안돼요. 고유 명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스타일대로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인문정신은 정치적 정신일 수밖에 없어요. 정치를 회복하는 거죠.

 

[31] 제가 사회계약론을 비판하는 이유

나의 정치적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저는 불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정치적 권리를 양도하면 나는 권리가 없는 거거든요. 권리가 없다면 노예가 되는 거예요. 합법적이고 자발적인 노예, 자본주의랑 구조적으로 비슷해요. ‘가만히 있어. 나대지마, 4년 뒤에 투표해’. 그게 제일 위험한 거예요.

합법적인 자발적 노예 상태, 그게 제일 우려되는 거예요. 정치적 무관심도 그래서 생기는 거예요. 노예한테 무슨 정치적 관심을 가지겠어요? 가질 필요가 없죠. 정치적 역량의 강화, 이게 곧 인문정신의 회복이기도 해요.

 

[32]

스스로 도는 팽이여야 하는데 자본주의든 민중주의든 무슨 주의를 중심으로 휘둘리잖아요.

 

너나 잘하세요

[33]

인문학, 철학의 특징은 주어가 ‘나’나 ‘너’까지는 거예요. ‘우리’라고 쓰면 사회과학이 돼요.

정치적 담론이 되고, ‘우리’와 ‘나’는 달라요. 그래서 “너나 잘하세요”가 좋은 거예요. ‘사회가 변하지 않잖아요. 저 혼자 뭘 해서 되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해요. “너나 잘하세요” <친절한 금자씨>의 가르침은 그거죠. 왜 모든 게 변한 다음에 숟가락 올려놓으려 하냐, 너는 왜 못하냐.

 

[34-35]

삶은 일단 아프다고 봐야 해요. 행복한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요.

가끔 가다 아픔이 가실 때가 있는데, 우린 이걸 행복이라고 하죠. 행복의 상태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어요. 행복이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비겁해지는 거예요. 행복이 어디 있을 것만 같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파요. 간혹 아픔이 조금 가실 때, 음악을 들을 때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밥 먹을 때, 이럴 때 좀 행복한 거죠. 착각하지 말아야 해요. 우리는 지나치게 행복주의에 경도돼 있어요. 사회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간에 인간은 고통스러운 거예요. 오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 행복한 줄 알아요, 다 힘든데도 버티면서 사는건데.

 

삶이 그렇게 아프고 힘든 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자꾸 연어처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에요. 힘들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방향을 선택하면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건데, 그건 살아도 죽은거죠. 죽은 물고기만 내려가니까. 눈 감을 때 안식을 찾으려면 지느러미질을 엄청스레 해야 해요. 그러면 죽을 때 편안해져요. 죽음이 안 무섭다고요. 그렇게 살아야 해요. 자신이 가려는 방향으로 관철해가려고 해야 해요.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려면 더럽게 힘들죠. 사회에서 가만히 있겠어요? 그런 사회적 저항에 부딪힐 때 항상 고맙게 여기고 ‘내가 살아 있나 보다’ 이렇게 생각해야죠.

 

인문학적 독서

[36]

하나의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나와 디테일은 다르지만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공명 구조, 그걸 잡아야 하는 거예요.

내가 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이런 디테일이 있는데, 저 사람은 저런 디테일이 있네.’구조는 같읕 거죠. 이 구조 때문에 우리가 대화를 하는 거예요.

김어준이 ‘무학의 통찰’ 이라고 했는데, 사람을 통해서 배우는 거죠. 사람은 말하잖아요. 말을 통해서 배우는 거죠. 저는 그게 책일 뿐이에요. 차이가 없어요. 사람들을 만나고 공감하려는 애정이 있기에 사람을 통해서 배우는 게 가능한 거예요. 책에 빠진 사람들은 바보들이라니까요.

 

===> 텍스트를 읽고 해석할 줄 아는 능력, 텍스트를 읽고 저자를 읽고 나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이다. 사람들을 만나 나와 다른 세계를 수용하고 삶의 지평을 넓히는 순간이 환희다.

책은 수백년전, 수천년전의 저자와도 묻고 질문하게 만든다.

 

[38] (실천하기 )

인문적인 독서는 내가 울려야 되고, 그 책도 울리게 해줘야 하는 거예요.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본 독자들이 철학자의 책을 읽으면 어려운데 제가 풀어주면 쉽다고들 해요. 왜냐면 저는 그걸 풀어줄 때 디테일에 빠지지 않고 보편성만 잡아서 썼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우리 동시대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어떤 지식인들은 디테일을 주절주절 다 달아다 써요. 저는 그게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엉덩이 만지는 것에 왜 주목해요? 우리는 키스인데, 그것만 빨리 잡으면 되거든요. 이렇게 독해해야 해요. 그래야 인문학이 살아요.

===> 책을 쓸 때, 나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쓰는 법이다. 나도 울리고 너도 울리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쓴다.

 

[38] (실천하기 )

괴테에게 더 육박해 들어가고, 그 사람에게 육박해 들어가는 거예요. 책이 쉽게 읽히는 비밀은 거기에 있어요. 어렵기는 뭐가 어려워요? 공감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 그걸 모르면 더럽게 어려워지죠.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보면, 철학자 48명이 나오는데, 독자들이 그 사람들 책을 네다섯 번 재대로 읽으면 저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돼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른 걸 보니까 이 문장이 어렵다, 저 문장이 어렵다 하는 거예요. 저는 독자들보다 많이 느끼니까 그걸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김어준이 하는 거랑 별 차이 없어요.

죽은 저자지만 결국 그 사람이 표현한 것을 통해 그 사람에게 육박해 들어가려고 하는 거니까 그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김어준의 무학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많이 배운 거죠. 잘못 읽었다가 잘못 상담했다가 망가지면서 배울수도 있어요. 그렇게 배우는 것은 책 수천권 보는 것보다 힘이 있어요. 리얼리티가 있기 때문에.

===> 유전자도 마찬가지. 옆 유전자 하나가 어떤 유전자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배우고 느끼는 바가 다르다. 그래서 사람에게서 배워라. 관찰하고 저 사람의 디테일과 장점은 이렇고...

 

[39]

지: 독서와 관련해서 “포괄적 독서란 없다. 책은 편식해야 한다”라고도 하셨는데요.

강: 설악산 올라가는 길은 하나에요. 필이 꽂히는 길로 올라가야 정상에 가는데, 어떻게 다양하게 보고 다양한 길로 가요? 지금 필 꽂히는 길로 한 단계를 통과하고 나면 갈림길이 나와요. 그러면 또다시 필 꽂히는 대로 가면 되는 거예요.

들뢰즈는 책을 읽었을 때 감응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거라고 했어요. 두 가지 독서법이 있는데, 하나는 ①정보를 입수할 때처럼 서류 상자에서 뭘 빼내듯 독서하는 거예요. 논문 쓰려고 어쩔 수 없이 읽는 식이죠. 다른 하나는 ②감응의 독서법이예요. 감응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하다. 감응 안하면 던져버려라. 이런 거죠.

 

내가 지금 좋아하는 중요해요. 내가 지금 안 읽는 책도 내가 성숙해지면 읽을 수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나의 삶과 어떻게 같이 갈 거냐 하는 문제예요. 짜장면 먹기로 했으면 짜장면만 먹어야죠. 괜히 스테이크도 같이 먹지 말고 관조적으로 보면 다 먹는게 좋을 것 같지만, 안 그래요. 책 읽기는 실천 행위거든요. 실천은 어느 때가 가장 효과적일지 결정해야 해요. 다양한 여자를 만나보자? 왜 다양한 여자를 만나요? 매력적인 여자랑 데이트하는 게 낫지. 그거 쓸데 없는 제스처예요. 지금 매력적인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한테 올인 하는게 맞는 거죠.

===> 책읽기는 나의 삶과 연결해서 실천하는 행위다. 지적인 허영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이요 시간 낭비다. 읽었으면 내 가슴에 연결돼서 삶이 변화되고 성장시키고 책읽기전과 달리 생각하고 해보는거다. 체화되게 만들면 삶도 함께 변화한다.

 

[41]

편식해야 해요. 짬짜면이 맛있다는 사람들 이해가 안 돼요. 뭐든지 가지려면 하나를 버려야 히요. 중국집 아저씨들이 인문학을 안 해서 그래요. 신자유주의만 배워서.

===> 하나만이라도 정확히 디테일하게 해보자. 하나라도 제대로 했을 때 다른 것을 할 때도 적용된다. 짬짜면 돈되는 일은 뭐든 다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망해가는 것이야.

 

[41]

인문학적 독서법은 감응의 독서법이에요. 내가 감응하는지 안 하는지가 중요한 거예요. 요약하고 외워야 하는 게 아니에요. 하여간 우리는 입시 때문에 너무 열심히 공부해서 책 읽는 것 보면 가관이에요. 아직도 밑줄 치고 요약하고 난리잖아요. 독서 토론 모임에 가서도 그러거든요. 여러분은 왜 독서 토론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개가 자기가 읽었던 내용의 요지를 합의 보러 온대요. 그게 아니죠.

독서 모임을 하면 각자 어디에서 감동받았는지 이걸 얘기하는 걸로 끝내야 해요. 그러면 그 친구 생일 때 책을 선물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매번 스터디에요. 합의 , 요약, 정리만 하는 거에요.

 

그 책이 어느 부분에서 좋았는지가 그 사람의 특성을 애기해주는 거거든요. 토론하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해야 해요. 책이라는 계기고 저 사람을 알아갸겠다고 해야 하는데 서로 지적인 경쟁이나 하려고 하니까 딱하죠. 영화 잘 보는 친구들은 “그랬니? 아 그렇구나.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이렇게 얘기해요. 대신 그 사람을 안 거니까 자기 스타일이 아닌 영화라도 추천할 수 있는 거죠. 그게 문화가 다양해지는 거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수성이 인정받는 거고요.

어떤 한 사람의 정신성이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 자기 얘기니까 할 수 있는 것. 고유명사를 가진 것은 다 가치 있어요.

 

인문학과 저항

[43] (실천하기 )

“철학자들이 책을 읽을 때 그 책이 우리를 자꾸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했던 삶과 느낌, 감정을 자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감정이 생길 때 스스로 설 수 있는 인문정신이 생기는 거란 말씀인데요.

강: 자기 소리를 체계적으로 만든게 자기 철학이에요. 자기 스스로 자기 스타일로 생각하고,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해요. 자기는 개나리인데 장미 흉내를 내요. 신자유주의가 무서운 게 자본이란 논리로 획일화시키잖아요. 다 장미가 돼요. 진짜 불행한 거예요. 개나리는 개나리로 지내야 하는데.

그래서 인문학을 고유명사의 학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인문학의 정수는 자기 이름에 걸맞은 글을 써내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은 혁명적인 것이고 권력 편을 들 수 없는 거예요. 인문학은 개인 편을 들고 자유의 편을 들어요. 한국 사회에서도 독재에 저항했던 이들은 문인이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돼요.

 

철학을 종주하다

[47]

한 아이가 죽을 때 하나의 세계가 없어지는 거다. 한 사람이 탄생할 때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게 인문정신이라고요. 상대주의를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 입각점을 얘기하는 거죠.

자기 시선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라고 하는 거예요. 모두가 똑같이 보면 그게 무슨 사회예요? 하나의 기계고 전체주의죠.

 

[49-50](가슴에 와 닿는 구절 )

책을 쓴다는 것은 산을 종주하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힘 났다가 중간에 힘들어지고, 더럽게 힘들었다가 쉬었다가. <철학vs철학>은 4개월 동안 하루에 19시간 씩 집필했어요. 이틀 쓰고 나서 하루는 산에 가서 억지로라도 자야 했고요. 그래서 끝날 무렵에 결막염이 왔어요. 얼굴 붓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뚱뚱한 사진이 그 때 사진이에요. 본론 다 끝내고 에필로그만 남았는데 결막염이 심해져서 눈이 안 떠지더라고요. 글 쓸 힘도 없었고요.

저는 1천페이지 넘으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닫고, <상처받지 않을 권리> 같은 경우는 자료 정리 끝내고 3주 만에 썼거든요. 보통 단행본은 자료 정리되고 나면 쓰는 데 한 달쯤 걸려요. 그런데 그 한달의 강도로 4개월을 쓴 거예요. 와 죽는 줄 알았어요. 마지막에 쓴 거 쭉 읽어보고 생각했죠. 잘 썼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 우리 사회에 뭐 하나 던졌다. 도서관에 다 꽂힐 것이고, 10년, 20년 지나서 아이들이 이 책을 넘겨보면 좋을 것 같다고.

 

뒤에 수록된 인명사전과 개념어 사전은 제가 만든 거에요. 천쪽 안 넘어가게 맞추느라 글자 크기를 줄여서 그렇지 그것만 해도 A4로 100장이었어요. 결막염 걸려가며 쓴 거예요. 그걸 왜 만들었냐면, 책 다 읽은 사람들이 인터넷에든 어디든 논쟁적으로 글 쓸 때 개념을 알고 개념적으로 써야 좋잖아요. 책을 다 읽은 사람들이 저 개념을 가지고 허접한 논평이나 댓글 말고, 강력하게 글을 쓰길 원해서 사전을 만든 거에요. 어차피 철학은 개념의 응집체니까. 다른 철학 사전과는 달라요. ‘강신주의 철학 사전’이에요. 그런데 끝까지 안 읽어요. 언제가는 끝까지 읽히겠죠.

===> 하루에 19시간 4개월. 24시간중에 5시간을 뺀 19시간을 4개월동안이나. 책쓰기는 체력이다. 체력이 받쳐줘야 책을 쓸 수 있다. 선택과 몰입 집중만이 한권의 책을 쓴다.

 

철학에 이르는 길

[52] (실천하기 )

어떤 철학자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 사람 책을 잘 인용하면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라면 이 현상에 대해 이런 판단을 내렸을 거라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해하는 거죠.

철학이 어려운 것은 개념적 사유라서 그래요. 개념을 잘 이해 못해서 그렇고요. 이 철학자는 이 개념을 이렇게 정해서 쓴다는 개념의 틀을 빨리 잡아야 해요. 처음에는 자기가 쓰는 용어대로 해석을 하니까 조금 읽다 보면 비비 꼬여요. 그 사람의 문법 체계, 그 철학자의 개념을 이해하고 나면 좀 편해져요. 철학은 어떤 하나의 개념이 등장해서 세계를 보게 해줘요. 예컨대 푸코는 ‘에피스테메’라는 단어를 통해 ‘각 시대마다 인식론적 틀이 있다’라는 개념을 나타내잖아요. 어떤 철학자가 한 방을 보여준 개념이 무엇인지 딱 하나만 찾아보세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저자가 책을 쓸 때는 그 책이 없기 때문에 쓰는 거라니까요.

===> 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화가마다 사용하는 그림 스타일과 칼라를 잡아라. 남이 써 놓은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없기 때문에 쓴다. 세상에 할 말이 있기 때문에 쓴다. 재배치?

 

[54] (실천하기 )

인문학과 모든 예술은 고유명사예요.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아요. 우리는 주어진 것을 재배치해서 그걸로 새로운 효과를 만든다고요. 예를 들면 김수영 시에도 선배들의 여러 다른 요소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김수영은 다르죠.

그래서 인문학을 읽을 때는 그게 시인이든 철학자든 영화감독이든 간에 그 사람의 정신성에 육박해 들어가야 해요. 그 바로미터가 뭐냐 하면, 만약 지금 베토벤이 소녀시대를 지위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 시대에 국한해서 베토벤이 했던 음악만 이야기한다든가 니체가 했던 말에 밑줄만 긋는다면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 힘들어요.

결국 인문학 고전을 읽는다는 건 나의 삶이 어떤 철학자나 인문학자에 육박해 들어가는 건데, 내가 시를 못 읽어내고 영화를 제대로 못 보고 철학 책을 제대로 못 읽는다는 건 그만큼 내 삶이 심화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조금 경험하고 조금 고통스러운 인간이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자신의 삶을 심화시켜야 해요. 인문학적 보편성은 거기서 오거든요. 책을 못 읽는 것은 비겁하게 자신의 삶을 심화하지 않고 검열하며 조심조심 살아서 그래요. 적어도 마흔이 넘으면 세계문학전집이 쉽게 읽힐 정도로 살았어야 하는데, 사랑도 제대로 못 했고 권력과도 제대로 한번 부딪쳐보지 못했으니 그게 어떻게 읽히겠어요?

 

철학의 숲에서 김수영의 길로

[56]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상당히 달라요. 어떤 사람 품에 꼭 안겨 있으면 그 사람이 안 보이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의 품에 있다가 빠져나오면 그 사람의 빛과 그림자가 다 보인다고요. 글쓰는 것은 버리는 거거든요.

 

경계를 허무는 철학

[61]

지: 이 시대에 철학이라는 학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강: 분업화에 저항하고, 전문화에 저항하는 것, 철학이 원래 그래요. 아리스토텔레스 저술만 넘겨봐도 아는데, 심리학부터 정치학, 우주론까지 망라하잖아요. 대학에 있는 모든 과가 다 동원돼야 한 인간을 간신히 설명할 수 있다니까요. 우리가 쪼개져 있으면 체제가 우리를 통제하기 너무 쉬워요. 그것을 어떻게 엮어줄 것인가가 철학의 문제예요.

 

철학이 필요한 시간

[63-66]

우리가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데서 나오는 거죠. 체제를 극복한다고 해서 신뢰가 찾아오지는 않아요. 이미 불신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사랑하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어요. 이것은 하나의 인문학적 공식이에요. 우리의 사랑을 막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 비판적 지식인이 돼요. 이 공식을 잊어버리고 인문학자가 분리와 의심, 불신 쪽으로 담론을 펴면 자기도 모르게 체제에 놀아나게 되는 거죠. 체제는 인간의 불신을 먹고 자랍니다. 불신 안 하면 되요.

경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실패하면 자기 탓으로 돌린다고요. 자기를 경쟁의 판으로 내몬 사람들에게 문제 제기를 못해요. 변명처럼 들릴 거 같으니까. 그래서 1등 하는 아이들이 자살하는 거예요. 꼴찌 하는 아이들은 별로 경쟁을 안 받아들여요.

 

사랑하는 게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이라고 읊조리고 떠든다고요. 차라리 “너 좀 나한테 쪽팔린 아들 되지 마라. 너 쪽팔리거든” 이러는게 정직한 거예요. 쪽팔리지 않으면 안아주고, 그건 자기를 더 사랑하는 거예요.

타인을 사랑하려면 자의식을 굉장히 약화시켜야 해요. 우리 어머니들은 자기를 너무 많이 사랑하는데, 그런 사람을 우리는 어린애라고 불러요. 유아적이죠. 성숙하지 못한 거예요.

 

[69]

공동체의 와해는 누구를 죽인다는 거거든요. 저 사람이 공동체 성원이 아니라는 거거든요. 경쟁은 공동체 교육을 와해시키는 건데요. 그런 것을 대오 각성해야죠.

 

‘현재’라는 텍스트

[69-70]

인문학자는 텍스트를 두 개 읽어야 해요. 고전 텍스트와 ‘현재’라는 텍스트, 현재라는 텍스트를 읽어야 그 빛으로 고전이 보이고, 고전 텍스트를 읽어야 현재가 보이거든요.

 

텍스트 많이 읽고 <경향신문>칼럼을 쓰려면 현재의 이슈를 계속 읽어야 해요. 이걸 1년 정도 쓰다 보면 단언컨대 우리나라 인문학자 중에서 ‘현재’라는 텍스트를 읽는 연습을 가장 강도 높게 하게 될 거예요. 이 힘이 나중에 고전 읽기로 다시 피드백 될 거고요. 칼럼 쓰면 사람들이 ‘원고료 받으려고 컬럼 쓰나 보다’ 이렇게 애기하는데 저한테는 칼럼이 중요한 텍스트예요. 어떤 문제가 있어서 제 힘으로 분석을 해봤는데 ‘뭔가 더 쌈박하게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런 의구심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책 읽다 보면 ‘어, 이거다!’ 싶은 게 나와요. 그러니까 제가 어떤 철학자나 사회과학자의 책에서 특정 구절을 뽑아내는 것은 다 제 현재 감각에서 오는 거예요.

===>그림을 보고 독해하고 현재의 삶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 이게 관건이다. 칼라의 심리와 현대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이나 상태를 독해해야 한다.

 

[70-71]

사람들을 만나거나 강의를 하면 10분 안에 결정이 나야 해요.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파악해야 해요. 순간적으로 한 대여섯 개의 주제를 던지면 그 중 하나가 걸리는데, 그걸 잡아서 그쪽으로 일관되게 가야해요. 지금까지 쓴 17권의 책이 다 제 머릿속에 있잖아요.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그 삶이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되거든요.

대중성의 차원이 아니라 사람들과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해서 어떻게 써야 사람들이 편하게 읽는지를 알아요. 지금 사람들 문제의 보편적인 구조도 알고요. 그러니까 글이 편하죠. 대중적으로 쉽게 쓰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중요한 건 핵심이에요. 핵심을 찌르고 진자 그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에 들어가는 것이 대중성이고 애정이죠.

상상마당에서 자그만치 4년 동안 강의를 했는데, 매년 강의 주제를 바꿀 수 밖에 없었던 게 앞 강의를 들었던 사람 중 3분의 1은 다시 오거든요. 그 연습이 제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72]

칼럼을 쓰는 것도 싸움이에요. 칼럼 쓸 때마다 죽이네 살리네, 오만 댓들 달리고, 철학자 중에도 주사파가 있다는 얘기까지 들어야 하니까요. 그걸 알지만 거기에 쫄지 않고 글을 쓴다면, 스스로 제 글을 검열하지 않게 될 거예요. 글을 쓰다 보면 가끔 흔들릴 때가 있어요. 객관적이고 안정적으로 스려고 하면 밀려요. 검열이 돼요. 매번 약간 오버해서 써야 히요. 오버할 수 밖에 없는 건 아직 약하다는 거예요. 여기서 물러나면 더 못 크겠죠.

 

평론과 글쓰기

[73-75] ( 기억해서 실천하기 )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하고 그걸 독자들에게 보여줘야지 못하는 걸 함부로 해선 안 돼요.

철학은 머리로 들어와서 마음을 울려야 하고, 시는 마음으로 들어와서 머리까지. 지성까지 올라가야 해요.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시나 음악은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켜요.

제게는 철학이나 시나 음악이 다르지 않아요. 한 사람의 정신성이 육박해 들어오는데, 그 표현이 개념으로 짜여 있느냐, 시로 자여 있느냐, 음악으로 짜여 있느냐 하는 차이일 뿐이예요. 그래서 철학이다. 시다, 음악읻, 뭐다 막 갈라놓는게 쓸데없이 느껴져요.

음악이든 영화든 무용이든 한 인간이 자기를 표현했다면 그 사람은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 그 느낌 속에서 그 사람의 정신성에까지 육박해 들어가는 연습을 많이 해요.

 

영화볼대 평론할 것을 먼저 생각하면 어떡해요? 일단 느껴야죠. 영화를 보고 감동했다면 어디가 좋았는지, 그게 왜 좋았는지를 살펴보고 그걸 알아듣기 좋게 잘 풀어서 설명해주는것이 평론이잖아요.

돌아가신 김현 선생은 평론가의 전범이에요. 김현은 소설을 평해도 자기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마지막에 촌철살인의 글을 써요. 평론도 작품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죠.

평론은 매개를 만들어준다.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며 왜 그렇게 느꼈는지 깨달을 수 있게 해줘야 해요. 자신이 받은 감동을 타인에게 설명할 길이 없었는데 그것을 평론가가 마련해줘야 하는 거예요.

 

좋은 평론과 나쁜 평론을 가르는 기준은 작가의 정신성에 얼마나 육박해 들어갔느냐 하는 건데, 그게 곧 ‘사랑’이에요. 어떤 작품을 정확하게 보려면 작가를 사랑하고 이해하려 해야 해요. 해석하지 말고 먼저 이해하려고 해야 해요. 사람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이해라려고 하잖아요. 그 작가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가 얼마나 깊이 파악했느지의 척도예요. 만약 이해하지 못했다면 사랑이 부족했던 거에요. 별을 진짜 사랑하면 별을 속속들이 뒤지게 돼요. 동물을 진짜 좋아하면 동물에 대해서 박사가 돼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학위를 못 받아요. 학위 과정은 죄다 표준화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학문이 무너진 거예요. 표절도 그래서 나오는 거고요. 각자의 정신성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표준화된 양식에 맞추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표절은 정말 창피한 거예요. 모름지기 인문학자라든가 사상가라면 다른 사람이 쓸 수 없는 것을 써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썼던 것을 쓰지 말아야죠.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슷한 것을 썼을 때는 쪽팔려 해야죠. 예컨대 김수영에 대해서 쓴다면 저는 김수영에 관한 책을 다 봐요. 그중에 저랑 비슷한 시각이 있으면 안 써요. 뭐하러 써요? 다른 것을 써야죠. 어떤 책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할 때에는 그 책을 딱 한 번만 보고 써요. 그 다음에는 안 봐요. 그 책을 흉내낼 수 있거든요. 책을 탈고하고 나서야 그 책을 다시 봐요. 혹여 영향을 받았나, 내가 그 책에서 얼마만큼 벗어났나, 나는 그 작가에게 얼마만큼 육박했나, 이런 걸 확인하기 위해서예요.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그제야 출판사에 전화하는 거죠. 강신주의 책인데 강신주다워야죠. 모름지기 인문학자라면 그래야 해요. 그런 식으로 벽에 부딪혀 고통도 직접 느껴보면서 리얼리티를 얻어야 해요.

 

살면서 보니까 모든 사람이 3:4:3으로 나뉘어요. 내 편 3, 중도4, 죽었다 개어나도 나랑 안 맞는 사람3. 그중 4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잘못해서 4를 놓치면 내 편인 3만 남아요. 그리고 그3이 다시 전체가 돼서 3;4;3으로 또 쪼개져요.

글이란 누구를 만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속단해서는 안돼요. 제 입장과 다른 사람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해요. 절대 편 가르기 해서는 안되고, 쪼개서도 안돼요. 내 편의 지지, 그거의미 없어요.

 

[77]

출판사에서 칼럼을 모아 책으로 내자고 하는데, 저는 그런 식으로 책내는 건 질색이에요. 저자는 단행본을 써야죠. 지라시 글들을 모아서 밋밋한 책을 낼 게 아니라, 교향곡같이 1,2,3,4악장이 있어서 큰 산을 넘어가듯이, 제가 지칠 때 독자들도 지침을 느껴야 하는 거에요. 한꺼번에 백두대간을 타야 종주지, 요만큼 갔다가 다시 와서 가는게 종주예요? 제가 종주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요. 다섯 시간, 열 시간 산을 넘었을 때, 제 바닥이 드러날 때 보이는 풍경은 달라요. 그런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저자는 단행본을 써야 해요. 단

행본 감각을 놓치면 안 돼요.

남들 모르는 세련된 담론만 떠들어서 팔아먹으려는 게 아니라 전부 제가 소화시켜서 한 애기예요. 글은 두 종류가 있는데요. 먹다가 게워낸 글이 있고 따끈따끈한 똥처럼 나온 글이 있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글이 게워낸 글이에요. 제가 고생해서 글을 써보니까 지금은 그게 딱 보여요.

하여간 지라시 글들을 모아서 책 쓰기 시작하면 그 작가는 끝난 거예요. 글 쓰는 사람은 긴 호흡으로 가야 해요, 산 잘 타는 사람은 종주의 역량에서 확인되는 거죠. 산에서 얼마나 오래 버티는가. 그렇게 버텨서 써낸 글이 좋은 글이에요.

 

철학과 영화

[78-82]

지: “철학을 통해서 철학적 사유에 적응하는 순간, 누구든지 사회학, 정치학, 문학, 공연예술 등 다양한 텍스트가 전제하는 사유 논리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독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인문학적 감성과 사유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철학 공부가 불가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철학을 통해서 예술을 표현한 글들을 보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자신의 삶 속에서 그걸 반추해보지 못하고, 어떤 것에 감응을 받았는지 모르고, 그 사람에게 육박해 들어가지 못해서 그런 건가요?

강: 한 인간이 무언가를 표현한 거잖아요. 춤을 출 수도 있고, 철학적인 얘기를 할 수도 있어요. 철학과 음악을 예로 들어볼게요. 철학은 머리고 들어와서 가슴을 울리는 데서 끝나야 하고, 음악은 가슴으로 들어와서 머리를 울리는 데서 끝나야 해요. 문제는 음악인데 머리고 들어오는거예요. 음악을 머리로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 이건 잘못된 거예요. 매체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거예요.

미카엘 팜 감독의 <감시통제>라는 다큐멘터리였어요. 그런데 그 영화는 재밌었어요. ‘영상’으로 통제되는 사회를 ‘영상’으로 다룬 것도 좋았고요. 미셀 푸코가 잡지 못했던 것을 영상으로 표현한 거죠.

 

진단 기술이 발달하고 있잖아요. 병원 가서 엑스레이나 MRI 찍잖아요. 그런데 그게 발달하면서 우리는 항상 아픈 상태가 돼요. 매번 감시하고 찍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병으로 진단 안 돼도 의사가 ‘건강하십니다’가 아니라 ‘계속 주시해보죠’ 이렇게 애기해요. 진단 장치가 많으니까 우리는 매번 종합검진을 받잖아요. 빨리 발견하면 고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 논리가 확장되면 보험의 논리가 되는 거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그렇게 우리가 현재게 살지 못하게 하고 미래를 공포로 몰아가는 것. 이런 장치들에 대한 영화에요. 우리 인간은 현재에 집중해야 사랑할 수 있는데, 각자 깨알같이 미래만 보고 보험 들게 하는 현대 사회를 담아낸 거예요.

영화는 cctv도 다루는데, 인간의 내면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장치가 진단기술이라면 외부적인 감시 통제 장치로는 cctv가 있는 거죠. 모두가 용의자처럼 보이게 하는 CCTV 이미지, CCTV 는 우리가 다 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CCTV는 원래 군사용 장치였는데 시민사회로 들어온 거에요.

 

<감시통제>는 과학기술 매체가 우리를 어떻게 갈등시키고 고립시키고 깨알같이 만드는가, 이걸 다룬 거예요.

‘우리’로 들어가면 이미 사회고학으로 들어간 거예요. 인문학이 아니예요. 인문학은 ‘나’예요. 각자 각자의 나, 그리고 각자 각자의 ‘나’들이 공명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인문학의 궁극적인 그림이 민주주의죠. 절대적인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내 생각은 있어요. 절대적으로 그리고 모든 사람이 100퍼센트 같지는 않지만, 디테일은 다르지만, 공명할 수 있다는 보편성, 그것이 인문학의 가능성이고 민주주의의 기초죠.

 

 

chapter 2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사랑과 기다림

[87]

사람은 혼자 잘 놀아야 해요. 혼자 잘 노는 사람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어요. 사랑 찾아서 안달복달하는 사람은 어린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은 안 돼요. 나중에 자기가 지쳐버려요. 혼자 있는 사람들,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사랑받을 수 있어요. 오버하고 징징거리며서 ‘우리 만나, 만나’ 하는 애들도 얼마 못 가요. 사람이 바위 같고 산 같고 그래야죠. 애정 결핍은 다 있어요. 그걸 응시해야 해요. 자꾸 채우려고 하면 안돼요.

헤어져서 혼자 살 수 있을 때 누굴 사랑할 수 있는 거예요. 안 그러면 애정 결핍인데, 변덕스러운 애정 결핍에 휘말리면 힘들어요.

 

사랑과 자유

[89-94]

기다린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동의어예요.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음식 같은 거라는 거예요. 배고파 죽겠는데 자장면은 왜 안 와, 이런 거예요. 와서 먹고 나면 그 다음에슨 찾지도 않아요.

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길 사랑해 줄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강: 사랑할 때 사람은 고독해져요. 왜냐하면 저 사람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위대한 건 나 말고 타인도 자유롭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사랑은 상대방에게 자유가 없다고 느껴질 때 붕괴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판단 내릴 때, 완전히 내가 소유됐다고 여길 때 상대방에게 자유는 없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진짜 좋아했던 것은 그 사람의 자유였던 거예요. 결혼 후에 사랑이 식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결혼 제도는 소유 제도예요. 배타적 성적 소유에서부터 재산의 소유까지. 결혼 제도가 소유의 제도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고 싶으면 이혼을 해보면 돼요. 위자료 나누는 것 보면. 애인 간에 헤어졌을 때는 위자료 안 준다고요. 그 차이를 알아야 해요.

 

샤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이 좋은 거예요. 그 조건 아세요? 다른 남자와 자도 되는 거에요. 카페에서 사르트르가 담배 피우고 있는데, 보부아르가 옆에서 영화배우랑 뽀뽀해도 참아야 해요. 그래도 둘이 나중에는 무덤에 나란히 누워 있잖아요. 소유하지 않고 풀어주려고 하니까 그만큼 더 소유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순환하는 거예요. 자유로우니까 소유하고 싶고, 소유했을 때 자유를 주려고 하는 이런 역동적인 과정을 실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결혼 제도는 그 자유를 붕괴시킨 거예요. 스스로 자유를 포기했다고 생각해요. ‘나는 끝났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인간은 스스로가 굉장히 당당하고 자유로워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어요. 자유롭다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의 주인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고 자기를 사랑할 수 있어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어야지. 자유로워야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요. 스스로 자유로워야 자기를 긍정할 수 있고,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어요. 자유와 사랑은 결과적으로 같이 가는 거예요.

 

잃어버린 열쇠

[95]

사랑을 하면 정상적인 경우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요. ‘이 인간이 어디 가서 행복하겠어?’ 그런 각오로 행복하게 해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지금 원한다고 하는 것이 진짜 원하는 건지.

정신분석의 핵심이 트라우마나 숨겨져 있는 것들을 어떻게 지적하느야 하는 거거든요. 그게 의식화되면 나의 모습이 보이니까 그다으에 그걸 고치든지 말든지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거예요.

정신 분석은 인문학이에요-프로이드나 라캉- 대화로 끝까지 결판을 보자는 거예요. 끝까지. 포인트를 잡을 때까지. 그렇게 했을 때는 철학자로서 존재감을 느껴요. ‘내가 살아 있을 만한 가치가 있구나’ 하는. ‘나는 열쇠 찾아주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잃어버린 열쇠를.’

 

인간은 사랑의 존재

[102]

글의 힘은 애정에 있어요. 관심 받으려고 글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특히 젊은 친구들. 그래서 글 쓰겠다고 하면 “사랑받으려고 그러는 거여?” 누굴 사랑해서 글을 써야지, 글이 제일 잘 나올때가 연애편지를 쓸 때야. 그 사람을 사랑해서 절절하게 나를 표현하는 거지. 글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거야“라고 얘기해줘요.

모든 문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고, 고독은 그 다음에 있는 건데, 혼자 있을 때는 그냥 자라고 하죠. 음악을 듣든가.

좋아하면 기다릴 수 있어요. 그 기다림에서 스스로를 알게 되는 거죠.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네. 잘됐다’ 이런 거죠.

 

사랑하려면 신을 죽여라

[105-107]

새로 배워야 해요. 배우려면 비워야 하고요.

나이 드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젊음을 어떻게 유지하고, 날카로움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죠.

죽을 대까지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실천하도록 하는 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들, 관조하지 않도록 하는 글, 삶에 직면하고 살아감에 직면하는 글을 써야 해요. 죽었다 깨어나도.

 

인간 속에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발견하려는 단호한 용기가 인문학자에게 필요하거든요.

네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고, 너의 남루함을 자각해야 하고, 자꾸 저승에 있는 천사를 볼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여기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걸 인문학자가 이야기해야만 해요.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한 건 인간이 주인이라는 선언이거든요. 인간이 창조의 모든 역능을 끌고 가야 해요. 실질적으로 역사는 그렇게 움직여왔어요. 이제는 그것을 한두 명이서 하지 말자는 거예요. 모두가 다 해야 해요. 다른 사람한테 기대지 않게 하는 것. 넘어지더라도 혼자 넘어지고 또 일어나게 하는 것, 그게 인문정신이니까요.

 

[108-109]

지: “라캉에 따르면 불행히도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과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다. 전자가 페르소나라면, 후자는 맨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로 자신과 세계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반면 거짓된 인문학은 여러분에거 더 두텁고 화려한 페르소나를 약속할 것이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 <철학이 필요한 시간>

 

종교를 믿는 것도 자기 맨얼굴을 보지 못하고 자기 페르소나를 자기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란 말씀이신가요?

강: 인간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해요. 그런데 자본의 논리도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종교의 논리도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는 거예요. 항상 오늘은 수단이에요. 내가 살이 있는 이 삶 자체가 수단인 거예요. 천국을 위한 수단이든 후손한테 자본을 남기기 위한 것이든 똑같아요.

 

인문학 정신은 자기 긍정, 자기 애정이에요. 하루하루가 다 행복해야 전체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야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사람은 내일 돼도 또 오늘이잖아요. 그날 잘 살면 돼요.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는 사람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데, 내일이 되면 또 내일이에요. 신자유주의도 그걸 요구하는 거잖아요. ‘지금 빡세게 고생하면 나중에 편하다.’ 그러다가 죽는 거예요. 이게 사람들을 지배하는 논리거든요.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상당히 유사한 데가 있어요. 돈이 안식과 구원을 준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요. 자본주의의 핵심은 종교성에 있다고.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는다고. 종교 비판은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비판, 대표자를 추종하는 황당무계한 것에 대한 비판 등을 총괄하는 것이에요. 철학적으로 가장 깊은 비판이기도 하고요.

 

돈에 올인해서 가족을 돌보지 않는 부유한 아버지처럼 신에 올인해서 가족을 안 돌봐요. 자기들은 믿어요. 내가 신에게 구언을 청하니 가족들에게 은총이 있을 거시이고, 내가 돈을 버니 가족들이 행복할 거라고. 중요한 것은 신에 올인하거나 돈에 올인하면 인간관계가 붕괴된다는 거예요. 사랑이 무너지는 거죠. 그래서 종교를 비판하는 거예요.

남편이 기독교인인데 어떻게 같이 살려고 하는지. 아내가 아플때 병구완 안 해주고 교회 가서 하나님한테 기도할 사람인데. 신이 사랑하라고 해서 하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에요? 누군가를 사랑해서 신을 버려야 그게 사랑이죠. 재클린 뒤 프레라는 훌륭한 첼로 연주자가 있었는데, 남편이 지휘자인 다니엘 바렘조임이에요. 뒤 프레는 남편 때문에 유대교로 개종해요. 쿨하게 종교 다 버려요. 유대교가 좋아서가 아니라 남편 편하게 해주려교 그런 거죠. 사랑은 종교도 국가도 버리는 거예요.

 

이별을 각오하고 사랑하라

[116-120]

지: “초월자에 대한 지나친 몰입은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하도록 만든다”라고 하셨는데요. 그게 종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랑할 때도 상대방을 초월자처럼 받아들이게 되면 어렵잖아요. 동거를 해보라는 것도 동거가 그 환상을 깨는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일 텐데요.

강: 동거를 하라는 것은 항상 깨지라고 그러는 거죠. 나중에 결혼해서 깨지지 말라는 거예요. 아이들의 성적인 금기가 좀 깨졌으면 좋겠저요. 금기시되니까 두 남녀가 맺을 수 잇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는데도 성적인 관계에만 집중하게 된다고요. 그 하나의 관계 때문에 관계가 유지되면 안 되거든요. 남자가 하반신 불수가 되어도 두 남녀가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요. 성적인 관계는 두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수만 가지 관계 중 하나일 뿐인데 그걸 금기시하니까 그것에만 집중해요. “지금 만지지 마세요. 결혼한 다음에.” 그게 음란성이에요. 왜 육체적인 관계에 올인하냐고요. 답답해 죽겠어요.

상대방과 맺을 수 있는 수만 가지 관계에서 다른 것을 안 보니까 사람을 잘 못 만나는 거에요. 다른 것은 다 용서되는데, 성적인 것만 용서가 안돼요. 그래서 음란성이라고 하는 거예요. 진짜 무서운 것은 내 부인이 독서 모임에서 카프카를 읽고 다른 남자와 영혼이 통하는 거거든요. 그게 진짜 음란인데, 우리는 손만 안 잡으면 되는 거예요.

 

제도를 생각한다는 것은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두 사람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해요. 사랑의 원리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건데. 지금 행복하려고 해야 하는 건데, 저는 그렇게 사랑했으면 좋겠는데 옛날에 사귀었던 애인은 “이제 우리 어떻게 하지?” 자구 이 얘기를 하더라고요. 지금 행복한데, 같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떻게 하냐는 얘기를 들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애가 사랑을 배신하는구나. 성숙한 게 아니에요. 사랑을 배신하고 생활로 끌고 내려오려고 하는 거죠. 아이들이 젊어서 그래요, 아니 약해서.

사랑은 힘든 거예요. 사랑은 이별을 감당하면서 시작하는 거예요. 언젠가는 헤어진다고요. 한 사람이 나이 들어서 먼저 죽든지, 떠나든지 결국 다 헤어져요. 그것까지 생각하고 사랑하는 거예요. 헤어짐을 각오할 때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하려면 쉰 살 정도는 돼야 하는데, 그때 되면 힘이 빠져서.....

 

사랑은 ‘아까징끼’

[122-123]

결혼은 사회제도예요. 연애할 때는 오늘 맛있는 것 먹자, 영화 보자고 하는데, 결혼하면 아끼자고 하잖아요. 나중에 하자고 하면서, 서로 사랑하는게 아니라 사랑을 유예해요. 그래서 불행해지죠.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도 애인 많잖아요. 천 페이지 정도 되는 서간집이 있는데, 그 편지, 다 애인들이랑 주고 받은 거예요. 남편이랑은 사랑한 적 없어요.

지: “배우자의 조건 중 경제 능력이 가장 중요한 시대입니다. 나에게 돈을 많이 가져다주는 사람을 남편으로 사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매춘의 논리에 가장 가깝습니다.”라고 하셨는데요.

강; 돈을 사랑하는지 남편을 사랑하는지 헷갈릴 수도 있는데, 남편이 실직하면 알게 되겠죠. 지금은 돈보다 남편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가봐야 알아요. 남편이 실직했을 때 어떻게 할 건지, 어떤 마음이 드는지, 그때 뼈저리게 알 수 있어요. 혹여 나는 남편을 사랑했노라 이런 자각에 이른다면 잘 산 것이고, 역시 돈이었다는 점을 깨닫는 것도 좋은 거예요. 내가 속물이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는 거니까요. 아이를 사랑하는 것도 똑같아요. 1등 하면 안아주고, 꼴찌하면 고기반찬이 없어지고 그러잖아요. 그것도 애가 벌어다 줄 돈을 생각하는 거예요. 사실 옆에서 보면 다 보이는데, 그런 모습을 알면 사는 게 남루하잖아요. 그러니까 가리는 거예요.

지: 결혼 정보 시스템 같은 것도 심하게 얘기하면 사회적 매매춘이라고 볼 수도 있잖아요. 조건 맞춰서 서로를 사고파는.

 

어른이 된다는 것

[124-125]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가족이라는 건 근원적인 억압을 체험하는 곳이거든요. 아버지 말을 듣는, 바로 그 구조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아버지의 자리에 독재자가 오고, 목사도 오고, 멘토도 오는 거예요. 이성복 시인의 초기 시를 보면 집요하게 가족주의를 공격한다고요. 아버지를 부정하고, 시에 나오잖아요. “아버지 아버지 ..... 씹새끼”

한 인간에게 단 한 번의 혁명이 있는데,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거예요. 정신적이든 정서적이든 경제적이든 완전히 독립했을 때 어른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별로 없어요. 아버지가 죽어도 아버지의 영향 속에 있고, 어머니의 영향 속에 있고, 단 한 번의 혁명이에요. 마찬가지로 인류에게도 단 한번의 혁명이 있는 거에요.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 지금가지 혁명은 일어난 적이 없어요. 혁명의 제스처만 있었죠. 가정불화만 있었지. 애가 아버지가 됐던 적은 없어요.

 

바닥까지 봐야 해요. 봐야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건 내가 힘이 있다는 거예요. 꼬맹이 때는 아버지가 자기를 때려도 그렇게 안 봐요. ‘아버지에게 그럴 만한 사연이 있을 거여’ 그러죠. 아버지가 대리고 나서 짜장면 사줄 때 ‘때리고 짜장면 사주면 다냐? 그러니까 엄마가 집 나갔지’ 그러는 아이는 없어요. 만일 그렇게 본다면 그 애는 이미 큰 거예요. 부모의 빛과 그림자가 보일 때 어른 대 어른으로 관계를 맺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또 힘든게. 한편으로는 우리 부모님들이 대부분 어린애거든요.

지: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 가사처럼 아버지 등을 봤을 때 작아보이는.

강: 작아 보이는 거런 거 아니에요. 거기엔 한때는 컸고 위대했다는 게 전재돼 있어요. 남루했어, 그만큼만 제대로 보면 되는 거예요. 작아졌다는 것도 노스탤지어예요. 그것도 위험한 거예요. 한때는 위대했나? 그게 아니예요. 아버지가 위대했던 게 아니라 자기가 작았던 거죠.

 

지: 한때는 자기가 작았으나 컸다고 착각하는 거죠.

강: 그래서 임제 스님을 좋아하는 거예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진짜 죽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나의 삶을 지배하는 부처를 없애야 내가 부처가 된다는 거죠. 불교의 가르침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이거든요. 나는 나인 거예요. 각자가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되면 다 해틸하고 성불하는 거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래야 사랑을 할 수 있어요. 주인이어야 다른 사람을 집에 데려올 수 있지. 내가 손님인데 어떻게 데려오겠어요? 내가 손님이면 사랑할 자격이 없는 거예요.

 

===> 자기 삶의 주인이면 자유롭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을 죽여야 진짜 내가 된다.

아버지와 나 Part1 - 신해철

아주 오래 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나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 받고, 돈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을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비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만에 골목길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127]

사랑은 두 사람이 감당하는 거에요. 감당 못하면 끝나는 거죠. 사랑하려면 미래를. 영원을 꿈꾸지 말아야 해요. 그런 거 꿈꾸는 사람들이 금방 끝나요. 지금 내가 저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고 있나, 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나한테 행복이다. 이런 것에만 최선을 다해 집중하면 된다고요. 사랑하는 사람의 표어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인데, 자꾸 내일이 떠올라요. ‘이제 어떻게 하지? 우리 뭐하지?’ 뭘 바라는 거예요? 계속 사랑하면 되지.

혁명의 조건

 

[128-132]

지: “매춘은 자본주의의 논리를 정당화되는 강간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동시에 사랑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벤야민은 사랑이 자본주의와 결합하면 결국 매춘으로 변질된다는 점을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라고 하셨는데요. 매춘을 악으로 보시나요?

강: 돈이 목적이니까요.

 

지: 돈이 목적이 아닌 직업은 없지 않습니까?

강: 미묘한 거예요.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봐서 돈이 들어오는 것은 괜찮아요. 그런게 그게 전도되어서 왜곡이 심해지면 돈에 올인하게 돼버려 문화의 다양성, 개인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사랑의 다양성도 사라져요. 매춘부들이 테크닉을 많이 배웠다. 남자들을 즐겁게 하는 법을 안다. 이런 것이 표준화되는 건데 이런 게 파괴적으로 다가오는 거에요.

가진 사람만이 버릴 수 있으니까요. 못 가진 사람들은 채우려고 해요. 80년대 후반에 제가 민중에게 느꼈던 배신감이 그거예요. 민중은 선하지 않아요.

 

가난한 지역에서 성폭력과 가정 폭력이 제일 많아요.

진보라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려는 건데, 사랑이 없다고 느껴졌을 때는 진보가 아니거든요. 자기만 사랑하는 건 보수예요.

시골에는 농한기가 있어서 혁명이 가능해요. 도시에서는 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어요. 다들 직장 다니느라 바빠서, 쿠바혁명도 시골에서 시작했다고요. 러시아 혁명도 그렇고. 심지어 나치도 바이에른 이라는 농촌에서부터 세를 키웠잖아요.

도시는 혁명의 무덤이다 -마르크스

김수영이 말년에 좋아했던 시인이 마야콥스키인데, 러시아혁명 때 최고의 시인이에요. 차르체제든 뭐든 다 공격했어요. 정말 센 사람이거든요. 혁명 이후 스탈린 치하에서 관료주의가 팽배하니까 그것도 맹렬히 공격했어요. 아주 과격한 시인이에요. ‘영구혁명’ 얘기가 그래서 나온 거고요.

 

 

chapter 3

철학적 시 읽기와 김수영

 

‘김일성만세’라는 시금석

[136-137]

최인훈이 <광장>을 개작하고 덧붙인 서문에서 ‘사람에게는 광장과 밀실이 다 필요하다’고 했잖아요. 밀실에만 가둬두거나 광장에 있기만을 요구하는 체제는 나쁜 체제예요. 사람에게는 광장과 밀실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 두 공간은 곧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일 수도 있는데. 이명훈이 북한에 가보니 거기는 사적 세계가 없는 거예요. 죄다 자아비판하면서 밀어붙이는 거예요. 그런데 남쪽은 공과 사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야만이에요. 북한은 최소한 명분이라도 있었어요. 그래서 1945년에 걸출한 문인들이 북으로 넘어가요.

남쪽은 더러워서 못 살 거야. 일제강점기 때 우리를 억압했던 순사들이 그대로 존재하는 데서 산다는 건데, 듣자 하니 북쪽은 친일파 청산이 끝났다고 하잖아요. <광장>은 김수영의 세계가 소설화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장>은 이명훈이 남쪽, 북쪽 다 거부하고 제3세계로 가다가 자살하는 것으로 끝나잖아요.

문학이나 인문학을 다룰 때 최인훈이라는 작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해요.

 

[140-142]

남북한 각 체제 내에서 민주화가 성숙하면 양쪽의 대립은 약화되고, 남북의 대립이 격화되면 양쪽 체제의 민주화가 현저히 후퇴한다는 게 한국 사회의 정치 공식이에요.

분단이라는 문제와 민주화의 문제가 같이 간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죠.

정치절학자인 카를 슈미트가 ‘정치의 본질은 적과 동지의 구별에 있다’라고 했는데, 정치는 억압이라고 봐야 해요. 억압의 근본 문제는 적과 동지예요. 체제 내부에서 갈들이 벌어지고 헤게모니가 흔들릴 때 독재자나 권력은 외부와 전쟁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내부 단합을 모색해요.

 

농담삼아 하는 얘기가 있어요. 딸이 어머니를 부정하는 콩가루 집안이 있는데, 그 가족을 단합시키려면 옆집 아줌마와 머리채 붙잡고 싸우면 되요. 딸한테 ‘너 누구 편들래?’하고 던지는 거죠. 그러면 딸이 자기 어머니 편을 들고, 그렇게 대동단결해서 며칠 가요. 그러다가 옆집 아줌마랑 갈등이 없는 상태에서 보면 다시 어머니가 미워 보이는 거죠. 그러면 어머니가 또다시 옆집 아줌마랑 싸워요. 이게 우리 사회예요.

 

<연꽃>이라는 시와 <김일성만세>를 같이 읽어야 해요. 연꽃은 사회주의자를 비판하는 시거든요. 인간을 못 보고, 인간의 자유를 못 본다고 이념이 강조돼도 인간의 자유는 억압되는 거예요. 자본이 강조돼도 인간의 자유는 억압되는 거고요. 인간을 제외한 일체의 외적이고 초월적인 힘, 권능. 다른 근본, 근거를 제기하면 억압이 오는 거예요.

서양에서 인문학이 완성된 때가 언제냐면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한때예요. 이건 중요한 말이에요. 신이 죽으면 인간만 남는다고요. 기독교의 신은 역사의 신이기 때문에 역사의 책임이 인간에게 돌려지는 거예요. 니체가 그래서 중요한 거거든요. 신의 자리에 너무나 많은 것이 와요. 자본, 이념, 종교, 권력....

 

김수영의 정신, 인문학의 정신

[146-150]

제가 술을 안 마시는 이유가 그거예요. 대학원 시절에 선배고 후배고 술만 마시면 교수 욕을 하는데, 앞에서는 한 번도 얘길 안 해요. 술 마실때는 재밌게 놀아야 하는데, 술 마실 때만 혁명들을 해요.

김수영은 우리 문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시와 산문이 다 걸작인 사람이에요. 이성복 말고는 그 정도 수준에 있는 사람을 못 봤어요. 산문이 된다는 것은 지성이 살아 있다는 거거든요. 인문학자라고 보면 돼요. 이성복 시인도 산문이 좋아요. 황지우 시인도 산문이 괜찮고요. 산문의 힘은 지성의 힘이예요. 김수영의 <벽> 같은 산문 보세요. 박인환 가지고 얼마나 재밌게 썼어요.

 

===> <벽, 김수영, 1966>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벽'을 보면 된다. '벽'이란 한계점이다. 고치려야 고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숙명이다. 이 '벽'에 한 두번이나 열 번 스무 번이 아니라 수없이 부닥치는 동안에 내 딴에는 인간 전체에 대한 체념이랄까 - 그런 것이 생긴다. 그래서 나도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본의 아닌 철학자가 된 셈이다. 속은 것은 성품만이 아니다. 육체에 대해서도 속았다. 그녀의 발가락을 보면 네 번째 발가락이 세 번째 발가락보다 더 길고 크다. 이것은 젊었을 때는 보면서도 보지 못한 흠점이다... 여편네의 루스한 성격의 또하나의 유전은 방문을 꼭 닫지 않고 나가는 버릇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편네와 큰놈이 닫고 나가는 방문은 언제나 10센티미터가량 열려 있다. 그래도 큰 놈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사내놈이 되어서 그런지 다소 나의 교훈으로 교정이 되었다. 그러나 여편네가 머리를 빗고 나간 자리에는, 그렇게 말을 하는데도 아직도 기다린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 비닐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축축한 걸레로 훔쳐 낼라치면, 방바닥에 필사적으로 달라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품이 자개장에 박힌 자개를 떼내기보다도 더 어렵다. 나중에는 걸레로 떼려다 못해 손가락으로 떼어 보려고 하지만 매끈거리는 비닐 장판에 붙은 머리카락이 손톱으로 쥐어질 리가 없다. 쥐어도 안 잡히고, 쥐어도 안 잡히고, 쥐어도, 쥐어도, 안 잡힌다. '벽'이다. 이렇게 되면 화를 내는 편만 손해를 본다. 그래도 눈앞이 캄캄해지도록 화가 날 때가 많다. 이것도 또 나의 '벽'이다.

 

여기서 김수영의 아내에 대한 화는 비참하고 남루한 자기 자신의 발견에서부터 온다. 자신의 남루한 모습에 대한 화가 아내의 '루스'한 성격에 대한 화로 폭발하는 것이다. 아내의 한계와 시인의 한계가 부딪히는 것이다. 아내의 한계를 넓히거나 시인의 한계를 넓히면 화는 폭발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테면, 아내가 신경을 써서 머리카락을 치운다거나 시인이 더이상 가난에 찌들리고 남루하지 않고 시를 잘 잘 쓴다면 아내의 행동에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한계가 부딪히고 둘 모두 바꿀 수 없을 때, 벽과 벽이 부딪힌다. 시인은 그 벽이 무엇인지를 찾아낸다.

 

김어준 역시, 그의 책 <건투를 빈다>에서 나의 경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남들이 당신에게 하는 말의 뉘앙스와 조사까지 신경 쓰느라 사용하는 에너지의 절반이라도, 의식적으로, 당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데 투입해보시라. 그렇게 자신의 경계를 파악하고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은 누가 대신 해줄수도 없다. 모범 답안 따위도 없다. 당신이 스스로 겪고 배워야 한다. -<건투를 빈다, 김어준>

출처: http://haerang.tistory.com/1289

 

[149] <경향신문>2012.4.1. 색깔론 유령에 맞서는 당당함 찾아보기

어떤 주제에 대하여 인문학자는 이렇게 본다. 그 주제를 수십 년간 연구한 사람보다는 못하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가장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이렇게 본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주제넘게 어떤 주제에 대해 세계에서 내가 제일 잘 안다는 것이 아니에요. 강신주가 보는 거예요.

김수영의 올곧은 자유정신, 억압에 저항하고 인간의 우둔함, 비겁함, 나약함을 깨는 그 정신으로 쓰는 거죠. 이렇게 한1년 정도 쓰다 보면 더 지혜로워지겠됴. 많이 강해지겠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괜찮아요. 조직이 없고,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뭐, 어떻게 할 거야.

 

<출판계의 불문율>

누군가에게 잔인해지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 다들 ‘그 사람은 괜찮아’하는 사람들은 문제 있어요. 막말로 출판계의 불문율이 있잖아요. 전주 ‘그 저자 괜찮아’라고 하는 작가의 책이 5백 부도 안 팔려요. 자기 개성, 자기 색깔, 그게 곧 책이고, 그것 때문에 책을 읽는 거잖아요. 인문학을 알고 인문정신이 뭔지 아는 저자는 가장 정직하게 자기 개성을 독자에게 던지는 거예요.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처럼 ‘강신주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던지는 거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같이 있는 거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다 좋다고 한다면 이건 무지럴이예요. 보잘것 없는 엷은 인간이에요. 제대로 살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싦어하는 사람이 홍해 갈라지듯이 갈라지거든요. 내가 분명하게 그 선을 그어줘야 해요.

 

스스로 도는 팽이

[151]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이란 시가 왜 중요하냐면 시인들이 시집 제목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한 시를 고르거든요. 자신의 모든 시를 이 느낌으로 읽으라고 시집 제목으로 말해주는 거예요.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를 굉장히 많이 읽었어요. 보통 시 한 편 읽는데 10분을 할애하는데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하루를 읽어야 해요.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서 다른 시를 읽어야 해요. 그 시가 원점인 거예요. 시인 자신이 자기를 밝히는 거예요.

 

===>

기형도/정거장에서의 충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로 굴러다닌다,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 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 들어선 안된다

주저앉으면 그 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 속에 옮겨 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152]

김수영이 말하듯이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해서는 공통된 무엇으로 돌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팽이 두 개가 돌다가 부딪치면 둘 다 넘어지거나 하나가 넘어지잖아요. 김수영이 생각하는 독재란 거대한 팽이 한 놈이 다 자기처럼 돌라고 하는 거예요. 김수영은 자기 혼자 돌아야 한다는 거고요. 그게 자유예요.

 

<푸른 하늘을> “혁명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팽이가 그 고독의 이미지예요. 공통된 중심을 확고하게 거부해요. 그게 이념이나 민족주의, 종교? 자본주의? 당연히 안돼요. 모든 팽이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제 스타일로 돌아야 하고 스스로 채찍질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도는 그때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그렇게 되면 시인이 불필요해진다는 게 김수영의 생각이에요. 김수영에게 시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나니까 쓸 수 있는 글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애기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는 거예요. 김수영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되어서 시인이라는 구별이 없는 사회, 시인이 불필요해지는 사회예요. <시의 ‘뉴 프런티어’>라는 산문에 나와요. 시 무용론. 그게 시인의 궁극적인 꿈이에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얻은 성찰이죠.

 

혁명의 고독성이란 테마가 왜 중요하냐면, 몇몇 멘토나 지식인들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주의적 혁명 같은 것, 공산당이 중심이 되는 혁명 자체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느리게 느리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돌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 가는 것, 그리고 스스로 못 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자유가 가능한다는 것을 시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김수영이 꿈꿨던 혁명이에요. 인문주의지죠. 진짜 인문주의자.

 

 

이번 과제는 여기까지입니다. 600페이지 되는 책을 읽는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어야 했습니다.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현재 나의 버겁함을 보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다음주에 계속해서 쓰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다음주는 강신주 저자에 대하여 보강과 가슴을 울리는 글귀, 내가 저자라면을 마무리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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