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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4일 06시 40분 등록

개똥아. 안녕.

 

오늘 편지에서는 인공수정 시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1차로 끝날 지 아니면 2, 그리고 시험관 1, 2차 이런 식으로 계속 써야할 지 모르겠구나. 2차 이상의 인공수정은 없을 거야. 주치의 선생님이 나의 난소기능저하 때문에 2차 시도 후에는 1달 쉬고 바로 시험관으로 갈 거라고 했거든. 우리는 선생님을 신뢰해. 먼 미래까지 끌어와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을 듯 해. 오늘 새벽에는 어쩐지 짜증이 보글보글 올라와서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블로그 재즈를 헤드셋으로 들으면서 편지를 쓴다.

 

설연휴 전날 너를 만나기 위한 우리의 첫번째 인공수정 시술이 있었어. 설을 보내고 오느라 적어둘 시간이 이제야 났네. 노트북이 놓인 좌탁 위에 시술날 구해온 여러 가지 약과 처방전이 쌓여있어. 크리논 겔은 주입식 질정인데 프로게스테론이야.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 같은 보조생식술 시술을 받은 이들은 시술일부터 피검사 날까지 이걸 사용해야 해. 시험관 한 이들은 7주까지 한다고도 해. 착상을 돕는 호르몬제지. 엽산은 파는 것 중에 제일 용량이 많은 걸로 사왔어. 400정도가 권장량인데 이건 1000이야. 고령산모에게 좋다고 해서 말이야. 배란유도제인 액토스도 아직 한 알이 남았네. 몸 상태는 좋아. 아랫배가 빵빵하게 느껴지는 건 과배란유도의 영향인 듯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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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논겔과 엽산>

 

1차 인공수정에 성공하는 건 로또라네. 그만큼 어렵대.개똥이를 만나는 적극적인 시도를 하는 세번째 달이야. 두 달은 과배란 유도 자연임신 시도였어. 나는 절을 하루에 300배를 하기로 했어. 대구 마리아병원 이성구박사의 글에서 절이 하체 혈액순환에 좋다고 읽었어. 난임카페에서도 108배가 난포를 잘 자라게 한다며 종교가 불교가 아닌데도 절운동을 많이들 하시더라. 성공한 이들은 종류는 달라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어.

 

1 18일 생리 3일째부터 과배란 유도를 위한 클로미펜과 액토스 정을 먹었어. 클로미펜은 5일간만 먹었어. 이번 달에는 글로미펜이 한 알 증량되었어. 배 주사를 모두 4번 맞았어. 병원에서 한 번 맞고 1 20일과 22일 두 번은 내가 집에서 놓았어. 이번 달에는 익숙해져서 남편이 안 지켜봐도 슬프지 않았어. 27일에 갔더니 모두 6개의 난자가 성장했다고 했어. 4개는 왼쪽, 2개는 오른쪽이야. 소변검사를 해서 배란 상태를 체크한 후 29일 날로 시술일이 정해졌어. 30일부터 설 연휴인데 다행이지 뭐야. 난포 터지는 주사를 처방 받았지. 36시간 이후에 배란이 되도록 하는 거야. 오후 4시에 시간 맞춰서 맞아야 했어. 5분 전에 전화하겠다더니 아빠가 어김없이 전화를 해 주었어. 이 주사의 영향으로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을 받은 이들의 임테기에는 두 줄이 나오기도 한다는 구나. Hcg 호르몬이 들어 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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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포 터지는 주사>

 

시술일 이틀 전 저녁부터 그와 나는 신경이 예민해졌어. 나는 검색질을 한참 했어. 인터넷에는 인공수정 과정을 자세히 올려놓은 이들이 많았어. 난임 관련 일기를 블로그에 쓰는 이들과 난임 카페였어. 지식을 들이마시면서 마음이 롤러코스트를 탔어. 청소, 목욕도 하고 싶었지만 이틀 동안 일이 손에 안 잡혔어. 나는 직장에 한 번 다녀왔지. 혹시라도 마음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은 없애주어야 하니까 말이야. 인공수정을 통해 쌍둥이 출산을 한 이들에 대해 읽으면서는 부러웠어. 하지만 과배란 유도로 인해 셋둥이가 착상되는 경우도 생기더라. 조산해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 건 기본이고, 유산, 선택유산 등 걱정거리가 많아 보였어. 저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그 휴유증이 평생남는 이들을 나는 많이 만나고 있지.

 

시술 동의서에 싸인을 해서 제출했어. 그리고 내 지문인식을 해 두었어. 이건 약품 처리를 한 정자와 환자를 확인하는 등 전 과정에 소용이 된다고 했어. 당연히 그렇겠지? 병원에서 엉뚱한 아이를 데리고 퇴원하는 것처럼 엉뚱한 정자와 난자가 만나게 되면 안되니까 말이야.  

 

시술일이 되었어. 나는 아빠가 연두색 낚시대를 들고 수영장에 낚시하러 가는데 두 형이 뒤에 지켜보는 꿈을 꾸면서 일어났어. ‘소독된 수영장에 무슨 고기가 있다고 낚시대를 들고 나설까?’ 꿈 속에서 내가 생각했어. , 오늘이 시술일인데 좋은 꿈 좀 꾸지 싶었어. 이번 달의 좋은 꿈은 아마도 조상님 산소에서 흰색 모란꽃이 3,4 송이 핀 화분을 싸들고 내려오는 꿈일거야. 며칠 전에 꾸었지. 꿈은 기록해두지만 그게 무엇이었는 지는 나중에 네가 찾아오고 난 뒤에나 역추적을 해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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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수정날 꾼 꿈 : 낚시대를 들고 집 안 수영장에 고기 잡으러 가는 남편>

 

보통 1시간 반 전에 남편들이 방문하지. 정자를 채취해서 약품처리해서 건강하고 잘 움직이는 것만을 남긴다고 했어. 아빠는 이번 주에 주간근무라서 병원에서 바로 출근을 해야 했어. 보통 2명이 같이 근무하는데 짝궁이 휴가를 냈다는구나. 게다가 설 연휴 전날이라 복무감사를 나온다고 했어. 그가 나가면서 8 20분까지만 기다리고 그냥 출발할테니까 마음 편하게 오라 했어. 자신이 출근을 해야 야간 근무자가 퇴근을 하고, 절대로 늦을 수 없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는 잘 긴장을 안하는 편인데 얼굴이 굳어있어. 약간 붉어졌어. 병원에서 오라는 시간 7 30분보다 15분 쯤 일찍 갔는데도 번호표가 4번이었대나는 그 얘길 전해 듣고 거기 왔던 많은 남편들, 평범한 보통 남자들일 그들, 나와 같은 과정을 겪어내고 있는 많은 여자들의 존재를 느꼈어. 동변상련이겠지. 지문 인식을 그도 마쳤어.

 

나의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서 병원에 가고 싶었어. 너를 초대하는 소중한 자리니까 말이야. 생명의 일은 하늘의 소관이지만 정성을 다해야지.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 알람을 맞추고 새벽에 일어났어. 소풍날처럼 눈이 번쩍 떠지더라. 설레고 긴장 되었어. 모닝페이지를 하고, 우리가 미리 지어둔 너의 태명에 대한 글 초안을 2시간 쓰고 300배를 했어. 태명 에피소드를 쓰면서 마음이 많이 기뻐졌단다. 300배를 마치니 손발이 따스해지고 땀이 날락말락했어. 좋아하는 김치찜과 상추쌈으로 아침밥을 든든히 먹었어.

 

평소 약속 시간에 잘 늦는 나지만 오늘은 절대로 늦지 말아야겠다 싶었어. 그는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만 임박착수 만땅인 나를 잘 기다려. 하지만 중요한 때는 얼굴이 붉어지고 화를 내. 중요한 때는 늦으면 그가 부르르 해서 나만 손해야. 그와 1년 가까이 살면서 터득했지. 냉동실에 얼려둔 호두과자를 꺼냈어. 내려둔 커피에 끓는 물을 부어서 보온병에 담았어. 전철 환승할 때 달렸지.

 

나는 9시 예약인데 8시에 병원에 도착했어. 그는 지하 1층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정자는 채취가 끝났고 처리 결과를 보고 가라고 해서야. 역시나 많은 남편들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어. 난임병원의 이용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 있어. 채취실이 어떻냐니까 틀면 야동이 나오는 모니터가 있는 작은 방이라고 했어. 야동의 수위는 어떻냐고 내가 물었지. 남자들이 보통 때 보는 것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노모(노 모자이크)라고 했어. 모텔에서 나오는 야비(야한 비디오)보다 세다고 했어. 그의 배꼽 친구 하나는 자신이 신뢰하는 사이트를 그의 핸드폰에 담아주었더라. 남자들 세계의 우정이란.

 

호두과자를 휴게실 탁자에 펴 놓았어. 1월에 천안에서 사온 호두과자야. 개똥이를 어서 만나라며 아기를 안고 있는 노란 성모상 그림도 그 날 선물받아 왔어. 너와 우리가 만나길 주변의 많은 분들도 기도하고 응원해주고 있단다. 그런데 남편 이름을 부르더니 정자 수가 부족하다면서 2차 채취를 해야 한다는 거야. 나보다 그가 더 놀랬지. 출근 출발 데드라인은 임박했어. 그의 얼굴 전체, 목까지 벌개졌어. 추가 채취를 하고,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갔어. 그의 뒤에 이 병원에서 유명하다는 의사 선생님이 또 같은 모습으로 뛰어 올라가더라. 처리 결과를 전화로 알려주기로 했어.

 

나는 진료실에 올라갔어. 초음파를 봤어. 배란 준비가 잘 되었대. 정자 수가 모자란다고 2차 채취를 했다니까 선생님이 만약 수가 너무 모자라면 인공수정을 하더라도 성공확률이 매우 낮다는 거야. 세 가지 선택사항이 있다고 했어. 첫째 과배란유도 된 채 인공수정 취소하고 자연임신 시도, 둘째는 그대로 인공수정 진행, 셋째는 오늘 곧바로 시험관시술로 넘어가는 거라는 거야. 준비된 난자를 초음파를 보면서 바늘로 채취하는 거지. 그런데 내 경우는 난자의 절반이 이미 배란된 상황이어서 채취는 어렵다고 했어. 시험관시술을 위한 난자 채취는 배란 되기 전에 해야 하거든. 첫번째, 두번째는 정자의 문제가 있는 경우의 선택이므로 다음 번에는 인공수정 과정 없이 바로 시험관으로 가야 한댔어. 초조하게 기다렸어.  

 

나는 다시 지하1층 대기실로 내려갔어. 거긴 시험관 시술실과 인공수정실, 정자 채취실이 있어. 간호사가 놀이동산 입장권 비스무리한 팔찌를 내 왼 팔목에 채워주었어. 환자명, 남편명, 담당의사명이 적혀있었어. 간호사는 파스텔톤 그린색 옷을 입었어. 결과가 잘 나오면 진행하고, 그렇지 못하면 입장권을 풀고 집으로 와야 하지.

 

다행히 시술이 가능했어. 번호가 불리자 인수정실로 안내되어 들어갔어. 내 담당 선생님한테 시술받는 여자들이 동시에 입장하나봐. 윗옷은 입고 아래는 속옷까지 탈의를 하고 가운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들어갔지. 원피스는 탈의를 안 한다는구나 다음에 다시 오게 되면 바지 말고 치마 입어야겠어. 불은 형광들이 아니라 백열등이고 약간 어두웠어. 따스했어. 여러 개의 침상이 놓여있고 각 칸마다 커튼이 쳐져 있어.

 

익숙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옆 칸에서부터 다가왔어. 나는 세번째였어. 간호사가 내 팔목에 채워진 팔찌와 남편 정액의 코드를 확인했어. 그리고 선생님이 커튼 안으로 와서 확인했다고 말을 해주고 결과지를 주더구나. 결과지에는 환자 번호 아래 10ml당 정자수와 운동성 %가 표기되고 상중하 중 정자 등급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어. 담당의사명으로 발행되는 거야. 질경으로 확장하는 것 같았어. 잠깐 주사했어. 약간 따꼼한 느낌이었지만 한 순간에 끝이 났어. 30분 정도 누워있었어.

 

시술실에 핸드폰은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어. 이번에 네가 꼭꼭꼭 오길 기도하기 보담 나는 누워서 책 한 권을 쳐들고 읽었어<나는 쓰는 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책 뒷 표지에다가 그 곳의 장면을 그렸어.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하고 긴장이 풀리질 않아서 말이야. 그 방을 나오면서 여자들의 나이를 스캔했지.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분이 1, 나머지는 다 나보다 어려 보였어. 나는 마치 내 나이가 너를 향한 길의 주된 걸림돌처럼 생각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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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수정실에 누워서>

 

간호사가 2주 후에 피검사 일정을 잡아주었어. 출근할 때라서 4시로 잡았더니 그러면 검사결과를 당일 볼 수가 없다는 거야. 처방받은 질정을 약국에서 샀어. 착상에 좋다는 치즈, 생선, 추어탕을 사러갈까 궁리하다가 무리하지 말고 오늘은 그냥 쉬자 싶었어. 집 앞 편의점에서 스티링치즈를 몇 개 사 들고 집에 돌아왔어. 배에 가스가 가득찬 느낌이었어. 과배란유도 때문이라고 나는 읽었지. 시체놀이를 하는 사람도 있고 안 그런 사람도 있는데 나는 하루만 누워있고 그냥 평상시처럼 움직일 작정이야. 의사선생님은 며칠은 108배만 하든지 깨림직하면 하지 말라고 했어. 질정을 넣었어. 처음엔 이상하지만 익숙해지면 간단하다고 했어.     

 

저녁에 퇴근 시간 즈음에 전화를 걸었어. 소고기 사다 구워먹을까 물었더니 괜찮다네. 청국장을 데우고 삼척 가자미를 굽고 쌈을 차렸어. 오늘 그가 얼마나 애를 썼고, 마음 고생을 했는지 내가 알지. 밥을 먹여주고 싶었어. 쌈을 싸서 입어 넣어 주었지. 국도 떠먹여주고 싶었어. 그는 2번 채취에 놀랬는지 오늘 샤워를 하다가 찬 물로 샤워했다고 했어. 그리고 오메가 3를 주문해두었대. 엽산을 사고, 치즈와 추어탕을 생각하는 나와 그도 같은 마음이었나봐.

 

난임일기를 쓰는 이들은 착상에 좋다는 음식들을 검색해서 올려놓았어. 두유, 추어탕, 치즈, 곰탕 이런 것들이야. 나는 음식과 영양제에 대해서는 <불임을 극복하는 식이요법> 책에 따를 작정이야. 그건 글쓰기 모임 동기 의사선생님 레몬이 선물해 준 책이야. 난임의 여러 원인 중에서 배란장애를 해소하기 위한 식이요법을 다룬 거야. 난임병원에서 실제 일하는 의사, 난임카페도 책을 추천하고 있었어. 다음에 상세하게 리뷰를 할 거야.

 

설 연휴를 보내러 시댁에 갔어. 차가 오는 김에 안시리움, 후마타, 팔손이를 실었어. 나는 그 식물들과 정이 들어서 마치 위탁모가 아이들을 입양보내는 것 같았어. 연휴 전날 인공수정을 했다니까 할머니는 따뜻한 데 앉아라, 들어가 누워라, 쉬어라 나를 임산부 취급하셨어. 친정에는 이번에는 안 내려가기로 일주일 전 생신을 우리집에서 하면서 말씀드렸어. 시체놀이를 할 필요는 없지만 귀향길 장거리 운전이 좀 안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장은 아빠와 삼촌이 보셨어. 이마트에서 용도별로 고기를 사고, 재래시장에서 만두용 눌림두부, 청양고추, 부추를 샀지. 나는 할머니 시다야. 남자들이 쉴 동안 시금치, 쪽파를 다듬고, 생강, 당근, 양파, 대파 껍질을 까고 씻고 잡채용 야채를 썰었어. 할머니는 쪼그리고 앉지 않도록, 차가운 데 앉지 않도록 늘 두꺼운 방석을 가져다 주셨지.

 

설 당일에 아빠는 근무였어. 9시까지 출근해야 해. 우리는 서둘러서 차례 준비를 해야 했어. 할머니는 4 30분 정도에 일어나셔서 머리 감고 5시부터 움직이셨어. 나는 6시에 나갔어. 할머니는 차례상에서 차린 건 없지만 정성을 생각해서 많이 드세요. 우리 가족 건강히 무탈히 지내도록 잘 보살펴 주시고, 큰애네 집에 딸이든 아들이든 손주 하나 점지해 주세요두 손 모아 기원하셨어. 올해 일흔여섯되신 너의 고모할머니도 점심 지나 오셨어. 세배 받으시면서 올해는 며느리가 있어서 조상님들이 즐거우셨겠다. 큰애 부부에게도 작은 애한테도 좋은 일 있길 바란다하셨어. 이 어른이 말씀하시는 좋은 일도 너를 염두에 둔 기원이겠지. 명절은 길고 오랜 생명의 흐름 한가운데에 선 나를 느껴보는 시간이야. 내 뒤와 그의 뒤에 든든하게 서서 사랑을 보내는 수많은 엄마와 아빠를 느끼지. 그리고 우리가 만약 너의 부모가 된다면 우리 역시 네 뒤에 항상 있게 되겠지.

 

나는 즐겁게 연휴를 보냈어. 할머니한테서 이 집안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게 특히 재미났어. 할머니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잘 하셔. 너도 이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으면 좋겠구나. 손으로는 음식을 장만하면서 돌아가신 증조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두 분은 시어머니 며느리인데 모녀처럼 지내셨대. 증조할머니가 병을 앓다 돌아가신 뒤에 할머니는 소중한 보물을 잃은 듯 하셨대. 증조할머니는 중풍에 나중에는 치매가 와서 3~4년 누워계셨나봐. 남의 보증 선 걸 대신 갚느라고 아픈 어른을 눕혀놓고 부부가 모두 일을 다니셔야 했대. 대신 갚아야 할 빚이 그때 살던 전세금 만큼이라니 컸지. 할아버지는 미장일을 했는데 지방으로도 많이 가셨대. 할머니는 공장 기숙사에 밥 해주는 일을 다니셨대. 공장 식구들의 점심, 저녁 식사를 모두 해주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집에 와야 했지. 집안에는 형제만 있었대. 중학생이었던 아빠가 학교만 갔다가 오면 할머니 옆에서 증조할머니를 돌봤다고 하시더라. 대소변을 다 받아내고 할머니가 드시다 흘린 사탕도 더럽다 않고 주워먹고 말이야. 아빠가 증조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방에서 같이 잤다네. 할머니는 그때 8가구가 사는 집에 살았는데 수돗가에서 똥기저귀를 빨면 혹시 병중인 어른을 두고 남들이 입을 댈까봐 퇴근한 후 한 겨울에 근처 초등학교 수도로 빨래를 갔다는구나. 아빠와 삼촌이 다닌 학교 말이야.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나 방에 가보니 찌릉내 내는 기저귀를 쑥 빼서 손자 얼굴에 덮어놓으셨더란다. ‘아이구 어머님했더니 그랬냐? 내가 나쁜 년이다. 금쪽 같은 내 새끼 얼굴에 내가 그랬더냐?’ 잠깐 정신이 돌아오신 할머니가 눈물을 뚝뚝 흘리셨단다. 그때 할머니는 내가 할 일을 아들이 대신하는구나. 참으로 고맙다. 아들아 복 받거라하셨단다. 속으로 나는 개똥이가 편안하게 오는 게 저 사람에게 최고의 복일 겁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모두와 선연으로 오게 해 주십시오. 저를 만나서 그게 어렵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빌었어.

 

개똥아, 인공수정을 하고 나니 아빠와 나는 좀 더 긴밀히 연결되는 것 같구나. 두 사람의 아이인 너를 만나길 원하는 마음이 일치하고, 어려움을 같이 겪는 시간이 애틋함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 대신 모든 욕망은 강력한 에너지이면서 기대가 어그러졌을 때의 상처도 남기기 때문에 양날을 가진 검처럼 조심스럽다. 나는 남들 앞에서는 태연하게 굴고, 혼자 있을 때는 일희일비하고 웹써핑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어. 핸펀으로 계속 검색질을 한단다. 내가 그 입장에 처하고 보니 세상에 있는 줄 몰랐던 방 하나가 열리고 풍경들이 보여. 실패와 어려움을 딛고 인공수정, 시험관이든 계속 해가서 아이가 있는 가족을 구성한 이들의 글을 읽으면 눈시울이 붉어지곤 해.

 

너를 향한 한 걸음을 내 딛었어. 난임을 사유로 하는 질병휴직을 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 아가. 잘 있거라. 나도 마음 굳세게, 흔들리면서도 할 일을 하면서 지낼께. 안녕.   

 

201425일 새벽에 엄마가.   

 

 

Ps. 부처님관세음보살님 천룡팔부신중님, 그리고 세상의 기도에 귀기울이시는 고운 님들께 기도드립니다. 저희는 첫번째 인공수정을 받았습니다. 1차 인공수정에 성공하는 건 로또 맞는 것과 같다는군요. 복권을 사고 배팅을 하는 이들처럼 저희도 당첨의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저희가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음 자체를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금 누리는 혜택 뒤에는 많은 분들의 고통과 노고의 역사가 숨어있습니다. 제가 만약 한 세대 전에 태어난 여자라면 아마도 아이 없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보다 더 전 세대에 태어났다면 이건 낙인이 되고, 남편이 아이를 얻는다는 이유로 공식적으로 바람을 피더라도 감내해야 했겠지요. 더 예전에는 난자까지 주는 씨받이가 있었고요. 현대의 인도에도 서양 불임부부의 수정란을 위해 자궁을 빌려주는 대리모가 있다는군요. 3군데 집의 가정부 일을 해주고 한 달에 40달러를 버는 인도 여성은 대리모를 해주고 7500달러를 받아 가족을 부양한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20년 급료라는군요.

 

저는 난임병원 다니는 일을 떠벌리고 있습니다. 저의 난임 커밍아웃은 이 커뮤니티에 속한 이들과 동질감을 형성하고, 여러 경험과 정보를 흘러 오게 합니다. 이게 나만의 일이 아니란 걸 수많은 블로그 글을 읽으면서 알게 됩니다. 10쌍 중 3쌍이 난임이라고 합니다. 점점 만혼이 많아지고 만혼으로 인해서든 다른 요인으로 인해서든 난임과 쌍태아 출산률도 높아진다는군요. 병원에 가서 보면 정말로 많은 부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어요. 저 자신에 대해 낙인이 된다는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위축되는 마음은 아직은 적어요. 실패를 겪지 않아서입니다.

 

여기 너무 집착하여 다른 데로 신경이 잘 안가는 게 나를 지치게 합니다. 저의 조바심, 성마름, 집착과 불안, 사고 오류, 백일몽, 눈물, 서성거림조차 있는 그대로 써보려고 합니다. 쓰면서 저는 가벼워집니다. 내 가슴과 머리를 비우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잘 관찰하고 잘 기록해두고 싶습니다. 다른 걸 써야 하지만 현재의 관심이 여기에 쏠려 있어서 한 발짝도 벗어나질 못합니다. 언젠가 어떤 수녀님의 기도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 분은 건강이 매우 안좋아서 거의 평생 누워만 있어야 했어요. 남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병자였어요. 헌공할 것이 없어 자신이 가진 고통을 헌공한다고 했습니다. 그 글을 읽을 때 깨끗한 은쟁반에 고이 올려진 그녀의 고통을 상상했어요. 보석처럼 빛났어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헌공하는 마음은 좋은 것만을 바치려는 마음보다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전 존재를 열고 올리는 거니까요. 어떤 어릿광대는 성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성모상 앞에서 공을 돌리고 재주넘기를 했다고 했지요. 두 사람 모두 순전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공양 올리고 있었어요. 저도 전부를 잘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진실에 진실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글쓰기라는 좋은 도구를 가지고 이 과정을 통과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생명을 낳는 일은 나의 생명력을 증장시키는 걸 전제로 합니다. 난임관련된 치료를 하다가 몸 망가지고 우울증 걸리는 게 아니라 아이가 안 오더라도 그 덕분에 건강하게 먹고, 운동해서 몸과 마음의 생명력을 충전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답게 사는 듯이 사는 시간을 하루 중에 좀 더 건설하고 싶습니다. 그 시간들이 저를 위로하고 견디게 할 겁니다.

 

저희 가족을 옹호하여 주시길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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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3:20:11 *.133.122.91

클로미펜, 액토스, 쇠고기에 청국장까지.. 정말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들이네요. 오늘의 이 바램을 저 또한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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