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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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책씩이나 쓸 필요가 있는지를 의심했다. 책상에서 글자랑 씨름할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차라리 삶을 위해 쓰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고도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턴가 집안 온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이 점점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나를,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원망했던 그 마음도 분명 진심이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받으니 이 느낌을 어찌 표현할 길이 없다. 스승과 나란히 적혀있는 내 이름을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다. 이런 기분을 모르고 죽을 뻔 했다고 생각하니 아찔 할 정도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며 미리 체념해 버리지 않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걸리는 게 한 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올 수 있는 용기를 내주어서 너무나 고맙다고. ‘역시 내가 미쳤던 거야’하며 자꾸만 도망치려는 나를 집요히 달래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노라고.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왜 글과 삶이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를 포기해야하는 양갈래 길이라고만 믿었던 걸까? 왜 선택한 그 길을 끝까지 가면 결국은 원하는 ‘그 곳’에 이를 수 있다는 스승의 일관되고도 명쾌한 가르침을 그리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걸까? 이제야 알겠다. 삶은 곧 ‘체험’이라는 것을. 나의 감각으로 직접 느껴보지 않고는 결코 ‘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겨우 한 페이지를 읽을 뿐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내 몸이 우주의 일부임을 느꼈다. 땅 위를 걸으며 대지와 하나 됨을 느꼈다. 방랑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며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도 느꼈다. 편견과 편협과 고집스러움이 여행을 통해 치유되었다.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솔직히 아직은 알 듯 모를 듯 알쏭달쏭하기만 한 스승의 말씀.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도 이 멋진 봉우리에서 삶을 조망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 내 나이 마흔, 여전히 아침이 설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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