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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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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6일 16시 07분 등록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신경림 '갈대' 중에서


그리워 하는 마음에 울고 말았습니다. 스승의 유고집 '마지막 수업' 출간기념회에서 스승님과 함께 라디오 고전읽기를 방송했던 이희구씨는 고인을 생각하며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우리 삶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너무 빨리 사라집니다'

주말동안 이희구씨의 울음이 제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지난 한 주 하염없이 흔들리는 제 마음이 마치 울먹이는 이희구씨의 모습에 투영된 듯 말입니다.

흔들리는 제 마음을 가만히 드려다 봅니다. 이희구 씨가 울고 있는 모습을 지나 더 깊이 내려가 봅니다. 제가 울먹이고 있습니다. 더 들어가 봅니다.  흔들리는 마음, 울먹이는 제 마음 뒤편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9기 수련 과정이 보입니다.

제 마음이 지난 한 주 왜 그리도 흔들렸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9기 수련과정이 끝나가는 게 싫은 겁니다. 매주 1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칼럼을 쓰는 시간이 영영 끝나버리는 것 같아 슬픈 겁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일년이 지나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것이 못내 서글픈 것 처럼, 아스라히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질 9기 연구원 과정이 못내 서글픈 겁니다.

9기 연구원 과정이 막바지로 흐르고 있습니다.  스승께서 남기신 알 속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매주 1권의 독서와 리뷰, 1개의 칼럼 수련을 2013년 5월부터 매주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스승께서 남기고 가신 1년의 '잔혹한' 커리큘럼도 이제는 끝났습니다. 앞으로 4월말까지 스스로 책을 선정하여 읽어야 합니다. 과제물로 올리는 글이 아니라 책이라는 형태를 갖춘 졸업작품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직도 어리고 여린 제 속살을 이제는 홀로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그동안 지긋지긋한 글 감옥 속에서 분명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고대 선사인들의 삶과 21세기 현대인들의 삶이 실은 똑같다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매 순간 고동치는 제 심장의 울림 소리가 바로 우주의 울림 소리임을 이제서야 알아들었습니다. 저 들판에서 한 철 피어났다 속절없이 저버릴 한 송이 꽃 처럼, 제 한 평생도 울며 태어나 웃으며 사라질 찰나의 존재임을 선명히 느꼈습니다.

수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연구원 과정'이라는 우주복을 입고 드디어 숨쉴 수 있는 숨통을 얻었다고 기뻐했는데,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다시 무슨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나 싶습니다.

우주복을 입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두렵기도 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제 머리가 이야기 하여도 제 몸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염없이 교육생으로 남으면 안 되는가? 바람과 비와 밤이슬이 몰아치는 땅 위 세상으로 반드시 내 싹을 들이밀어야 하는가?' 

'아름답다'는 형용사는 '울다'는 동사와 가장 어울립니다. 아름다움을 마주 대할 때, 울음은 가장 본능적인 응답입니다.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는 생명들은 모두 울면서 신고합니다. 새로운 우주를 향해 "저 여기 있습니다"라는 신고를 울음으로 대신합니다. 탄생의 아름다움은 곧 울음의 신고식입니다.

탄생하는 이는 분명 웁니다. 그동안 익숙해진 알 속 세계가 사라져서 서글퍼서 웁니다. 잃어버린 익숙함이 그리워서 웁니다. 스스로 선택한 변화가 아니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워 힘들어서 웁니다. 새로 다가온 세상의 빛이 너무 강렬하여 웁니다. 세상에 드러난 알몸뚱이 제 자신이 너무 작고 초라하여 웁니다.

스승의 유고집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를 읽으며 다짐했습니다. "스승의 꽃으로 피어나지 말자. 그저 내 꽃으로 피어나자." 그동안 9기 연구원이라는 땅 속에서 '저'는 씨앗이 되어 스승이 남기고 간 물기와 양분을 먹어 왔습니다. 이제 제 싹을 틔어보려 합니다만, 왜 이리 눈물이 나는 걸까요. 속절없이 머리의 말을 듣지 않는 아기같은 제 몸이 부끄럽습니다.

IP *.62.17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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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6 16:59:41 *.143.156.74

난 이제야 울고 있네.

아름다운 것들은 왜 이리 빨리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하지만 사부님이 그토록 좋아하셨던 벚꽃은 올해도 피겠지.

눈물을 멈추고 웃어.

사부님도 웃고 계실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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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6 17:21:27 *.62.178.35
말을 안들어요. 글 쓰면 좀 시원할까 싶어서 써보았네여. 며칠 두고 볼께요. 몸이 웃나 아니면 계속 울라나 두고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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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09:56:33 *.133.122.91

인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에 더불어 감정도 풍부한 형선씨!

형선씨께 제안한 프로젝트에 거절당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네요. 앞으로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동지의식 때문인가봐요.

수련과정이 끝나면 이제 훨훨~ 나실것 같아요. 화이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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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7:05:23 *.62.162.42
재엽선배님! 제가 무슨 거절까지요. 아직 능력이 안 되기에 폐끼칠 것 같아서요. 
수련을 통해 제 날개는 확인 했습니다. 다만 아직 번데기를 벗어나지 못해서요. ^^ 
댓글 감사합니다. 
출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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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2 14:28:08 *.1.160.49

눈물은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체액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결정 할 수 있는 일은 흐르는 눈물을 처리하는 방법 정도일지도 몰라요.

 

형선씨. 부디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지 마시길.

품고 있는 눈물의 총량을 재어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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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3 18:15:05 *.65.153.234

애쓰지 않겠습니다. 결국 흐르는 데로 흘러가는게 물 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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