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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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2014.02.17, 이동희
2012년 여름에 나는 내 인생에 신나는 선물을 주기로 하였다. 바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가족과 함께하지 않고 홀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하계 연수를 같이 떠나기로 한 것이다. 이스탄불을 거쳐 로마와 나폴리 그리고 시칠리를 돌아보는 10박 11일의 긴 여행이었다. 한밤중에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나폴리와 시실리 팔레르모를 운항하는 페리의 갑판에서 밤을 새며 불렀던 노래와 이야기들, 타오르미나의 달빛 어린 밤바다, 고대의 신화가 묻어나는 아그리젠토, 달콤했던 와이너리의 밤 돈나푸가타, 그리스 극장을 나와 구본형 선생님과 함께 걸었던 길이 갑판 위에서 떠있던 달빛처럼 기억 속에 생생하다. 나는 그 여행을 통해 오랜 직장 생활에서 지친 나 자신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었고, 같이 여행 간 여러분들과의 따뜻한 대화를 통해 다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절실히 받고 돌아 왔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밤에 시간을 내어 시칠리 여행기를 쓰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을 즈음 예정된 건강검진이 다가왔다. 당시 목이 불편하고 잘 쉬어서 갑상선 초음파 진단을 신청해 놓았던 터였다. 십 여 년간 건강 검진을 받아왔지만 늘 그렇듯 지방간 조금 있으니 운동하시고 식사 조절하란 말을 기대하고 들어 갔다. 하지만 뜻밖에도 건강 검진에서 갑상선에 결절이 있다는 소견을 덜컥 받게 되었다. 아니 결절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심 흠칫하여 의사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결절이 뭔지요? 종양인데 악성인지 양성인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해주신다. 악성이면 뭔가요? 암이란다. 암!
대한민국 국민의 5명중에 한 명이 암에 걸리는 실정인데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난 담배도 10년 전에 끊었고 술은 가끔 마시지만 주중에 몇 일씩 술로 보내지는 않았다. 이게 왠 날벼락인가. 그 때부터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혼자 노심초사 하였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하지만 초초해 하면서. 11월 건강검진 결과에 세침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그 여름 멋지게 시칠리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나에게 주어진 것은 결국 감상선 암 판정이었다. 다행이 완치율이 높다는 말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운명은 이렇게 얄밉게 나에게 또 하나의 시련을 주었다. 인생은 늘 반전의 연속이다. 나의 아버지는 나와 같은 나이에 내가 8살 때 비록 사고였지만 돌아가셨기에 난 이 나이에 죽는다는 것이 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12월 28일 암 수술 예약을 잡고 기다리던 중에 12월 변경연 살롱 9 개장 파티가 열렸다. 구본형 선생님께서 들러 주셨는데 들어보니 11월에 갑상선 암 수술을 하셨다고 한다. 아, 나도 곧 수술할 텐데, 선생님처럼 잘 되려나! 건강해 보이시고 와인도 한잔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12월 말로 잡혀 있는 수술에 좀 의연해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암 수술은 잘되었고, 입원 후 5일만에 퇴원하여 집에서 열흘간 요양을 하고 출근하여 업무를 보았다. 음 갑상선 암 별거 아니구만 하는 약간의 자만심도 생겼다.
그러던 중 4월에 덜컥 구본형 선생님의 부고가 전해졌다. 수술 잘 받으시고 건강하게 계신 줄 알았는데, 그 동안 내 병 고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입원한 소식을 못 들었던 것이다.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고 보니, 사람들로 꽉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 변경연 활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을 TV 화면을 통해 한 장씩 보여 주고 있었다. 이분은 돌아가셨지만 정말 많은 것을 남겨두고 가셨구나 느낄 수 있는 장례식장이었다. 그 곳에 있는 사람마다 가슴속에 구본형 선생님께서 계신 것 같았다. 아! 이런 애통한 일이 어디 있던가, 나는 돌아와 망연자실 하여 넋을 놓고 말았다. 아 이리도 한 순간에 그 분께서 떠나시게 되는구나. 수많은 조문을 다녀봤지만 정작 암 수술 후 같은 수술을 받으신 구본형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조금은 방관 했던 죽음이란 단어가 내 가슴에 꽂혀 그 비수를 드러내고 있었다.
5월 어느 봄날 따뜻하고 만물이 그 생을 드러내며 마음껏 즐거워할 즈음, 난 거실에 누워 창 밖의 달 빛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참 달도 밝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흘렀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마음의 걸림도 없이 그냥 흐르는 눈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나는 어찌 살아왔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는가? 나는 과거를 정리해야 함을 느꼈다. 내가 쥐고 있던 마음들을, 풀지 못해 꽁꽁 묻어 두었던 마음들을 다 풀어헤쳐 던져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 하면 난 너무나 많은 과거를 붙들고 힘들어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과거의 나와 앞으로의 나와는 단절이다. 난 그렇게 나에게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나의 가족과 직장에서의 책임과 내가 세운 소명을 다하자.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좀더 많이 하고 휴식을 하자. 그렇게 내일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날 이후로 또 한가지 달라진 것은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감사히 받고 능력을 다해 감당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인가 요구하거나 바라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해주기로 말이다. 내 쓰임이 있을 때 그들을 기쁘게 해주고, 그 기쁨을 보고 나도 기뻐하고 싶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팍팍하게 살아온 나의 삶이 서서히 작은 기쁨들로 채워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어쩌면 쥐꼬리보다도 작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지난 한주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었다. 나치 수용소에서 시련의 시간을 보내면서 매일같이 죽음을 직면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 아무리 수용소라고 해도 그들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고 하루 하루 의미를 찾아 실현시켜 나가는 삶을 살았다.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살아가면서 한 개인의 가치관은 계속 변화한다. 나도 그러하고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이 가치관에 따라 행동도 바뀌게 된다. 인생의 의미 찾기는 이러한 가치관을 변화 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암 수술 후 나는 내인생의 의미에 대해 자주 묻곤 한다. 그것이 빅터 프랭클이 말한 그 의미일지는 모르나 나대로 왜 살아야 하나에 대해 의미를 묻는 것이다. 그 의미가 비록 한 필부의 것이라 보잘것없을지라도 그 의미를 실현시키기 위해 하루를 써 나갈 것이다. 이미 버린 과거의 삶을 다시 찾은 삶에서 반복하지는 말아야지,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지 오늘도 다짐하며 내일을 기다린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동희).docx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감사히 받고 능력을 다해 감당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인가 요구하거나 바라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해주기로 말이다. 내 쓰임이 있을 때 그들을 기쁘게 해주고, 그 기쁨을 보고 나도 기뻐하고 싶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팍팍하게 살아온 나의 삶이 서서히 작은 기쁨들로 채워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어쩌면 쥐꼬리보다도 작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원하지 않는 일과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게 해주는 부적같은 자세네요. 작은 기쁨들이 모여 이윽고 큰 강을 이룰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주어진 일들이 서로 대화를 한답니다.
한번은 머리 속에서 한번은 마음 속에서 말입니다.
가끔은 이도 저도 못할때가 있지요.
정신이 없을 때 말이죠. 그 때는 혼이 나야 됩니다.
혼내는 일은 집사람 몫입니다. 그 사람은 척 보면 압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밥먹고 살고 있답니다.
주어진 일들이 서로 대화하고 싸우고 타협하는 걸 지켜봅니다.
이긴 것은 진 것에게 미안해 합니다.
진 것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평화롭고 주어진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대화하지 않고 무시하면 싸우게 됩니다.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없는지도 모릅니다.
내 안에 심어진 욕심들이 서로 살아 보겠다고
그걸 내가 원한다고 그걸 원하는게 나라고 아우성입니다.
아직도 아우성입니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게 아우성입니다.
욕심들이 삶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 하나 알아봐 주려고 합니다.
"니 뭐꼬"
성철 스님이 그러신 것 처럼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씩 길들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내가 미쳐 미치기 전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