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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7일 06시 56분 등록

사랑하는 당신, 당신께 말하고 싶어요. 당신이 내게 완전한 행복을 주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당신보다 더 잘해줄 수는 없었을 거예요. 믿어주시겠죠. 하지만 나는 이걸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나는 당신의 삶을 소모시키고 있어요. 이 광기가 말이죠……”

며칠 전부터 내 손에 들려져 있는 책은 2권이었다. 얼마 전 읽었던 책 삶은 홀수다의 작가 김별아의 또 다른 산문집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위에 언급된 문장은 두번째 책의 저자인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에게 남긴, 1941년 그녀가 살던 영국 서섹스의 우즈 강 속으로 자신과 자신의 무게를 충분히 가라앉힐 수 있는 돌을 코트에 넣고 검디 검은 물 속으로 스스로를 바쳤던 그 날 쓴 편지의 일부이다.

버지니아 울프. 난 그녀에 대해 그다지 아는게 많지 않다. 작가이자 소설가였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익숙한 이름,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이는 이름 탓이겠더니 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오는 동안, 어떤 영화의 제목에서(‘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렵게 만드는가’), 책 속에서 (피천득의 인연),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할 그녀가 언급된 수많은 순간을 통해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인냥 그녀의 이름이 내 머리에 각인돼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최근 그녀의 이름을 다시 한번, 조금 더 깊게 인지하게 되었다. 모 사이트의 지식인의 서재라는 연재에서 대중적이고 폭넓은 글을 쓰기로 유명한 알랭 드 보통의 인터뷰에서 였던 것 같다. 산문 또는 수필과 같은 형식의 글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알랭 드 보통은 최근 활동하고 있는 가장 유명한 수필 작가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꼽은 내 인생의 책중의 몇몇 책이 수필이었고 그 중 하나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었다. (그가 뽑은 또 다른 수필로는 최초의 수필로 불려지는  몽테뉴의 수상록이다. 나는 그 책의 방대함과 시대적 차이에 따른 몰이해로 인해 1권만을 접하고 내려놓은 상태이다. 그 외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그리고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그의 추천 책이다) 그저 이름이 낯익은 여성작가라는 점에서 알랭 드 보통이 추천했다는 점, 그리고 수필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물론 이 책이 페미니즘을 다룬 그녀의 대표 수필로 유명하다는 점도, 그녀가 59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도 뒤늦게 알았다.

책은 아직도 서문이다. 주말을 이용해 책을 읽으려 집을 나왔지만 으슬으슬한 몸이 넌 감기에 걸렸어. 좀 쉬어야해라는 협박에 가까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도저히 독서에 집중할 수 없는 컨디션에 오늘은 그저 재껴야겠거니 생각을 하던 중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마이클 커닝햄의 퓰리처상 수상작이자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조명한 것으로 유명한 소설 세월을 영화화 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디 아워스’. 영국 탄광촌에서 발레노를 꿈꾸는 10대의 이야기를 다룬 빌리엘리엇이나 2차세계대전 나치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간호사와 그를 사랑하는 10대 연하남의 사랑을 다룬 더 리더를 재미있게 봤던 터라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다싶었다.

1923, 영국 서섹스 주의 한적한 전원주택 버지니아(니콜 키드먼), 1951년 미국 리치몬드에 사는 또 다른 주인공 로라(줄리언 무어), 2001년 미국 뉴욕에 사는 마지막 주인공 클래리사(메릴 스트립)가 있다 이들은 모두 침대에 누워있다. 마치 평행이론을 따르는 듯 이들 모두의 삶은 몇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 - 오늘은 이들 모두에게 중요한 날이다. 버지니아는 런던에서 언니가 놀러와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기도 하거니와 그녀의 작품 델러웨이 부인을 의 첫 문장을 떠올린 날이고, 로라에게는 남편의 생일로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날이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 클래리사는 사랑하는 소울메이트이자 에이즈를 앓고 있는 연인인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 기념을 위해 파티여는 날이었다. 그들의 오늘은 희망하고 평화롭게 시작하지만 왠지 모를 그림자가 끼어 있었다. 모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 듯한 어두운 그림자였다. 이 모든 일이 하루만에 이루어졌다

-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아름다운 숲과 강이 어우러져 있고 하인들이 파티 음식을 준비하는 버지니아의 집, 로라 대신 손수 자신의 생일 아침을 준비하는 온화하고 따뜻한 남편이 깨워주는 평화로운 일상이 감도는 로라의 집, 그리고 리차드의 문학상 수상 기념 파티를 위해 그가 좋아하는 게요리를 위해 사놓은 수많은 개와 파티준비로 분주하도고 희망찬 글래리사의 집, 마지막으로 글래리사가 사랑하는 리차드의 집…… 하지만 이 집들은 일순간 감옥이자 악몽으로 변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되도록 집밖으로는 나가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를 들은 그녀, 런던을 그리워하는 버지니아에게 그녀의 집은 감옥 그 자체이고, 평화로운 일상과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과 뱃속의 아이까지 특별히 어렵지 않은 환경인 로라의 집 또한 그녀의 숨통을 조여오는 답답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클라리사는 리차드의 수상기념파티에 대한 기대함으로 집안을 온통 쌓아 놓지만 정작 주인공인 리차드의 집은 우울과 절망, 에이즈 환자로서의 병세악화와 삶에 대한 회의, 사회에 대한 피해의식과 클라리사에 대한 죄의식 등 온갖 검은 감정들, 죽음의 감정들로 가득한 곳이다. 이들 모두에게 있어 집이란 장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편안하고 평화롭고 힘든 육신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가득한 장소에 불과하다.

죽음 - 세 주인공 모두 죽음을 생각한다. 버지니아는 소설 델러웨이 부인에서 주인공 델러웨이부인의 자살을 설정하고 굳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다른 사람들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라는 모순적인 답을 내놓는다. 물론 소설의 결말은 뒤에 가서 바뀐다. 로라 또한 답답한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죽음을 꿈꾼다. 클라리사는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를 상상하고 실천에 옮기려 하는 리처드에게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죽음을 힘든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다른 시대의 세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는 시종일관 그들의 삶의 교차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사이사이 그들의 공통점을 연계시킨다. 이런 시간에 대한 복잡적인 전개구조는 최근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최근작으로는 워쇼스키 형제의 클라우드 아틀라스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기서는 약 6명 정도의 삶을 다루고 이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방법을 썼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2시간 30 정도의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난 이 영화 디 아워스를 보며 영화적 재미에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본 이유 자체가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 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화내내 상당히 신경쇠약에 걸린 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언제나 불안해 하고 있고, 연신 담배를 꼬나물고 자신의 소설 델러웨이 부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환자로 내모는 현실과 사람들은 아무리 아름답고 한적한 교외 어느 전원주택이라도 그녀에게는 감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녀는 죽음을 생각한다. 자살시도도 두번이나 했었으며, 영화의 도입부와 결말처럼,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1941 3월 누군가에는 아름다운 산책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장소인 우즈강 깊숙한 곳으로 자신의 몸을 집어넣는다. 마치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편한한 장소이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는 감옥과도 같았던 집처럼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한다. ‘삶을 사랑하지만, 이제는 접을 때가 되었다.”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 로라도 이렇게 말한다. ‘죽음 같은 현실보다, 삶을 택했다.’ 전혀 다른 이미지로 받아들려일 수 있는 집, 그리고 삶,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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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09:54:18 *.133.122.91

대수씨-

디 아워스의 작가, 마이클 커닝햄을 제가 만났다면 믿어지시겠어요? 벌써 10년 전 쯤 이야기네요.

제가 지금 준비하는 책에 바로 그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이 칼럼을 보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살짝~ 제 책에 대한 스포일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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