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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7일 08시 01분 등록

No 42

                                                                      

                                      너는 너 나는 나

 

 

나는 나다. 나는 십 년 전에도 없었고, 천 년 전에도 없었고, 천 년 뒤에도 없을 거라는 걸 알면 자기 삶을 살아야 하거든요.

 그게 인문정신이에요. 고유 명사를 되찾는 것,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안 하려고 하는 것.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중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몸부림의 나날이며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녀 나이 낭랑 18세. 이름은 마례.

“정말이지 씨발! 도대체 학교는 왜 가는 거야? 나는 순종하는 양

같은 착한 시민이 안 될거거든. 나는 기계가 아니야. 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거든”

마례는 고등학교를 거부했다. 학교가 맞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유를 대자면 그냥 싫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가기도 싫고,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계속 수업받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남들 고등학교 1학년 나이에 대입 검정고시를 치러서 일찍이 국가가 요구하는 체제와는 ‘이젠 안녕’하면서 쿨하게 이별식을 치렀다.

 

마례 엄마는 요새 학교를 새로 옮겼다. 평준화가 아닌 지역, 그 지역 중학교에서 하위권에 누가 진입하나를 서로 다투어 차지한 아이들이 들어간 고등학교. 인간의 말이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는 그 학교에서 일을 하자니 어지간히도 힘들었는지 집에만 오면 누워서 잠을 잤다. 마례 공부를 봐주던 엄마는 마례에게 말했다.

“네가 학교 안가고 공부해서 대학간다 하니 알아서 잘 해라”

 

마례는 생각했다.

‘그렇지. 그런데 이 공부가 과연 나를 위해서 하는 건가? 내가 할 일이 공부밖에 없는 것인가?’

작년 8월초 대입검정고시를 치른 이후 마례는 신나게 놀았다. 인터넷 게임도 하고 소설 사이트에 가서 해리포터 패러디로 계속 글을 썼다. 인기가 있었는지 약 100여명의 독자들로부터 선 주문(각 3권, 1권당 1만원)을 받아 통장에 입금된 300여만원을 보면서 뿌듯함도 느꼈다. 글을 쓰니 사람들이 내 존재를 알아준다는 자긍심과 약간의 업되는 기분을 느꼈다. 마례 글에 달리는 댓글은 호불호가 엇갈렸다. 악플에 신경쓰지 않는다지만 어느 순간 마례는 현실이 아닌 사이트가 마례의 생활이 되어 꿈에서도 악플에 시달리는 자신을 보았다. 그러때면 엄마가 사준 그림판을 이용해 책 표지도 만들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컴퓨터에서 그렸다.

 

3월이 되어 엄마는 학교 가는 길에 마례를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 도서관 앞에서 내려다 주었다. 그렇게 마례가 공부한다는 명목과 강압(?)으로 도서관에 다녔다. 오전은 수학을 풀었다. 서서히 지겨워질때쯤 도서열람실에 갔다. 수많은 책들속에서 책의 향기가 마례의 콧속으로 들어왔다. 마례는 쭉 늘어서 있는 많은 책들사이로 그녀가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 과 문학책을 빼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은 금방 하루가 흘러갔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까먹고 다시 아까 읽다만 책을 계속 읽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고 일주일 이주일 한달, 두어달이 되었다. 도서관에는 공부를 하러 가는게 아니라 소설속에서 인생을 찾는 나름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약 두 달간을 그렇게 보낸 어느 일요일, 마례는 학교 후배와 점심을 먹고 이야기하고 늦은 오후쯤에 집에 들어왔다. 엄마가 갑자기 그동안 공부한 것을 보자고 했다. 순간 마레는 겁이 덜컥 났다. 엄마는 평소에 웃기는 농담도 잘하고 즐겁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못했을 경우에는 응징이 가혹했다. 작년에 한번 맞았던 기억이 마례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어차피 안했다고 맞아 죽는 것보다 집을 무작정 나가야 겠어. 비 올때 먼지나게 개패듯이 맞아 죽으나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다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 에이 모르겠다. 일단 튀자 ’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샤워하는 틈을 타 빨리 쪽지를 썼다.

“엄마, 나 그냥 오늘 집에 못들어와요. 나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죄송해요. ”

엄마가 요구하는 노트들 틈에 쪽지를 끼워놓고 엄마방에 가져다 놓았다. 옷장에서 겨울파카를 꺼내 입은 마례는 라면이 먹고 싶어 라면 사러간다는 핑계를 대로 집을 나왔다.

 

‘에이. 하필 이럴 때 왜 이렇게 날씨가 추운거야. 일단 집을 나왔으니 어디로 가나. 일단 걷자.’마례는 걸었다. 어디 갈데 없이 걷는 것이 슬펐다. 일단 엄마가 무서워서 집을 나왔지만, 어쩌랴. 다시 들어갔다가는 감당못할 일이 벌어지니. 엄마에게 살짝 미안했다. 4월이지만 날씨가 영상 5도쯤 되어서 뺨을 스치는 시샘 많은 봄바람을 느꼈다. 남쪽 지방에는 산수화, 목련화, 벚꽃이 핀다지만 마례 가슴에는 날선 고드름이 뚝뚝뚝 떨어지고 있다.

 

같은 시각 오후 5시. 마례 엄마는 노트를 살펴보다가 마례가 써놓은 쪽지를 발견했다.

 

To 엄마에게

 

엄마, 사실 나 공부 안했어.

지금 이렇게 편지 써놓고 나가서 언제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도망가는 맞아.

어마 화낼거 무서워서

또 그 광경 벌어질거 알아서

나도 내가 너무 이기적인거 알아

근데엄마한테 혼날게 너무 무서워

미안해

오늘 하루 밖에서 자던 어쩌던

어떻게 집에 안들어올게

 P140225_111416.jpg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순간 바깥 날씨가 춥다는 것이 머리에 스치는 순간 옷을 입고 차를 몰았다. 일단 마례를 찾아야 했다. 동네 여기 저기 그리고 옆 동네까지 세세히 살피면서 운전을 했지만 마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마례 엄마는 시골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낮에 통화했는데 집을 왜 나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너무 걱정하지 말어”

 

남편의 걱정말라는 목소리에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마례 엄마. 앉아 있다가 마례 방으로 갔다. 마례가 공부한 책이나 노트 모두를 꺼내서 현관 앞에 놓았다. 사과박스로 두 개가 나올 정도로 많은 책이었다. 마례 엄마는 생각했다. ‘본인이 싫다고 하지 않는 공부 억지로 시키지 않겠다. 집을 네 발로 나갔으니 네 인생 스스로 네가 알아서 살겠다는 의도로 알겠다. 네 인생인데 뭐.’

마례 엄마는 걱정해봤자 풀리지도 않을 일.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잠을 청했다.

 

선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기존 가치관에 따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악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행해보는 거예요. 바로 그 악이라는 요소 속에 나에게 맞는 욕망이 있어요.

그런 애들 있잖아요. 무모하게 모험하고, 젊었을 때 도서관에 갇혀 있지 않고 막 들이대는, 일단 해보는 거예요. 해보고 결정하는 거죠. 해보고 나서 ‘이거 더럽게 나쁘다. 하지 말자’라고 판단하는 건 온전히 내 판단인 거예요. 하지만 하지 말라고 머릿속에서 검열해서 영원히 하지 않는 것은 내 판단이 아닌 거죠. 그걸 겪어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악 중에서 ‘이건 악이 아니라 선이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의 고유성을 차제 괴고 어른이 되는 거거든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고.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중에서>

 

마례가 나올때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날이 깜깜해지고 네온싸인이 여기저기서 켜졌다. 거리의 차들은 쌩쌩 달렸고 배는 고프고 직불카드를 가지고 나왔지만 마음이 불안했다. 계속 걷다가 발이 익숙한 곳으로 걸어가는 자신이 같은 길을 계속 맴돌고 있음을 알았다. 엄마가 도서관으로 태워다 주는 길이었다. 밤 10시가 넘자 거리는 차들만 다니고 사람들도 뜸했다. 어둡고 깜깜했다. 마례는 일단 버스를 타고 사람 많은 곳인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근처는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이 다녔다. 터미널 주위를 돌고 돌았다. 다리가 아파 근처의 놀이터에 갔다. 어두웠다. 그네에 있다가 어느 누군가가 보이길래 뛰어 다시 차가 다니는 길가로 나왔다. 피곤하고 다리도 아팠다.

‘오늘밤을 어디서 보내야 하나? pc 방이나 찜질방은 청소년은 11시 넘어서는 받아주지를 않으니....’

그때 마례 눈에 들어온 것은 장례식장 간판이었다.

‘그래 저곳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저런 곳은 안전한 곳이니 오늘밤은 저곳에서 보내야겠다’

마레는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시계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악몽을 꿨는지 번쩍 눈을 떴다.

 

갑자기 서럽다는 느낌과 함께 아빠가 보고 싶었다. 일부러 휴대폰을 집에 놔두고 왔던 마례는 장례식장을 나와 공중전화로 가서 아빠한데 전화를 했다.

“아빠! 엄마 때문에 집에 못들어 가겠어”

수화기 너머로 그리운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례야 ! 거기 어디야. 아빠가 데리러갈게. ”

“ .........”

“ 엄마한테 못가겠으면 아침 첫 차로 아빠한테 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마례는 수화기를 놓았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인가. 내 삶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가. 온 몸으로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것이 뭐란 말인가.’

수많은 상념을 하면서 마례는 터미널 화장실을 들어갈려고 했으나 캄캄했다. 다시 거리로 나와 걸었다.

 

‘너희가 알 수 있는 것, 알아야만 되는 것은 감당할 용기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니체

 

새벽 3시경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찍힌 전화번호 불러주세요.”

“000 -0000. 왜?”

“경찰서에 물어보면 위치를 알 수 있어요”

 

마례 엄마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어제 저녁에 딸이 가출했는데요. 새벽에 전화가 왔어요. 000-0000 여기 전화가 어디 근처인지 알려주세요”

“네, 그러면 조사해보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바로 전화가 왔다.

“000-0000은 터미널 근처 000 백화점 앞 입니다”

 

마례 엄마는 옷을 챙겨입고 시동을 걸었다. 잠을 청한다고 했지만, 뒤척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고 마음을 졸였다. 새벽 3시 25분을 막 넘어서고 있었다. 터미널 부근에 파킹을 해놓았다. 터미널 근처에 있는 커피숍, 24시간 편의점, 지하 pc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샅샅이 뒤졌지만 마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지하에 있는 터미널은 환한 형광등 아래에 대학생 되는 학생들이 커다란 짐을 놓고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마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이 근처에서 했다는데 도대체 어디를 갔단 말인가?’

 

약 5시쯤 되었을 때 청소부 아저씨들이 나와서 거리를 쓸고, 시외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터미널로 첫차를 타기 위해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문을 돌리는 사람들,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가는 사람들,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새벽녘에 입김이 숨을 쉴때마다 나왔다. 마례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마례엄마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와 출근 준비를 했다.

마례 엄마는 2교시 수업을 끝낸 후, 시골집에 전화를 걸었다. 힘없으면서도 울먹이는 마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 번의 마례 목소리를 들은 마례 엄마는 가만히 수화기를 놓았다.

그래! 삶은 누구나가 자신이 직접 선택하는 거지. 나는 다만 너에게 엄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너를 존중하니까. 너는 너, 나는 나, 삶은 자신이 선택한 것들의 누적분이니까.

 

위악이 우리의 탈출구예요. 악이라고 금지하는 걸 행해보려는 우아함.

위악으로 시도했던 것들이 다 좋아진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걸 자기화한다는 차원인 거예요. 반반이에요. 내가 선이라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행해버리면 부모의 가치관이나 사회의 가치관에 따르는 것일 뿐이니 내가 하는 것은 아니에요.

오만 가지를 다 해보게 하고 싫은 것도 해보게 해야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자기가 어떤 점에서 남과 다른지 알 수 있단 말이에요. 그래야 자신의 욕망,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데, 애들이 너무 똑같은 경험을 하니까 그게 문제에요.

발악을 해요. 악이라는 것들을 다 해보는 거고요. 자기를 찾으려는 모험이라고 할 수 있죠.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중에서>

 

2014년 2월 17일 Oh! 미경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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