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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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에 와 있습니다. 이틀 전 중학교를 졸업한 딸 녀석과 밤 스키를 즐기고 하루를 묵은 뒤 덕유산을 잠깐 오르는 여정을 보내는 짧은 여행을 위해서입니다. 출발하기 전 우리는 고장 난 카메라의 수리를 제조사 AS 센터에 맡겨두고 왔습니다. 아내가 예약해 두었다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예약자 명단에 없는데요? 손님.” 우리 가족은 모두 당황했습니다. 매사 꼼꼼하고 분명하게 준비하는 성격의 아내는 더욱 그랬습니다. 아내는 예약당시의 정황을 설명하고 예약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하는 등 이 상황을 해결하려 애썼습니다. 그런데 콘도 담당자는 더 절망스러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약과 무관하게 여유분의 숙소가 있어 내드릴 수는 있지만, 아마 사용하시기 너무 불편하실 겁니다. 전관을 대학생 500여명이 사용하는데 통상 밤새 술을 먹고 시끄럽거든요.” 아내는 폭발 직전이었습니다.
나는 즉시 스마트폰을 꺼내 그 지역 주변의 숙소를 살펴보았습니다. 마침 스키장과 붙어있는 호텔이 떠올랐습니다. 전화를 걸어 숙박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다행히 방이 있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프로모션 중인 패키지 상품을 이용할 수 있어 비용도 상당히 저렴했습니다. 콘도 측 예약 담당자와 관련자 모두의 형편없는 서비스와 태도와 잔뜩 화가 나 끙끙대고 있는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숙소를 구했으니 그만 노여워하고 갑시다.” 이내 안도하면서도 아내는 벌써 몇 주 전에 예약을 한 건데 이렇게 형편없이 일을 처리하는 저들에 대해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곡절을 겪고 도착한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딸 녀석이 “인생사 새옹지마 맞다. 아빠!”라고 했습니다. 멋진 공간이었습니다. 유럽의 한 곳을 옮겨놓은 듯, 호텔은 내 외부 곳곳에 그 특유의 정체성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노여움은 사라졌고 우리는 시즌이 끝나가는 스키장에서 아주 여유롭게 밤 스키를 즐겼습니다. 물론 조금 더 예쁜 모습으로 스키를 타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딸 녀석을 살피며 따라다니던 나는 딸 앞에서 아주 크게 떠올랐다가 떨어지며 넘어지는 창피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마에 훈장 하나가 생길 만큼 충격이 컸고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아팠지만, 다행히 어디 부러진 곳은 없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산을 오를 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카메라 수리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이라고 했습니다. 원인을 찾았고 수리비가 2만원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소를 살펴보니 괴산이던데 먼 곳에서 나오기 어렵지 않겠느냐, 택배로 보내드리면 어떻겠느냐는 상의 전화였습니다. 그는 무척 친절했고 세심한 배려를 보였습니다. 나는 아니다, 직접 찾으러 갈 수 있으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논의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기치 않은 문제를 마주한다. 그게 삶이니까. 어떻게 모두 예상하고 준비한대로 일이 이루어지겠는가! 하지만 사람의 행불행은 바로 그 지점, 문제를 마주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에서 갈린다. 어떤 사람은 이미 벌어진 사태의 지난 과정을 파고들며 감정을 소모한다. 다른 어떤 사람은 그 문제 때문에 발생 가능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어떤 사태를 두려워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에 갇힌다.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복잡해 보이는 문제 속에서 제한된 조건이나마 최선의 대안을 구한다.’
이 에피소드의 등장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전혀 생소한 인물들이 아닐 것입니다. 그대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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