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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0일 13시 07분 등록
방금 친구의 팟캐스트 '화 잘내세요'를 들었다. 화를 잘 내는 것, 정말 필요한 기술이다. 
그리고 언제 화를 내야하는지를 잘 아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이번 설 명절에 가족들과 오랜시간을 함께 했다. 어린 조카가 생기면서 그 녀석들을 돌보는 것이 우리집의 1순위 일이 되어버렸다. 아이 돌보는 것이 제일이긴 하지만 원칙이 없으니 어머니께서는 몸이 고달프다. 그런 엄마를 도와서 뭘 하다보면 나도 또한 고달프다. 엄마는 시집간 딸네미 뒤치닥거리를 하고, 나는 엄마가 못한 집안일을 옆에서 거드느라 감정이 상한다. 

어린 조카들이 놀다가 서로 때리고는 울었다. 4살 둘째 은서가 볼펜으로 글씨를 쓰며 노는데, 첫째 5살 정민이가 그 볼펜을 뺏어가버렸다. 은서가 그거 자기꺼라며 뺏으려고 하자 정민이가 손에 볼펜을 쥔채 은서를 때려서 은서 얼굴이 볼펜에 찍혔다. 은서가 울어서 상황이 그리 된 줄 알았다. 은서의 볼펜에 찍힌 볼은 금새 부워올랐다. 달래 놓으니 그게 욱신 거리는지 또 울었다. 아이가 우는 것은자기 편 되어달라고 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달려줘야 멈추는 울음이다. 은서를 때린 정민이는 외할아버지(우리 아버지)에게 혼나고 울고, 은서는 아프다고 울고 거실이 온통 시끄럽고 눈물바다다. 은서 얼굴에 뭐라도 발라주며 달래줘야 할 것 같아 약을 찾는데, 연고가 어디 있는지 욕실에서 손빨래하고 청소하는 엄마에게 물었다가 엄마의 화만 돋구었다. 
"연고 없어! 방에 사람이 몇인데, 애기 하나 못 보고!!!"
엄마는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은서를 달래려고 나서지 않았다면 엄마의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문열고 엄마에게 물은 게 잘못이다. 

내가 실수 했다. 엄마는 애들 우는 소리를 잘 듣질 못하신다. 소리 자체를 못 듣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못 견디신다는 것. 화가 나면 눈 앞에 보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그걸 잠시 잊었었다. 피했어야 했는데. 

어렸을 적 동생들이 울 때, 엄마는 방에 들어와서 빗자루에 방에 있는 자식들을 모두 때리곤 하셨다. 왜 서로 싸우냐고, 왜 울리냐고. 왜 우냐고. 나중에 우리 자식들 중 큰애들은 동생이 울기만 하면, 뭔 일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우는 동생을 가서 때렸다. '네가 울면 엄마가 우리 때린다'고. 동생을 울리지도 않고, 때리지도 안았는데, 옆에 있다가 억울하게 맞느니 그냥 우는 동생이 미워서 때리고 맞겠다는 심정이었었다. 우선 그 우는 소리에 나중에 맞을 것 생각하면 화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커서도 있다. 
조카들이 우는 데, 엄마는 엄마에게 말을 건 내게 소리를 지른다. 

나는 발끈 화가 났다. 나중에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한테 사과해! 엄마는 애기 울면 앞에 보이는 사람한테 화내고. 나한테 막 소리지르고. 나한테 소리 지른 거 사과해! 정민이가 은서한테 화난다고 때리는 거나 엄마가 나한테 화난다고 소리지르는 거나 뭐가 달라!'
내가 엄마에게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하는 동안 거실에서 아버지와 남동생이 애들을 보고 있다. 어찌보면 기막힌 상황인데, 아버지와 남동생은 침묵한다. 엄마는 아무 대구를 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내개 사과하지 않았다. 나도 이번에 이런 일로 처음으로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이 일로 아버지나 남동생, 어머니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이게 대체 뭔가.

철학자 강신주는 '감정의 배설통'이란 말을 했다. 상사가 윗분한테 깨지고 나면, 화가나서 부하직원들에게 화내고, 그 부하직은 그 밑으로 화내고, 부모가 화가 나면 애들을 때리고 소리지르고 하는 것. 그것은 모두 감정의 배설통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심하게 매를 맞았을 때도 그런 경우가 많다. 같은 잘못을 했더라도 선생님이 화가 난 날은 죽어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우리는 제대로 화를 내는 것을 모는 것 같다. 
조카 정민이나 은서는 년년생이라 계속 싸울 것이다. 살면서 계속 서로 뭘 더 갖겠다고, 이쁨 받겠다고 서로 다툴 것이다. 이렇게 싸우는 녀석들에게 화는 어떻게 내야하는 걸까? 화내기 않고 나무라기만 해야할까? 어리니까 뭘 모르니까 뭘 가르치는 것은 나중에 해야할까? 엄마에게 화를 어떻게 내야하는 걸까? 엄마에게 화를 내지 않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어렸을 적(중학생때) 동생이 내 편지들을 찢어버린 적이 있었다. 우표를 수집을 한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온 편지 여러장을 우표 붙은 부분을 몽땅 다 가위질로 도려냈다. 엄마는 막내동생을 나무라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서 돌아온 나는 이미 오려진 것을 뭐하겠나 하며 나무라지 않았다. 나 또한 그때는 동생이 어려서 그랬겠지 했다. 내게는 소중한 것인데, 동생은 왜 남의 소중한 것을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몰랐을까? 

고2때는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편지가 내가 보기도 전에 찢겨 있었던 적이 있다. 그전에 몇 통의 편지가 집으로 왔었고, 이번에는 사진이 여러장 든 묵직한 편지였다. 뜯긴 것은 손에 들고 있는 걸 개가 물어뜯었다는 것이 찢긴 봉투에 대한 사연이었다. 봉투가 찢겨서 알맹이를 꺼낼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지금도 그 안에 든 사진과 편지를 엄마와 같이 세들어 살던 옆집 아줌마들이 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찢기지 않았다면 그런 의심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이미 찢긴 것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남학생에게서 온 편지를 뜯어보고 싶어서 개를 핑계대며 옆집 아줌마들이 부추겨서 뜯어본 게 아닐까 의심한다. 보고싶어서 뜯어봤다고 하면 더 낳을 듯 싶다. 뭔 핑계들이 이렇게 초라할까. 개가 음식냄새가 나지 않는 한, 다른 개 냄새가 나지 않은 한 편지봉투를 물어 뜯을 일은 없다. 왜 그때 우리 엄마는 내 편지를, 내 것(사생활)을 조심스럽게 다뤄주지 않았을까?  그걸 그렇게 하면 내가 속상해할 것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동생이 내 것을 함부로 파손하고, 또 누군가가 자식의 것을 파손할 때, 그 자식이 나중에 속상해할 것은 왜 생각하지 않은 걸까? 왜 그리하면 안된다고 가르치지 않는걸까? 

나는 지금 그때 화를 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제대로 화를 냈었어야 했다. 
나는 동생을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화가 난다해도, 화가 났다고 동생을 때린다는 건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다른 생각을 한다. 동생에게는 화를 냈었어야 한다고, 동생은 매에는 말을 들으니 매로 이야기했어야 한다고. 동생이 엄마와 내 금부치를 팔아서 용돈으로 써버렸을 때 화를 냈어야 했다. 동생은 그 일로 내게 사과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동생이 용돈이 필요했다는 상황은 이해한다. 그런데, 자신이 것이 아닌 것을 가져가는 것은 도둑질이고 그것 나브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가? 가족의 것을 훔치면 그건 도둑질이 아닌가? 가족의 것을 파손하면 그건 미안한 일이 아닌가? 그런 행위들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그걸 사과하지 않는다. 상황은 상황으로써 이해하지만 잘못한 행위는 잘못이지 않은가.) 막내 동생은 아버지에겐 조심한다. 아버진 화를 내며 매를 드신 적이 있고, 동생의 말이 맞으면 아프단다. 어려서는 동생을 때리는 것이 폭력이라 나쁜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이제는 폭력도 의사소통의 한 방법임을 안다. 물론 화를 내는 것도. 그것이 적절한가 적절하지 않는가가 있을 뿐이다. 그 방법이 의사소통에 적절하다면 소통방법으로 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족들에는 화 내는 것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잘 내지 못한 것 같다. 이야기가 통하는 방식으로 화를 냈었어야 했다. 그때는 어리고, 뭘 모르고 하니, '가족인데...'라는 말로 덮고 하면서 제대로 이야기를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그런데,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이라면 좀 이야기를 하고 살고, 서로 이해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때나 화내서 불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면, 같이 살고 싶다면, 제대로 화를 내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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