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자유

주제와

2014년 2월 22일 10시 18분 등록

공간은 침묵하지 않는다. 잘 비우는 동시에 잘 채우는 일이 건축 언어의 본령이다.

김억중 <읽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

 

건축가란 타이틀을 달았지만, 건축이라는 한 장르에 가두기는 어려운 김억중 교수님. 6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다보니 건축이 아닌 게 없더라고 고백하는 그는 '삶을 짓는' 건축가입니다.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하고 글도 쓰고 시도 짓는 그는 뼛속까지 아티스트입니다. 그를 대전의 집으로 찾아가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구본형선생님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지난 해 변경연 하우스콘서트에 초대된 A&U의 바이올리니스트 김미영씨가 저의 아내이자 삶의 파트너입니다. 그녀를 통해 변경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저희를 초대해준 연구원 이한숙씨를 만났습니다. 그가 대전까지 직접 내려와 아내와 인터뷰를 했고, 제가 그의 남편인 것을 알고 놀라워했습니다. 제가 지은 책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를 읽고 평소 저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서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변경연이 어떤 곳이고, 그녀가 존경하는 스승 구본형 선생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글과 일치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작가가 있다는 것과 그가 글을 쓰는 작가로만 그치지 않고 그만의 멋진 방식으로 제자들을 키워서 자신의 삶을 확장시켜왔다는 사실을 알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건축가로서의 저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이라는 집을 잘 지어온 저보다도 어쩌면 더 훌륭한 건축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선생님의 책 중에는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지난 번 변경연 하우스콘서트를 마치고 아내가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를 선물받았습니다. 아내는 그 책을 다음날 하루를 꼬박 바쳐 다 읽고는 한 사람의 생애와 그의 향기가 얼마나 은은하고 아름다운지,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 책을 읽고 동일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분명한 자기 문법과 철학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한 한 사람의 자기고백이 제자들에게 주는 편지의 행간마다 흐르고 있더군요. 구본형 선생님의 책에는 사람이 살아있었습니다. 그분만이 아니라, 그 분이 껴안고자 한 사람들까지도 말이죠.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저는 책을 가리지 않고 읽습니다. 의학서적과 공학책은 제외하고, 관심이 넓어서 거의 안보는 책이 없습니다. 난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에 따라 정독할 책과 빨리 볼 책을 구별합니다. 책은 주로 책방이나 도서관에 가서 고릅니다. 정하지 않고 그냥 갑니다. 물론 발걸음이 더 자주 향하는 곳은 있지요. 문학과 시 코너입니다. 제가 정독하고 싶은 책은 소장하고 싶은 책입니다. 다루는 주제를 정확히 뚫는 맛이 있는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책으로는 박철상의 <세한도>를 들 수 있습니다.

스위스에서 유학할 때도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도서관에서 혼자 배운 게 훨씬 많습니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언제나 언어학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건축은 결국 소통입니다. 언어의 메커니즘과 건축의 메커니즘은 같습니다. 건축의 형태 만들기는 문장의 형태 만들기와 같습니다. 중요한 건 의미가 전달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집을 짓다 보면 결국 생각을 짓는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 남는 건 생각입니다. 그러니 공부가 넓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학적 완성도, 그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좋은 건축은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의 삶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으면 어떤 건축도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 점에서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는 그 책을 읽는 사람의 삶에 간여하고 그 삶을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것이지요.

<건축과 음악, 공간을 노래하다>라는 렉처콘서트를 여신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 건축학도였던 제가 공간의 의미와 가치, 에너지로서의 실체를 생애 처음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꼈던 것은 뜻 밖에도 바하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중 샤콘느 연주를 들었을 때입니다. 저는 그 때 건축과 음악 모두가 공간을 매개로 우리 몸과 소통하며 독특한 감흥을 자아내는 언어라는 사실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채워진 것과 비워진 것 사이의 교묘한 스밈과 짜임에서 오는 전율, 그것이 바로 두 예술이 공유하는 미학적 가치라는 걸 알게 된 것이죠.


강의는 당시의 체험을 되살려 건축과 음악에서 공간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묻습니다. 형태와 형태 사이, 소리와 소리 사이, 그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건물(建物)이 건축(建築)이 되고 음()이 악()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사례를 들어 살펴보지요. 그 결과,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미적 감흥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공간 구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됩니다. 렉처콘서트의 음악은 제가 존경하는 A&U의 두 연주자가 담당합니다. 저의 아내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김미영씨와 작곡과 편곡까지 담당하는 기타리스트 김정열 선생입니다.

몇 년 있으면 저는 대학교수직을 은퇴합니다. 세컨 라운드, 다시 시작하는 제 인생의 뼈대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중에 이 렉처콘서트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해본 바로는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건축과 음악을 매개로 하지만 이 강의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별도로 그동안 외부 인문학 강좌를 만들어 대전에 다양한 문필가들과 시인 분들을 초청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은퇴하면 렉처콘서트로 전국을 순회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생각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하는 것은 모든 공부의 지향점입니다. 그 점에서 구본형 선생님의 공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구선생님은 평소 시()같은 인생(Life as a poem)을 살고 싶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시를 좋아합니다. 압축된 문장에 군더더기 없이 삶의 본질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시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것은 바로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삶의 본질을 살겠다는 의지의 발로가 아닐까요.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을 읽은 소감은.

자기 자신을 디자인하지 않고는 삶을 디자인할 수 없습니다. 구본형 선생님은 어떻게 삶을 디자인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오신 분이고 고전 텍스트 역시 저마다 그런 탐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전은 저자 스스로가 자신을 어떻게 디자인해갔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가슴에 와 닿는 증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면서 문득 구본형 선생이 매우 용감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입지를 견고히 세워가는 40대 나이에 자기 혁신의 길을 간다는 것, 그것은 매우 불안하고 위험한 선택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감행을 했다는 것이지요. 주어진대로 살지 않고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살겠다는 선언인 셈인데, 그럴러면 먼저 자기 확신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결국 돈, 명예 이런 것보다 자유, 사랑 이런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고전의 생각이기도 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젊은 시절 고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별 감흥 없이 책을 잡고 있었지요. 나이 들어서는 오히려 고전을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고전을 음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서는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감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는 구본형 선생님의 자기 감응이 잘 녹아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더구나 감응과 함께 관련된 텍스트들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어서 고전을 더 읽고 싶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간 쌓은 연륜과 경험 때문에 고전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 텍스트들이 저에게 더 많은 말을 걸어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대됩니다.  

변경연에 당부할 말씀은.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에서 구선생님이 정약용 선생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애정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자신의 모델이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정약용 선생의 놀라운 점은 그가 폭넓은 통섭의 학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민하는 마음을 가졌지요. 특정 분야에 매몰되지 않고 경계 없는 공부를 한 것은 먼저 그 자신, 사유의 경계를 허물었기 때문입니다. 구선생님은 그 점에서 자신이 존경했던 정약용 선생을 닮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스승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분의 뜻은 남았습니다. 스승은 사유의 경계 없이 사람을 품고 고민할 것을 여러분에게 바랄 것입니다. 그분의 뜻을 이어가는 것은 이제 남은 사람들의 숙제입니다. 여러분의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들고 개인 성장을 넘어 자신의 방식으로 멋지게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빙쉘터앞에서김억중.jpg

본인이 설계한 대전엑스포 <무빙쉘터> 건물 앞에서.


김억중 선생은 어떤 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건축과에 진학했지만, 거리에 화염병이 날아들던 시절 탓에 수업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엉겁결에 학사모를 쓰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찾아온 행운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고, 난생 처음 넓은 세상 속에 벌거벗은 듯 내던져진 자신을 바라보면서 부끄러움을 알았습니다. 손재주와 잔머리로 설쳤던 과거를 반성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보냈던 6년의 유학 생활 동안 생각을 짓는 것이 곧 건축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문학이라는 새로운 창을 통해 건축을 바라보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벼랑 끝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후학을 가르치는 행복을 얻었습니다. 오늘도 그는 책 내음 가득한 작업실에 앉아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맺어주는 집다운 집의 진면목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공주 어사재, 논산 사미헌, 광주 사가헌, 논산 애일헌, 대덕아주미술관, 대전 엑스포 시민광장 무빙쉘터 등이 있습니다. 개인전 <기호의 힘>, <모델하우스>, <애물단지>, <愛物과 碍物 사이>를 열었으며, 저서로 《건축가 김억중의 읽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 등이 있습니다. 현재는 그림에서 인생의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화문화답>이라는 책을 짓는 중입니다.

 

취재 및 사진: 4기연구원 이한숙

IP *.100.188.229

프로필 이미지
2014.02.22 11:45:20 *.133.122.91

정말 아름답고 진솔한 인터뷰들이 변경연을 꽉 채워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들이 앞으로 또 어떠한 시너지를 내게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김억중 선생님의 인터뷰 중에 '이 책을 읽고 다시 고전을 음미해보셔야겠다'는 솔직한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멋진 인터뷰를 위해 대전까지 순수 발로 이동하신 단경 한숙누님께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2.22 14:02:17 *.1.160.49

개인 성장을 넘어 자신의 방식으로 멋지게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영원히 끝나지 않는 '마지막 수업' ^^

다시한번 가슴에 새겨봅니다!!  김억중 선생님, 이한숙 선배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

프로필 이미지
2014.02.23 20:45:40 *.131.205.106

인터뷰를 해주셔서 이런 분이 이런 활동도 하시는구나 하고 알게됩니다.

단편적이라 할지 몰라도 인터뷰를 통해서 이런 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이분의 생각을 엿보고, 작품과 책이 보고 싶어지네요.

인터뷰에 응해주신 김억중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인터뷰해주신 이한숙 연구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크리에이티브 살롱9 하우스 콘서트와 인연이 있는 분인줄도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는군요. 뒷풀이 때 뵈었을 텐데..... 이름을 잘 기억하질 못해서 어떤 분인 줄 몰랐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48 구본형의 여행론ppt, 이곳에 올립니다. file [1] 로이스(旦京) 2014.04.15 3558
3047 ★ [새책]『옥상의 정치』.. 언론이 주목한 화제의 도서 [2] 갈무리 2014.04.14 2056
3046 쟁취하지 말고 부드러운 혁명을 시도하라 15기 신웅 2014.04.10 1755
3045 (추모) 2007년 12월 꿈15기 모습과 그 외 사진 file [1] 15기 김신웅 2014.04.06 1949
3044 여행책쓰기 1기 모집-여행작가아카데미 id: 깔리여신 2014.04.05 2791
3043 피아노 연주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file 뫼르소 2014.04.03 2144
3042 진(嗔),진(瞋),진(謓) 그리고 신(愼) 어둠을품은밝음 2014.04.01 3752
3041 김신웅꿈벗에게 드리는 제안 [2] 햇빛처럼 2014.04.01 2266
3040 [한겨레신문] 유재경 칼럼 '상대를 설득하는 다섯가지 방... file [1] 재키제동 2014.04.01 2476
3039 추모회 전체메일 관련 (아랫글도 봐주세요) [8] 15기 김신웅 2014.03.30 2335
3038 [의견] 연구원과 꿈벗의 자발적인 참여 [2] 15기 김신웅 2014.03.24 1914
3037 여행책쓰기- 무료 공개강좌입니다 id: 깔리여신 2014.03.23 2797
3036 치유와 코칭 백일쓰기 16기 모집 효우 2014.03.19 1872
3035 [한겨레신문] 홍승완 칼럼 '꽃처럼 사람도 피어날 때가 ... file 재키제동 2014.03.18 2305
3034 여행작가아카데미 3월 여행책쓰기 특강 id: 깔리여신 2014.03.18 2227
3033 Love Virus 그림엽서(2014년 3월) - 냉이꽃 file [2] 타오 한정화 2014.03.15 2574
3032 "오픈 컨텐츠 랩"이란 공간을 보며 [4] 미나 2014.03.13 2275
3031 [Yes24 이주의 우수리뷰]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선정 [2] 해언 2014.03.07 2115
3030 [한겨레신문] 박승오 칼럼 '상상력은 비판의 양에 반비례... 재키제동 2014.03.06 1828
3029 Love Virus 그림엽서 (2014년 2월) file 타오 한정화 2014.03.05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