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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 3 -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강종희
2014년 2월 23일
세상 사람을 나누는 다양한 기준 중에, 대한민국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별다른 불편함 없이, 정치적인 올바름을 고민할 필요 없이 할 수 있는 분류가 있다. 모르는 사이라도 대놓고 물어봐도 딱히 매너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며, 상대방의 기호와 성격을 파악하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 이 기준은 대한민국 평균 나이 16세에 이르면 누구나 하게 되는 일생 일대의 선택이자, 후천적 선택의 결과로 나타난다고들 하지만 실은 애초부터 내 안에 타고난 재능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 의미심장한 질문은 이렇다. “저기, 문과세요, 이과세요?”
인문학은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에 사전을 뒤지는 것 외에 별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내게, 의외로 온라인 사전은 명확하고도 의미 있는 정의를 보여주었다.
자연을 다루는 자연과학(自然科學)에 대립되는 영역으로,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데 반하여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한다. 광범위한 학문영역이 인문학에 포함되는데, 미국 국회법에 의해서 규정된 것을 따르면 언어(language)·언어학(linguistics)·문학·역사·법률·철학·고고학·예술사·비평·예술의 이론과 실천, 그리고 인간을 내용으로 하는 학문이 이에 포함된다.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 인문학에 속한다는 학문의 면면을 보고 나서 떠오른 것이 잘 모르는 사람을 판단할 때 의외로 유용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다. 우리는 흔히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주관적인 가치를 신봉하며, 법칙이나 숫자에 젬병인 사람들을 문과로 추정하고, 객관적인 데이터와 법칙을 신봉하며, 논리적이지만 융통성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이과일꺼라 생각한다. 즉 인문학의 카테고리 안에 있는 학문의 범위와 대체로 일치하는 이런 문과 계열 사람들의 특징은 사실 인문학이라는 독특한 학문의 특성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
계량화할 수 없지만 인류라는 거대한 범주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인문학의 거시적 목적이라면, 보다 본질적인 인문학의 목적은 나에게 유일한 존재, 즉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이해하고 본인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탐험에 다름 아니다. 나는 구본형 선생이 남긴 ‘마지막 수업’의 서문에서, 인문학의 본질적이고 보다 의미심장한 목적을 읽었다.
고전은 바로 불완전한 인간에게 작가가 진실한 언어의 창을 던지는 것이다. 깊은 상처를 입힌다. 그것은 다시 태어나게 하는 사랑의 창이다. 불완전한 인간을 찔러 그 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토마스 만은 그것을 ‘에로틱 아이러니’라고 불렀다. 고전은 나를 바꾸는 지독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삶의 기쁨을 쏟아주는 위대한 이야기다. – 구본형,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p12)
고전의 기능을 설명하는 이 문단은 내게 인문학의 본질적 목적에 대한 설명으로도 다가왔다. 문학서이든 법학서이든 역사서든 간에, 고전으로 남은 인문학의 위대한 유산들은 한 인간으로서 나를 일깨우거나, 불편하게 하거나, 감동을 주어서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 나보다 앞서 갔던 누군가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여, 내가 생각지 못했던 깨달음의 길로 간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얼마나 큰가. 비록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차이를 가졌다 해도, 적어도 인간이라는 조건 한 가지를 공유한 우리를 결국은 공감과 이해에 이르게 하는 진리와 만났을 때 그 감동을 무엇과 비교할까.
개인에 있어 인문학의 자기계발적 목적은 깨어난 개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인문학의 사회적 목적으로 확장되어 나아간다. 둘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나를 완성하고자 하는 욕구처럼, 집단으로서 인간은 본인이 속한 사회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당연한 욕구를 가진다. 거시적 의미에서 인문학은 그렇게 한 종으로서 인간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고 탐구하여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진보의 도구로서도 그 기능을 갖고 있다.
다시 문과냐 이과냐라는 구분법으로 돌아와서, 여기서 나는 문과라는 카테고리화가 가져오는 인문학에 대한 본능적인 이해를 말하고 싶다. 가차없고 예외 없는 자연법칙의 탐구, 자연과학과 달리 인간의 사상과 문화라는 가변적이고 주관적인 학문을 접할 때, 우리는 단 하나의 답이 존재하는 자연과학의 행운을 누릴 수 없다. 인간의 삶, 그것이 집단적이든 개인적인 것이든 간에 획일화될 수 없고 똑 같은 반복일 수 없는 탓에,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이 진정 자유롭고 독창적인 예술, liberal art로 지칭되는 것이며 늘 자유로운 영혼 소리를 듣는 존재들은 뼛속까지 문과인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