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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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무엇이며 인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2014.02.24, 이동희
인생은 여행이다. 여행은 목적지가 있지만 여행 자체는 목적지에 있지 않다. 따라서 인생은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정에 있는 것이다. 여행은 정해진 길로만 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정해진 길이란 인생에 없듯이 여행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여행이 바다나 사막을 지난다면 고난과 고통은 한층 더할 것이다. 여행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러한 어려움은 제대로 인식할 때만이 대처가 가능하다. 그냥 흘려보다가는 고난의 파도에 휩쓸려서 좌초되고 만다. 어떻게 하면 이 험난한 인생의 항로를 헤쳐나갈 것인가? 무엇을 믿고 무엇에 의지해서 갈 것인가? 여기 등대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오랜 역사가 검증한 고전이 있고 인문학이 있는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모습을 보는 학문이다. 인간의 모습은 마음이고 이성이고 이에 따른 행동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사고와 이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모아 놓은 것이 인문학인 것이다. 이를 토대로 현세의 사람들이 좀더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수많은 여행기의 묶음이다. 내가 가보지 않은 미답의 여행지를 누군가는 가보았고 그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바다로 보이고, 산도 보이고, 숲도 보이고, 사막도 보이는 그 다양하고 험한 여행지에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고뇌와 좌절, 용기와 희망을 보며 자신을 비추어 경험하는 것이다. 그 경험이 무르익으면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나 풍랑이 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가슴으로 인문학을 읽을 때만이 진정으로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물의 해답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인문학을 통해 우리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짐작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 상황에서 각 인물에 투사하여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을 이해하는 사고의 폭을 넓혀 준다. 인문학은 답을 찾는 학문은 아닌 것이다. 인문학이 주는 교훈은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하고 미쳐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보고 머리에도 들어가봐서 그들이 되어 행동해 보고 그들이 되어 결정을 내려 봄으로써 비로서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의식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기술은 계속 진화되어 이전의 기술을 새로운 기술이 대체하며 발전한다. 하지만, 인간은 5000년전이나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인간은 5000년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 긴 세월 동안 겪은 인류의 경험을 갖지 못한다. 그러니 태어나서 배운 것에 따라 그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인간이 기술을 새로 배우듯 인간은 태어나면 가정 먼저 인간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인간을 느끼고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 위해 인간에 대해 배워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인문학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대체로 잘 갖춰진 사회 시스템에 의해 한 개인이 타인의 도움 없이도 어느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돈으로 삶에 필요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고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충족의 시간이 돈의 대가로 확보한 시간에 한정되지만 말이다. 외롭지만 외로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부재에 대한 부재를 느끼지 못할 때 그것이 부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부재를 느끼게 해줄 필요가 있다. 한 개인의 문제가 전체로 확산되었을 때 우리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이는 더 이상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이런 사회학적인 기초로서 부재를 느끼게 하여 부재를 채울 노력을 하게 만든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바를 찾고 이에 대한 목적을 갖게 하여 더 선한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삶과 더불어 죽음을 이야기하여 영원하지 않은 삶의 일회성을 깨우치고 죽음을 대비하여 그 삶의 여정을 제대로 받아들이게 하여 삶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할 것이다.
수 분에 한번씩 울리는 스마트폰의 알림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친구, 가족, 사랑, 돈, 기회?? 정작 내가 없는데 주는 것이 많아도 받아들일 내가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오감을 자극하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신호들이 난무하고 서서히 그것들에 대한 인식마저도 무뎌지게 된다. 지속적인 자극이 결국은 무감각하게 만드는 꼴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인식도 없이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도 무뎌지면서 인간은 제어에 순순히 따르는 소시민으로 규격화되어 가고 있다. 자유롭고 변화 무쌍한 인간이 정해진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정해진 틀 안에서 행동하는 규격화된 인간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들이 만든 사회와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는 그런 사회는 퇴보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만 주면 권력이 주는 방향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자신도 아는 만큼 보인다. 나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마음, 나의 생각, 나의 행동에 대해 아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인문학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대상화 하고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것을 관조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 하나 자신의 마음이 보이고 느껴질 것이고, 그러면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자신 안의 욕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욕망의 실체를 알아채면 이제 그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두려움인지? 소외감인지? 시기심인지? 허영심인지? 내가 만들어낸 욕망인지? 살다 보니 어디에선가 흘러 들어와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것인지? 말이다. 대부분은 이런 욕망은 밖에서 온 것들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단지 삶을 나아지게 하고 선한 행동을 하고자 할 뿐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대단하지 않은 한 인간을 인간의 변화 무쌍함을 보여주어 대단한 인간으로 나아가게 하는 각성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왜 그런가? 인문학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많은 거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매일 자신의 거울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나? 세상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나? 마음의 거울이 필요하다. 내 마음은 어떤지 내 생각은 어떤지 내 판단은 어떤지 비추어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은 우리 인간의 삶을 비추는 매일의 거울이 되어 줄 것이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겨우 한 페이지를 읽을 뿐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내 몸이 우주의 일부임을 느꼈다. 땅 위를 걸으며 대지와 하나됨을 느꼈다. 방랑이야 말로 삶의 본질이며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도 느꼈다. 편견과 편협과 고집스러움이 여행을 통해 치유되었다.”
여행에는 좋은 안내서가 필요하다. 인문학은 우리가 떠나는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며, 다쳤을 때 비상약이 될 것이고, 힘들 때 휴식을 제공해 줄 것이다. 목적과 의미 부재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인생의 방향을 다시 찾고 그 의미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인문학은 이를 위한 좋은 기회를 줄 것이다. 매일의 권태와 공허함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게 만드는 것 이 것이 인문학이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인문학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