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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4일 06시 28분 등록

37번째 북리뷰

끌림 (이병률, 랜덤하우스)”

 

 

1. 저자소개

이병률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 「그날엔」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이 있다. 현대시학작품상(2006)을 수상했으며, 2013년 현재시힘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시인이다. ‘끌림이라는 오랜 기간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의 저자여서 그를 여행에세이스트 또는 이소라의 음악도시라디오 작가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그의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것은 이다. [끌림]이 출간되고 인기를 얻으면서도 좋은 시를 써서 유명해지고 싶은 시인의 망음 때문에 잘 팔리지 않았으면이라는 생각을 해봤다고 한다(이 책은 누적판매부수 약 50만권을 돌파했고, 얼마전 1/3정도의 내용을 바꾼 개정판도 출간되었다.). 이 책의 성공요인도 시인의 감성이 배어있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통찰의 순간들이 독자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우리에게 대중적인 여행작가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그는 시인이다. 지난해 하반기 경에는 시집 [눈사람 여관]을 출간하기도 했다.

 

2.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 귀

#공공일 열정이라는 말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 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러했듯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것.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 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에 맡겨 흐르는 것이다.

#공공삼 멕시코 이발사

나는 이발사라는 직업을 좋아하지. 청결하잖아. 청결하지 않은 이발사는 본 적이 없어. 어느 날부턴가는 이발소에 가는 일이 촌스러운 일이 돼버려서 더 이상 가지 않지만 난 여행을 가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잘라야 할 일이 있으면 이발소를 찾아가. 앞머리가 눈을 찌른다거나, 며칠 동안 머리를 감을 수 없어서 떡진 머리 속으로 스멀스멀 뭔가가 기어다니는 기분이 들면 역 앞에 내려 이발소가 있는지 두리번거리지. 이발소여야만 해. 달착지근한 미용실의 냄새가 아닌 비누 냄새 나는 왜 그런 이발소 있잖아.

압권은 역시 면도였어. 그는 세 개의 컵을 가져다 나에게 향을 맡게 했는데 비누거품을 만드는 그 통엔 각각 향이 다른 비누가 담겨 있었거든. 그중에서 맘에 드는 걸 고르게 하는 거야. 이 정도면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프로인지를 알 수가 있겠지. 물론 머리 감길 때 역시 손님이 선택한 향비누로 머릴 감겨주더라고. 난 적어도 남을 위한 배려가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해. 한 가지 비누만으로 모든 손님의 머릴 감기고 면도를 해주는 것도 뭐 나쁜 일이긴 할까마는 왠지 존중받는 느낌이 잖아. …… 내 머리카락과 수염이 존중받는거잖아. 그 기분이 나쁠 리 없잖아.

나에게도 그 옛날 내 머리를 깍아주던 한 이발사가 있었다. 60년대 프랑스 미남배우 알랭드롱 부드러움과 이소룡의 강직함을 적당히, 아니 딱 반반 가진 듯한 그 이발사. 그의 머리는 6,70년대 신성일과 같은 충무로 남자배우와 같이 드라이로 단정하게 언제나 각잡혀 있었고, 백옥같이 하얀색 가운을 입고 거울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은 손님을 머리를 정성스레 깍던 그 멋진 이발사. 수려한 외모로 많은 동네처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던 이발사. 하지만, 그가 가장 멋질 때는 역시자신의 일에 몰두할 때 였다. 이 멕시코 이발사 할아버지처럼 그의 이발과정의 압권은 면도였다. 수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의자를 뒤로 저치고 손님을 눕힌 뒤 뜨거운 물에 적신 뒤 물을 짠 뜨끈뜨끈한 수건을 손님의 얼굴에 덥는다. 모공이 열리기를 바란 것일까. 그런 그 그는 하연 면도 거품을 손님의 구렛나루와 턱 그리고 코밑까지 정성스레 바른다. 그리고 꺼내드는 날카로운 도루코 면도기. 왼손으로 의자에 달려 있는 가죽끈을 잡아 당겨 팽팽하게 만든 뒤, 오른 손에 든 면도기를 위 아래를 왔다갔다 앞뒤면을 바꾸기를 여러 번. 이후 그는 마치 예술가라도 된 듯 손님의 수염을 정성스레 면도해준다. 마치 작품을 조각하듯 말이다.

나는 요즘도 그 이발사를 만난다 많으면 한 달에 한번, 또는 두어달에 한 번이지만, 나의 머리는 언제나 그에게 맡긴다. 젊은 시절 그 촘촘하고 단정했던 그 검은 머리는 이제 듬성듬성해지고 얗게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최장수 단골손님이다.

다음날 아침, 나를 깨운 건 이발소에서 내 머릴 감겨준 그 비누 향이었어. 달큼했어. 나쁘지 않았어.

#공공사 그렇게 시작됐다

사랑의 시작은 그래요. 어떤 이상적인 호감의 대상이 한번 내 눈을 망쳐놓은 이후로, 자꾸 내 눈은 그 사람을 찾기 위해  그 사람 주변을 맴돌아요. 한 번 본 게 다인데 내 눈은 몹쓸 것으로 중독된 무엇처럼 그 한 사람으로 내 눈을 축축하게 만들지 않으면 눈이 바싹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거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그래요.
한 사람의 것만으론 가 닿을 수 없는 것

그러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또 모자란 것
그래서 약한 물살에도 떠내려가버리고 마는 것
한 사람의 것만으론 이어붙일 수 없는 것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

#공공오 시간을 달라

당신은 모든 것에 있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하는 시간

약속 장소에 나가는 시간
비디로오 본 영화가 끝나고 엔드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나서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당신은 스톱 버튼을 누르며,
심지어 전화 받을 때도 벨이 다섯 번 이상 울린 후에야

겨우 받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그러니 당신에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어쩌면 사랑하는 일에도 당신은 똑 같은 속도를 고집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세상을 잘 몰랐던 시절 또는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시절, 사랑이 전부인줄 알았던 한 소년은 어느 덧 턱밑 거뭇거뭇하고 양이마는 점점 젋어지고 반짝거리며, 흘러가는 시간의 크기만큼 얼굴 모공의 크기고 그만큼 커져가는 아저씨가 되어갔다. ‘사랑이란 무엇이다라고 내렸던 정의도 가물가물하고, 이제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하나 싶을 정도로 무뎌져 있다. 어찌보면 사랑이란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의 의미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익숙해지고 무뎌지고 잊혀지는 것일까

#008 혼자는 좋아

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데리고 여행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지만 어느 한편 그것들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불편할까를 먼저 생각하곤 했다. 나는 여행하면서 이런 것들을 챙겨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여전히 신기하다.
-
트렁크 가득한 책(게다가 그걸 다 읽고 버리는 사람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
-
평소 즐겨 먹는 원두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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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일기장
-
잠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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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공공구 탱고

[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춤을 추는 두 사람은 잔잔한 호수를 걷는 새들처럼 부드럽고 날렵하다. 나는 순간 탱고의 의식 앞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 조금이라도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절대 출 수 없는 춤. 저런 춤을 추는데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공일공 낙엽들

[뉴욕의 지난 가을은 어땠어요?]

[7, 8, 8 91만 서른 아홉 개의 양말 같은 낙엽들이 모두 자기 짝을 찾을 것처럼 뒹굴고 뒹굴었어요.]

#공일일 라임 아저씨

멕시코 시티는 참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공기가 좋지 않아 조금만 걸어도 목이 칼칼했고,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을 닦으면 고운 입자의 모래들이 손등에 묻는다. 게다가 하루에 5리터가량의 물을 해치워도 마시는 순간일 뿐, 갈증을 달래진 못했다.

#공일이 the land of plenty – INDIA

우리가 어디론가 무작정 가고 싶어한다면 그곳은 모르긴 해도 이래야 할 것이다. 정신의 고향쯤으로 느껴지는 곳. 살면서 배운 몇 가지 습관과 형식이 일제히 무너지는 곳.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인도야

아마도 의심하지 않는 데서 그 모든 순탄함은 가능했으리. 인도는 그런 곳이다. 믿지 말아야 할 것 투성이지만 결국은 믿고, 껴안아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나라. 아무것도 아닌 나라 같지만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어 충분하고도 충분한 나라.

#공일삼 길

햇빛 비치는 길을 걷는 것과 그늘진 길을 걷는 것,
어느 길을 좋아하지
?
내가 한 사랑이 그랬다
.
햇빛 비치는 길과 그늘진 길, , 두 길 가운데

어느 길을 걸을까 고민하고 또 힘들어했다.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길 다 사랑은 사랑이었는데, 두 길 다 내 길이었는데
왜 그걸 두고 다른 한쪽 눈치를 보면서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했을까?

#공일사 멀리

가야지요. 차곡차곡 쌓은 환상을 넘겨보려면…… 가야지요. 때론 그것들이 조용히 허물어지는 것도 봐야죠.

#공일오 함께

살아가는 길을, 내 뒷모습 모두를 나도 한번 따라가보고 싶다.

#공일팔 사랑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그렇게 사랑은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당신에게 많은 걸 쏟아놓을 것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세상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을 당신은 두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동전을 듬뿍 넣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너무 아끼는 책을 보며 넘기다가
,
그만 책장이 찢어져 난감한 상황이 찾아와도 그건 당신의 사랑이다
.
누군가 발로 찬 축구공에 맑은 하늘이 쨍 하고 깨져버린다 해도
,
새로 산 옷에서 상표를 떼어내다가 옷 한 귀퉁이가 찢어져버린다 해도

그럴 리 없겠지만 사랑으로 인해 다 휩쓸려 잃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공일구 가면의 도시

그렇게 가면을 쓴 채 가면을 쓴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은 삶에서 얹혀진 짐들을 벗어놓는 순간이며, 꿈이 현실에 대답하는 순간이다.

한때 베니스는 유럽에선 독점적으로 동양과 무역을 했던 도시로서, 11세기에 있었던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힘과 부를 얻는 최고 전성기를 누리게도 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 당시 지중해 지역은 물론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에서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였으니 베니스는 일개 섬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제국이었던 것이다.

, 유리, 레이스, 가면, 곤돌라, 광장. 베니스를 수식하는 이런 말들이 아무리 베니스 여행을 결심한 당신 가슴에 미리 떠다닌다 해도 정작 베니스의 아름다움은 베니스에 도착하는 그 순간에만 만날 수 있다. 비좁은 골목과 골목을 지나고 좁다른 운하와 운하 사이에 터벅터벅 걸어가, 산마르코 광장에 쏟아지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가면을 꺼내드는 그 순간, 당신은 어깨에 실린 짐들을 벗어버리고 세상의 만져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향해 손을 뻗고 싶을 것이다.

베니스의 건물 벽은 하늘을 닮았다. 창문을 닮았다. 들판을 닮았다. 벽에 눕고 싶다. 저 벽들을 찢어 넣고 가고 싶다. 모조리 배에 태워 서울로 부치고 싶다.

여러 번 밤기차를 타고 달려갔던 베니스는 엄살뿐인 생채기를 핥아주었고 돌아가 잘 살라고 역까지 따라 나와 다독거려주었다. 베니스의 흥망성쇠는 무엇이 가슴을 뜨거워지게 하는가를 알게 했으며, 골목골목에 모가지를 내민 그들의 빨래 냄새는 모든 세상의 이치를 잘 다려줄 것만 같아 정신 들게 한다. 그 신세들이 내 빚의 일부일 테지만 갚을 수 없는 빚 대신 나는 베니스에 관한 그리움을 안고 산다는 것 말고 또 다른 계산을 해줄 건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힘을 얻어 걷고, 또 걷는데 의식적으로 자꾸 털어내려는 마음 속 앙금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누구도 이 삶을ㅇ 당해낼 재간은 없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가진 게 없어 불행하다고 믿거나 그러지 말자.

문밖에 길들이 다 당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주인이었던 많은 것들을 모른 척 하지는 않았던가

#공이이 끌림

파리의 수많은 장소와 거리, 또는 건물들은 정말 수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빛의 세기에 따라 바람의 결에 따라 한 번 와 닿았던 인상이 전부 다가 아닌, 여러 얼굴을 가진 도시가 바로 파리다.

#공이삼 아비의 맘보

눈 마주치는 일조차 미안한 일이 될까봐 어느 먼 곳, 아무도 없는 역에 내려 난닝구바람으로 혼자 맘보를 추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혼자는 추지 말고 아픔과 함께 추어라. 대신 얼마나 힘이 됐는지 아픔은 모르게 하라.

#024 나는 간다

거대한 어항 같은 도시 안에서 물기 없는 호흡을 하고 있을 때,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와 떠들고 있을 때, 문득 나는 에워싸고 있는 많은 것들을 놓고 싶을 때, 깊은 밤 잠에서 깨어 통잔 잔액 확인을 하고 있을 때, 죽집에 들어가 죽 한 그릇 시켜놓고 기다리다 주인이 가져다준 신문 첫 장을 외면하고 싶을 때,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하는 고래가 아플 적에 친구 고래가 아픈 고래를 수면까지 밀어올려서 숨을 쉬게 해준다는 얘길 들었을 때, 웅크린 채로 먼 길 가는 달팽이의 축축한 행로를 지켜보고 있을 때, 아무도 없는 밤바다에 알몸을 담그고 누워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을 때, 어쩌면 이 세상은 남자와 여자 뿐일지도 모른다는 억지스러운 논리와 세상 모든 이야기가 남자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해야 할 때, // 기다리는 것이 희망인 줄 정확히 알면서도 희망이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군중들 속에서도, 한낮인데도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이 찾아왔을 때, 그렇게 한낮이 무거웠을 때, 달큼한 바람이 불고 몸이 뜨거워지고 그래서 눈을 감고 싶을 때, 뭔가 가득 채워놓은 것이 쓰러져 엎어졌을 때, 이사 후, 아무렇게나 기대놓은 그림을 누군가가 말을 해줘서야 바로잡고 있을 때, 정이 들어버려서 마음이 통해버려서 달빛 아래 각자 다른 길로 헤어지고 싶지 않을 때, 뭔가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짐을 꾸리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 그렇게 그렇게 한없이 한없이 걸어나갔다가 다시는 몸을 돌이키고 싶지 않을 때, 문득 뚜렷한 이유도 대상도 없이 무작정 고마울 때, 보름달 주기를 따라 피었다 졌다를 반복하던 마당의 꽃들이 어느 순간 돌아가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할 때, 다시 또 누군가를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을 때.

#공이육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 코 알 수가 없다’ (티베트속담)

내가 지금 걷는 이유는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 것이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삼공 이집트

피라미드에 도착했다. 아무 감흥이없었다. 한없이 건조하다는 것. 모래바람에 가끔 기침을 한다는것 이외에 내가 피라미드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은 멀고도 아득하기만 한 그것이었다. 스핑크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 와 있는 건지 몰랐다.

#공삼일

뭔가를 갖고 싶어한다. 뭔가를 찾아서 헤맨다.
뭔가가 더 있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
하지만 우리는 모를 일이다
.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는 건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하나씩 쓰러뜨려서라도

그걸 갖고 만지겠다는 건지를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것이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라도 연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something more……
이 세상에 있겠지만 이 세상엔 없을 수도 있는 그것
.
그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자유로울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단 말인가.

#공삼삼 옥수수 청년

이름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하는 나라, 페루

안데스 산맥 3 4백 미터에 위치해 있기 Eons에 숨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그 두 가지 사실 때문에 페루에 머무는 동안 내 심장은 그냥 심장이 아니라 항상 두근거리는 심장이다.

모순된 표현이다. 우리의 심장은 항상 뛰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그저 본능적으로 뛰고 있는 심장과 설레이고 좋아서 두근거리는 심장에 근본적인 차이를 두고 있다.

내가 오래 기억해야 할 건 그 온기 뿐만 아니라, 청년의 미소분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교감일 거라 생각한다.

#공삼칠

살아 있는 생명들을 모조리 삼켜버릴 듯한 밤의 푸르름. 별의 느린 동선까지도 잡아챌 수 있는 기적에 가까운 시력, 그리고 절대의 고요, 절대의 침묵, 강박에 의한 외로움그것들이 후배 여행자에게 들려주었던 수다스러운 사막이었다.

#공삼팔 캉허우밍

흘러 흘러 어느새 나는 칠레에 와 있네라고 쓰고 싶지만 그렇게까진 아니네. 집을 나선 지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네. 그냥 걷고 사람을 만나고, 걷고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기분만 들 뿐.

기약 없이 떠나왔으니 조금 막막한 것도, 하루하루의 시간이 피 마르듯 아깝게 느껴지는 것도, 돈이 다 떨어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공사공 같아 보이지만 한 장 한 장이 모두 다른 사진들

[같아 보이지만 한 장 한 장이 모두 다른 사진들이야. 밝은 날 오전, 어두운 날 오전, 여름 햇볕, 가을 햇볕, 주말, 주중, 겨울 외투를 입은 사람, 셔츠에 짧은 바지를 입은 사람, 똑 같은 사람,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사람이 같을 때도 있고 똑 같은 사람이 사라지기도 하지.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고, 햇빛은 매울 다른 각도로 지구를 비추고 있거든.]

#공사일

황폐해지고 있다는 기분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몹쓸 것들이 나를 어떤 식으로든 휘저어놓으려 하고 있구나,

#공사이 거리의 악사

내가 연주를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아마 그는 매번 그 자리에 없겠지만 그대로 나는 항상 그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연주한다. – 요한 세바스찬 바흐

골목골목 휘돌아 나오는 소리는 그 주변을 걷는 사람들 모두를 빨아들이려는 듯했고, 그 소리에 이끌린 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었다.

멕시코는 대잇기를 통해 거리의 악사들이 배출되는 경우가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거리의 악사를 엘 마리아치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경우에는 서서 움직이면서 노래와 연주를 동시에 한다. 걸으면서, 계단을 오르면서, 사랑에 빠진 연인 주변을 돌며 연주와 노래를 한다. 그것은 이들에게 있어 음악은 예술이라기보다 생활 차원의 눅진한 소품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다.

#043

먼 훗날은 그냥 멀리에 있는 줄만 알았어요. 근데 벌써 여기까지 와버렸잖아요.

#공사사 이스탄불에서의 첫 아침

항상 나는 지도를 처음 받을 때처럼, 지도를 펴들고 버릇처럼 묻는다. 이 지도에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는 어디냐. 그건 여행자에게 있어 중요한 시작이며, 절대적 의무이기도 한 일이다. 지금 현재 있는 곳을 마음에 두는 일, 그것은 여행을 왔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공사오 영국인 택시드라이버

상대를 일방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법은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면 아무리 늦었다 해도,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건 분명 사랑인 거다.

#공사육 고양이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떠나는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너무 오래 매달리다 보면 내가 붙잡으려는 것이 누군가가 아니라, 대상이 아니라 과연 내가 붙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게임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 게임은 오기로 연장된다.

처음에는 시시하지 않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시작하고 보면 시시해요, 사랑은.
너무 많은 불안을 주고받았고, 너무 많ㅇ니 충분하려 했고

너무 많은 보상을 요구했고, 그래서 하중을 견디지 못해요.
그래서 시시해요, 사랑은

#048

누구든 떠나는 순간이 도면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서 거꾸로 매달려 있던 자신과, 가능하다면 한동안 품고 살았던 정신의 부산함을 그 자리에 걸어두고 떠나려 한다.

나에겐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일이 되었지만, 동유럽의 한 사진작가의 작업이 고스란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작가는 이사 가고 난 후의 집을 인화지에 옮기는 작업을 몇 년에 걸쳐 하고 있던 작가로 그 작품엔 이사를 떠난 직후의 휑한, 빈방들이 등장한다. 텅 빈 침실의 바닥에 사정없이 뒹구는 먼지들, , 머리카락들이 보이고 미처 뜯어가지 못해 바람에 흔들리는 야릇한 색감의 커튼, 엄마가 아이 몰래 던지고 갔을 법한 솔기가 터져 솜이 빠져나오는 곰 인형, 이런 이미지들을 통해 살아 있는 것이 뒤척이는 소리를, 이사에도 적당한 고통이 따른다는 감상적 사실을, 가구를 지다 들어낸 바닥에 긁힌 상흔들까지도 들여다보게 했던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들이 매혹적일 수 있었던 건 역시 돌아봄때문이었다.

내가 뒤돌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냥 뒤로 묻힐 뿐인 것이 돼버린다. 아예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다. 내가 뒤척이지 않으면, 나를 뒤집어놓지 않으면 삶의 다른 국면은 나에게 찾아와주지 않는다. 어쩌면 중요한 것들 모두는 뒤에 있는지도 모른다.

#공오사 따뜻한 기록

태어난 건, 우연의 힘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므로 기억될 가치가 적지만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았고 그렇게 떠나는 것은 인류에게 더 없이 기억되어야 할 가치가 충분하므로 일일이 그 날짜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너는 말했다.

#공오팔 그때 내가 본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눈이 맵다

어느 곳에 일단 도착하면 차에서 막 내렸을 때의 공기를 맡으면서 조금씩 느낌을 쌓아간다.

여행은, 12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을 찾아내는 일이며 언젠가 그곳을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밟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키우는 일이며 만에 하나,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해도 그때 그 기억만으로 눈이 매워지는 일이다.

#공오구 모로코 페스의 무두장이

사실 무두질 공장에서 풍기는 냄새는 우연히 말을 타고 그 옆을 지나가는 행인이 낙상하기 십상일 만큼 그 상상을 불허한다. 왜 안그렇겠는가. 생살을 도려내어 햇빛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살가죽들이 썩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가죽에 달라붙어 있는 단백질이 썩기 때문에 악취가 난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조금 더 난감해진다. 사람의 죽음 역시도 피해갈 수 없는 성질의 냄새를 앞에 두고 한낱 동물의 나쁜 냄새라며 코를 틀어막지도 못하는 입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속도는 말 이 내야 비로소 그 가치를 찾는다. 속도, 그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다.’

 

#공육공 그래야 하리라

신발은 끈을 느슨하게매야 하리라. 말소리를 낮추어야 하리라.
바람보다 빨라서는 안 되리라. 눈을 감더라도 마음을 감아선 안 되리라
.
전생에 혹은 그 전생에 살았던 땅의 냄새를 맡게 되더라도

그 냄새에 흔들려서는 안 되리라.
순간을 포착하되 거리는 두어야 하리라
.
그래야 모든 것들은 매혹적이리라
.
갖가지 열매들을 대접받고 심장은 사과의 양 볼처럼 두둑해지리라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리라.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있을지도 모르리라
.
내가 버렸던 전부와 내가 만나야 할 전부가

큰 숲으로 우거져 몇 평 땅을 내주고 쉬라 할지도 모르리라.
그 땅을 가저야 하리라. 그리고 조금 욕심을 내어

조금 더 달라고 말해야 하리라. 씨를 뿌려도 좋으리라.
 
내 것이 아닌 씨앗을 뿌려, 대접할 것들이 자라기를 기다려

식탁에 올려도 좋으리라.

흰옷을 입지 않는다면 맨몸이어도 좋으리라.
몸의 얼룩쯤이야 달리면 그만이리라
.
마음이 내키면 나무 위에 올라 나는 연습을 하고

무슨 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소리쳐도 되리라.
혹시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하여 홀로 통곡하게 되더라도

그 울음은 흉도 죄도 되지 않으리라.
그리고 문득 생각난 듯이 물으면 되리라
.
강도 풀리고 마음도 풀리면 나룻배에 나아 당신을 실어

먼 데까지 곤히 잠들며 가자던 약속을 왜 잊었느냐고
태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당신에게 물어야 하리라.
아직도 오지 않는 당신에게, 왜 오지 않느냐고 물어야 하리라.

 

#공육일 페루에서 쓰는 일기

습관처럼 다닌다. 습관처럼 여행을 다니려고 한다. 여행을 다니는 습관만큼 내가 사람을 믿는 건 사람에게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쓸쓸하면 할수록 다시 사람을 떠올리며 사람의 풍경 안으로 걸어갈 힘이 생긴다.

역사가 길지 않은 믿음은 가볍다. 그 관계엔 부딪침만 있고 따분함만 있을 뿐이며 혼자인 채로 열등할 뿐이며 가벼울뿐더러 균형마저 잃는다. 심연은 깊은 못이나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그 한가운데 존재한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끝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끝이고 더 이상 아름다워질 것도 이 땅 위에는 없다.

#공육삼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높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혈액 내에 많은 헤모글로빈이 함유되어 있어 선천적으로 강인하다는 말처럼 그의 눈빛은 야성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티벳) 사람들의 성씨도 아버지나 어머니의 그것을 따르지 않는데 주류를 이루는 성씨는 모두 일곱 개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월요일에 난 아이는 달, 화료일에 난 아이는 명마를 일컫는 형마, 수요일은 바람, 목요일은 날다의 의미인 푸부, 금요일은 별, 토요일은 횃불, 일요일은 해다.

 

 

 

베니스, 티벳, 페루, 베니스, 모로코, 인도 등 각지를 약 십여년간 여행하며 담은 기록과 단상 그리고 소소한 깨달음을 글로 담은 여행기

#공육육

집에 가기 싫어 여관에 간다. 집을 백미터 앞두고 무슨 일인지 나는 발길을 돌려 배기터를 걸어내려와 여관에 든다. 집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집에 없어 쓸쓸한 것도 아닌데 오늘도 난 여관 신세를 지기로 한다. 집이 주는 안락함은 두렵고 생활의 냄새는 더 두렵다.

그는 이런 사람이다. 익숙함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 머물러있음이 더 불안한 사람. 어쩌면 그는 삶이 항상 출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때론 덜컹거려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남모를 곳을 향해 떠나는 배, 그리고 기차에 몸을 실은 것처럼……

#공육칠 케 세라 세라 (Que Sers Sers)

내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두 가지 정도가 있을 듯, 세세하게 일일이 신경쓰고,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사는 사람. 그냥 뭉툭하게, 되는대로 터벅터벅 살아가는 사람.

멋있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멋있다.

#공육팔

좋은 계절이라는 핑계로 당신은 그들과의 여행을 계속했고 한 아궁이에서 지은 여러끼니를 나누어 먹으며 낯선 풍경에 놀라 단체 사진을 수없이 찍으며 각별한 감정들을 나줬죠. 심지어 돌아오기 싫었던 거에요.  // 그래요. 삶은 그런 거예요.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그런 것.

 

#공칠공 포도나무 선물

칠레 시골 마을에 포도농장을 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운전을 하면서 그 시골길을 지나가다가

문득 코끝으로 스치는 포도 향기에 취해 포도농장엘 들르게 됐습니다.
여인은 포도를 좀 살 수 없냐고 물었습니다
.
남자는 정성스럽게 포도를 따서 바구니에 담아 그 여인에게 건넸습니다
.
계산을 하기 위해 여인은 얼마를 주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
그러자 그 청년은 터무니없이 아주 비싼 가격을 불렀습니다
.
여인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여 다시 물었습니다
.
하지만 대답은 같았습니다
.
[
?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 거죠?’ 여인은 다시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
[
정말 맛있는 포도입니다
.
세상 그 어떤 포도보다 맛에 있어서 자신 있기 때문입니다
.
물론 다른 이유도 하나 더 있습니다
.
제가 이렇게 높은 값을 부른 이유는
,
이 포도들이 열린 한 그루 포도나무를 통째로 선물하고 싶어서입니다
.
그러니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와서 이 포토나무에 달린 포도를 따가십시요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이 값을 치르고 포도나무 한 그루를 선물받으시겠습니까
?]
여인은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
해마다 초가을 무렵이 되면 청년은

포도를 따러 오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
그렇게 여섯 번째 가을이 되던 해
,
둘은 포도나무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
그 포도나무의 가지를 일부 잘라 말린 뒤
,
서로의 반지도 조각해 가졌습니다
.
단지 여인의 아름다움에 홀려 돈도 받지 않고

거저 포도를 주었다면
또다시 그 여인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포도나무까지 돈도 안 받고 선물했다면

여인은 굳이 이곳에 포도를 따러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무례하지만 돈을 받음으로써 그녀가 그곳에 와야 하는

이유까지도 선물했던 겁니다.

 

3. 내가 저자라면

이병률의 [끌림]은 오랜 기간 사랑받는 여행에세이중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스테디셀러로 누적 판매부수 약50만부를 돌파하였고, 지난해에는 내용이 1/3 정도를 개정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시간의 문제로 보여지지만 100만부 돌파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끌림]은 여행에세이 분야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책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출간된 이 책으로 인해 여행서(또는 여행서적)는 기존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던 기능 주였던 것에서 감성과 내면에 주목한 책들이 인기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김동영의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장연정의 소울 트립등이 그런 책들이다.

이 책은 저자가 시인인만큼 정서적 울림이 있는 장면들이 있다. 베트남을 찾았을 때 자신에게 호의를 배풀어준 한 청년이 한국에 있는 이름모를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는 라이따이한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를 떠나올 때 왠지 모를 미안함과 먹먹함에 떠나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그에게 돌아가는 장면(사실 그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그 여운이 더 진하다)이라던지, 오래전에 받은 친구의 편지 때문에 1년이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 그곳으로 여행을 간다던지, 사람에게 속으면서도 사람을 믿어야만 여행이 여행다울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에피소드에서 저자의 시적감성이 뭍어나 있고, 그로 인해 잔잔한 울림을 주는 듯 하다.

너무나 유명한 책이라 언젠가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후속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도 옆에 놓여있지만 이런 책들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왠지 현실에 얽매여 있는 나의 그것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책은 뭔가 정보를 주고 깨달음을 주고 더 많이 배워야 하다는 고정관념 또는 강박관념에서 발현되는 거리감이나 거부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삶의 여백을 만나거나, 삶의 여백을 만난 순간들 조차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조급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정적인 사람이고 수동적인 사람 (굳이 분류하자면)이기 때문에 이런 책은 아마도 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면여행이라던가 가까운 곧의 이미지들을 펴내는 근접여행 또는 영화 속에 있는 여행 같은 장면들을 추려내어 그 느낌과 감성, 에피소드들을 이야기 하는 책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은 일상의 끌림정도가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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