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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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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7일 00시 11분 등록

얼마 전 친구에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밤 운전이 불편한 날이 많아졌어. 전에 없던 일이야.” 친구는 이렇게 받았습니다. “밤 운전이 불편해진지 이미 오래되었어. 나는. 나도 아내도 핸드폰을 조금 멀리 두고 봐야 잘 보여. 책도 그렇지. 자네는 밤 운전만 불편한가? 책을 보는 일은 괜찮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 아주 가끔 피로할 때 밤 운전이 불편한 것 빼고는 아직...” 요즘은 마흔 초반부터 노안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면서 친구는 이따금 밤 운전이 불편한 수준의 시력을 유지하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숲에 사는 혜택이 아니겠냐며 서로 웃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세월을 마주하고 보니 시간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조금 빠르고 누군가는 조금 늦을 뿐 싹트고 일어서고 피어난 모든 것은 어느 시점부터인가 조금씩 사위고 옅어지고 흩어집니다. 마침내 흙으로 물로 바람 따위로 흩어지고 돌아가 다시 자연의 깊은 질서를 따라 순환하는 존재가 됩니다.

 

볼 수 있는 힘, 시력도 그럴 것입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던 어머니 뱃속의 시절을 밀치고 나온 갓난아기는 막 바로 눈을 뜨지 못합니다. 며칠 뒤 눈을 뜬다고 해서 그 눈이 막 바로 상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 밖에 다가오는 대상과 펼쳐지는 세상을 또렷이 식별하기까지는 또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참을 그러다가 소위 1.21.5니 하는 시력을 갖게 되어 성장과 청춘의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친구의 말처럼 어느 순간부터 가까운 글씨가 보이지 않고 눈이 침침한 느낌을 갖게 되는 시절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아버지처럼 거의 볼 수 없는 나이와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농경사회와 달리 늦은 나이까지 거의 전적으로 눈에 의존하는 노동을 해야 하는 이 시대의 우리는 인위적으로 시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돋보기에 의존해서 노안을 극복하던 수준은 복합렌즈를 이용해서 안경 하나로 근시와 원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전진했다던가요? 라섹이나 라식이라는 방법도 있구요.

 

가끔 밤 운전이 불편한 것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시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점점 볼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게 설계된 이 생명에게 창조주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꼭 그 즈음에는 왜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범위와 영역을 줄이는 것일까? 시력이 멀쩡한 상태로 본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게 죽음을 설계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가 될까? 왜 꼭 시력을 줄어들게 한 상태에서 돌아가게 한 것일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보지 말라는 뜻이구나. 그 시점부터는 눈이 아닌 다른 것으로 펼쳐지는 세상과 대상을 받아들이라는 뜻이구나.’ 그대는 요즘 시력 측정판의 어디까지 볼 수 있나요? 얼마의 시력을 가지고 계신가요? 1.2? 1.5? 그래서 무엇을 볼 수 있나요? 지금 한낮 들판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아지랑이는 마주하고 있나요? 세상이 만든 어두운 곳, 시궁창과도 같은 곳에서 그 위로 떨어지는 햇살 한 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꽃을 피우려 투쟁하고 있는 돌미나리 같은 생명들의 삶은 보이시나요? 이 시대의 눈으로는 차마 대면이 안 되는 그 무수한 영역의 찬란함이거나 쓸쓸함이 들어오는 눈을 가지셨나요?

야간운전의 곤란함을 경험하게 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너는 어디까지 볼 수 있었느냐? 이제 점점 더 눈이 침침해질 텐데 그 눈으로는 무엇을 보고 싶으냐?’ 그리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두 개의 눈이 아닌 하나의 눈, 바로 가슴으로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순간에는 눈이 닫혀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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