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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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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일 14시 54분 등록

요새 회사에서 참 외롭다. 혼자여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심적으로 그렇다. 아무도 내 의견에 동조해주지 않으니 말이다.

발단은 회사의 전략과제를 하면서였다. 급한 과제이고, 중요한 과제라고 하더니 과연 달랐다. 회사는 매일 간식을 사주면서 사람들이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있기를 원했다. 사실 간식도 필요없다. 높은 사람의 한마디면 누가 거기에 토를 달겠는가. 간식은 그냥 허울좋은 명분이였다. 위쪽에서 남으라고 하면 남아야 한다. 그게 한국직장 문화 아닌가? 그렇게 해야 승진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 씁씁하다.

우리팀도 어찌어찌 해서 야근시간이 늘어났다. 한달, 두달 야근 시간은 점점 상승하더니 몇주전부터는 아침에 퇴근을 하고 있다. 아침해를 보면서 집에 가는 날은 이소라 노래를 듣는다. 이와 이렇게 된거 차라리 더 우울한게 낫지 싶었다. 집에 가면서 투덜투덜. 도대체 왜이렇게 사나 생각이 생각을 덮는다.

잠을 조금자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불필요한 야근이라는 것이다.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화가 난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전혀 아침까지 야근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였다. 더는 이런 식으로 참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부장에게 이야기 해봤다. 이런 생활패턴으로 10년을 넘게 생활해온 부장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부장은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그 철학으로 부장을 2년 일찍 달았다. 그의 특진한 노하우는 성실성과 책임감이였다. 불필요한 성실함이라고 애써 깍아내리려고 해도 옆에서 부장의 하루 일과를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솔선수범해서 야근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안타까워서 더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고생하는 사람 앞에서 이야기해봤자 미안하기만 할 뿐이였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이야기를 해봤다. 사원 대리급으로, 나랑 비슷비슷한 연차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런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프로세스를 바꿔보자고. 하지만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는다. 도리어 나를 조금 불편하게 바라본다. 야근이 싫어서 다른 이에게 짐을 넘기려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는 기분이다. 그런 의도가 아닌데,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런 식으로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기술사 공부하면서 읽었던 수많은 책을 보면서 확신이 들었다. 내가 옳다. 당신들은 틀렸다라고. 지금 프로세스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할 구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8명중에 연차순으로는 밑에서 두번째인 주제에, 여러번 회의를 주최했다. 가끔은 커피를 사면서, 가끔은 감정에 호소하여 물어보았다. 난 여러가지 프로세스와 사례들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같은 식으로 일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더 좋은 개선안을 설명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다른 이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니.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내 해결책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일까? 아님 그냥 내가 싫은 것일까?

수십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어제 비로서 깨달았다. 문제는 지금 상태가 만족스러운가요?’라는 질문의 어떤 식으로 답할 수 있느냐였다. 난 참을수 없을만큼 불만족스러웠지만 다른 이는 참을 수 있었던 것이다. 팀원들이 대답했던 나도 싫다. 하지만 어쩌겠어~’라는 답은 참을만하다는 뜻이였다. 몇개월 전에 이 부서에 합류한 나와는 달리 몇년간 이런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무서운 습관이였다.

그리고 어제 비로서 난 마음을 비웠다. 어제 사람들을 불러놓고 마지막으로 이야기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고. 난 팀 사람들 의견에 따르겠다고. 이제 더이상 문제 제기도 하지 않을 것이고, 불평이나 불만도 말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생각을 바꿔야 겠구나.

매일매일 이런식으로 화를 삭히며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해보니 그렇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면, 비겁하지만 내가 변해야 한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아직도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이 들지만, 수긍해야 한다. 이제 더이상 불만은 없어야 한다.

한달 후에 있을 마지막 시험, 변경영 과제, 몇주간 못본 아내(우리가 과연 신혼인가?), 모든게 뒤죽박죽이지만 버텨봐야 겠다. 길어야 한달이다. 한달 후면 모든게 끝난다. 시험도, 변경영도, 팀을 떠나는 것도, 한달 후에 모두 마무리가 지어질 것이다. 한달. 어쨌든 잘 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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