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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일 20시 34분 등록

너는 왜 책을 쓰려고 하니?” 녀석이 물었다.

글쎄…. 이제는 왜 인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기를 쓰고 글을 쓰고 책을 내려고 하는 네 자신이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면 어떻게 해? 뭔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 되받아쳤다.

꼭 이유가 있어야 되나? 처음에는 책 한 권 잘 만들어 내면, 평생 먹고 살 걱정 없겠거니 하는 그런 생각이 있었지. 그 누구냐…. 그래 맞아, ‘패트리어트 게임을 쓴 작가, 톰 클랜시는 서른 일곱살에 첫 책 붉은 10을 썼다잖아. 그리고 그 책은 양장본(hard cover)과 보급판(paper back) 포함해서 500만부 이상 팔렸다더군. 상상을 해봤지. ‘그렇게 내가 쓴 책이 대박 나면 복잡한 인생이 조금 더 심플해지고 가난한 인생이 조금 더 부유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내 상상을 결국 헛된 몽상에 가까웠다는 생각이란걸 알게됐지.  전자책이다 유튜브다 SNS, 사람들의 인생과 그 일상들은 점점 더 빨라지고 즉흥적으로 변하고 있더군. 인터넷 보급율 1, 50년간의 단기 성장으로 인해 무엇보다도 빠르고 조급한 한국사람들은 단번에 가로지르는 지름길이나 고속도로를 원하지 구불구불 또는 빙 돌아가는 옛길이나 국도를 원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 그러니 속도와는 거리가 먼 책읽기가 사랑받겠어. 사랑받을만하니 이런 저런 21세기형 매체에 밀려, 결국 사람들은 책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팔리는 책이라봐야 TV나 영화의 원작 또는 도민준 같은 근사한 배우가 들고 있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양상이니…… 운이 엄청 좋거나 글발(또는 글맛)이 기똥차게 좋은 상위 0.5%의 작가가 되지 않고는 책으로 돈을 많이 벌 생각은 버려야겠다 싶어. 그런 현실을 인정하니까 같은 질문이 부메랑처럼 자꾸 되돌아오더군. ‘그런데 넌 도대체 왜 책을 쓰려고 하니?’ 아직 정확히 답할 수 없지만 머리 속엔 대략 2,3가지의 대답이 떠오르더라고. ‘글을 쓰는게 재미있어서’, ‘존재감-여기서 말하는 존재감 이란게 도대체 어떤 존재감을 말하는 건지 말하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없는 내 인생에서 책은 나란 사람의 존재를 알려주는 일종의 증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책을 쓰면 내 인생이 조금은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냥, 써보고 싶어서……’ 이 정도지 뭐.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지만 그리 명확하지 않아서 이유라고 하기도 좀 그래. “ 장황하게 얘기하는 내 말을 듣고 녀석이 알듯말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럼 뭘 쓸껀데? “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 내 삶에 대한 이야기, 삶 속에서 스리슬쩍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에 대한 정리, 사람들이 듣고 난 뒤 격한 반응까지는 아니더라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거나 화난 마음을 조금은 다독여줄 수 있는 이야기들? 뭐 그런 이야기들…….” 네가 말했다. 말하고 있는 나 자신 조차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건가,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싶다는건지 애매모호했다.

그래? 뭐 감은 잘 안잡히지만, 네가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되도록 잘 썼으면 좋겠고, 그 책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이든 사물이던 각자만의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일텐데, 네가 그걸 증명해보이고 싶다면 책쓰기도 그리 나쁘지 않은 방법이란 생각도 드네. 그런데 역시나 네가 얘기했던 것처럼, 난 그 책을 돈주고 사서 볼 것 같진 않다. 그러니까 책 쓰게 되면 선물로 형님한테 몇 권 보내라. 주변에 뿌려 줄께. ㅋㅋㅋ

뭐 그러시든가. 그냥 쓸 수 있었으면 좋겠고, 누군가 출간해준다고 하면 참 좋겠다 나도…….”

우리는 그렇게 몇십분을 더 통화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밖에서 통화를 했더니 몸이 차다. 으슬으슬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오니 아이와 아내는 잠을 자고 있었다. 후우…. 한 숨을 내쉬어 본다. 아이가 잠들었다는 사실에 몸의 긴장이 풀린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잠잘 때가 가장 이쁘다고…… 뭘 해야 하나.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그러지 말란다. 몸은 잠을 원하는데 마음은 그러지 말란다.

책상에 앉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 아마추어적이다……’ 예전부터 나는 무언가를 도전할 때 도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게 될거라 생각해? , 그럴 것 같은데요. 그럼 뭐하니? 수준도 떨어지도 남들 눈에 보여주기에도 조금 민망한 수준일텐데. 그냥 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거죠. 나도 이정도는 할 수 있다. 저 아이들도 이정도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도전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하고 성장하는 거잖아요. 그래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좀…… 이렇듯 나는 도전에 의의를 두었다. 그런데 생각해보고 자세히 돌이켜 보면, 이게 참 허울좋은 핑계다. ‘결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도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어찌보면 이는 결과에 자신이 없어서, 이 악물고 최선을 다해서 끝내주는 결과물 하나 만들어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래왔던 것은 아닌가 말이다. 그랬던가? 나는 그렇게 나 자신과 적절히 타협하고 내 마음 편한 방향으로 합리와 시켜왔던가? 가볍게 시작한 생각이 사뭇 진지해졌다.

조금은 프로답게 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쓰고싶어서….. 라는 안이한 생각, 순수한 생각으로는 그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하는 그런 글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왕 쓰는 글이라면, 이왕 낼 책이라면, 세상에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찾을 수 있는 책이어야 할 것 같다. , 그리 많은 이들이 찾진 않아도 내 책을 접했던 사람들이라면 란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고 더욱 더 알아보고 싶어, 내가 쓰는 글을 더 읽어보고 싶어했으면 좋겠다. 내 스승의 책이 그리했던 것처럼 말이다.

단순한 전화 한 통화였는데,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결론에 다다랐다. 밤이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도 조금은 더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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