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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일 22시 22분 등록

구스피릿 38번째 북리뷰

보통의 존재(이석원, )”

 

저자소개

나이탐험가 이석원

71년생

잘나가는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이제는 산문집 보통의 존재와 소설 실내인간’,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엄연한 작가

하지만, 대중적인 명성과는 달리 꽤나 어두운 인생의 터널을 지나온 남자.

경계성 인격장애와 우울증으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지만 6년만에 이혼한 남자. 형제 넷 중 셋이 이혼을 했고, 셋이 자살시도를 했던 흑역사(흑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남자.

키스보다 매력적인 여성과의 잠자리보다 손잡기를 더 숭고하고 섹시하게 느끼는 남자

친한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지내기 어려운 남자.

서글서글하게 사람을 대하는 게 기질적으로 어려운 남자.

궤양성 대장염을 앓고 있어 그 흔한 고기 한 번 제대로 못먹는 남자.

우성의 어머니 외모가 아닌 열성의 아버지 외모를 닮아 뭉툭한 코를 가지고 있는 남자.

순간을 믿어요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불후의 명곡을 가지고 있는 남자.

고집있는 남자. 또는 고약한 남자

여전히 생의 의미를 찾아 해매는 남자.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여전히 내겐 극장에서 손을 잡는 것이 프로포즈요 애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13)

나는 조금 더 나아갔다. 내가 생각하는 최대의 애정표현은 잠자리도 손잡는 것도 아니었다. 부드럽고 진한 입맞춤. 아마도 영화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몸을 주어도 입술은 줄 수 없다는 계약관계에 있는 영화 속 주인공, 영화 프리티우먼의 줄리아 로버츠는 나에게 이처럼 고고한 관념을 심어주었다.

그녀와 나의 손이 포개어진 채 살짝 그녀의 허벅지 위에 놓였으므로 친말감이 더해졌다 난느 오늘 그녀의 손과 허벅지를 한꺼번에 정복한 것이다.(14)

누구든 아무하고나 잘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무하고나 손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손잡는 것이 좋다.(15)

어머니, 저 이 결혼 못 하겠습니다.” (22)

예비 장모님께 못하는 말이 없는 이 남자, 고약하다.

나는 오늘도 느리게 달린다 : 도로에서 가장 느리게 달리는 차는 항상 나다. 그래서 내 뒤에 오는 차들은 거의 어김없이 클랙슨을 누르며 답답해하다가 쌩, 하고 추월을 하곤 한다.          너네는 좋겠다. 그렇게 급한 일, 중요한 일, 가치 있는 일이 있어서. 그렇게 미친 듯이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오늘도 나는 가장 느리게 달린다. (25)

줏대 있는 남자. 

독자는 완성되기 전 채 여물지 않은 글의 모자람을 애써 엿보려 해서는 안 되고 작자는 중간에 섣불리 공개하는 실수를 범하지도 말아야 한다. 과정은 언제나 비밀을 붙여져야 하며 사생활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28)

그런데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그 과정 자체는 별로 아름답지 못하다. 사람이 자기 몸을 씻을 때 정말로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사타구니 깊숙한 곳까지 손을 뻗어 벅벅 소리가 날 정도로 힘차게 닦아줘야 할 때도 있고, 순간순간 결코 아름답지 않은 자세를 취해야 비로소 구석 깊은 곳까지 깨끗한 상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과정이란 그 결과에 비하면 이토록 수고롭고 민망한 장면들이 많이도 연출되는 절차인 것이다.(29)

어째서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이렇듯 구구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 하는 걸까.(29)

그게 인생이니까?

사생활의 주요 거점은 아무래도 집일 수밖에 없다.(31)

사람은 이 사적이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내 집에 책이 몇 권이나 있는지, 우리집 가구들이 얼마나 볼품없고 남루한지, 옷 방에 옷은 몇 벌이나 걸려 있으며 명품은 얼마나 있는지 , 팬티는 몇 장을 가지고 돌아가며 입고 있는지, 욕실은 얼마나 어질러져 있는 지 따위를 결코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될 권리와 자유를 가진다.(32)

그런 의미에서 결혼이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모든 사적 영역이 공개, 공유되기 때문이다. (33)

⇒ 지극히 사적인 인간이다. 이 사람. 나도 집에 대해서 부여하는 의미가 작지는 않다. 사생활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도 작지는 않다. 하지만 이 정도 까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타자와의 조화를 꽤나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사람이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맞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다. 그저 같고 다름의 문제가. 나와 그는 그저 다를 뿐이다.  사람은 그렇게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모든 비밀이 없어졌을 때, 상대의 신비로움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33)

공개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35)

일탈이란, 아무도 모르는 머나먼 타지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나의 집,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곳에서 언제든 가능한 것이다.(35)

내 나이 서른여덟.           나는 아직도 생의 의미를 명확하게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여전히 고민한다. 다만 분명한 건 누구나 배우가 되고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배우나 감독이 될 자질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 남은 생을 사는 동안 내가 그저 관객의 안온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한들 꿈이 없다 뭐라 할 수 있을까.(38)

나도 아직 내 생의 의미를 명확하게 발견하지 못했다. 남은 생을 통해 그 의미를 발견하는 통로는 책과 글이 될 것이다. 물론 영화도 좀 더 많이 보고 생각하면 더 좋고.

연애란 이 사람한테 받을 걸 저 사람한테 주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이어서……(39)

사랑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아.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그렇지. 그래도 난 네가 그 사람하고 뭔가를 시작했으면 좋겠어.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바보 같은 일은 없으니까.”(41)

일상적으로 즐기는 것들에 대해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그것이 왜 즐거움을 주는지 따져보는 일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42)

산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걷는 것이다. 달리는 것을 산책이라 하지 않으며 자전거나 자동차로 움직이는 것 또한 다른 의미와 명칭이 부여된다.(43)

내가 움직일 때, 세상의 풍경도 발맞춰 이동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시야에 주어지는 풍경들은 뒤로 흐르는 것이다. 풍경이 움직이면 마음은 안정된다. 왜인지는 모른다. 다만 사람은 정지상태에서 더 많은 불안을 느낀다는 것. 그래서 불안해진 사람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된다.(43)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블랙홀이 행성들을 쑤욱쑤욱 빨아들이 듯, 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생각들을 쑤욱쑤욱 빨아들인다. 그게 불안이면 그 불안 더욱 더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여서라도, 다른 무언가를 해서라도 그걸 잊어야 한다.

산책에 길이 필요한 것은, 길이란 풍경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좋은 길은 좋은 산책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45)

길을 걸으며 흐르는 풍경을 목도하는 것이 바로 산책이다.(46)

저녁 거리의 불빛과 사람들이 뿜어내는 즐거운 기운은 가라앉아 있던 기분을, 특히나 고립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46)

말 그대로 잠시나마,

니 어줍지않은 감정놀음에 내가 휘둘릴 수 없잖아. 내가 쪽팔리게….. (403)

이렇듯 사람마다 다른 산책의 모습은 그들 각각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48)

오늘도 산책을 나간다. 오늘 나의 산책은 어떤 평경들이 장식하고, 나는 그것을 보며 어떤 느낌과 생각들을 갖게 될까. 이제 거리로 나간다. 그리고 나 또한 풍경의 일부가 된다.(48)

나의 매형 김연기는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었지만 지적이고 멋있는 기품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학교에서는 수재로 통했을 만큼 샤프한 머리를 가졌던 데다 사람이 말을 할 때 표정을 보면 근본적으로 뿜어내는 기운이 시니컬하고 진지해 그것이 매력인 사람이었다. 그의 웃음은 늘 어떤 차가움을 내포하고 있었고 성격 자체가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기질이 있어 대하기는 조심스러웠지만 그게 바로 그 사람이었다.(51)

나에 대한 묘사? 가족에 대한 묘사? 친구에 대한 묘사?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상처는 봉합되지 않은채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52)

희망이 생기리라는 희망. 소통이 가능하리라는 믿음. 가족이라는 제도가 지속되리라는 기대…(53)

어렸을 때부터 믿어왔던 가치들이 이렇듯 차례차례 허물어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53)

사실 여행이라는 건 생각보다 많은 예민함과 미묘한 충돌이 있다.(61)

여행보다 긴 이 여운이 언제까지 갈까.(62)

재작년 아버지의 칠순 때 아버지는 잔치를 거부하셨다. 자식 넷 중에 셋이나 이혼을 했으니 당신은 죄인이시라면서(69)

사람이 일평생 유년의 기억에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은 불행일까 행복일가. 그리움에 젖어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으로만 보면 불행일 것이고,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또한 행복일 것이다.(70)

움풍움풍 해파리들이 힘차게 몸을 꼬았다 풀었다 하면서 헤엄을 칩니다.(75)

28인치 평면 티비만 한 작은 수조 안에 깨알 같이 작은 해파리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 “우리 인생이 저 위에서 보면 결국 이런 것일 거야. 이렇게 작고, 단지 여러 개체 중의 하나일 뿐인 아무것도 아닌 삶”(76)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에겐 이렇게 긴 역사도, 어떤 시공간의 차원에서는 그저 찰나에 불과한 순간밖에는 되지 않는다면서요.(76)

무한대로 먹어도 소화에 문제가 없던 위장은 이제 밥 한 공기를 채 온전히 소화하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죽음은 한순간에 이뤄지는 듯하지만 내 안의 많은 것들은 이미 사망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78)

늙는다는 것을 슬픈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 많은 욕구들이 사그라들어 젊어서는 가져보지 못한 안정감을 갖게 되는데 그 욕구라는 것이 왜 사그라드는가를 생각해보면 또 서글프다.(79)

물론 느리거나 빠르거나 사람은 아니 생명은 언젠가는 늙는다. 그러나 늙음을 감당하는 방식은 다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사랑의 종말의 종말에 대처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80)

씨앗이 바람을 타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어디라도 날아가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벽 틈이나 낭떠러지 위에서까지 얼마든지 꽃을 피우듯, 사랑은 그렇게 어디서든 피어납니다.(82)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든 생각이지만, 처음 책을 읽을 때, 그러니까 약 3년 전 즈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랑에 대한 감흥의 차원이 달라졌다.  사랑을 100이라는 절대 수치로 놓고 봤을 때 20대의 나에게 사랑이란 120의 감정이었다 삼십초반의 나에게 사랑이란 80의 수치였다. 3년전의 나에게 사랑은 60으로 떨어졌고, 지금은 그 수치가 50미만이다. 사랑에 감흥이 없다는 사실은 곧 열정이 없다는 사실이고, 이는 곧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해왔다.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어간다.

가끔 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내가 이런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지, 그 이유를 물을 때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450)

수조 안의 작고 아름다운 해파리들을 보면서 남자는 자신들의 초라한 처리를 떠올렸지만 정작 그 작은 생명체들은 그보다는 훨씬 행복해 보였습니다. (84)

두 사람의 만남이 언제 어떤 결말을 맺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함께 있는 동안 두려움이 그들의 소중한 순간들을 내내 압도하게 될 때, 그것은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종말이나 상처가 닥쳐올 때보다도 훨씬 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리라는 사실입니다. (84)

사람은 간사하다. 집에 있을 수 없을 땐 집에 그립니다. 더더욱이 아이가 없다는 사실은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집에 들어왔을 때의 고요함, 따뜻함, 포근함. 집이 반갑다…… TV를 켜고 드라마를 본다. 자세를 흐트러뜨린다.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그러다가 음악을 듣는다. 좋다. 행복하다. 자유롭다………… 얼마나 흘렀을까. 외로워지기 시작한 그…… 시계를 보니 딱 2시간 반지났다. 집이란 공간이 그에게 고요함과 평온함을 주는 공간에서 외로움을 주는 공간으로 바뀌기까지 딱 150분이 걸렸을 뿐이다. 그가 혼자였다면, 그는 아마도 다시 집을 박차고 나가 어디론가 가버렸겠지. 아마도 그랬겠지.(502)

흔히 이런 주제의 대화에서는 누가 더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났는가, 어떤 큰일을 겪었는가가 마치 가오의 척도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은근히 경쟁이 벌어지곤 하지 않는가. (9)

어렸을 때부터 내게 집이란 쉬거나 안식을 구하는 곳이 아닌 불안 속에 안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곳이었다.(91)

나에게 집이란 그저 답답한 곳이었다. 그리고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마뿐만 아니라 누구든 창작자라면 창조는 천재성이 아닌 고통에서 더 많은 것이 비롯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92)

나의 소원은 사막처럼  고요한 곳에서 살아보는 것이다. 조용하고,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으며 자고 일어나면 놀랄 일이 생기지도 않는 그런 평화로운 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이다. 고통은 나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대신 이렇듯 사막처럼 고요한 안식처를 갈망하게 하였다.(93)

현실은 고통스럽고 꿈속의 사막은 달콤하다. 그렇기에 나는 사막을 꿈꾸는 노래를 짓고 부른다. 고통이 아니었던들 내게 평화로운 삶 같은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생의 주요한 것들이 이처럼 고통 속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이 내겐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 (93)

아버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저의 최초의 열등감의 원천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지위와는 상관없이 늘 자신에 대해 당당하셨고 삶에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따위라고는 없는 분이셨어요. 저와는 정반대셨죠. 나는 나약했고, 항상 자신을 부끄러이 여기면서 살아왔으니까.(98)

대부분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는 영웅이었지만, 조금 더 커서는 이처럼 열등감의 원천일 것이다. 역시나 열등 우등의 상대적인 것이고, 우등한 아버지 보다는 열등한 아버지들이 구조적으로 더 많을 수 밖에 없으니……

그런 해답을 알 수 없는 오랜 물음을 던진 끝에 어느 날, 내가 그토록 달아나고 싶고 회의하던 것들로부터 나와 내 삶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인 순간, 나의 모든 아쉬움들은 그제야 비로소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었습니다. (…) 바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내게 건넨 힘과 그들과 함께했던 세월덕택이었습니다. 비록 조금 뒤늦긴 했지만, 이제 내겐 이 화려한 유산을 마음껏 쓰는 일만 남았습니다. (99)

얼마 전 책의 주제를 생각하고 제목을 생각하고 KEY SENTENCE를 생각하면서 들었던 한 문장 내 삶은 버릴게 없다’. 딱 이 마음이다.

워낙에 이별이 횡행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이제는 이별이라는게 정말로 이별이 아닌 세상이 되었습니다.(103)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서 주관성을 배제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사람이었고 (…) 그러니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내게 필요한 것과 아닌 것, 내가 관심있는 것과 아닌 것으로 나눠질 수밖에 없었고, (107)

(세잔)는 사과를, 인간의 시각으로서가 아닌 사과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본질로 보고 싶어했으며 그것을 그리기 위해 무려 40년이란 시간을 바쳤다. 그런데도 실패했다.(108)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입장과 시각으로 타인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존재의 본질이란 어쩌면 타인에 의해 인식되는 것외에 다른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잔은 실패한 것 아닐까? (110)

본질을 아는 것보다, 본질을 알기 위해 있는 그대로는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것이 바로 그 대상에 대한 존중이라고.’(111)

나는 나의 입장과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었을 때 사뭇 다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117)

역시 조언이란 남의 상황을 빌어 자신에게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118)

식은 스테이크에 강제로 끼워 파는 와인으로 저녁을 한 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러 좋아하는 성산동 리치몬드에 갔으나 케이크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쌓아놓고 파는 모습에 질려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120)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 음식이란 존재는 그에게 그저 먹고 마는 존재가 아닌,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선별하고 관리하고 신경써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고 우리 나라 식탁의 문화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한다.(757)

도도하고 의심 많던 아이가 있었다. 128

아들을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로 길러내려 억압하고 채근하던 엄마는 이제 행여 자식 일에 지장을 줄까봐 노심초사하는 늙은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136)

한때는 이른바 처세라는 걸 잘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적도 있었지. 순수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 편을 만드는 일은 정말 중요하더라구.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해, 라는 말을 들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명의 첫사랑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 좋아해본 것도 첫사랑이요, 좋아했으되 실제로 사귀어본 것도 첫사랑이요, 초등학교 때 사귄 것은 너무 어렸을 때니까 중학교 때부터 사귄 것이 첫사랑이요, 심지어는 성인이 되어 사귄 첫 상대를 진정한  첫사랑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142)

첫사랑의 다양한 정의. 이런 식으로 정의 한다면 나에게도 약 3,4명의 첫사랑이 있다.

아무런 의심이나 회의 없이, 정말로 순수하고 영원하게 느껴지는 그 말들을 듣고 믿어 의심치 않던 순간들이 그립다.(143)

인생이라는 바다 위를 표류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구원을 꿈꾼다기 마련인데 나에겐 그것이 여행과 책두 가지였다. (147)

나에겐 영화와 책.

또 서점을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막상 책은 거의 읽지 못하는 희안한 습성을 갖고 있는 바람에오죽하면 서른네 살이나 먹어 다짐했던 목표가 여행과 책읽기였을 정도였다. 그 목표들은 5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반을 이루게 된다.(147)

나도 2012년부터 본격적인 책 읽기에 돌입했으니 딱 서른 넷에 책과 친해지려 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셜록 홈즈가 존재하는 데에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치 않았다. 그는 어떠한 규정도 거부했다.”(149)

책읽기. 그것은 내 인생의 혁명적인 변화였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를.(151)

알지. 알아. 책을 읽는 사람은 꿈을 꾸게 된다. 밤에 꾸는 꿈이 아닌 낮에 꾸는 꿈을 그리고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무섭다. 왜냐하면 그 꿈을 결국 이루어낼 테니까.

5년 전 구원의 방편으로 꿈꾸었던 책읽기의 세계는 달콤했다. 이제 나의 안식처인 서점에 가는 것은 더욱 구체적으로 행복한 행위가 되었고, 읽는 것이건 쓰는 것이건 활자는 내게 가장 즐거운 존재가 되었다.(154)

사실 진짜 여행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여행은 무엇인지 나도 잘은 모른다.(157)

어릴 적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강원도엘 가려면 대관령이든 미시령이든 입맛 따라 택한 꾸불꾸불 산 고갯길을 핸들을 이리저리 수백 번씩 꺾어가며 힘겹게 올라 넘어가야 했었다. (159)

정말 그랬었다. 강원도가 고향인 나는 안다. 속초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초등학교부터 속초와 강릉, 속칭 동해안에서 살게 된다. 어린 시절 명절을 위해 속초에 있는 할머니댁에 갈때도 학교에서 소풍을 이나 견학을 위해 대관령 옛길, 이승복 기념관등을 방문하면서 접한 대관령은 그야말로 구불구불 난코스였다. 귀는 일순간 꽉막히고 웅웅~’거리는 듯한 느낌에 귀와 잎을 열고 공기를 뿜어내기를 십수번 또는 수십번 반복했다. 어려서는 멀미를 했고 커서는 멀미를 참았다. 지금은 대관령에 그런 길이 없다. 그저 뻥뚤린 고속도로만 있을 뿐. 그 꼬불꼬불한 길이 그리워질 줄이야.

여행이라는 것이 목적지가 전부인 것은 아닐 텐데. 여행지로 가는 과정 또한 여행의 일부일 텐데.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과정의 간편함이란 언제나 결과물의 만족감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해왔다.(160)

태양이 검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갔다.(163)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낯설고 먼 곳들이 내게 쓸쓸함을 전해오고 있었다.(164)

마음이란 뭐든 떠나게 된 후라야 관대해지는 것인가보다. 그동안 살던 곳에서도 층간 소음이며 사용법이 복잡한 보일러 때문에 꽤나 불편을 느끼며 살아왔는데 이사가 결정되고 나자 갑자기 집이 너무나 아늑하고 편하게만 느껴지는 거다. 이곳이 이렇게 조용했었나? 이토록 편안했었나?(172)

얘기했지만, 사람, 참 간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내가 사는 공간에 희망을 갖거나 애착을 느끼고, 무엇보다 불 꺼진 집에 들어왔을 때 따뜻함과 위로를 받는 일. 그러나 조용하다 못해 정적의 냉기까지 감도는 이 집에서, 어쩌면 그러한 것들은 영영 바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집은 망했다. 그래서 살림 규모를 줄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 (…) 어쨌든 새로운 둥지에서, 나는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176)

스물여덟 살에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될 때까지, 엄마는 젊은 날의 내 모든 불행과 고통의 워넌이었다. (…) 어렸을 적에 울 어머니는 나에 대한 구속이 너무나 심하셔서 그 때문에 난 소아정신과 신세를 져야 할 정도였다. (…) 그런 엄마 때문에 결국 스무 스무 살이 넘어서는 결국 정신병원 ㅍ 폐쇄병동에 입원하기까지 했지만 엄마는 지금까지도 내가 무엇 때문에 의사 앞에서 그렇게 괴로워했는지 알지 못한다. (179)

딸 셋에 마지막으로 낳은 막내아들. 얼마나 사랑스러웠겠는가. 사랑스럽다 못해 과보호를 해줘야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한 사람은 사랑하기에 했던 행위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으로 전해진다면 참으로 안타깝다. 대화도 주고받음이고 서로에 대한 이해인 것처럼, 사랑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처방은 맞아들었다. 결혼을 해서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되자 고통이 거짓말철머 눈 녹듯 사라진 것이다. 문제가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엄마와 나 사이에 결론이 난 게 없는데 단지 떨어져 산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갈등은 사라지고 다만 애틋한 마음만이 남더라. 기가 막혔지만 산다는 게 그렇게 단순했다. (179)

그런 일상의 불가항력 속에서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점점 휘발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슬프다.(182)

그래 : 활짝 핀 곳 앞에 놓인 남은 운명이 시드는 것밖엔 없다 한들               그렇다고 피어나길 주저하겠는가.(188)

저자는 소설보다는 시가 더 어울리는 듯

누구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 깨달음을 스물다섯에 얻는다면 그건 바보 같은 일일 것이고, 서른이라 한들 속단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흔 언저리쯤 되면 반드시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 그때가 되면 마지막 몸부림도 쳐보고 온몸으로 거부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 잔인한 일 말이다. (189)

나는 희망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무섭다. 희망 이후의 세계가 두렵기 때문이다. (192)

미련이 많은 사람은 인생이 고달프다고 한다. 사람은 때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어서 나에게 허락된 것이 이만큼이구나인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제명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192)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의 주인공은 어느 날 자신이 보통의 존재임을 깨닫곤 몸서리친다. 그것은 섬뜩하리만치 무서운 자각이었으나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 자신이 보통의 재능과 운명을 타고난 그야말로 보통의 존재라는 것도 알았고,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세월이 갈수록 나를 가려주던 백열등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음도 직시하게 된 지금.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193)

나는 오늘도 매일 노트에 그 날의 할 일을 일일이 적어놓는다. 그리고  개미처럼 그것들을 해나간다. 내겐 어느 것 하나 작은 일이 없기 때문에. (197)

자기가 채워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말할 수가 없었어요…”(200)

할머니도 처음부터 할머니는 아니었을 것이다.(207)

죽음이 사람을 슬픔으로 열 오르게 하는 건 다시 볼 수 없는 영원한 헤어짐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헤어지는 것만큼 슬프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런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건 당신  나에겐 슬픔도 슬픔이지만 문제는 슬픔의 지속기간이었다. 장례를 마친 후 집에 있자니 너무 쓸쓸하고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누나들에게 이렇게 영원히 슬프면 우울해서 어떻게 사냐고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물어보니 다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난 너무 슬퍼서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 한일주일인가 지나니 마치 거짓말처럼 감정이 스르륵 페이드아웃 되는 걸 경험했을 때, 그때의 그 황당한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슬픔이 무슨 물체라도 되어서 누가 그걸 갖다 줬다가 도로 가지고 간 것만 같은 그런 얼떨떨한 기분이었다.(208)

이 일은 저자 나이 24살 때 겪은 일이다. 참으로 감수성이 풍부했던 저자.

어느 날, 당신이 친구라 여길만한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대인관계에 관한 한 빨간불이 켜졌다고 보면 됩니다. 없다고 느끼니까 자꾸 총합을 내보고 확인하려 드는 거거든요.(211)

분명한 건 저라는 사람은 타인과 함께 있을 때도 도무지 그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몰입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212)

하지만 저는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사람입니다.(213)

나도 이게 맞다고 본다. 물론 인위적으로, 작위적으로 의도적으로 친해질 수도 있지만 말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주사 맞는 건 여전히 무섭듯이 사람 사귀는 법 또한 저절로는 터득이 안 됩니다.(216)

우정의 거미줄을 촘촘히 쳐놓은 채 단 한사람이라도 나와 생각과 취향이 비슷하며, 나에게 동류라는 동질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사람, 같은 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유머의 코드가 맞는 사람, 나를 이해해주고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을 묵묵히 기다리다 언젠가 그물에 누군가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보여주고 마음을 열 생각입니다. 역시 친구를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란,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보단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일테니까요.(219)

이것이 바로 나의 양면성이다. 개를 애틋이 여기는 마음은 강하면서도 개까지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날엔 또 그건 도저히 참지 못하는, 참으로 바보 같지만 어쩔 수 없는 내 모습.(226)

누나(이소라)는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며 공연을 지탱해나갔고, 그렇게 상해버린 목으로 결국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토해버렸다.(240)

98년에 결혼을 해서 2004년에 이혼했으니까 나의 결혼생활은 6년 동안 지속된 셈이다.(248)

결혼이라는 게 정말 뭘까. 사랑과는 결코 동의어일 수 없는 두 글자 결혼. 결혼에 대한 나의 결론은 간단하다. 생물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행위라는 것. (249)

어떻게 한 사람하고만 평생 잘 수 있을까
어떻게 한 사람하고만 평생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한 사람만을 평생 좋아할 수 있을까.(249)

말된다.

우리는 사랑했다. 그래서 결혼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서로를 갉아먹는 햄스터가  되었다. (250)

돌이켜보면 씁쓸한 것은 사람이 결혼하자고, 우리 같이 살자고 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제발 헤어졌으면 하는 마음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고 싶다고 눈이 멀어서 맹렬히 달려갔다가 나중에는 다시 혼자가 되고 싶어 더 무서운 속도로 돌아오는 것. 그게 사람의 이기심이란 것일까.(251)

희망 : 저는 하루하루가 희망으로 넘쳐흐른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의아한 생각이 들어요.
희망이란 절망 속에서 생기는 것인데

저렇게 희망만이 가득한 사람의 희망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희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희망은 저에게도 몹시 필요하죠
.
다만, 세상의 이름난 희망의 전도사들이 조금 더 세련된 방법으로

희망을 수혈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대책 없이 세상만사가 너무나 행복하고 하루하루가 그저 기쁨이고

복되기만 하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거든요.
저도 희망이 필요해서, 받고 싶어서 그래요.(254~255)

로망이 로망으로 그치지 않는 것. 혹여 실망하게 되더라도, 그건 후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로망은 또 멈춤 없이 생성되었다.(267)

나를 알고 좋아해주는 사람들 말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욕망이 드는 까닭은.(268)

로망이란 어쩌면 단지 꿈꾸는 단계에서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바라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내것이 되었을 때, 상상하던 만큼의 감흥을 얻었던 적은 많지 않으니까. 그러니 중요한 건 이루어낸 로망보다는 아직 이루지 못한 로망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꿈을 품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268)

고통이란 매우 강력한 사랑의 촉매제로 작용한다. 자신을 평화롭게 하는 이에게는 결코 간절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고통으로 자극받게 되면 엄청난 정열을 품게 되는 거도 그 때문이다. (271)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결코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될 수 없는 것이다.(272)

우리는 삶과 죽음의 운명이 너무도 태연하게 한데 뒤섞여 있는 그 아수라 지옥 같은 곳에서 아기고양이 한 마리를 구해 집으로 데려왔어.(275)

이렇듯 사람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280)

같은 언어를 쓰지만
표현은 서로 다른
우리는 이토록 개별적인 존재들.(285)

왜 혼자 극장엘 가면 다른 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287)

내가 유일하게 남의 눈치 보지 않는 행위. 혼자 영화보러 가는 행위.

가치란 대립하는 것이라 했다. 하나밖엔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288)

보편적으로 생각해볼 때 상위에 랭크되는 것들은 건강, 가족, , 돈과 같은 것들일 것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런데 결코 어떤 순위에도 함부로 놓을 수 없는 초월적인 가치가 있다. 바로 사랑이다. (289)

인생의 차트에서 사람은 경우에 따라 돈과 가족을 놓고도 저울질을 할 수 있지만, 진짜 ㅅㅏ랑에 빠지게 되면 결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게 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290)

결속
진정으로 굳은 결속은
대화가 끊기지 않는 사이가 아니라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이를 말한다.(296)

행복 중의 으뜸이 바로 평범한 행복이다.
왜냐하면 삶이, 세상이 우리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
일상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만 한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 당신의 인생은 안타깝다. (296)

어린 시절엔 (살사 방학숙제를 다 해놓지 않았더라도)
1
월의 이즈음이면 저절로 얻어지던 그런 여유를

이제는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맛볼 수 있다는 건
어른으로서의 슬픔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유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처럼 누려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슬픔일 것이다.(299)

요즘 컨디션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장염독감몸살또 몸살그래서 어제는 평주말과 달리 조금 일찍 귀가했다. 저녁식사를 하기 전이고 해가 지기 전이니 꽤나 이른 귀가였다. 공교롭게 아이와 아이엄마와 시간이 맞아 우리 가족을 다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있으니까 참 좋아.” 아들이 말했다. 왼손은 엄마의 손을 꼬옥 잡고, 오른 손은 내 손을 꼭잡은 아들녀석은 조그마한 손. 자신의 양손을 잡아주는 부모가 있다는 것, 자신의 양손으로 동시에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아이에게는 당연한듯 하지만, 크나큰 기쁨이다. 큰 돈도 필요 없고 대단한 시간도 필요없다. 그저 양손으로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동네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해 하는게 아이다. 내가 어린 시절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부모가 내가 가져야 할 세상의 근심을 대신 가져갔기 때문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도 자신의 아이를 위해 인생살이의 근심을 대신 가져가겠지? 해맑은 아이의 행복을 위해……

나에겐 오래 전부터 서점이라는 공간이 최고의 안식처이자 벗이었다.(304)

서점은 사람이 많아도 참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306)

행복 중의 으뜸은 평범한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더더욱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도 서점을 찾고 있다. (308)

두려움
세상의 수많은 두려움 중에서 아주 일상적으로 언제나 마주치는 것.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310)

사람
한 명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읽거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일과도 같다.

누구든

얼굴에는 살아온 세월이 담기고
모습과 말투, 행동거지로 지금을 알 수 있으니

누군가를 마주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을 대하는 것과 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315)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317)

단지 마음속에 예전에 없던 어떤 희미한 무언가. 그저 작은 거 하나 들어 있는 기분은 들어. 이게 바로 생의 의미라는 거겠지. 이 작은 걸 찾기 위해서 다들 그렇게 애쓰고 있는걸까?(321)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매뉴얼을 갖기 마련이지만 나 같은 경우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매뉴얼을 일찍부터 구축해왔다. (322)

하지만, 매뉴얼이 있다면 삶이 단순해지긴 한다. 복잡하지 않은 심플한 삶.

, 매뉴얼이라는 것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거나, 새로 산 벽결이 티비에 사용법을 익히는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거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다는 인식을 진작부터 가져왔던 것이다.(322)

미안하지만, 난 매뉴얼을 안좋아한다. 정해진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소 변칙적인 것을 좋아한다. 인생이 항상 똑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간 순간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향은 내가 가진 역마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나는 매뉴얼 신봉자이다. 매뉴얼이 만능은 아니지만 그것은 정말로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하며 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326)

나는 짝사랑은 안해. 쥐약이거든.’ 이것도 일종의 매뉴얼이다. (326)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사내연애는 안해. 자칫 잘못하다가는 인생 꼬이거든’. 법칙이자 매뉴얼. 그렇게 보면 매뉴얼을 좋아하지 않다고 생각한 나에게도 꽤나 많은 매뉴얼이 있는 건가?

설이란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평소에 각자 보던 티비를 함께 보며 취향을 조율하는 날이다. 선택권은 아주 어린 아이가 있지 않는 한 무리 없이 대세에 따라 결정되며, 그 한켠에서 매형은 늘 그렇듯 책을 보시거나 내 방에서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고,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단잠을 주무시고, 조카들은 거실을 중심으로 모여 티비를 보며 일부는 문제집을 풀고, 엄마와 누나들은 식탁에 앉아 집안일을 얘기한다.  나는 언제나 구석에서 그 모두를 지켜보고 있다.(328)

생각지 못한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만든다. 8남매 장남의 아들인 나, 어린 시절 설, 추석과 같은 명절은 우리 어머니에게는 일대 거사였다. 2명의 고모 가족을 제외하더라고 할아버지 할머니에 6형제의 가족들. 6형제 모두 공교롭게도 2남 또는 남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 아이들 12명에 어른 14, 합이 자그마치 26명이다. 그들을 먹이고,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까지 먹일 음식 준비에 어머니 팔 빠지고 인대 늘어나는 생각은 못하고, 명절은 나에게는 언제나 즐거운 기억이었다. 마당에서 조촐하게 사촌들과 축구도 하고, 때로는 단체 줄넘기도 하던 어린 시절의 명절날. 나에게는 온통 즐거움과 기쁨, 설레임으로 가득했던 명절이 나의 부모에게는 결코 기분좋은 날이 아니었음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가끔은 그립지만 이제는 더 이상 추억하지 않은 내 어린 시절의 명절날……

인생에 결론이 없는 사람 : 늘 갈팡질팡하기에 인생의 결혼 갚은 것은 잘 내리지 못한다. 내게 꿈은 있어야 되는 것이기도 하고 어느 날엔 부질없는 것이기도 해서 여전히 종잡을 수가 없고 사랑도 돈도 일도 그러하다.    아침엔 정열을 불태우나 잠들기 전엔 공허감에 몸을 떨고 새해벽두엔 뭔가 열심히 계획을 세우다 이내 그 해 그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원래대로의 생활에 익숙해져버리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332)

무엇보다 내 자신이 너무나 책을 안 읽고 살았기 때문에 내 아이만큼은 티비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333)

동감이다.

나는 티비가 특별히 사람의 창의력을 말살시키는 바보상자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티비밖엔 볼 수 없는 사람보다는 티비와 책을 같이 즐길 수 있는 인생이 더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동감하는 바이다.

이번 주엔 모처럼 누나네 가게엘  들었다 조카 바우를 봤거든. 역시나 평소처럼 꽥꽥대고 뭔가를  집어던지고 정신이 없었어. …… 그래 내 못 참고 누나 들으라고 한마디 했지. “ 우리 바우, 역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구나.” 그랬더니 누나가 그게 아니래. 내가 와서 저러는 거래. 평소엔 안 그런다며. “ 아니, 내가 왔는데 왜 그래?” 난 이해가 안 가서 물었어. “흥분해서 저러는 거야. 좋아서.” “……” (336)

조카가 아닌 내 아이에게서, 난 가끔 저런 모습을 본다. 가끔은 그 사실에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도 한다.

내가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나를 절망시켰던 그 모든 모순되고, 불합리하며, 잔인했던 수많은 일들이 사실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걸, 모든 게 다 인생이라는 연극이자 쇼에 불과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해주면 좋겠다.(338)

Ex : 프랑소와 트뤼포의 전기, 고종석의 러프한 컬렉션, 한글을 다룬 [타이포란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 그밖에 몇몇 고전들. (343)

지금은 몰락한 윤 회장 아저씨…… 다른 하나는, 돈이 너무 많아서(부족한 게 없으니까) 사는 낙이 없다던 아저씨의 푸념이었다. (…) 그렇기 때문에 사는 낙이 없을 정도로 재산이 많았던 아저씨가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지금은 허름한 동네에서 나이 칠순에 빠찡고가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347)

사람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하나둘 포기해야 하는 것이 그만큼 늘어남을 뜻하고 결국엔 그렇게 커져가는 빈자리를 감당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바로 어른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52)

사그라들지 않는 욕망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감당하고 받아들였다고 안도한 순간 다시 욕망이 맹렬하게 또아리를 틀 때, 나는 파고다 공원을 배회하는 불쌍한 노인이 된 듯하다. 그럴 때의 나의 글쓰기란 어쩌면 방황하는 노인의 그것과 같을지 모른다.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면 굳이 그것을 글로써 추상화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352)

TV를 틀어도, 인터넷을 할 때도 난 언제나 같은 경로로 같은 곳만 찾는 사람이니까. (353)

그래. 우리가 손을 잡는 게 아니었어. 오랜 친구를 바랬건만서로가 분명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렇게 편안하게 지내던 그때가 좋았는데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우리가 손을 잡는 게 아니었어. (360)

감정이 글을 압도하게 되면 정작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담아낼 수가 없게 된다.(368)

결국 슬프다는 나의 감정 상태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으려면 내가 왜 슬픈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흡인력 있게 서술해야 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 혹은 최소한 흥미라도 갖게 하게 위해 그것이 글쓴이 개인의 사적 경험을 단지 서술, 나열한 것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368)

앞서 일기가 일기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보편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글쓴이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 사람들은 글쓴이가 무엇을 했는지, 보다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훨씬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기 때문이다.(368)

세상은 자기만 알고 있어도 되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굳이 공개적으로 쓸 때엔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생각을 드러내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너그러움과 호기심을 갖고 대해준다.(372)

단편적인 대화, 종종 끊기는 대화보다는 핑퐁할 수 있는 대화가 더 매력있듯, 글쓰기도 그래야 한다. 글쓰기는 곧 독자와 핑퐁하기이다.

어렸을 땐 참 그렇게 뭐든지 컸고 진했다. (378)

왜 어렸을 때 혼자서 화단 근처에서 놀다 꿀벌이 앵앵거리며 왔다갔다하는 걸 잽싸게 신발로 잡아 빙빙 돌려서 기절시킨 다음, 마지막을 바닥에 패대기를 쳐 확인사살까지 시킨 후 바라보던 그 해바라기. “나 잘했지?” 하고 바라볼 수 있던 그 해바라기가 지금은 없어. (379)

그러니까 이렇게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을 만나고 일에 몰두도 해보고 여행도 꿈꾸구 하지만 아무리 해도 해바라기는 다시 생길 수 없는 거지.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으니까. (379)

그리 편한걸 원하는 성향도 아닌데, 맹목적을 순수함을 추구하지도 않는데, 어린 시절이 그렇게 부유하거나 행복하거나 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어린 시절이 이토록 아련할까……. 미련 많은 사람…….

Au Revoir : 억만겹의 사랑을 담아, 너에게. (380)

 

 

내가 저자라면

보통의 존재는 꽤 오랜 시간 나의 눈에 들어왔던 책이다. 서점에 가면 스테디셀러에세이코너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던 책이었다. 노란색의 표지에 정중앙에 세로로 새겨져 있던 제목 보통의 존재’. 아마도 구본형 선생님의 이름을 오랜 시간 듣고나서 접한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처럼, 이 책 보통의 존재도 몇 년간 눈으로만 훑다가 일게 된 책일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금 집이 들었다.

이 책은 스테디 셀러이다. 정확한 수치는 알수 없지만 대략 30만부 정도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대략 20쇄이상이니…….) . 지금도 이병률의 끌림과 함께 에세이 분야에서 스테디셀러로 손꼽히고 있다. (컴팩트한 사이즈와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듯한 깔끔한 흰색 표지를 가진 이병률의 끌림’(2005)은 멋드러진 사진과 시적인 글들로 인해 보통의 존재보다 더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누적판매부수 약 50만부 정도를 기록하고 있고, ‘끌림2’로 불릴 수 있는 후속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도 약 30만부 가량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이 꾸준한 인기를 끈느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에서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밴드 리더라는 것에 주목하는 것 같다. 골수팬이 꽤나 많으니 초판 판매량에서는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겠지만(이 책은 출간된지 넉달만에 5만부를 돌파했다) 2009년 출간된 이후로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 특정 밴드의 리더가 쓴 책이라는 사실 외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내가 받은 느낌은 나랑 참 비슷하다였다. 물론 사주팔자 결과를 접한 사람들 중 대부분이 딱 나다. 어떻게 나를 그렇게 잘 꿰뚫어보느냐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의 일반적인 성향을 마치 자신만의 특성인냥 받아들이는 이른 바 바넘효과(Barnum effect, 또는 이를 실험으로 증명한 심리학자의 이름을 따 포럼효과라고도 함) 아닌가 싶긴 하나, 어쨌든 소심한 그의 성격,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듯한 주인공, 30대 중반에 뒤늦게 빠져든 책읽기 등 몇몇 사항들이 나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일종의 동질감을 느낀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건 아니지 않는가. 이런 지극히 사적인 느낌은 사족에 불과하다.

이 책은 일단  읽기 편하게 쓰여져 있다. 책을 읽으며  문법적으로나 또는 이론적으로 깊게 들어갈 필요가 없다. 그저 일기를 쓰듯이 편하게 쓰여져 있다. 사랑, 가족, 어머니, 아버지, 첫사랑, 친구 등등 지극히 보편적인 주제를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겯들어 풀어냄으로써 사람들이 편하게 읽고 공감하기 쉽게 쓰여져 있다. 시험이다 진급이나 돈이다 성공이다. 이런 저런 사회적 가치를 좇기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그의 편안하고 쉽게 읽히는 문체는 분명 독자들을 무장해제 시켰을지도 모른다. 

남의 삶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고 그럼에도 깊은 사색을 지녔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보편적으로 이끌어내는 작가. 사적인 이야기에 보편성을 더하려면, 꽤나 길고 깊은 사색이 필요한 듯하다. (….. ) 처럼 가끔은 어찌 저렇게 까지 생각을 끌어낼 수가 있을까싶을 정도로 그의 사색은 분명 얉지 않다. 단순히 글을 많이 쓰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쉽게 나올 수 있는 생각의 정리들은 분명 아니다.

산문(또는 수필)과 소설, 그 모호한 위치에서 쓰여진 글. 이 책은 지극히 사적이고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글이라는 점에서는 미셀러니(경수필)로 불려질 수도 있지만 책의 제목과 같이 산문집이다. 요즘은 산문과 수필을 굳이 분리하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든 생각은 작가가 작가 자신을 캐릭터화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 작가를 산문이라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야기라는 특성상 작가는 주인공이고, ‘보통의 존재는 이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결국 그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독자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소설과 같은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솔직하다. 변경연의 한 선배님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책 출간 후 서점에 놓여진 나의 책을 보고, 내가 대중 앞에 나체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이 처럼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책은 대중적이지만 동시에 사적인 매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 보통의 존재는 그 정도가 심하다. 자기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조각으로 분리하고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격이다. 그는 자신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실과 자신의 이혼 사실을 전면에 내놓을 뿐 아니라, 가족들의 자살시도 경력, 아버지의 직업, 어머니의 성격 등등 과하다싶을 정도로 자신과 자신의 주변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다. 사생활의 솔직함은 사람들이 옅보게 만드는 은밀한 매력이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있어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부여한 책이었다. ‘이 정도 글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는걸이라는 주제넘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다시 읽고 난 뒤, 그리고 누군가 이 책이 성공한 이유에 깊은 사색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난 뒤 드는 느낌은 만만치 않구나나만의 특색을 입힌 책이어야 하겠다였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혔다. 전체적으로 잿빛인 듯 하지만 가끔은 붉은 빛을 띄고 있었고 가끔은 검은 빛을 띄기도 했다. 때론 하얀색 같지만 이내 다시 잿빛이다. 이렇듯 자신의 책을 자기 자신과 동일화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라는 평범한 사람이 나의 책을 나 자신과 동일시 한다는 것, 또는 라는 캐릭터가 이석원이라는 캐릭터처럼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어설프게 따라했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는 애매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써야 한다.

겨울왕국이라는 에니메이션이 천만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뮤지컬과 애니가 혼합된 이 에니메이션의 흥행공식을 음악과 SNS, 인터넷을 통한 따라하기와 입소문 등에서 찾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폭 넓은 대중이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딱 그만큼만즐길만 하다는 것이다. ,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교훈적이고, 적당히 균형잡혀있다는 것’. 지금으로서 나에게 최선은 딱 이 정도인 듯 하다. ‘내가 쓸 수 있는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교훈적이고, 적당히 균형잡혀 있는 책’, 뭔가 남을 가르치기에는 한참 모자라고, 하지만 글을 쓰고 하는 열정은 평균이상은 되는 것 같고,  그거에 들이는 노력도 평균 이상은 되는 나(라고 생각되니),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 아닐까.

P.S. 그나저나, 난 이석원처럼 이렇게 깊고 넓게, 나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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