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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 4 - 소통이란 무엇인가
강종희
2014년 3월 3일
소통을 무어라 정의할 것인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온 16년 차의 직장 생활 끝에, 이해관계를 앞에 놓고 만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진정한 소통,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한때 커뮤니케이션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일을 하는 거라며,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풍선처럼 빵빵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생각한 실용적 커뮤니케이션은 단연코 양적인 개념이었다. 내가 쓴 기사가 전국민이 보는 일간지에 실리는 것, 그 후엔 내가 쓴 보도자료가 얼마나 많은 전국지에 실리느냐 같은, 지면의 크기와 독자의 수로 판가름되는 내 글의 영향력. 그것이 내게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슈를 만들고, 여론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 어디 꺼리가 없나 파고드는 기자를 멋지게 따돌리기 위해, 온갖 전략과 자원을 동원하는. 한때 그것은 나의 열정이었으나 지금의 내게는 연탄불 꺼진 구들장만큼이나 한심할 뿐이다. 이제 나는 이런 양적이고 삭막하게 실용적인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없다.
소통을 사전적 의미대로 영어 단어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치환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나의 뜻이 누군가에게 가 닿는 것, 그의 생각이 나에게 와 꽃 피울 수 있는, 서로의 마음 속에 공간 하나를 공유하는 것. 진정한 의미에서 소통한다는 것은 상대방으로 인해 내가, 나로 인해 상대방이 자신의 한정된 공간을 열어 상대방의 영역까지 스스로를 확장시키는 행위다. 소통은 반드시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공적(公的)일 수 있지만, 자신만의 내밀한 세계를 내어 보이고 상대방의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더 없이 사적(私的)인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에커만이 자신의 우상이자 상사이기도 했던 괴테와의 대화를 9년간에 걸쳐 기록하고 책으로 세상에 내어 놓았을 때, 우리는 현실에서는 결코 들여다 볼 수 없었을 에커만과 괴테 만의 내밀한 소통과 공감의 시간을 공유한 셈이 되었다.
소통이라는 말을, 책을 읽기 전 나는 좀 더 곱씹었어야 했다. 21세기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성인인 우리는 맘 속에 진창이 너무 많아 속을 열어 보일 수가 없거나, 도무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는 편견과 불신의 벽에 가로막혀 번번히 좌절 당한 소통의 욕구에 늘 시달리고 있다. 소통, 통하기, 나와 세상과의 소통, 나와 그와의 소통, 나와 내 아이들과의 소통, 모든 관계에 있어 진정한 소통이 얼마나 귀한 일이고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는 요즈음, 나는 소통에 있어 나도 모르게 냉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괴테와의 대화를 읽는 내내, 에커만의 한결 같은 애정과 찬탄이 미심쩍었다.
결국 1,200페이지에 달하는 장서를 덮고 나서야, 이것이 에커만의 일방적인 관찰의 기록이 아니라 40여 년의 나이 차와 신분, 학식의 차이를 뛰어넘은 두 인간의 소통의 기록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9년 간 천 번의 만남, 시와 희곡에서 물리학에서 지질학으로 종잡을 수 없이 옮겨 다니는 이 대문호와의 방대한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젊은 제자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끊임없이 배우고 질문하는 것이었다. 나의 일생을 바칠 정도로 흠모하는 한 사람과의 시간을 위해 매번 최선을 다했던 에커만, 그리고 그 소통의 기록들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담아낸 그의 집념에서 소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말하고 쓸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은 소통을 누구나 어떤 순간에나 가능한 단순한 행위라 여긴다. 그러나 말하고 듣는 것, 던지고 받는 것, 그 단순한 행위만으로는 우리가 겪는 이 절절한 소통의 욕구와 소통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병폐를 설명할 수 없다. 나를 알아봐 주는 너, 너를 알아봐주는 나의 관계는 불안을 잠재우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세워주는, 그리하여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발판이다. 우리는 소통의 욕구와 기대를 채우기 위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함께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또 만드는 것이다.
내 맘 속 깊은 곳 한 가운데, 나는 누구를 들여놓고 있는가, 그를 들여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 또 어떤 이와 그 내밀한 공간을 공유할 것인가. 내게는 천 번을 만나고 싶을 만큼 통하고픈 사람이 있는가. 나는 당연한 듯 일상을 공유하는 가족과 얼마나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 나는 세상과 무엇을 나누고 싶어 글을 쓰려 하는가. 자꾸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떠오른다. 질문이 배움의 시작이라 하더니. 이런, 연구원이 되기 위한 마지막 레이스를 가슴 뜨끔한 질문들로 마무리하게 되는구나.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걸어보자. 답은, 길 끝이 아니라 길 위에서 얻는 것이라 했으니.
나를 알아봐 주는 너, 너를 알아봐주는 나의 관계는 불안을 잠재우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세워주는, 그리하여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발판이다. 우리는 소통의 욕구와 기대를 채우기 위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함께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또 만드는 것이다.
소통의 핵심에 돌직구를 날리는 문장입니다. 멋져요!
"이것이 에커만의 일방적인 관찰의 기록이 아니라 40여 년의 나이 차와 신분, 학식의 차이를 뛰어넘은 두 인간의 소통의 기록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제대로 읽으신 분의 통찰이 빛나는 대목입니다. 피날레를 멋지게 장삭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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