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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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지난주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올림픽을 추억해보면 이규혁 선수와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웠던 마지막 올림픽 도전, 여자 쇼트트랙팀의 단체전 금메달의 기쁨,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에서의 값진 은메달 등이 가장 마음을 울린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지우고 싶은 기억도 있다. 우리나라 남자 쇼트트랙 팀의 한 선수가 경기 중 또 다른 우리나라 선수와 함께 넘어지면서 온라인상에서 일부 국내 팬들의 질타를 받았던 사건, 그리고 두 선수 중 한 명이 다른 이를 변호하기 위해 SNS에 올린 글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더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일이 그것이다.
당사자들의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온라인상으로 남을 비난하는데 열중한 팬들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발언으로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킨 선수에게도 분명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더욱 편리하게 도와주는 SNS를 활용, 국민들과 소통을 하고자 했으나 결국 교감하지 못하고 말았으니 불통이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불통은 비단 멀리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도 소통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소통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로구나..를 실감하게 되었다. 세분화된 업무의 한 축을 담당하다 보니 한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여러 부서의 사람들과 협업할 일이 많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서로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만큼 회의에 들어가 한 마디 하는 것에도, 메일로 보내는 한 줄의 문장에도 거듭 신중하게 된다. 또 소통에 오류를 최소화 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하며 합의점을 찾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 오해기 없도록 하는 노하우도 생겼다.
그러나 이렇게 올바른 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일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각기 다르게 이해한다는 사실이, 동일한 메일을 읽었음에도 오해가 생긴다는 사실에 매번 놀랄 때가 많다.
하다 못해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인 가족간에서도 불통은 나타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우선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뜻을 곡해 없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생활화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어떤 관계에서도 불통이 나타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소통이라는 것은, 서로의 뜻을 교감하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통을 어렵게만 볼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열린 마음가짐만 있다면 가능한 것이 또 소통이기도 하다. 머나먼 외국으로 여행을 가서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 혹은 미소와 따뜻한 눈빛 하나로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갔을 때 눈부시게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보다 내 마음을 더욱 울렸던 것은 길을 물어보다 만난 시골 마을의 한 아저씨였다. 영어를 알아 듣지 못했던 아저씨는 이웃 주민들까지 불러와 나를 도와주려고 노력했고, 우리는 그림을 그려가며, 사진을 보여주며 소통했다. 헤어지면서 그가 나의 손에 한껏 쥐어준 체리는 따뜻한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또한 우리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도 쉽게 소통할 수가 있다. 공연을 펼치는 배우, 감독 작가와 소통하는가 하면 그 공연을
함께 보는 관객들과도 소통한다. 좋은 공연을 보면서 배우들과 함께 울고 웃고, 공연이 끝난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도 모르는 힘
에 이끌려 하염없이 기립박수를 칠 때 우리는 주변 관객들과 소통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무 말이 없어도 그 순간 모두가 통하는 느낌. 아마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과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던 2002년 월드컵의 순간들
도 우리가 소통을 한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소통은 어렵기도 하지만 또 쉽게도 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이라 할 수 하겠다. 또한 소통을 통해 단순히 서로 교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너지를 내고 이 시대에 미치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범성도 있다 할 수 있다.
에커만이 괴테와의 진정한 소통을 통해 ‘괴테와의 대화’라는 현존 최고의 양서를 남길 수 있었던 것처럼, 피사로와 폴 세잔이 서로의
영감을 주고 받으며 소통하는 것을 통해 후대에 길이 남을 역작들을 남기게 된 것처럼 말이다. 지난 여름 휴가길 오르쉐 미술관에서
만난 세잔. 그는 괴팍하고 괴짜로 유명했으나 피사로와는 소통하며 지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에 피사로의 가르침을 접목하여
현재와 같은 색채의 마술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단순히 서로의 뜻을 교감했을 뿐이라 하더라도 그 소통을 통한 산출물의 영향력은 무궁무진할 수 있다. 잘된 소통은 소통 당사자들 개개인의 발전뿐만 아니라 한 세대의 문화를 이루고 그 문화는 다시 후대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소통을 위해, 소통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 해야 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