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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6일 09시 56분 등록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만약에 페인트에 화약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큰 화학 기업의 엔지니어가 회의중에 이런 질문을 했다.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엔지니어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페인트를 칠하고 6년쯤 지나면 페인트가 부스러지고 갈라지는데 그걸 없애기 참 어렵잖아. 만약 화약을 페인트에 섞는다면, 제거할 때 거기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되지 않나.” 몇몇 사람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화재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팀장은 그 생각이 다소 엉뚱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팀장은 그 질문을 조금 바꾸어 새로운 관점으로 팀원들에게 질문했다. “화학 반응을 이용해 오래된 페인트를 제거하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이 생각은 훌륭한 촉매제가 되었다. 정체되어 있던 회의는 이 질문 하나에 살아나는 듯했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 사람이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 페인트에 특정 용액에만 쉽게 녹는 한 물질을 첨가하자는 것이었다. 이 물질은 용액을 칠하기 전에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지 않지만, 그 용액을 칠하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페인트가 즉시 벗겨지게 되었다. 이 회사는 결국 이 제품을 생산해 막대한 수익을 얻게 됐다.

 

하나의 엉뚱한 생각, 때로는 이런 생각들이 문제 해결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것은 사실 그 의견을 낸 엔지니어를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면서 그 생각을 ‘디딤돌’ 삼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것이야말로 창의성의 중요한 전제다. 비판 대신 의견을 징검다리로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약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직장인들은 제안하기보다 비판한다. 비판이 더 쉽고 리스크가 적고, ‘똑똑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비판이 곧 자신의 지적 수준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비판을 잘할수록 똑똑하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비판도 일종의 제안’이라고 주장한다. 비판과 제안은 엄밀히 다르다. 비판은 종속적이며 수동적이다. 상대의 ‘제안’이 없으면 홀로 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독립적인 의견을 내는 것과는 별개다. 이런 사람들은 ‘개들은 모르는 것을 보면 짖는다’며 꼬집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창의성 전문가 로저 본 외흐는 저서인 <크리에이티브 싱킹>(Creative thinking)에서 현대인의 이러한 비판적 경향성이 ‘사지선다’형 교육을 받고 자란 탓이라고 지적한다. 사지선다형 문제에서는 정답을 먼저 찾기보다 비판적 사고를 통해 오답을 먼저 찾아 지워가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의 창의성을 방해하는 요소뿐만 아니라 잠재된 창의성을 회복하는 여러 실용적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책은 비록 절판됐지만, 헌 책방을 돌며 구해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한 사람이 상상력을 활용하는 양은 상상력을 이용했을 때 받게 되는 비판의 양에 반비례한다. 한 사회가 제안보다 비판이 더 많을 때 그 사회는 점점 침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증명하듯, 침묵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때 그 사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결국 비판을 새로운 상상력으로 전환하는 데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승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directan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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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이름으로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3월 4일자 칼럼이 게재되었습니다.  

아래 링크 참고하시고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working/6266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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