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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9일 23시 39분 등록

남자들이 두려워하는 꿈이 있다. 군에 재 입대하는 꿈이다꿈에서 내 이름 앞으로 난데없이 입영 통지서가 날아왔다. 사유가 기가 막혔다. ‘귀하가 18개월간 출퇴근하며 방위병으로 복무한 것은 국방부에서 인정할 수 없으니 00 사단으로 입영해 다시 병영 생활을 하라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부리나케 관할 병무청 민원실에 달려가 항의하는 장면에서 꿈이 깼다. 그 후로도 몇 번 악몽에 시달렸지만 언제부턴가 꾸지 않게 되었다. 당시 업무 스트레스가 꿈에까지 연장되어 재 입대라는 강도 높은 스트레스로 변형되어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지나온 삶에서 마무리 못한 것을 완성하라는 뜻인지 모르겠다 

 

나를 당혹스럽게 하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잊을 만 하면 꾼다. 꿈 속에서 나는 학교 교정과 강의실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과목별 강의 시간을 혼동하거나 해당 과목 시험일을 잊고 있다가 하루 전에 알아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끝내는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지 못해 졸업 불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회 진출이 유보되어 크게 낙심하는 순간, 현실로 돌아왔다. 나이 듦에 따른 기억력 감퇴를 나타내는 꿈인지, 아니면 다시 배움의 장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강의실에 20명이 넘는 수강생이 않아 있다. 이십 대에서 육십 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유치원에 다니는 두 명의 손자를 둔 육십 대 아주머니, 대학생 자녀를 둔 오십 대 중년의 여성들, 외국에서 대학을 나온 20대 젊은 여성,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고 다시 편입한  사람,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한지 20년 만에 학사과정에 들어온 40대 남자 등등, 저마다 삶의 사연은 다르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은 같은 늦깍이 학생들이다 꿈이 아닌 며칠 전 일이다.

 

수업 첫 날, 빨간 점퍼를 입었다. 별다른 뜻은 없었다. 단지 대부분 회색과 검은색 일변도의 옷을 입는 익숙함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싶었다. 여 교수님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나를 보고 용기 있는 분이라고 한껏 치켜 세웠다. 면접 시 내 나이를 알고 있는 그 분은 어지간해서 원색의 옷을 입는 것을 생각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과감히 입었다는 것이다. 내가 센스가 없는 것인지 개념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 또는 강의에 맞는 드레스 코드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굳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오십에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은 의지와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용기를 내어 첫 걸음을 내딛더라도 도중에 힘에 겨워 완주를 하지 못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이 삼십 대와 경쟁하는 것은 무리다 신체적 노화, 기억력 감퇴, 집중력 감소, 그리고 뇌세포 감소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능력의 한계에 부딪친다. 오십 무렵에 찾아오는 자연스런 변화이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거나 배우려는 사람들한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거나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빠른 때라고. 용기와 격려를 주는 말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늦은 것은 늦은 것이다. 농작물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시기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마찬 가지로 인생에서도 통상적으로 연령대 별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다. 공부, 취직, 결혼, 출산 등이 그럴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 기회를 잡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자동항법장치에 따라 정해진 항로만을 가는 것은 아니다.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도 저기압을 만나면 우회 한다. 예보에 없던 돌풍이 불면 급히 안전한 곳으로 선박을 옮긴다. 이 경우 항해기간이 길어져 추가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도 할 수 없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선장이 선박의 안전과 선원의 생명을 담보로 무모하게 정면 돌파하는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요 판단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름길이나 평탄한 길을 가면 좋겠지만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그 길을 갈 수 없거나 때론 불가피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살아가면서 문제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저마다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나이가 제법 있다. 어떤 사람은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삶의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길을 찾기위해 은 사람도 있다.

 

언제까지 이 배움이 지속될 지 알 수 없다. 단지 신체적 노화, 기억력, 그리고 집중력 감소되는 오십의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배움의 과정을 즐기고자 한다. 또한 젊은 사람들한테 열린 사고를 배우고자 한다. 지구력과 인내력은 그래도 남아 있으니 그것에 한번 기대를 해본다. 배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 실행의 기쁨을 누리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풍성한 내용이 있는 삶을 만들어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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