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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0일 00시 45분 등록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한' 사람 이란 정의 조차도 쉽지 않다. 도대체 '완벽한' 사람이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란 말인가. '완벽한'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한건가? 완벽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사람'이 아닐 것이다. 신이라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증명할 수 도 없는 존재라면 모를까......

그렇다. 나의 결론은 역시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사람은 평생을 그렇게 불완전하게 살아간다는 말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완벽을 추구하지만 그저 추구할 뿐이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때때로 어리석다. 심지어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기도 한다. 나는 신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도 불완전하고 어리석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 귀결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고 당연한 나의 모습이다. 불완전하고 어리석다.

1년 전부터 나의 주말에 자유는 없었다. 내가 자처한 일이지만 어쨋든 그랬다. 나에게 주말은 그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고 좋은 글을 가슴과 노트북에 담아두고,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그런 날이었다. 이 압축적 과정을 통해 그저 그렇게 달려가던 지난 35년의 삶의 경로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려했다. 하지만 가끔 가족들과 함께 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이를 핑계로 막간의 자유를 느끼곤 했다. 요즘은 별일 없는가 싶더니 H가 나의 계획 속으로 뛰어들었다. 계획이 어그러졌고, 그래서 차질이 생겼다. H가 건강점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그런데 며칠 전 H가 내게 말했다. 나 토요일 검진갈 때 같이 가면 안돼? 검진? ... 나 공부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일찍 가서 일찍 오면 되잖아. 6시 반에 출발해서 당신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 할께...... H, 왠지 이번 요구는 진지하다. 워낙 눈치가 빠른 그녀라 웬만해선 고집을 피우는 스타일이 아닌데. 마음 편히 먹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 두세시간은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를 탄 우리는 곧 광화문에 도착했다. 주말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꽤 쌀쌀한 날을 조금 느낀 우리는 곧 건강검진센터에 도착했다. H가 검진을 받는 동안 신문을 보며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 조금 뒤 H가 다가왔다. 위내시경이란 복부초음파만 하면 돼. 곧 끝나. 그래… ‘내시경, …’

며칠 전 똑 같은 검진을 받은 나였다. 위내시경은 거의 매년 하기 때문에 나름의 노하우로 잘 넘길거라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잘 넘겼지만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위에 뭔가가 감지되 조직검사까지 하느라 최소 5, 느낌엔 7,8분 정도 계속된 것 같다. 마취없이 말이다.

그런 내시경을 H가 곧 받을 것이다. 힘들텐데…….  10여분 뒤 나온 H는 나름 늠름하지만 그 껄끄러운 느낌 어찌 버리겠는가….

건강검진이 끝나고 잠시 잠깐 휴식을 위해 커피를 마시러 갔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커피전문점 답게 아침부터 해외바이어와 협상 (또는 소개)를 하는 사업가로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도 있었고, 공부를 하는 학생, 그리고 연인들도 보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원치 않는 발걸음을 한 나는 꽤나 졸립고 피곤했다. 하지만 창밖으로는 주말을 틈타 열심히 창문을 닦는 창문닦이들이 건물에 매달려 분주하게 왔다갔다했다.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H는 앉자마자 시작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새로 일하기 시작한 빵집이야기부터 아이 유치원에서 만난 엄마 이야기까지…… ‘ 어쩜 저렇게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원래 남녀가 다르고, 나와 H가 다른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볼 때마다 고개를 젓게 된다.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문득 떠오른 H의 아이디어, 이왕 나온 김에 단골치과에 가서 스케일링 까지 받자고…… 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쿨하게 동의하자 생각했다. 그리고 동행했다. 거기에 나까지 스케일링을 받았다. 시간도 한참 지난 마당에 조금 더 시간보내는거 문제될까 싶어 명동시내 한바퀴 돌았다. 조여진 마음을 풀어주니 한결 편해졌다. H는 내색하지 않지만 간만의 데이트(?)가마냥 즐거운 듯 했다. 의도하지 않은 시간들은 가끔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집을 나온지 5시간이 넘었다. 우리  예상을 훌쩍 넘겨 버린 시간에 나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나는 H에게 말했다. 서점 들렸다가 이 근처에서 있다가 들어가겠다고. 즐거운 H는 쿨하게 OK 했다.

H를 배웅해주기 위해 종로2가 버스 정류장에 왔다. 세상 편하니, 스마트폰이 버스시간을 알려줘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곧 도착한 버스, H와 인사를 하고, H가 버스를 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뒤돌아섰다. ‘그래. 이왕 틀어진 거 공부를 하던, 책을 보던, 극장을 가던 하고 싶은대로 해보자......’ 홀로 잠시 잠깐의 여유를 맛보려는게 나의 생각이었다. H는 집에 가면 아이를 돌봐야 한다. 이기적이다. .

토요일 오후의 종로2가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꽤나 북적거렸다. 행복해 보이는 연인들, 삼삼오오 움직이는 친구들...맞은 편에 중년의 커플이 다가온다. 40대중후반으로 보이는 그들, 남자는 힘있고 강직하게 생겼고, 여자는 갸날프다. 요즘 득세하는 미세먼지 때문인지 바람 꽤나 부는 날씨 때문인지 여자는 마스크를 하고 나왔다. '잠시 잠깐의 나들이겠군... 좋지 좋아.' 대충 이런 생각이었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돌렸는데, 갑자기 가슴이 철렁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시 그들을 보았다. 이제 거의 나와 일직선에 서기 전의 그녀, 긴 스커트에 짙은 보라색의 스타킹 또는 레깅스를 신은 그녀의 다리는 앙상했다. 나뭇가지나 몽둥이를 보는 듯 심각하게 앙상한 그녀의 다리...... 다시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순식간에 보았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움푹 패인 눈과 눈주위의 다크 서클. 한눈에 보더라도 그녀는 정상이 아니었다. 나를 스쳐 지나 나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중년의 부부, 점점 멀어지는 그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다시 보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다리라고 생각하기에는 힘든 그녀의 앙상한 다리. 본연의 뼈에 가죽 하나 걸친 듯한 그녀의 다리가, 그리고 바람 부는 토요일 햇살을 맞으며 걷는 그들 중년부부의 모습이 잔잔한, 또는 더 이상의 미동도 없어 조금씩 말라가고 썩어가는 듯한 내 가슴 속 웅덩이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저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저들이 걷는 이 길은, 그녀가 맞는 이 햇살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갑자기 숙연해졌다. ‘회사 일이 힘들다, 집중이 되지 않는다, 조금 더 빨리 돈을 벌고 독립하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란 생각에 의도치 않게 거리를 두게 된 가족들이 생각났다. 한 두시간의 데이트에 마냥 즐거워 하는 H, 그걸 피곤해 하는 나, 그리고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이…… 그들에게는 미안한 맘이 들었고, 나는 그녀에 비하면 정말이지 행복 또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그랬듯, 나보다 못한, 아니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것 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나의 행복을 깨닫는다. 잔인한 깨달음이다. 하지만 이 조차도 조금 지나면 금새 잊고 평소처럼 구시렁 구시렁 거리며 살아가겠지. 사람은 어리석게도 이를 반복한다. 아마도 불완전해서 이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조금 처진 기분으로 서점을 향하는데 문자가 왔다. H에게서 온 문자다. “고마워요~ 건강검진은 왠지 혼자가기 싫더라고. 당신 스케줄 방해 안하려고 일찍 움직였는데시간이 좀 늦어졌네요. 아무튼 좋았던 짧은 데이트였어요. 간만이네. 땡큐~”

타이밍도 기가 막히는 H의 문자, 또 한번 고개를 떨군다.

IP *.218.13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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