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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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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0일 01시 13분 등록

이번 주는 '일의 발견'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조안 B. 시울라라는 미국 철학자가 쓴 책입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에게 '일한다 (Working)'는 의미의 변천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입니다.  대게의 학자들이 그러하듯, 일이 무엇인지 똑 부러진 대답 한마디를 저자는 결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의 의미를 독자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는 '정답'만을 이야기 할 뿐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았지만 역시나 하는 대답 뿐이었습니다그래도 허무하지는 않았습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여가도 없다'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갑자기 일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한결같이 여가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경험해본 사람은 압니다. '가장 바쁜 사람이 백수' 맞습니다. 금요일 야근처럼 힘빠지는 소리도 없습니다. 일요일 저녁처럼 답답한 마음도 없습니다.  일을 할 수 있기에 주말 여가가 감사한 사실도 분명합니다

 

'일의 발견'에서 저자 조안 B. 시울라는 ''은 곧 '여가가 아닌 것'이라는 정의를 내립니다. 그리스어로 여가라는 단어는 스콜레(sckole)이며 라틴어로는 오티움(otium)입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모두, 일을 뜻하는 단어는 여가를 뜻하는 단어의 부정형입니다. 일이라는 뜻의 아스콜리아(acholia)와 네고티움(negotium)은 둘 다 여가가 아닌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스페인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뜻하는 스페인어 네고시오(negocio)는 여가가 아닌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어, 라틴어, 스페인어가 모두 여가가 마치 생활의 중심인 것처럼 일을 여가와 관련시켜 비유합니다.

 

그래서 적어봅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여가'시간에 저에게 일어난 세 가지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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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책을 쓰려 하니?" 

"대답해 보려 합니다."

"무슨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는 건데?"

"2012 144일 파업하는 동안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때 '너 어디 있느냐?'는 질문만이 바람에 날리는 제 마음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그 질문이 이끄는 데로 저를 맡겼더니 어느 새 변경연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 몽골에서 돌아오면서 이제 그 대답을 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L선배는 한참을 뜸을 들이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사람이 써야 할 책은 이미 성경과 불경에 다 있거든. 더 이상의 책은 무의미한 것 같아. 하긴 내가 그래서 글을 못 쓴다." 

 

나는 말을 이어 갔다

"처음에는 '인문'이란 주제를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성'이란 주제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인문' '영성'을 함께 전달하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영성은 곧 경이로움이며, 경이로움의 반대말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을 경이로움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곧 인문과 영성이 만나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L 선배는 내 말을 막았다

"너가 '영성'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영성'은 더 이상 '영성'이 아니다. 도가도 비상도. 도를 도라고 하면 더이상 도가 아니다. 아무리 '영성'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록 '영성'이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해."

 

나도 취했지만, L 선배도 취해 있었다.  

 


2. 

O 선배는 기어코 나를 떠 밀며 소리쳤다. 3차로 찾은 인사동 뒷골목 술집. 오로지 김광석 노래만 나온다는 이 곳에서 선배는 기어코 김광석 노래를 끄라고 소리쳤다. 내 후배가 노래 부를 테니 김광석을 좀 꺼 보라며 말이다. 난 얼떨결에 중앙으로 떠밀려 나갔다. 한 열 대여섯 평 쯤 돼 보이는 술집에 손님은 우리 이외에 한 테이블 뿐이었다. 그들도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해 있었고 김광석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떠밀려 나온 나를 열렬히 반겨주었다

 

'그래, 순전히 광석이 형 때문이다. 오늘은 조용히 광석이형과 함께 노래 부르며 놀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박수를 치는 옆 테이블 손님들에게 공손히 말했다

"제가 감히 김광석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제가 부를 수 있는 노래 한 곡 부르겠습니다." 

 

한 곡이 두 곡이 되었고, 난 그들과 어울려 박수를 치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테이블에서 술을 함께 마셨다

 

한 두 시간 놀았을까? O선배와 술집을 나와 포장마차를 들렸다. 국수 한 그릇과 소주 한 병. 깔끔한 마무리

 

바람부는 인사동을 뒤로 하며 O 선배와 나는 팔장을 끼고 우렁차게 노래를 불렀다. 곡목은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3. 

일요일 새벽 5시 반.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토요일 저녁 일기예보에 눈 소식이 있다면서 일요일 아침 6시부터 성당 제설작업을 하자는 봉사회장님 전화가 있었다. 번뜩 눈을 떴다. 창밖을 내려다 보니 가로등 불빛 사이로 쌓여 있는 눈이 선명하게 보인다. 세수도 잊은 채 야구 모자 눌러 쓰고 겨울 장갑을 찾아 끼고 차를 몰았다. 집 근처 성당에 도착하니 6 5분 전. 올해 일흔 하나 되신 봉사회 회장님은 벌써 나와 제설 장비를 챙기고 계셨다

 

"다행히 눈이 많이 오지는 안았어. 여기 성모 동산만 치우면 될 것 같아."

", 회장님."

 

일흔 하나 되신 봉사회 회장님과 환갑을 넘기신 사목회 수석부회장님, 그리고 이제 갓 마흔을 넘긴 나. 이렇게 셋 이서 슬근 슬근 가래질을 시작했다. 일을 하다 보면 두 어르신의 이런 저런 지시가 반복적으로 나에게 내려진다. 두 어르신들의 지시를 받으며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 알겠습니다' 하면서 고개를 숙이며 다소곳이 이야기를 듣고 하자고 하시는 일을 하는 거다.  

 

다시 한번 확인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노가다 후에 마시는 자판기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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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다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 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일어난 ''을 기록해 보았습니다. 책을 쓰고 싶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예비 작가로서 저는 살고 있습니다불금에 어울리는 멋진 술집을 또 한 군데 알게 되어 기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좀 힘들기는 해도 봉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여가를 보냈습니다. 제 말이 좀 길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여쭤봅니다. 그대는 어떤 여가를 보내셨는지요? 어떤 삶을 살고 계신지요?   

 

201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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