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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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뵙겠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나도 간단히 끝난 통화에 맥이 빠질 정도였다. 별안간 허탈한 기분이 되어 나도 모르게 수첩을 펼쳐 가운데에 줄 하나를 죽 그었다. 그리고 칸 위에 각각 ‘before’ 와 ‘after’라고 적는다. 살던 곳에 그대로 살다 일하던 곳으로 그대로 돌아가는 나. 그렇다면 그간의 4년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때 그곳을 떠났던 것은 결코 실수가 아니었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구보다 괜찮은 내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어찌 이리 시시할 수 있단 말인가? 고작 그럭저럭 먹고 살다 가는 것이 내게 허락된 삶의 전부라니 당췌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문제가 뭔지 밝혀내고야 말리라. 그래서 반드시 응당 그래야 할 방식으로 바로잡아 놓고야 말리라.
이리 시작한 여행이었으니 어찌 대충할 수 있었을까? 지난 4년, 더 이상을 논할 수 없을 만큼 힘껏 살았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오늘 이리도 흔쾌히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게 된 것이 내 노력의 대가인지 시간의 선물인지. 아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더 솔직히 고백하는 편이 났겠다. 나는 여전히 그 문제가 뭔지 다 밝혀내지도 못했으며, 당연히 내심 꿈꾸던 인생역전 따위는 시작도 못했다. 돌아가면 다시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편치만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역시 각오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억울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겪어보니 ‘이 곳’이 아니라 ‘그 곳’이 정답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4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준 유일한 가르침은 처음부터 정답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적어도 이제 나는 더 이상 밖에서 ‘길’을 묻느라 귀한 삶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제 마음이 모이는 곳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 확인받고서야 안심하는 코미디 인생의 졸업, 이것이야말로 ‘깊은 인생’의 첫 관문이 아닐까? 이 문턱까지 나를 데려다 준 것만으로도 4년이라는 시간은 제 할 일을 멋지게 해낸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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