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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대니 보일 감독의 <127 Hours> 영화. 실제 주인공 ‘아론 랠스톤’은 그랜드캐넌 협곡 여행 중 구덩이 아래 추락과 동시에 오른팔이 바위틈에 끼고 만다. 바위를 치우기 위해 생존의 사투를 벌이던 그. 마지막으로 자신의 팔을 칼로 자르는 결정을 내리고 탈출에 성공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처럼 결사적으로 혹은 나른함의 오침으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온다. 그 주어짐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느냐는 전적인 개인의 몫. 만약 하루 중 15분이란 전략적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운동, 영어 단어 외우기, 커피 한잔, 휴식……. 나는 글쓰기를 택하였다. 이것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선물로 받은 책을 읽다보니 한 문장의 글이 와 닿았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 그는 글을 쓸 15분을 정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정했으면 하고 싶은 일이 있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든 상관없이 그 시간은 반드시 비워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15분?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 언뜻 보기에는 쉽게 여겨진다. OK. 친구와 함께 해보기로 하였다.
“게임식으로 진행해 보자. 룰은 간단해. 정해진 시간에 서로가 글을 쓰되 거르게 되는 경우 회당 오천 원의 벌금을 자발적으로 지불하자고.”
15분. 영원의 찰나 속에 스스로의 의미부여 시간. 설정된 벌금. 자신이 있었다. 그까이꺼. 남은 건 어떤 시간을 정하느냐는 것. 오전에는 외근과 회의 등 변수가 예정되어 15시로 하였다. 식사도 하였겠다. 졸음도 무던히 쏟아지고 얼마 후면 퇴근이란 희망적 복음이 돌아오기에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때. 만약 이 시간 15분의 Flow (몰입) Time를 가진다면 생산적인 변화로 바뀔 것이다.
15시. 노트를 펼친다. 노란색 디자인의 표지. 공동으로 구입한 A4용지 반 정도의 규격. 연필을 꺼내어 폼을 잡아본다. 자,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 쓸까. 방법은 두 가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또는 아이템을 정해 쓰는 경우. 성향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후자 쪽을 택하였다. 첫 번째 주제로 내용의 질에 상관없이 집중하여 써내려 간다. 페이지 반을 채우다보면 딱 15분 분량의 글이 탄생. 뿌듯함. 무언가 채웠다는 자족감. 이까이꺼. 그런데 역시 어르신 분들의 말마따나 작심삼일을 넘기기가 힘들다. 아니, 변명이지만 업무상 변수가 발생하였다. 지시가 내려오고 예정에 없던 미팅이 소집. 생각해 보라. 공적인 업무가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는가. 스스로에게의 합리화. 어쩔 수 없지.
중간점검의 시기. 업무 때문에 거르게 되었어. 그런데 이것이 반복이 된다. 이런, 하루 중 일정 분량의 시간을 매일 투자하기가 이렇게나 어렵다니. 시간대 변경의 협상을 하였다. 오전 8시30분. 다시 노트를 꺼낸다. 출근 사무실에서 오롯한 혼자만의 자유의 향유. 연필이란 도구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글의 분량이 이어지다보니 이점이 나타났다. 타깃에 대해 고민한다. 뭘 정할까. 퇴근길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던 상인. 아니야. 그렇다면 허겁지겁 출근길 아침. 그것도 아니면 한가로이 떠다니는 하늘 가득 구름. 일단 일상을 스케치한다. 사람들, 사무실 풍경, 방문하는 거래처,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 그리고 또 다른 하루의 연속. 그 가운데 하나의 이름을 명명한다. 타이틀을 정한다는 것. 그 타이틀로써 그 광경은 상관없음이 아닌 나의 대뇌에 중요한 피사체로 인식이 된다. 이를 정점으로 전경과 배경의 구분 및 엑기스의 포착. 무엇이지, 당신은 무엇이야. 누구지 당신은 누구일까. 부여된 주관화의 사건을 해부하고 중심으로 파고든다. 그럴 때 흘러가던 허투루 지나가던 이방인의 실체는 어느새 나를 둘러싼 전경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는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러다 그 중심은 나의 과녁에 화살로 날아와 박히고, 다름으로 기억된 역사의 그것은 재탄생된 날갯짓을 여민다. 날자. 어디로. 다시 그 세상 속으로 아니면 내 삶이란 필름 깊숙이. 반페이지의 용량이지만 쌓이고 쌓인 무게는 두툼한 세월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이런 이점은 또다시 얼마가지 못한다.
이런 젠장. 약속한 시간이 지나갔다. 왜이리 까먹을까. 지갑속 오천 원 지폐를 만지작거린다. 괜히 벌금을 내자고 하였나. 아깝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결국 나는 자신과의 이해타산 협상에 들어간다.
‘어이, 이봐. 꼭 정해진 시간에 써야 되는 건 아니잖아. 어쨌든 쓰기만 하면 되는 거지. 어쩔 수 없었다고. 변수가 있는 건 당연하잖아.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닌데 좀 융통성을 발휘해보자고. 취침 전에 할 거니까 너무 닦달하지 마. 어차피 쓴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
오늘도 나는 출장 중이라는 핑계로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한 채 거래처 사무실에서 노트를 펼친다.
“뭐하세요. 일기 쓰시는 건 아닐 테고.”
직원 누군가가 질문을 한다. 뭐라고 답변을 하지. 회사일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하루 정해진 15분 동안 글을 쓰는 것인데 00님도 한번 해보실래요.”
학부시절 국문학을 전공하였다는 그.
“아! 그거 저도 수업시간에 해보았어요. 교수님께서 얼마나 강조를 하셨던지.”
전공 강의시간에 이런 것을 한다고?
“효과가 좋더라고요. 글을 끼적이다보면 묵혀있던 감정이 풀어헤쳐 해우소가 되고 쓰는 스킬도 늘고.”
그렇군. 그렇구나. 확실히 효과가 있는 거로군. 구본형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하루 두 시간 이상을 매일 쉬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투자하라 (p346)고 하였었지. 그럼에도 나는 왜 아직도 타협을 하고 있는 걸까. 두 시간은커녕 십오 분도 지켜가기가 왜 이렇게 힘든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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