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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6일 18시 05분 등록

한 남자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스스로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조합이라 생각하는 친구 넷과 거의 완전하게 함께 하였던 그는 대학 진학의 문제로 네 명의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한동안 그들의 우정은 계속되었다. 매번 방학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어울렸다. 항상 밝고 행복했던 고등학교의 그 시절 처럼.  하지만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집으로 돌아간 그는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는 앞으로 널 만나고 싶지 않아, 말도 하기 싫어.” 단호했으며 타협의 여지도 없는 일방적인 절교선언이었다. 영문도 모른채 완벽한 조합에서 잘려나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한동안 심각하게 죽음을 생각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죽음의 악몽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둥글둥글한 평범했던 그의 얼굴도 날렵하고 날카롭게 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그 아픔을 잊기 위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그의 의도처럼……. 죽음과도 같았고,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렇게 16년이 흘렀다.   

또 한 남자가 있다 교장의 아들로 태어나 교장에게 주어지는 사택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생각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별 어려움 없이 한국의 최고대학에 입학하고 수학하고 졸업한다. 그리고 대학교수로서, 육군 중위로 생활하던 중, 일명 통혁당 사건으로 알려진 사전의 주범으로 사형을 언도 받는다. 다행히 직접적인 가담이 없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받게 되지만, 학생운동 정도만 했을 뿐 간첩활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그에게는 도무지 납득할 수도 없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결백함과는 관계없이 그는 무기수가 되었고, 그의 옥생활이 시작되었다. 인생의 황금기였던 20대 후반에 시작된, 언제 끝날지 모를 감옥생활은 20 20일동안 계속되었다. 엘리트였고 남부끄럽지 않은 집안에서 관념적으로 살던 그에게 감옥이라는 철저한 현실, 생생한 인간성을 느낄 수 있는 그곳,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그곳에서의 시간들은 그와 그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변화시켰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처음 언급된 남자는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 다자키 스쿠루의 이야기이다. 그는 젊은 시절 친구들로부터 절교를 당하고 삶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나락에서 올라오기 위해 고민했고 노력했고, 결국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고, 과거의 그와 달리 많이도 변해 있었다. 16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하나의 정신적인 길, 또는 물리적인 길을 택해 걷다 보면 어느 새 16년 전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그런 시간이다. 두 번째 언급된 남자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유명한 신영복 교수의 일화이다. 의도하지도 않았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통일혁명당 사건에 휘말리며 졸지에 교수에서 무기수로 살게 된 신영복 교수는 20년의 감옥생활을 한 인간을 철저하게 개조할 수 밖에 없었던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실제 엘리트였고, 책을 통해 삶을 살았던 신영복 교수는 감옥생활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은 책이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젊은 시절 경제학을 전공하였던 신교수는 출소 후, 대학에서 동양사상, 철학 등을 가르치고, 해남땅끝마을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와 서울시장실 등 우리가 생각지 못한 변방을 찾아 다니는 등 그의 시선은 이제 인간과 인간관계 그 자체에 쏠려 있다. 삶은 그렇게 흘러갔고, 그 흐름 안에서 신영복교수의 삶도 바뀌었다. 

문득 오랜 친구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그저 목소리만 들으려 했는데, 그도 나도 운좋게 시간이되었다. 우리는 중간지점 즈음 시내에서 만났다. 마지막으로 본지 1년이 넘은 것 같은데도 여전히 그는 그였고 나는 나였다. 물론 우리는 많이도 변해 있었다. 녀석을 알게 된 게 대학교 1학년때이니 에누리없이 만 16년이 지났다고 볼 수 있다. 다자키 스쿠루가 보낸 딱 그만큼의 시간이다. 우리 사이에 놓여있던 16년이란 시간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정확히 말하기는 쉽지 않다. 16년으로 인해 우리가 바뀌었는지, 또는 운명적인 무언가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지 쉽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그와 나의 삶이 거의 180도 뒤바뀌어 있다는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사회비평적이고 철학적이었던 그는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나는 회사에 취칙해 임원으로서의 삶을 살거나 또는 해외로 나가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그와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은 어찌보면 정반대로 바뀌었다. 그는 작은 보습학원을 운영하며 사업을 번창시킬 생각을 하고 있고, 나는 글을 쓰며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임원이 될 생각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정의하려 하거나 또는 삶의 방향을 통제하려 한다. 자신만의 꿈을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제시간 삶의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바람처럼 각자의 삶을 계획대로, 통제하며 사는 사람도 있음에도 대부분의 삶은 예측 불가능한게 아닌가 한다. 학자로서의 삶을 꿈꾼 사람이 가장 현실적인 장사꾼이 될 수도 있고, 글을 쓰며 살고자 했지만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현실을 헤쳐나가다 보니 꿈과는 달리, 본의 아니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닐까. 그렇다면 삶은 계획한다고 해서 원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대신, 자신에게 중요한 그 무언가를 놓지 않고 살아간다면 겉으로 보이는 외형이야 어찌되었든, 본질적인 삶의 색채가 자신이 원하는 빛깔이 물드는 것은 아닐까……. 마치 신영복 교수의 그 푸근한 인상과 날렵하고 냉정한 듯한 다자키 스쿠루의 이미지가 말해주는 것처럼……

삶은 그렇게 유유히 흘러간다. 그리고 삶의 흐름을 어떻게 탈지는 우리의 몫이다. 비록 우리가 삶을 완벽하게 통제하지는 못할지라도 삶의 빛깔 정도는 정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옛 사람들이 말했든 주어진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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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8 13:13:00 *.185.21.47

맞아~~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그대도 우리 9기 들도 알고 있잖은가.

수업때 가끔 했던 말이 생각난다네.

 

대수~~

요즘 잘 지내고 있나?

원하는 것을 계속 붙들고 있는것

힘들어도 놓지 않을 정신력과 집중력

그게 바로 대수의 강점 아니던가.

 

이번주 강화도에서 바다보면서 술 한잔에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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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8 18:10:42 *.62.173.210
대수 최근 글보다 이 글에서 목청이 커진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뭐랄까.. 한 겹 단단한 자신감이 바닥에 더해져 받쳐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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