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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8일 00시 04분 등록

<북리뷰 11-3주차>

 

 

2013.03.17.

: 서 은 경

 

 

 

 

(No. 41)

 

움베르토 에코 [젊은 소설가의 고백] 레드박스 (2011)

 

 

 

 

 

 

                                                                    cover-eco.jpg

                                                                       @ 2011년 초판 1

 

 

 

 

* * *

 

자칭, ‘젊은 소설가움베르토 에코.

그의 표정에는 약간의 장난기가 어려 있어 유쾌하다.

 

이미 여든을 넘은 대 학자인 그가,

자신을 젊은 소설가라고 칭하며 어떤 사랑 고백이라도 하려는 듯

 

노오란 빛깔의 책 표지 속에서

독자에게 윙크를 날린다.

 

나는 그의 고백이 궁금해졌다.

 

 

 

 

 

 

 

 

1. 작가 소개

 

 

 

에코.jpg 

@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

 

 

 

*

기호학자이자 언어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중세 전문 학자인 움베르토 에코.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 불린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부터 보르헤스, 제임스 조이스를 거쳐 인터넷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전문 지식을 갖춘 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은 독서광이기도 하다. 그는 인류 문화와 지식을 한 통으로 꿰뚫어보며 연결하는 일종의 플랫폼적인 지식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그의 통찰력 덕분에 적지 않는(?) 나이에 소위 젊은 소설가로 데뷔하였어도 그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단열에 거뜬히 오를 수 있기 않았을까?

 

 

 

**

193215일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다.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에 입학하지만, 중세 철학과 문학으로 전공을 바꿔서 1954년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 학위 논문을 통해 에코는 문학 비평 및 기호학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다.

 

중세 철학에서부터 현대의 대중문화와 가상현실에 대한 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또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소설가이다. 1980년 출간된 데뷔작 장미의 이름<백과사전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에코만의 개성을 창출하며 현재까지 3천만 부 이상이 팔린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등 내놓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찬사를 받는다.

 

에코의 다른 저서로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낯설게하기의 즐거움, 미의 역사, 추의 역사, 궁극의 리스트, 가재 걸음, 장클로드 카리에르와의 대담집 책의 우주등이 있다.

 

 

 

 

 

 

 

 

 

 

* * *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다.

 

지식을 탐닉하는 자의

은밀한 고백...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읽고 쓰는 즐거움.

이것이 바로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다.

 

 

 

 

1.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쓰기

 

 

 

@ 창작이란 무엇인가?

[16]

창조적 작가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말하자면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처럼

이미 자신의 글을 세상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소설을 출판한 후에는 원칙적으로 독자들의 해석에 반론하지 않아야 한다는(또한 어떠한 해석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윤리적 의무를 느꼈다.

 

[17]

이론서가 대체로 특정한 이론을 증명하거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반면 시나 소설을 쓸 때 사람들은 모순 가득한 삶을 대변하고 싶어 한다.

여러 삶의 모순들을 펼쳐놓고 분명하고 통렬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작가들은 독자에게 해답을 찾아보라고 주문할 뿐 공식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18]

내가 서사적 기술에 대한 은밀한 열정을 충족한 방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구두에 의한 서사전달로, 종종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비평적 눈문에서 모든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19]

나는 어떤 학분에 대한 책이건 일종의 추리소설, 즉 어떤 종류의 성배를 찾는 탐구 보고서처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옛날 옛적에

[20]

결국 내가 깨달았던 유일한 정답이란 어느 순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어떻게 쓸까?

[21]

첫 소설 쓰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

영감이란 약삭 빠른 작가들이 예술적으로 추앙 받기 위해 하는 나쁜 말이다.

 

[24]

나는 마치 수십 년 동안 중세에 관한 정보들만 모아두었던 널찍한 벽장을 여는 것 같았다. 필요한 모든 자료가 내 코앞에 있었고, 나는 단지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

----->어떻게 쓸까(영감-정보의 농축이 터져 나오는) 설계도(세계 설계하기)

천재는 10%의 영감과 90%의 노력에서 나온다. 영감은 90%의 노력으로 모은 정보에서 터져나오는 한 방울의 달콤한 엑기스 꿀..

 

@ 세계 설계하기

[25]

서류를 수집한다.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지도를 그리고 건물들의 배치를 눈여겨보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소설을 준비하는 몇 해를 일종의 마법의 성에서, 달리 표현하면 자폐의 바다 안에서 빠져 지낸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아무도, 설령 가족이라고 해도 모른다......내가 하는 일은 오로지 내 이야기에 들어갈 생각과 심상, 단어들을 그러잡는 것뿐이다.

 

[27]

글을 쓰기 전에 수백 개의 수도원 도면과 미로들을 그려보았던 일이 떠올랐다.

덕분에 등장인물 두 명이 대화를 나누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내가 만든 허구의 세계에서는 구획과 배치에 따라 대화의 길이가 정해졌다.

----> 나도 에코같은 정확한 묘사 글쓰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내면 통찰 문구를 브릿지로 이용하며.

 

소설은 단지 언어의 조합이 아니라는 걸 터득했다.

 

서사는 작가가 창조하는 우주이며, 그 안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음률과 문체, 단어 선택까지 정해진다. 서사는 라틴어로 렘 테네, 베르바 세쿤투르’, 주제를 고수하면 언어는 따라온다는 법칙에 지배받는다. 반면 시는 그와 반대로 언어를 고수하면 주제는 따라온다로 바뀌어야 한다.

 

[28]

서사는 다른 무엇보다 우주가 탄생하는 사건이다.

무언가를 쓸 때 우선 작가는 데미우르고스, 즉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그 세계는 최대한 정밀하며 스스로가 그 안에서 일말의 의심도 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원칙을 최대한 고수한다.

---> 나도 이런 방식의 글쓰기가 좋다. 세밀하게 묘사되어 들어나는. 그려내는. 공간을 창조하고 그 속에 인물을 등장 시키는.

 

@ 단초적인 아이디어

[31]

그건 어쩌면 열 여설 살 때 겪었던 어떤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베네딕트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였는데, 나는 회랑을 걷다 들어간 어두운 장서관에서 독서대 위에 펼쳐진 <성인전-교회력 연대로 정리된 성인, 순교자 전기집>을 발견했다. 그 어마어마한 두께,; ,훑어보면서 나를 둘러싼 깊은 적막과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스며드는 몇 가닥 빛줄기에 나는 일종의 전율을 느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단초가 된 아이디어였다.

 

[36]

일단 작가가 명확한 서사의 세계를 설계했다면 다음으로 글이 따라온다.

 

<장미의 이름>에서 택한 문체는 중세 역사 기록자들의 것이었다.

<푸코의 진자>에서는 언어 표현이 다양해야 했다.

 

[37]

언어 사용의 확장단순히 문체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사건이 벌어지는 세계의 특징과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전날의 섬>의 경우 결정적 요소는 문화적 시대라는 점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문체에 영향을 미치는 데 끝나지 않고, 서술자와 등장인물 사이에 진행되는 대화의 구조도 결정하며, 독자에게는 그 모든 사건의 목격자이자 공범자가 되어달라고 끊임없이 간청한다. 이런 종류의 대서사를 선택한 이유는 내 등장인물들이 바로크 시대의 문체로 말을 해야 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물론 나는 그런 말을 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심적 상태와 역할 면에서 다중적인 서술자를 둬야 했다

 

나의 출발점은 단초적인 아이디어나 이미지이고 서사 세계의 구조는 소설의 문체를 결정한다.

.

[39]

악당이 주인공인, <장미의 이름>의 대칭점에 선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장미의 이름>이 고급스러운 문체 안에서 지적 담론을 풀어내는 이야기라면, <바우돌리노>는 농부와 전사, 뻔뻔스러운 음유 시인을 담은 이야기이다.

---> 나의 서사 세계의 구조는 어떤 문체를 쓰라고 할까? 통통통...

 

[40]

나는 콘스탄티노플을 향했다. 나는 도시의 겉모습 그리고 속에 층층이 갑추어진 내면의 세계까지 탐험했고, 소설의 출발점이 된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1204년 십자군 원정대가 불태운 도시의 모습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을 화염 속에 놓고, 젊은 거짓말쟁이와 독일의 황제 그리고 몇 몇 동양의 괴물들을 불러오자 곧 소설이 완성됐다.

 

@ 제약

[41]

단초적인 이미지를 찾으면 이야기는 술술 풀린다고 얘기했다. .....몇 가지 제약을 부여해야 한다.

모든 예술에서 제약은 기본이다.

 

제약을 넘나드는 듯 보이는 전위 예술가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어떤 다른 제약을 설치하는 것은 같다.

 

종말을 알리는 일곱 나팔을 택하여 일련의 사건들을 예고하는 설정 역시, 내가 <장미의 이름>에서 시도한 것 과 같은 하나의 제약이다. 이야기에 정확한 시대를 두는 것도 제약이 될 수 있다.

 

[44]

성공할 수 있는 소설을 쓰려면 어떤 비법들은 비밀에 부쳐두어야 한다.

 

@ 이중코드 기법

[47]

나는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는 나쁜 작가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는다. 자기만족적인 작가들이 쓰는 글은 쇼핑 목록과 같다. 쇼핑 목록은 구입할 물건들을 기록해두었다가 볼일을 본 후에 던져버리면 그만이다. 세탁물 목록을 비롯하여 그 외의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독백이 아니라 대화인 것이다.

 

근래 일부 비평가들은 내 소설에 전형적인 포스트모던의 특징, 즉 이중 코드 기법이 담겨 있다는 걸 인지했다.

 

하나는 상호텍스트적 아이러니, 다른 유명 작품들을 직접 인용하거나 어느 정도 명료하게 참고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서사, 작가가 독자들에게 직접 말을 걸 때 텍스트 자체가 만들어내는 반영물이다.

 

이중 코드는 상호텍스트적 아이러니와 내포된 대서사의 매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기법.

 

[48]

건축가 찰스 젠크스 왈 (‘이중 코드란 말 처음 만든 사람)

-포스트모던 건축 양식은 적어도 두 가지를 동시에 표현해야 한다.”

 

건축가들과 건축학적 의미에 관심을 갖는 소수 집단& 일반 대중, 혹은 편안한 전통 건축물과 생활양식에 관한 다른 문제들에 관심 있는 지역 주민을 동시에 만족 시키는.

 

[49]

순진하거나 평범한 독자들은 이 중국상자(큰 상자 열면 작은 상자 나오는 중첩구조)의 법칙을, 즉 이야기에 모호한 기운을 부여하며 자료들이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를 눈치 채지 못하는 이상 전개되는 이야기를 즐길 수 없다.

----> 차원이 다르게....보는 독자층에 따라 여러 깊이로 볼 수 있는.... ...매혹적이다.

 

[50](주목구절)

작가는 이중코드 기법을 이용하여 지적인 독자들과 일종의 암묵적 공모 관계를 확립한다.

 

문학의 목적이 오로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위로하는 것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학은 독자들이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에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씩 읽도록 도발하고 영감을 준다. 이와 같이 나는 이중코드가 지루한 귀족적 경련이 아니라 독자들의 지성과 소설에 대한 애정에 경의를 표하는 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 독자들, 자신의 스키마에 따라 각 차원으로 걸려드는.... 나도 이런 깊이 있는 책이 좋다.

문학의 목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다.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만이 아니라.... 독자의 지성과 소설에 대한 애정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 나는 어떻게 쓸 것인가?

 

 

 

2. 저자와 텍스트 그리고 해석자

 

 

나는 어떤 학문에 대한 책이건 일종의 추리소설,

어떤 종류의 성배를 찾는 탐구 보고서처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한번 읽고 버리는 너무 헐거운 책은 싫다. 나를 여러 번 찔러대는 시선이 좋다. 바싹 몰입하게 만들어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구경을 하고 내면에 흐르는 감정의 기복에 함께 올라타는 깊이 있는 여행. 그리고 발견하고 깨달음을 주는..... 성배를 찾아라.... 성배를 설정하라.

 

[55](주목구절)

창조적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석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텍스트는 게으른 기계와 같아서, 제가 할 일을 독자에게 나누어주려고 한다.

한마디로 텍스트독자로부터 해석을 끌어내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해석의 한계>에서 나는 저자의 의도독자의 의도, 텍스트의 의도를 구분했다.

---> 내 안의 이야기를 쓰되, 주변을 둘러봐가면서 써야 한다. 미쳐서 마구 갈겨쓰는 것은 자기만족이다. 여러 차원의 시선이 주는 색다름과 찌르는 깊이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손맛을. 이야기로 좌지우지하는 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일종의 권력, 유혹하고 조종하는...

 

그가 내게 보내는 시선은 여러 차원의 색다름.

나에 대한 감정과 집중도에 따라 열렸다 풀렸다 멍 때리는 시선.

어쩔 때는 마구 찔려대다가 또 어쩔 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냉정함.

 

[66]

텍스트를 이용한다는 건 마치 개인 일기장을 보듯 텍스트 안을 돌아다닌다는 의미이다.

[77]

텍스트에 백과사전적 지식이 더해지면 지식을 갖춘 독자들은 그런 연관성을 찾아낸다....단지 독자만큼 유식하지 못한 경험적 작가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91]

창작 과정을 이해한다는 건 뜻밖의 우연이나 무의식적 메커니즘을 통해 특정한 텍스트적 해법이 나타나는 과정을 이해한다는 말과 같다. 이러한 이해가 바탕이 되면, 텍스트 전략(모델 독자들의 눈앞에 놓이는 언어적 대상으로, 모델 독자들이 경험적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요소)과 텍스트가 진화한 과정의 차이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98]

택스트를 창작하는 알 수 없는 과정과 통제를 벗어나 표류하는 미래의 해석들 사이에서, 텍스트는 텍스트로서여전히 위로가 되는 존재이자, 우리가 굳게 고수할 수 있는 요소이다.

 

 

3. 허구적 등장인물에 관하여

 

현실 세계에서 수백만인구(아이를 포함하여)가 기아로

사망하는 상황에는 별로 불행해하지 않으면서

베르테르나 안나 카레니나의 죽음에 크게 비통해하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일까?

 

[101]

결국 그(돈키호테)는 책을 읽는 데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몇 날 며칠 밤을 한숨도 안 자고 말똥말똥한 상태로 지새곤 하는 반면 낮에는 완전히 비몽사몽이었다. 이렇게 잠도 안자고 책만 읽다 보니 머릿속이 푸석푸석해지는가 싶더니 결국은 이성을 잃어버리기에 이르렀다. 머릿속이 책에서 읽은 마법 같은 이야기들 즉 고통과 전투, 도전, 상처, 사랑의 밀어들과 연애, 가능치도 않은 갖가지 일들로 가득 차 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책에서 읽은 몽환적인 이야기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이야기는 없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엘시드, 즉 루이 디아스는 매우 훌륭한 기사지만, 단칼에 사나운 거인 둘을 두 동강 내버린 불타는 칼의 기사와는 견줄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보다는 베르나르도 델 카르피오를 높이 평가했는데, 그는 론세스바예스에게 마법에 걸린 롤랑을 죽여 없앴기 때문이었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에서...

 

----->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의 첫 구절들은 참으로 재미있다. 특별한 묘사가 아닌데도 , 그 인물을 설명하는 말인데도 빨려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나도 밤에 책 읽다가 이성을 잃어버린 비몽사몽. 머릿 속엔 온통 마법 같은 이야기들...그리고 고통, 상처, 사랑, 도전, 밀당의 상상들... 나의 현실은 밤에 읽은 책 속이냐 아니면 낮의 비몽사몽 생활 속이냐.... 4월 한달 동안 나는 기고만장 세상을 누비는 돈키호테.

[103]

많은 독자들은 허구와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허구적인 등장인물들 마치 현실의 사람인 것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 안나 카레니나를 위해 울다

[105]

뒤마 페레 왈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자)

역사학자들이 발굴해놓은 인물을 죽이는 인물을 창조하는 것은 소설가의 특권이다. 역사학자들은 유령에 지나지 않는 인물을 환기시키지만, 소설가들은 살과 피를 지닌 사람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106]

극의 전략이 관객의 눈물을 유도하는 데 목적을 두면 관객은 인문학적 소양이나 문화적 수준과 상관없이 울게 된다. 이런 반응은 미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감정 반응을 일으키지 못해도, 많은 삼류 영화나 싸구려 소설들은 그런 일을 너끈히 해 낸다.

 

[107]

사람들은 허구적 등장인물들을 보며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들의 행동을 자신의 것처럼 여긴다. 내러티브적 합의에 따라,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가능 세계를 마치 자신의 현실 세계인 양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삶을 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허구의 소설을 읽을 때만 일어나는건 아니다.

----> 집을 지어라. 건물을 올려라.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을 살기 시작하게 하라.

 

동일시와 투사 현상은 지극히 정상이며....똑같은 크기의 물체라는 걸 알면서도 어느 하나가 더 커 보이는 착시 현상이 존재한다면, 감정의 착각이라는 것도 없을 리 없지 않겠는가?

 

나는 친구에게 독자를 울리는 허구적 등장인물의 능력이 해당 인물의 특징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독자의 문화적 관습, 다시 말해서 독자가 문화적으로 갖는 기대치와 서사 전략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점 역시 보여주려 했다.

 

[108]

첫 번째 경우는 우리의 상상 속 세계이고, 두 번째 경우는 톨스토이가 설계한 세계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세상을 떠났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마치 악몽을 꾸다 깨어난 것처럼 크게 안도할 것이다. 반면 안나 카레니나가 죽었냐는 질물을 받으면 우리는 꼼짝없이 그렇다고 대답해야 한다. 가능 세계 안에서 안나가 자살을 감행한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 존재론 VS. 기호론

[110]

그런데 허구적 등장인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112]

사람들이 허구적 등장인물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이기 때문에, 존재론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추정도 할 수 없다. 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정신 의존적 대상, 즉 인지의 대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해서, 내 접근법은 존재론적이 아니라 기호론적이다.

 

@ 불완전한 가능 세계와 완전한 등장인물들

 

[115]

허구 세계는 최고 상태가 아닌 불완전 상태이다.

 

현실 세계에서 존은 파리에 산다는 서술이 참이라면, 존이 프랑스의 수도에 살며 밀라노보다는 북쪽에, 스톡홀름보다는 남쪽에 거주하는 것도 참이다. 이러한 전제들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가능 세계, 말하자면 믿음의 세계에서는 참이 아니다.

 

[117]

허구적 등장인물들은 미확정적이다는 말이 있다. , 우리가 알 수 있는 등장인물의 성격은 부분일 뿐이다. 반면 실존하는 인간은 확정적이고,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각각이 지닌 속성으로 단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존재론적 관점에서 참일지 몰라도 인식론적 관점에서는 거짓이다. 어떤 게인이나 어떤 종의 성질은 어쩌면 무한할 수 있고 따라서 모든 성질을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 반면 허구적 등장인물들의 속성은 텍스트의 서사 안에 엄격히 제한되기 때문에, 텍스트에 언급된 특징들만 그 인물의 정체성으로 간주하면 된다.

 

사실 나는 레오폴드 블룸(율리시스 주인공)은 알아도 내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삶이,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아버지의 생각들, 슬픔, 갈등, 나약함을 꽁꽁 싸매야 했던 아버지의 시간들이 어떠했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이제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다. 나는 아마 그러한 비밀과 어쩌면 내 아버지라는 존재의 근본적인 면면들도 영원히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뒤마가 묘사했던 역사학자들처럼, 나는 영원히 떠나간 사랑하는 유령에 대해 헛되이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에 비해 나는 레오폴드 블룸에 대해 알 만큼은 안다. 그리고 <율리시스>를 다시 읽을 때마다 그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된다.

----> 가족사, 자전적 소설을 쓰는 이유의 도입 부분에 적절한 힌트.

 

[119]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는 역사학자들은 어떤 단편적인 정보들이 의미가 있는 지 없는 지 몇 세기 도안 갑론을박을 할 수 있다. 일례로 나폴레옹의 역사를 다룰 대, 그가 워털루 전쟁을 치르기 전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많은 전기 작가들은 그렇게까지 세세한 일들을 무의미하다고 여긴다.

 

허구적 텍스트들은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심리 등을 해석하는 데 어떤 세부 정보들이 유의미하고 어떤 정보들이 지엽적인지 어느 정도 정확히 보여준다.

 

[121]

제임스 조이스 에호가들은 레오폴드 블룸이 레몬으로 만든 비누를 샀던 약국을 찾아 더블린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그렇게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약국에서 나도 1965년에 같은 비누를 구입했다.

----> 나의 소설도 실제 장소이거나 있음직한 장소들을 허구적 텍스트의 서사구조 속에 정말 사실처럼 설정할 것이다.

 

@ 허구적 주장 VS. 역사적 주장

[122]

안나 카니나에 대한 서술은 사실적 진리가 아닌 언어적 진리이고, 기호학적 관점에서 보면 내용의 차원이 아닌 표현의 차원과 관계된다.

 

[123]

허구적 등장인물들에 대해 참인 서술을 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텍스트에 기록되어 있고 텍스트는 음악의 악보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허구적 진술의 인식론적 기능

 

@ 변이적 작품 안의 변이적 개체들

[135]

뉘싱겐 남작이라는, 발자트의 소설 안에서 태어났고, 소설 밖에서도 어느 정도 생명력을 얻은 인물을 언급하면 된다. 뉘싱겐은 일부 미학적 이론에서 말하는 보편적 유형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특정한 허구적 등장인물들은 원작과도 독립적인 일종의 존재감을 획득한다.....많은 허구적 등장인물들이 그들에게 존재를 부여했던 작품 밖에서 살아가고있으며, 범위를 정하기가 굉장히 힘든 보편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중 어떤 등장인물들은 텍스트에서 텍스트로 옮겨 다니기도 한다.

 

우리가 집단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세기 동안 그들에게 감정을 투사하고, 그 인물들을 변이적개체로 변형 시켰기 때문이다.

 

[137]

변이적 등장인물에 익숙해지기 위해 원작을 읽을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은 <오디세이아>를 읽지 않아도 <율리시스>를 이해하고, <발간 망토>를 읽는 수백만 어린이들은 빨간 망토 이야기의 주요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샤를 페로와 그림형제의 글을 읽지 못했다.

 

@ 기호학적 대상으로서의 허구적 등장인물

[142]

허구적 등장인물은 확실히 기호학적 대상이다. 인물들이 지닌 어떤 속성들이 한 문화의 백과사전 안에 기록되고, 정해진 표현(단어나 심상, 혹은 다른 장치들)을 통해 전달된다는 뜻이다. 이런 속성들을 우리는 의미혹은 표현의 시니피에라고 부른다.

 

[146]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엉망진창이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선율의 패턴은 유지될 것이다. 또한 음표 몇 개가 빠져도 작품을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다.

 

[147]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멜로디 대신 허구적 등장인물을 분석할 때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156]

안나의 특성들

 

 

 

안나 카레니나 사람과 사건들이 정해진

시공간 안에 있는 것처럼보이는

톨스토이의 가능 세계

 

 

@ 다른 기호 대상들

[160]

많은 문화적 인물들은 기록 서사의 주인공이 됐고, 이와 대칭을 이루며 통속적 서사 속의 많은 주인공들은 신화적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과 몹시 흡사해졌다. 전설적인 영웅과 신화 속의 신, 문학적 등장인물, 그리고 종료적 실체들 사이의 경계는 보통 불 분명하다.

 

@ 허구적 등장인물이 지닌 윤리적 힘

[163]

위대한 비극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갖는 이유는 주인공들이 극악한 운명에서 도망치는 대신, 제 손으로 팠던 수렁의 깊은 심연 속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자기 앞에 놓인 운명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맹목적으로 달려간 곳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또렷이 볼 수 있지만 그들을 막지 못한다. 우리는 오이디푸스의 세계에 인지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에 대한 모든 사정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듯 현실 세계에 기생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허구적 등장 인물들은 현실 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164]

허구적 등장인물들은 불완전한 세계, 혹은 좀 더 불손하게 말해서 불구의 세계 안에 산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우리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도 빈번히 이러한 운명에 직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허구적 등장인물들이 그들의 세계를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사는 세계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우리의 실질적 세계관이 허구적 등장인물들의 세계관만큼 불완전할지도 모른다고 암시한다. 바로 이 때문에 유명한 허구적등장인물들은 사실적인간 조건의 최고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 소설의 등장인물과 그들을 마주보는 현실의 우리들..... 마치 메두사와 아테나가 서로를 마주 보듯, 서로 다른 세계에서 만날 수는 없어도 서로는 닮아 있다. 참으로 명문장이다. 등장인물과 현실인물에 관한...

 

 

 

 

4. 궁극의 리스트

 

진짜 좋은 책은 두 번, 세 번 읽어도 새로운 해석을 줄 수 있는 책이다.

 

@ 실용적 목록과 시적 목록

[168]

실용적 목록

쇼핑 목록이나 도서 목록, 어떤 장소 안의 물건 목록, 혹은 음식점 메뉴, 어휘 사전

 

[169]

시적목록

사람과 대상, 사건의 무한성을 안고 있다.

첫째, 작가가 대상의 양이 너무 방대하여 기록할 수 없다고 자각하기 때문

둘째, 끊임없는 열거를 통해 즐거움을 얻기 때문.

 

@ 열거의 수사학

[176]

나는 영화를 더 좋아한다.

나는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나는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나는 인간을 좋아하는 자신보다 인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나자신을 더 좋아한다.

나는 실이 꿰어진 바늘을 더 좋아한다.

나는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179]

중요한 것은 집요한 열거이다. 목록의 주제는 중요치 않다. 좋은 목록이 갖는 단 하나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의 관념과 기타등등의 현기증을 전달하는 것이다.

 

cf) 제임스 조이스<율리시스>-블룸의 부엌 찬장의 목록 (183p)

-----> 목록을 열거하면 상상력이 증폭되는 느낌을 받는다. 목록 만으로도 어떤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이유 때문에 에코는 목록 열거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이야기 속에서도 내가 놀았던 놀이 목록을 뽑아 보자.

 

@ 형태와 목록

@ 형언불가

@ 사물과 사람 그리고 장소에 관한 목록들

[201]

장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들은 목록의 기타 등등에 의지한다...... 디킨스는 <황폐한 집> 1장에서 자욱한 연무로 탁한 런던의 특징을 공들여 보여준다.

----> 읽어 보고 싶다... 황폐한 집....

 

블레즈 상드라르(<시베리아 횡단 산문>)는 시베리아 스텝 지대를 지나는 기차의 통통 소리를 묘사하며 다양한 장소들을 기억한다.

 

현기증 나는 목록들을 탁월하게, 또는 가장 과도하게 구사했던 시인으로 찬사를 받은 휘트먼(19c 미국 시인, 시집 <풀잎>은 종래의 전통적 시형을 벗어나,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을 찬미했다.)는 대상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자신의 모국을 찬양했다.

 

[202]

도끼가 날아 오른다!

울창한 숲이 부드러운 소를 낸다.

숲은 앞으로 고꾸라지고 다시 일어나

오두막, 천막, 층계참, 측량기,

도리깨, 쟁기, 곡괭이, 지렛대, ............, 액자 따위가 된다.

미국의 국회의사당과 미국의 주 의회의사당,

길고 장중한 열을 지어 거리에, 고아나 가난한 이나 병든 이들을 위한 병원에 있고

맨해튼의 기선과 모든 바를 누비고 다니는 범선에 있다.

-----> 열거 수사는 장자도 땅을 소리를 이야기하며 사용하였다. 열거수사, 나름의 매력이 있네~

 

cf) 제임스 조이스 <피네간의 경야> 리피 강이 흘러가는 느낌.......

 

[205]

궁극적으로 우리는 장소들의 장소인 전체 우주를 엿본다. 보르헤스는 소설 <알렙>에서 텅 빈 동굴의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목록, 즉 장소와 사람, 그리고 불온한 에피파니의 목록으로 이해한다.

----> 산부인과는 아기가 태어나는 곳이다. 미국 아기 영국 아기 태국 아기.......... 이 모든 아기들이 산부인과에서 태어나지만 한국 부산 이 동네 아기들은 모두 이곳 로터리 뱅뱅뱅 산부인과에서 태어난다.

 

그런데 산부인과는 아기가 죽어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숱한 아기들이 산부인과에서 태어나고 산부인과에서 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그리고 산부인과에서는 아기를 새롭게 점지 하기도 한다. 그 예전 삼신 할미가 점지 했던 것처럼..... 그 놈의 아들 때문에...숱한 딸들이 지워진다.. 하지만 꿋꿋하게 목숨을 지키고 태어나는 딸들이 있다. 아들을 위해 태어난 존재.

 

보르헤스처럼, 제임스 조이스처럼..........^^

 

[212]

에코의 <바우돌리도>

.....

부제는 흥분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부제는 트리폴리 백작 부인인 멜리장드의 머리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성배보다 브로셀리앙드의 기사들을 더 매혹시켰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의 입술이 어떤 모양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흥분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저는 그가 두어 번 발기했을 것이고 자신의 정액을 배설하는 기쁨을 맛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나는 이 세계에 우리의 체력을 소모시키는 향료들이 얼마나 넘쳐나는지를 그에게 이해시키려고 애썼습니다. 그 향료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알고 있던 향료의 이름과 이름만 알고 있는 향료를 생각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 이름들이 냄새로써 그를 취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부제에게 라벤더, 육계나무, 백단향, 사프란, 생강, 계피......이름을 열거했습니다. ......그는 마치 자신의 그 불쌍한 코가 그 모든 향내를 참을 수 없기라도 하듯이 얼굴을 매만졌습니다.

 

@ 분더카메른과 박물관

@ 속성의 목록에 의한 정의 vs 본질에 의한 정의

[223]

호메로스가 방패를 형태로 묘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사회의 생활상을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전사들을 그냥 열거만 한 까닭은 전사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형태는 성숙한 문화의 특징이고, 그 문화는 자신들이 성공적으로 탐험하고 정의한 세계를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목록은 원시적 문화의 전형이다. 원시적 문화는 아직 우주에 대한 상이 모호하고, 할 수 있는 한 우주의 많은 속성들을 항목으로 정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러한 항목들 사이에 위계적 관계를 세우지는 못한다.

 

[226]

본질에 의한 정의는 실체에 대해 사색하며 우리가 그 실체, 이를 테면 살아 있는 존재동물’, ‘식물혹은 광물들의 전부를 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비해 속성에 의한 정의는 우연한 정의이고, 우연은 무수하다고 말한다.

 

[227]

축적이나 일련의 속성에 의한 묘사는 사전이 아니라 일종의 백과사전을 전제로 한다. 그 백과사전은 절 대 끝이 없고, 주어진 문화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오직 부분적으로만 그 내용을 배우고 익힌다.

 

묘사를 할 때 속성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아직 종과 유의 위계가 형성되지 않은, 그리고 본질에 의한 정의를 갖지 못한 원시적 문화에 속해 있는 것이다.

-----> 산부인과 병원, 엄마, 아빠, 아이들에 대해서 묘사할 때 무수한 속성들을 늘어놓아보자. 대상을 정의하는 목록은 어지러워 보여도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규정하고 인식하는 방법에 더 가까워 보이니까.

 

에마누엘레 테사우로 왈 (<아리스토텔레스의 망원경>1665/ 이탈리아 수사학자)

 

알려진 정보들 사이의 알려지지 않은 관계를 발견하기 위한 방식으로 은유의 모델을 제시한다. 알려진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여 그 목록을 바탕으로 은유적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새로운 유사성과 연관성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이런 방식으로 테사우로는 범주의 색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범주의 색인은 방대한 사전처럼 보이지만 사실 일련의 우연적 속성들이다.

 

@ 과잉

[232]

오직 과잉에대한 취향만이 밤바티스타 바실레 같은 바로크 시대의 우화 작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다.

 

@ 혼돈스러운 열거

[248]

이렇게 해서 혼돈스러운 목록은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그리고 신사실주의가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했던 것처럼 형태를 해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 매스미디어 목록

@ , , .....

[257]

보르헤스가 기발하게 묘사한 바벨의 도서관에는 얼마나 많은 책이 있을까? 보르헤스의 도서관이 지닌 속성 중 하나는 25가지 철자 기호를 모든 경우의 수로 조합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258]

무한한 도서관이라는 꿈은 작가들에게도 무한한 제목의 목록을 써내려가게 만들었다.

그러한 무한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예는 존재하지 않는, 날조된 도서명들의 목록이다. 요컨대 날조된 것들은 무한히 상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267]

오늘날 명칭의 목록은 무한하다. www은 말 그대로 모든 목록들의 어머니이며, 정의상 무한하다. 거미줄이자 미궁처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 와이드 웹은 가장 신비주의적인 현기증을 선사한다. 또한 거의 완전히 사실적이며, 실제로 우리를 부유하고 전능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정보의 카탈로그들을 제공한다.

 

유일한 문제는 그러한 정보들의 어떤 요소가 현실 세계의 데이터이고, 어떤 요소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원드 와이드 웹 안에서는 더 이상 사실과 오류가 구분되지 않는다.

 

[271]

아멘.”

목록: 읽고 쓰는 즐거움. 이것이 바로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다.

 

 

미주 (일러두기)

 

옮긴이의 말

 

@에코만의 지적 유희가 선사하는 은밀한 매력

[295]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라는 제목은 중의적이다.

에코의 작품에서 발견한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빌려와 말한다면, 이중코드이다.

----> 여든 넘는 나이에 젊은 소설가라.... 에코의 언어들은 참으로 중첩적이고 중의적이다. 그에게는 제임스 조이스의 냄새가 나고 관계망적인 동양적 세계관을 엿 볼 수 있다. 장자를 닮기도 하고 또 보르헤스의 문체를 보는 것 같다. 언제나 작가들의 지적 유희를 훔쳐보는 재미는 솔솔하다... 멋진 경지다.

 

(*)

 

 

 

 

3. 책 소개와 평가 

 

 

(1) 목차와 전체적인 뼈대

 

1.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쓰기

2. 저자와 텍스트 그리고 해석자

3. 허구적 등장인물에 관하여

4. 궁극의 리스트

 

미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이 책은 젊은 소설가에코가 말하는 창작의 비밀에 대한고백이다.

하지만 에코는 단순히 작가의 창작 과정을 엿보게 하는 발상과 묘사 등 이야기 만드는 비법을 넘어서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 구조를 설계하고 보여준다. 에코는 과학적 저술과 문학적 작품의 경계가 무의미한 것임을 서사의 우주를 설계하며 텍스트가 무한 확장 해석되어가는 모습을 이야기 한다.

 

 

 

 

 

(2) 감동적인 절 또는 장

 

특히 3<허구적 등장인물에 관하여>가 인상적이다.

에코 자신이 소설가로서 정체성과 존재론적 실체를 고민하는 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이다. 그는 이 장에서 허구 세계를 소개하며 존재론적 의미까지 짚어본다. 소설 속의 허구적 인물과 현실 속의 실존 인물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의 인물들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현존의 독자들은 소설을 통하여 위안 받기도 하고 자신을 삶을 반추하기도 한다. 에코는 기호학적 대상으로서의 허구 세계를 소개하며 소설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아주 사적인고백을 하며 들려준다.

 

그리고 4<궁극적 리스트>는 나에게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풀어내는 어떤 영감을 주는 장이다. 에코는 이 장에서 서사와 열거 구조의 수사법을 사용하여 이른바 목록들을 현란하게 펼쳐낸다. 나는 이 장에서 에코만의 언어 연금술을 배운다. 그리고 몰래 훔쳐서 내 소설에 도용(?)하려고 준비 중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에코의 언어들은 참으로 중첩적이고 중의적이다. 그에게는 제임스 조이스의 냄새가 나고 관계망적인 동양적 세계관을 엿 볼 수 있다. 장자를 닮기도 하고 또 보르헤스의 문체를 보는 것 같다. 그가 차곡차곡 펼쳐내는 인류 역사와 지식, 문화에 대한 지적 유희는 정말 거대한 경지라서 책장을 넘기는 내내 그의 언어를 훔쳐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나는 그를 통해서 저자와 텍스트(소설 등)의 관계, 소설과 독자, 소설가와 독자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허구의 세계와 실제 세계의 관계를 소설가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독자들에 감동 또는 지적 만족을 주는 지를 배워간다.

 

나는 내가 쓰는 첫 소설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산부인과라는 공간’, ‘엄마라는 존재’, ‘아이라는 존재등을 서사와 열거 방식으로 나열하면서, 구체적 실체들의 목록으로 보편적 특징을 끌어내는 묘사 글쓰기를 시도해 볼 것이다. 이른바, ‘젊은 소설가 에코 오빠가 이 책을 통해 알려준 소설 묘사의 팁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난기 어린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나는 그의 상상력 세계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인류 역사 문화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즐겁게 읽고 쓰고 만끽하는 에코처럼 나도 그의 영감을 빌리며 나만의 유쾌한 세상을 창조해 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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