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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8일 11시 53분 등록

No 46

2014.03.17

Oh! 미경

 

                                                                        도형, 그림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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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잉그리트 리텔. 1935~ )

대학에서 기독교 신학과 문예학, 사회심리학을 전공했고 취리히의 융 연구소에서 분석심리학을 공부했다. 1984년부터 독일 콘스탄츠에서 심리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이자 미술치료사이다. 융 연구소 강사이자 심리분석가, 카셀대학교 심리학과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1992년부터 프랑크푸르트대학교 종교심리학과 객원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도형, 그림의 심리학> 이외에 <색채>, <그림> <영혼이 깃든 장소>등이 있다.

 

2. 마음에 와 닿은 글

 

[5-8] 머리말

원은 광대함과 아늑함을 동시에 보장한다. 원은 이리저리 두루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원은 밖에서 안으로 밟아 들어가면 정신을 집중하게 하고 중심을 찾게 한다. 반대로 안에서 밖으로 밟아 나가면 원은 점점 더 큰 공간을 열어주고 동심원을 만들며, 결국에는 우주를 상징하는 상이 된다. 원은 에워싸여 있음을 의미한다.

 

모서리를 가진 사각형은 내가, 지금, 여기에, 나를 위해서 만든 삶의 영역을 상징한다. 사각혀은 정착하라고 권하고 들판을 둘러싸서 집의 평면도를 이룬다. 사각형은 제한되어 있음. 경계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삼각형은 서로 연결되어 긴장을 이루고 있는 동형이지만 다른 구도에서는 찢어졌을수도 있는 힘들이 서로 균형을 잡게 하는 능력이 있는 도형이다. 삼각형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나선은 기본 도형 가운데 가장 자유롭다. 나선에서는 삶이 전개되고 발전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운명이 펼쳐지고 다시 접한다. 나선은 자신을 넘어섬을 의미한다.

 

십자에서는 어떤 결정이 내려진다. 하늘의 방향, 즉 동서남북,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 같은 힘의 장들이 여기서 만난다. 십자는 힘들의 긴장 영역 안에서 우리가 서있는 장소를 표시하며 복잡한 현실을 이겨내고 견뎌내는 것, 저항하면서 전체가 되는 것, 수직과 수평 사이에 펼쳐져 있음을 의미한다.

 

삶의 기본적인 형태는 원, 십자, 삼각형, 사각형, 나선이다. 이런 도형들 속에는 전체로서의 삶에 대한 자세, 삶의 방식과 스타일이 반영되어 있다.

 

십자를 그리면서 우리는 대립과 긴장을 체험하고 십자를 통해 그것을 해소하고 이겨내려 한다. 십자는 힘과 감정, 그리고 요구가 서로 다툴 때 나아갈 방향을 표시하는 아주 오래된 형태다.

원을 그리며서 우리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우리가 그리는 원은 포괄하는 것, 그 안에 있는 것을 숨기고 보호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보다 더 큰 연관성과 범위 안에 두는 어떤 것이다.

 

삼각형을 형상화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두 극 사이의 긴장에 처하게 된다. 즉 모든 삼각관게가 뜻하는 바인 분열과정을 치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삼각형이 긴장으로부터 균형을, 양극적인 질서로부터 하나의 변화무쌍한 힘의 장을 구축하는 도형임을 알게 된다.

나선을 그리면서 우리는 내적인 긴장을 좀 더 역동적이고 창조적으로 해소하고 이것을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자유롭게 펼쳐지며 전개되는 상승 곡선으로 바꾼다.

 

사각형을 그리면서 우리는 결국 말뚝을 박아서 우리 자신의 공간을 경계짓고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실현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 어쩌면 크나큰 정신적 동요를 겪은 후에- 삶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들을 모두 포괄하는 전체를 다시 포착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원과 십자, 삼각형과 사각형을 서로 결합시키고 또 가능하다면 심지어 나선까지도 끌어들이는 어떤 형태를 그릴 수 있다. 이 형태는 세계 전체와 영혼 전체를 나타내는 전래의 상징들과 비슷한데 동양에서는 이를 ‘만다라’라고 부른다. 전체를 나타내는 이런 상들을 표시하는 이 용어는 유럽에서도 받아들여졌다. 이 단어의 의미는 구체적으로는 전체의 핵으로서의 편도에서부터 시작해서 타원형 후광 또는 만다라 속에 신성이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영역에 이른다.

나선은 진화의 상징, 미래를 열어갈 우주적 인류의 새로운 의식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런 도형이 현대 예술과 무의식, 꿈과 상상을 통해 갖는 중요성도 지적하고 싶다.

 

[10-11]

예를 들어 무형과 혼돈을 두려워하는 사각형은 강박적인 유형의 사람이다. 반대로 나선은 붙잡히고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신경과민 환자다. 원은 침울한 사람으로 무엇보다도 경계를 설정하기가 힘들어서, 즉 고립과 방치 때문에 괴로워한다. 십자는 정신분열 환자로 세계와 자기 속의 분열을 유난히 민감하고 고통스럽게 체험하고 너무 빨리 조화를 이루거나 어떤 사람이나 그룹에게 너무 빨리 받아들여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때그때 주어진 형태는 치유력이 있는 형태, 치유하는 형태일수도 있다. 침울한 사람에게 원은 보호받으며 에워싸여 있다는 느낌을 주고, 정신분열 환자에게 십자는 자유로이 펼쳐져 있다는 느낌을 주며, 강박이 있는 사람에게 사각형은 제한되어 있다는 느낌을, 신경과민 환자에게 나선은 그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자신을 넘어서 상승하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기본 형태들이 서로 결합해서 만들어진 만라라 형상은 처음에 고수하게 되는 일방적인 자세를 버리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자세를 위하려는 욕구를 반영하고 잇다. 이런 자세는 치유하는 작용을 한다.

 

이런 기하학적인 기본 도형은 우리의 존재, 그리고 그것이 가진 두려움과 성취 가능성이 함께 반영되어 있는 기본 형태다.

유대 민족의 운명을 함께 겪었던 작가 넬리 작스(1891-1970, 스웨덴의 여류 시인, 유대인으로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시극<엘리>로 196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이를 다음과 같이 경험한다.

 

고통의 굽은 선

신이 불붙인 우주 공간의 기하학을

따라 더듬으며

늘 당신에게로 향하는 빛의 흔적을 좇습니다.

-넬리 작스, <무진으로의 여행, Fahrt ins Staublose>에서

 

1. 사각형- 경계 안에 있음

 

[18-20] 사각형이라는 형상

네 개의 직각과 길이가 같은 가로와 세로를 가진 정사각형은 쉬고 있는, 말하자면 정적이고 비역동적인 도형이다. 모든 무한한 것, 자유로운 것과는 반대로 정사각형은 한계가 있는, 떼어내어진 들판이라는 느낌을 준다. 정사각형,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연상은 밭이나 토지, 광장이다. 이것은 원래 대지에 새겨 넣어진 것이어서 대지의 평온함과 무거움, 단단함과 상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사각형은 하늘의 네 방향을 포함하여 모든 숫자 4와 관련이 있다. 사각형을 두루 돌아다니려면 방향을 네 번 바꾸어야 하며 네 귀퉁이에는 각각 90도로 아주 분명한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사각형은 이간이 대지를 소유하는 방법, 즉 토지를 측량하고 말뚝을 박고 땅을 일구고 파내는 것과 많은 관계가 있다.

 

부정적 의미 - 사각형은 포위하기와 벽 쌓기

긍정적 의미 - 담을 친다. 정원에 울타리를 치는 것에서부터 성스러운 공간을 둘러싸는 것.

‘테메노스Temenos,그리스어어로 ’신전‘이라는 뜻.

'잘라내다' 라는 뜻의 단어 temne에서 유래하며 신전 주위의 성스러운 구역을 의미. 이런 구역은 대부분 사람 키보다 높은 장벽이나 기둥들이 서 있는 공화당 또는 울타리고 둘러싸여 있다. 칼융은 개인의 내면에 만들어 가지는 심리적 공간을 뜻하는 용어로 쓰기도 했다.

 

동양의 명상 그림에서 정사각형은 현세적인 틀, 즉 만다라의 내부에 있는 원형의 성스러운 구역을 둘러싸는 틀을 묘사하기도 한다. 사각형은 넓은 토대 위에서 쉬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안정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21]자연적 형태와 상징적 형태로서의 사각형

사각형의 터에 대한 경험. 화단에 말뚝을 박아 경계를 짓고 마지막으로 그 주위를 파낼 때, 토지를 측량하고 미래의 집터 위를 걸어다녀보고 기초가 되는 주춧돌을 놓기 위해 여기서 흙을 파낼 때 그것을 경험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하는 것, 그 위에 정착하는 것, 주위 환경에서 분리되는 행위다.

 

[22]

마리틴 하이데거가 명명한 ‘사방(四方), 후기 하이데거 철학에서 하늘과 땅, 죽을 자들(인간), 신적인 것들이 통일을 이루고 있는 모습, 말하자면 세계를 뜻하는 용어)은 종종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신성한 공간, 성스러운 광장이 된다. 절은 앞뜰부터 이미 신성하다. 진짜 신성한 곳은 가장 안쪽의 사각형, 즉 중심들이다. 특히 신성한 광장이나 장소는 정사각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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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형으로 된 사원의 뜰은 가장 신성한 것, 즉 메카에 있는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정육면체인 카바Kaaba, 이슬람교의 사각형 영묘)를 감싸고 있다. 해마다 찾아드는 수많은 순례자들은 이곳을 엄숙하게 걸어 다닌다. 하늘에서 보면 순례자들의 행렬은 거의 기하학적인 그림인 동시에 그 엄격함이나 역동성으로 보아 아주 매력적인 그림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나타내는 유명한 관용구다.

모든 게임에서 정육면체와 정사각형은 항상 구체화, 저것이 아닌 바로 이것, 확고한 것, 정해진 것과 관계가 있다. 네 개의 모서리는 이 형상에 윤곽을 주고 특징을 부여하여 이들을 보지 않거나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25]

피라미드가 4와 3. 즉 사각형이 삼각형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와 형태를 하고 있다. 대지라는 사방(四方)위에 하늘을 찌르는 ‘남성적인 삼각형’이 솟아 있는데 이것은 불과 빛의 표시이기도 하다. 정사각형은 인간의 본성에서 연유하는 형태다.

9세기에 노르웨이 서부에서 만들어진 접시에 그려진 인간의 형상에서 볼 수 있듯이. 정사각형은 인간의 몸에 대한 상징(가슴과 뱃속의 공간에 대한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인간의 중심, 복강이 있는 곳에 정사각형이 있다. 이것은 다시 체스판 문형과 소용돌이 문형으로 장식되어 있는 여덟 개의 정사각형 구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사각형을 특히 깊이 있게 관조한 것은 피타고라스 학파였다. 그들은 정사각형을 네 가지 요소가 합일하여 작용하는 것의 상징으로 보았고 아프로디테, 데메테르, 헤스티아(그리스 신화에서 불과 화덕을 주재하는 여신), 헤라가 동시에 작용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즉 이들은 모두 여신이며, 이들을 합친 것이 신들의 어머니인 레아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런 형태가 정사각형의 바탕에 깔려 있는 4라는 숫자에 언제나 포함되어 있는 여성성의 상징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이 연관 관계는 여러 모로 입증된다. 칼 융에 따르면 사각형은 물질과 육체, 그리고 현실을 상징한다.

 

정육면체라는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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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다섯 개의 플라톤 입체(각 면이 합동인 정다각형이고 꼭짓점 모양이 동일한 다면체,

플라톤은 이 입체 5개를 고대의 4원소에 대응시켜서

정사면체는 불, 정육면체는 흙, 정팔면체는 공기, 정이십면체는 물, 그리고 정십이면체는 우주를 상징한다고 믿었다.)

장사각형과 비교해 보았을 때 정육면체는 수평적인 것, 길이, 폭 등 인간적인 차원에 높이라는 차원이 보태짐으로써 초월적인 것과 관련된다. 가장 오래된 정육면체는(종종 사다리꼴) 형태 가운데 하나가 제단 형상일 것이다.

이렇듯 정육면체는 사각형 이상으로, 확고한 것, 변화될 수 없는 것, 그리고 경우에 따라 영원한 것에 대한 상징이 된다.

 

어떻게 뒤집어도 이것은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서 있다. ”

 

[31] 사각형의 실존적, 심리학적 의미

인간을 특별한 방식으로 특징짓는 것은 ‘거주한다’, 즉 자신의 고향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각형은 경계짓기, 소유하기, 하지만 그와 더불어 친숙해지기와도 특히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만의 공간, 자신에게 적합한 안전한 공간을 가지려는 욕구, 주거에 대한 욕구, 소유물에 욕구도 사각형의 형태로 파악한다. 그래서 이런 욕구는 자신의 정원과 집으로 형상화한다. 물론 더 나아가 언어성, 의미 부여에 대한 욕구도 존재한다.

“인간은 현세의 사방(四方)안에서 시인처럼 산다” - 하이데거

 

[41]

정사각형은 또한 중심을 향하라고 요구한다. 정사각형은 특히 힌두교와 불교 지역에서 명상용 만다라의 기본 형태이다. 여기서 정사각형은, 대개 원의 형태로 그려지는 상징적인 핵심을 담고 있는, 울타리를 이루는 외부 공간을 이룬다.

[46-47]

정사각형을 자기실현이라는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네 개의 각이 있기 때문에 정사각형은 늘 우리가 사방으로 걸어야만 실현되고 체득될 수 있는 차원이다. 그리하여 정사각형은 스스로의 몸에 새긴 ‘자기’라고 불러도 좋은 어떤 것에 대한 상징이 된다. 즉 이것은 일상적 삶에서 바로 이 삶의 저항, 각 모서리를 극복하면서 자신을 실현하는 자기의 경향이다.

 

2. 십자-펼쳐져 있음

[62] 십자라는 형상

십자 형태의 개방성, 네 개의 살바팔이 자유로운 펼쳐짐이다.

십자는 인간처럼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 머리와 발, 속박과 자유, 정신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 아이에서 펼쳐져 있다. 십자는 건강에 찬 대립이 통합한다는 기호이며 이런 대립을 하나의 포괄적인 형태로 요약한다. 특히 두 개의 삽자 팔에서 출발하면 이것은 두 개의 서로 대립되는 영역, 하늘과 땅 또는 공간과 시간의 삼투를 표시하는 기호가 될 수도 있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십자에 십자 중심까지를 포함해서 숫자 5와 (그리하여 숫자 10과도 연관되면서) 연결시켰다.

[62]자연적 형태와 상징적 형태로서의 십자

사각형과 반대로 십자는 자연에 아주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십자화과 식물의 꽃차례에서 나타나며 식물의 잎과 가지가 갈라지는 곳, 나무둥치와 가지가 갈라지는 곳에서 나타난다.

 

[64]

십자 속에서는 중심으로 모이는 힘과 중심에서 벗어나는 힘들이 합쳐진다. 이것은 사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지만 또한 네 방향 모두를 중심에 모을 수도 있다.

[69]

“이것은 중심점, 능동성과 수동성의 균형, 완전한 인간의 상징이다”

[79]

 

“왜냐하면 인간은 십자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살로 된 그의 육체는 골격이라는 십자에 매달려 있다. 십자는 그 때문에 그의 육체적인 척도이며, 정신이 육체 속에서 모사되기 때문에 그의 정신적인 척도이기도 하다.”

[93]요약

수평선은 일종의 삶의 무대와 비슷하다. 이 무대 위에서는 모든 요소와 풍경, 인물이 똑같이 나란히 서 있을 자격이 있다. 수평성은 연결하는 어떤 것, 접속하는 어떤 것을 갖고 있으며 이로써 “존재의 비너스적인 결속력”을 갖고 잇다.

수평선 속에는 여성적인 연결성과 모성적인 보호설이 표현되어 있다. 동시에 여성적인 인생관도 묘사되어 있다. 수평선은 십자를 떠받치는 요소이며 안정을 취하고 있고 조화를 이루고 잇다. 수평선은 그 위에서 자라는 모든 것에 영양분을 주고 성장하게 해주는 대지와 비슷하며 서로 다른 여러 아이들을 재능과 외모에 상관없이 포용하고 격려하는 어머니와도 같다. 수평적인 것은 사물이 나란히 놓여 있는 평범함이나 일상적인 것과 유사하다. 수평적인 것의 은유적 가치는 우리가 모성적이라고 느끼는 어떤 것을 묘사하는데 있다.

 

반대로 수직적인 선은 엄청난 급경사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이것은 수직선이다. 수직석은 높이와 깊이를 서로 연결하기 때문에 번개의 내리침이나 폭포수의 떨어짐, 또는 높은 것에서부터 보면 로켓 발사 같은 것을 담고 있다.

폭넓게 진을 치고 있는 수평선에 비해서 수직선은 점 모양의 출발점, 로켓 발사대와 같은 것만을 갖고 있다. 수직선에 적합한 것은 높은 활동성과 역동성이다. 수직선은 자신을 넘어서려는 모든 것, 늘 새롭게 변형되면서 이미 도달된 것을 넘어서 자라나는 것에 대한 비유다. 남성적이고 창조적인 원리가 이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는 밀고 앞으로 나아간다. 평등, 화해 등 여성적 정서를 가진 여성적인 수평과는 반대로 이것은 높은 가치 느낌을 표현하며 가치를 계단식으로 배열하며 점점 더 커지는 높이와 자유의 위계질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감각적이고 정신적인 것, 또는 신적인 것과의 연관성을 수직선에만 귀속시키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수평적인 것 역시 초월적인 것을 내재적으로 추구하고 갈구하며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것을 세계의 공간 속에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에는 수평적인 것 속에서의 진보란 없으며, 언제나 수직적인 것의 새로운 돌파가 있을 뿐이다.”

 

3. 삼각형 - 연관되어 있음

[102]삼각형이라는 형상

삼각형은 다각형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형상이다. 이것은 이로부터 모든 다른 기본 형태가 분화될 수 있는 기본 형태다. 하나의 밑변과 이 밑변을 마치 ‘덮고 있는’듯한 두 개의 대각선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은 특히 역동적인 형태다. 이런 역동성은 3이라는 숫자가 갖는 리듬적인 원리 덕분이며, 특히 그들의 형태 특성 때문에 화살처럼 위, 또는 아래를 향해 내달리는 대각선 덕분이다. 하지만 삼각형의 역동성은 또한 세 개의 각 덕분이기도 하다. 삼각형의 각의 합은 180도이며 정삼각형에서 각각의 각은 60도다.

나아가 임의의 많은 삼각형의 변형이 있다. 길이가 같지 않은 변과 크기가 같지 않은 각을 가진 삼각형이 있다. 이런 삼각형의 각은 에를 들어 두 개의 심한 예각과 하나의 둔각으로 이루어진다. 예각은 그러면서 쐐기 같은 형태를 생기게 하는데 이는 그때그때의 방향에서 외부를 향해 나아가는 것 같다. 둔각에서 서로 마주치는 대각선들은 반대로 오히려 보호하는 지붕 형상을 이룬다. 모든 삼각형에 고유한 것이 균형이다.

 

삼각형에는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이 면밀한 방식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정적인 성질은 밑변에서 생겨난다. 정적인 성질은 밑변에서 생겨난다. 동적인 성질은 서로 다가서는 두 개의 사선에서 생겨난다. 삼각형은 그때그때 특정한 폭과 특정한 높이라는 기초가 있다. 이 두 개의 양이 서로에 대해 이루는 관계가 삼각형이 위로 솟아오르면서 서 있는 인상을 주는지, 아니면 넓게 토대 위에서 쉬고 있는 인상을 주는지를 결정한다. 천막이나 합각지둥, 피라미드 옆면처럼 꼭대기가 위쪽을 향해 서 있는 등변삼각형은 역동성을 위쪽으로, 바깥쪽을 발산한다.

---> 점과 점이 이어지면 선이 된다. 선과 선이 이어지면 면이 된다. 면과 면이 이어지면 입체가 이루어진다. 사람의 만남이나 인연도 이와 같은 도형이다.

 

[106]

삼각형은 구조적인 형상으로서 인간이나 동물의 많은 관절 형태에서, 나무줄기에서 가지가 시작되는 곳이나 꽃대에서 꽃잎이 생겨나는 곳에서 나타난다. 산은 종종 삼각형과 비슷하며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돌도 그렇다. 하지만 사각형과 마찬가지로 삼각형 역시 특히 인간에 의해 구조를 얻은 형태다. 물론 사각형과 달리 삼각형에서 각의 크기엔 선택, 변동 가능성은 아주 크다.

일찍이 피타고라스는 삼각형, 특히 정삼각형을 신성한 형상으로 간주했다. 또한 이후에 그리스 도교의 삼위일체 표상과의 연관성은 삼각형을 삼위일체인 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예전에 수많은 민족들은 숫자 3을 하나와 둘의 합의로, 그럼으로써 중세의 상징으로 어겼다. 3은 땅의 숫자인 4와는 반대로 하늘, 즉 천상의 숫자로 통했다. 4가 땅 상징과의 연관 하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숫자로 여겨진다면, 3은 서양의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적인 원리와 연결되어 있다.

 

이런 확고한 분류가 얼마나 잘못된 것일 수 있는지는 여성적인 것, 그러니까 여성적인 신성과 3이라는 숫자가 연결되어 있는 상징이 많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꼭대기를 위로 향하고 있는 남성적인 삼각형이 수많은 민족 사이에서 불과 남성적 생산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듯이, 꼭대기를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여성적인 삼각형은 예로부터 물과 여성적인 성(性)의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08]

특히 힌두교와 탄트리즘의 영역에서는 꼭대기를 아래로 향하고 있는 삼각형이 동시에 요니, 여성의 성기, 즉 어머니의 입, 어머니의 품, 그리고 어머니의 출산력 등 여성의 모든 성적인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거의 언제나 그 안에 담겨 있는 점이나 한가운데의 약간 작은 삼각형은 수정된 난자, 어머니의 품에서 생성되는 생명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118-119]실존적, 심리학적 의미

인간이 그 에서 실존적으로 존재하는 가장 근원적인 삼각형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이가 서로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형상화하는 삼각형이다. 이 삼각형 속에 서 있다는 것은 서로가 긴장 관계 속에서 서 있음을 의미하지만, 그런 동시에 또한 보완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음도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아이들뿐만 아니라 원래의 삼각관계의 다른 두 개에 속하는 인물들 각자도 그때그때 다른 두 사람에 속하는 두 개의 연대 층위를 갖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늘 삼각관계 속에 있고 삼각관계는 우리에게 다소 강한 긴장을 주거나 자유를 주기도 한다.

 

[130-131]

칼 융은 숫자 4와 관계하고 있는 숫자 3의 상징에 대해서 아주 깊이 있게 파고들어 탐구했다. 그는 숫자의 상징과 그것에 상응하는 기하학적인 형상의 상징을 다룰 때에, 결코 유희적인 명상들만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연관성들을 해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를 제시했다. 이는 문화사나 종교사적으로도 적절한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초래한 심리적 결과를 종교 심리학적으로 연구하던 융은 환자들이 언제나, 남성적이라고 이해되는 숫자 3과 이와 연관된 남성적인 가치 표상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융은 육체, 자연, 물질과의 연관성 등 여성적인 가치가 신적인 것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따라서 이것이 인간적인 가치의 영역에서 철저히 냉대받고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상응하는, 남성적으로 강조된 입장의 일면성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신경증적인 비정상발육, 심한 대인장애의 원인이 되고 장애를 가진 인간들은 종종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이 주제와 관련된 융의 자료들은 이러한 심리치료적인 임상경험에서 수집된 것들이다.

 

4. 원- 에워싸여 있음

[141]원이라는 형상

둥근 것이라는 이 형상이 근원 체험에 속하는 것이 포옹의 몸짓이다. 이로써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엄마는 아이를 사랑스럽게 끌어안는다. 원 형태는 수평선의 완전한 동그라미를 모방한다. 인간은 주위를 돌아보면서, 몸을 돌리면서 이를 경험한다. 그리하여 원은 또한 지구나 더 나아가 별이 총총히 박힌 하늘인 우주의 둥근 전체이며, 칼 야스퍼스의 말을 빌자면 “포괄하는 것”을 모사한다. 원은 중심, 하나의 분명한 중심을 형성한다. 원을 관찰하는 것은 또한 관찰하는 이를 집중케 한다. 그래서 원은 가장 오래된 명상그림 가운데 하나다.

 

원은 확장된 점으로, 동질적인 것, 완전한 것의 상징으로 통한다. 또한 원은 바깥, 즉 제외된 것, 경계 밖에 있는 것, 통합되지 않은 것, 속하지 않은 것을 나타낸다.

원 안에 두고 싶은 것이 뭘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우리는 한 인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는 돌이나 양초 따위의 연결시키는 상징이나 꽃다발 같은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원이라는 형상은 중요한 어떤 것, 성스러운 어떤 것을 빙 둘러서 포괄하는 그의 기능에 상응한다. 그래서 석기시대 이후로 돌로 만든 원이 이 일을 했다. 원 모양으로 늘어선, 성스러운 거석인 스톤헨지는 그밖에도 외부의 동심원이라는 보호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원형으로 조성된 옛 도시들의 성벽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무한대로 뻗어가는 선인 원은 끝이 없는 모든 것을 상징할 수 있다. 그래서 이는 동시에 시간의 상징이며 영원과 무한성의 상징이다. 자신의 꼬리를 물고 도는 뱀을 표시하는 이른바 우로보스는 동시에 영원한 희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원의 삼차원적인 형상인 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또 다른 모든 기하학적이고 입체기하학적인 규칙적인 형상들과 물체들은 원으로부터 형성될 수 있거나 원으로 둘러싸일 수 있다. 그래서 원은 흡사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원초적인 알”과 같다.

다음과 같은 신학의 오래된 한 문장도 이 일을 가리키고 있다.

 

“신은 구이며, 그 중심은 도처에 있다. 주변은 없다.”

돌로 된 원형으로 직접 땅 위에 놓여 있지 않다면, 원은 그 형태로 보자면 어떤 가벼운 것, 천상적인 것, 자유로운 것, 떠다니는 것에 적합하다. 구는 이동성이 있고 유동적이다. 구는 천체들이 우주에서 순환하듯이 굴러가고 순환한다.

원의 선이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원과 구는 삶과 우주의 시간적인 경과와 순환과 연관되어 있다. 이들은 가장 오래된, 시간의 법칙을 증명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자신 속에 다시 받아들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새로이 생산하고 출산한다.

 

[143]자연적 형태와 상징적 형태로서의 원

전체적인 형상이 둥근 단순한 생명체가 있다. 해파리나 성게, 그리고 태평양 연안에서 발견되는 조개류인 ‘실버 달러 ’등등이 그것이다. 딸기류와 수많은 과일(사과, 오렌지)도 둥글다. 원, 동그라미는 거의 모든 유기적인 형태, 모든 유기체에서 언제나 나타난다. 꽃차레에서, 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꽃턱에서- 예를 들어 해바라기- 나타나고 또 인간과 대부분의 동물의 눈의 홍채와 눈동자에서도 나타난다. 인간의 머리도 둥글다. 또 젖꽃판을 가진 가슴, 배, 특히 임신한 어머니의 몸도 둥글다.

 

더 나아가 시냇물 속의 돌, 해변의 돌처럼, 물과 바람의 힘에 닳은 모든 것이 둥글게 된다.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눈덩이처럼 회전하는 힘에 내맡겨진 모든 물체도 역시 둥글게 될 것이다. 지구는 둥글고 우주의 행성들도 끊임없는 회전과 원심력과 구심력에 의해 형상화되어 둥글다. 우리 눈에는 보름달도 둥글고 빛나는 태양도 둥글다. 둥근 것, 원에 속하는 것은 역동성, 움직임, 회전, 특히 춤이다. 우리는 팔다리를 흔들 수 있고 또 몸을 돌리고 원을 그리는 움직임을 팔과 손으로 행할 수 있다. 심지어 팔다리 자체가 구상관절로 이루어져 있다.

 

둥근 것의 상징에 속하는 몸짓은 포옹, 감싸안기 등이다. 이것은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남자와 여자 사이의 원형적인 몸짓이다. 접촉하고 숨겨주고 보호하고 보존하며 어떤 것을 잉태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둥근 것, 구의 상징 범위에 속한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이것에 속하는 것이 어머니의 상징, 여성적인 것의 상징이다. 마지막으로 이는 바유적인 의미에서 ‘둥근 전체’, ‘완전한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며 이렇게 해서 인간의 자아를 포괄하는 보다 더 큰 자기의 상징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신의 상징이 될 수 있다.

 

[144-145]

하늘을 향해 둥글게 열린 반구를 가진 건축물의 가장 좋은 예로는 앞에서도 언급했던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들 수 있다. 비잔틴의 영향을 받은 동방 교회의 건물들과 이슬람 사원들도 중앙 집중식 반구 건축물을 갖고 있으며 이로써 둥근 것의 상징을 우주와 영원성의 모사로서, 어머니의 상징과 연결해서, 보유하고 있다. 이런 건축 형태의 모범이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인데, 그것은 그 엄청나게 큰 반구로부터 오늘날까지도 둥근 것이 갖는 어떤 포괄적인 것, 숨기는 것을 발산한다.

이것은 전체의 상징이며 또한 ‘성스러운 지혜’, 여성적인 것이 갖는 원초적인 힘의 상징에 봉헌되었다. 남성적인 요소가 지배적이었던 이슬람도 이 유일신주가 가진 폭넓음을 모든 것을 다 끌어안는, 원래는 여성적인 반구형 사원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몇몇 사원이 이스탄불에 있다. 이 건축물들은 서구의 방문자들에게 광대함, 고요함과 집중을 발산하며 그들을 명상과 자기 반성으로 초대한다.

 

원이라는 상징은 종종 정사각형이라는 상징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정사각형이 대지, 즉 제한을 가진 현세적인 것의 상징으로 통한다면 원은 하늘, 아무런 경계가 없는 우주적인 것의 상징으로 통한다. 물질, 땅의 요소와 정신적인 것, 하늘과 공기의 요소 간의 대립도 정사각형과 원의 대립으로 표현될 수 있다. 모서리가 있는 정사각형이 현실의 여기와 지금을 보여준다면 원은 영원에 해당된다.

 

[147]

원이 무한의 상징으로 통하는 것은 그것이 무한한 하나의 선으로부터 형성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징의 역사에서 이 선은 때때로 자신의 꼬리를 물고 도는 뱀, 즉 “우르보로스”의 형상으로 묘사된다.

뱀이 만든 고리라는 이 상징은 의식과 무의식이 분리되지 않음, 원형적 공색의 견지, 1차적 과정 속에 잡혀 있음을- 이것은 아직도 여전히 존재한다- 의미하기는 한다. 하지만 전체 표면으로서의 원은 늘 충만함, 완전성, 의식의 전체성을 묘사한다.

 

시간의 상징으로서의 원은 바퀴, 태양 바퀴의 상징뿐만 아니라 바퀴 십자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바퀴라는 기호 속에서 원은 순환하는 대지의 움직임과 재출발, 재창조를 묘사하며 이로써 모든 현세적인 것이 겪어야 하는 변화를 묘사한다. 인간이 얽혀 들어가 있거나 매달려 있는 행운의 바퀴는 동시에 무상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시간을 분할하기 위해 원을 360도로 나누었다.

 

[148-149]

반지는 관계의 상징으로 특히 중요성을 가진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형상, 균일한 형태는 같은 것의 영원한 회귀, 즉 동맹과 관계의 영원한 지속을 - 이는 반지를 줄 때 봉인된다. - 상징하는 데 적합하다. 또한 반지는 내부와 외부를 만드는 경계의 표시로써 결속과 추방의 상징으로도 특히 적합하다. 이 형상은 훨씬 더 오래된 행위인 실을 묶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반지는 일찌감치 동맹, 서약, 공동체, 공동 운명의 표시가 되었다.

 

아주 초기부터 소유권은 봉인 반지로 날인되었다. 결혼반지 역시 이런 연관 아래서 등장한다는 것은 숙고할 만하다. 이는 깨질 수 없는 결속의 약속인 동시에 반지의 닫혀 있음을 통해서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대한 방어의 마법도 담고 있다.

반지는 가장 오래된 무덤의 부장품에 속한다. 사람들은 반지를 특히 연결시키는 힘을 가진 보호 부적으로 이해했다. 반지의 형태는 무한성과 위대한 전체에 대한 연관성을 만들어낸다. 반지는 거룩하다.

 

원은 또한 그 집중된 형태를 통해, 에너지들의 집약을 묘사하는 데에도 적합하다. 이런 점에서 또한 원의 마력은 긍정적인 것을 집약하고 부정적인 것, ‘약’을 배제하는 형태가 가진 마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반지는 속박뿐만 아니라 특별한 자유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반지가 그 소유자들을 보다 더 큰 전체와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의 자유로운 시민들은 그들이 공동체의 일원임을 나타내는 반지를 끼고 있었다. 특별한 반지는 수도회나 동맹의 회원임을 나타낸다. 서로 결합하는 한 쌍의 남녀를 상징하는 약혼반지도 그러하다. 영주나 주교, 교황은 항상 반지를 낀다. 이와는 반대로 후광의 고리 내지 원은 초월적인 것과의 연관을 상징한다.

 

[151]

원이나 구의 또 다른 상징에 속하는 것이 공이다. 공은 처음부터 태양과 연관되었다.

놀이용 공, 특히 황금색 공은 언제나 한 개인의 ‘둥근 전체’를 상징한다. 이것은 늘 움직이고 있으며 삶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의 발전을 추구한다. 비록 자주 길을 돌아가거나 사고처럼 보이는 것을 겪기도 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림 동와 <개구리 왕자>에서 공주의 황금색 공은 우물 속으로 사라지고 <아이젠한스>에서 왕자의 공은 일단 야만인인 아이젠한스의 손안으로 사라진다. 이 두 동화에서 공은 여주인공이나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다시 이들의 손에 들어가고 마침내 두 사람에게 관계를 맺는 실제의 능력을 갖게 해줌과 동시에 이들을 참된 자아로 이끈다.

 

[152]

동시에 이 운명의 구슬이 본래, 융과 심리학자인 마리오 아코비의 말을 빌어서 “움직이는 자기”에 대한 상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상징의 양가성이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오른다.

선불교에서는 다시금 원 자체가 이미 높은 단계의 깨달음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이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동심원의 형상이다. ‘황소와 그의 목동’에 대한 옛 선불교의 우화는 해방과 깨달음의 최고의 단계를 밝은 원을 통해서 서술한다. 이 원은 공간 속을 자유로이 떠다니며 충만인 동시에 무(無)다. 유대교 신비주의 가운데 하나인 카발라에서 정사각형 안에 그려진 원은 물질 속에 숨겨진 신적인 불꽃을 재현한다.

 

[159]원의 실존적, 심리학적 의미

원안에서 우리는 -수평선으로부터 사방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지구, 그러니까 세계 공간이나 우주 한가운데 있는 자신을 경험한다. 우리는 보다 더 큰 전체 한가운데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동시에 우리는 개인적인 실존의 소우주 속에서 신체적인 실존의 소우주로서 우리를 경험한다. 이 소우주는 우리 자신이다. 내가 한 바퀴를 돌면 나는 원을 하나 그리는 것이다. 나는 이 원이 나이며 나의 몸이 원의 공간을 이루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은 나의 주위이며, 나의 직접적인 현존재의 행동 반경이다.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중심으로부터 똑같이 떨어져 있고 그리하여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나의 원과 합치한다는 것은 나 자신과 일치하여 존재한다는 말이다. 원속에서 나는 나의 중심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것은 늘 나를 위한 중심이다. 결국 이것은 아 ‘자신’이 되고 나의 가장 내부에 있는 본질의 핵심이 된다. 이 핵심의 주변부는 동시에 나의 의식적 자아를 넘어선다.

 

원은 열고 있고 조망할 수 있고 분명하다. 원은 어떤 모퉁이에 자신을 숨기거나 빠져나갈 수 없다. 원은 각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원이라는 형태로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거나 개방하며 자신을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161-162]

원은 원래 어머니의 공간이며 중심이든 주변부든, 원에 속하는 모든 것을 묶어주는 위대한 어머니의 본질과 작용 방식을 상징한다.

하지만 원은 또한 제외시키는 어떤 것이다. 보호는 언제나 안으로 품고 밖으로 제외시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원은-바로 특정한 이념을 중심으로 모인 인간의 원도- 제외시키는 어떤 것이다. 집단 치료에도 사용되는 놀이 가운데,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빈틈없이 견고한 사람들의 원을 부수고 들어가는 놀이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언어를 살펴보면 ‘원을 그리며 돌다’ , ‘맴돌다’, ‘원으로 에웠다’와 같은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원으로 에워내다’라는 말은 없다. 이건 아마도 생동감 있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형태로서의 원이 무엇인가를 제외시킬 수 없다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169-170]

철학자 하인리히 롬바흐도 그의 명상적인 성찰에서 원과 십자를 연결해야 하는 필연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십자와 원

십자와 원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기본적인 형태들이다.

이 둘은 대립되어 있는데

하나는 단단하고 곧으며 모순적이다

다른 하나는 둥글고 부드러우며 진동한다.

 

옛 아일랜드의 돌 십자는 이 둘을 연결시켜

서로 파고들게 한다.

원은 원들과 교차한다.

십자는 원 운동을 포괄한다.

이 표시는 무엇을 말하는가?

원은 충만, 풍요로움, 공물을 의미하며

또한 기쁨, 존중, 가치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우리는 원으로 감싸며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우리는 원으로 에워싼다.

 

고리와 테는 생명의 상짇이며

통일의 상징이다. 그리고 태양의 상징이다.

십자는 차이를 말하고 대립과 모순과

삭제를 의미한다.

이것은 표시하가. 스케치,

낙인찍기에 이용된다.

이것은 사건, 행위, 단절, 고통과 죽음을 말한다.

원과 십자가 하나가 되면,

이것은 오직 다음과 같이 읽힐 수 있다:

충만을 향한 출발,

사건과 일회적인 행위를 통한 통일,

간단히 말해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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