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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2일 06시 00분 등록

얼마나 마셨냐?

부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술을 배울 때였다. 당시에 나는 대학생이 되기 전에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아버지께서 주신 술을 한 두 잔 정도 먹어봤고, 집에서 담근 술은 아버지께서 권하실 때 먹어보긴 했다. 같은 또래들과 술을 즐기며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술을 어찌 마셔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께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내게 술을 금하셨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고 선배들 동기들과 어울려 술을 먹을 때는 난 곤혹스러웠다. 마시기는 하지만 맛은 너무나 썼고, 술에 취해서는 안되었다. 물론 귀가해서는 술을 마셨다는 것을 티를 내면 안되었기에 나의 술마시기는 거부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하는 형상이었다. 


그 당시의 나의 주량은 막걸리 3잔 정도였다. 밥그릇같은 그릇에 막걸리를 먹었는데, 나는 3잔 정도를 평소에 잘 하지 않던 행동을 해서 자제하고는 했다. 물론 그 이상을 먹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런 내게 선배는 묻곤했다. 얼마나 마셨냐고. 내게 3잔이 취하는 것이라 나는 '많이 마셨다.' '4잔 마셨다' '6잔이나 마셨다'라고 답을 하곤했다. 그때마다 선배는 '안 취했고만 한 잔 더해'하며 술을 권하셨다. 자신이 마신 술이 어느 정도인지 술잔을 셀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안취한 거라며 그 선배는 막걸리를 한 잔 더 따라서 권하곤 했다. 나중에는 그걸 알고는 얼마나 마셨냐고 물었을 때,  '0 잔 마셨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많이 마셨다고는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꼬박꼬박 내가 그때까지 몇 잔이나 마셨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난 내가 몇 잔의 술을 마셨는지를 세지 않고 막걸리를 즐기게 되었다. 거의 매주 일요일 저녁 교회가 끝나고 교회 뒤로 가서 마시는 막걸리는 내게 술을 가르친 선배들의 공헌에 힘입어서 맛난 음식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몇 잔이나 마셨는지 세지 않게 되었다. 막걸리, 술의 활용법을 제대로 배운 거다. 이야기하고, 마시고, 웃고, 노래하는 그 자리에서는 몇 잔의 술을 마셨는지 셀 필요가 없다. 한 잔이라도 신이났고, 시작부터 적당히 취했고, 그 자리가 파할 때도 기분이 좋았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어제의 스고자 파티에서 내게 걸린 질문의 답은 그 막걸리와 같다. 


클레이 카드 활용은 질문 내용을 읽고 답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에 기존에 들어온 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마인드'차이이다. 그런데 이런 대답은 너무 모호하고 식상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접근하는 사람의 마인드 차이라고.


그 마인드 차이를 알아보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꿔 말하자면, '시도횟수'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무엇인가 하고자 해서 성공을 하는 데에 내 경험으로 그것은 5번이상의 시도를 필요로 했다. 처음엔 인지하지 못해서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잘 안되는 것을 성공하는 경우라면 인지 이후에 3회이상의 시도가 있어야 그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해볼지 말지를 판단해서 몇 번 더 시도해보고는 했었다. 그렇게 마음에 들때까지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하려면 내게는 적어도 5회 6회이상의 시도가 필요했다. 간단한 일에서  이 정도인데, 거대하고 복잡한 일에서는 어떨까?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 시도 횟수를 세지 않고 그것을 하면서 계속해서 한 번 한 번을 즐긴다. 이미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절대 취하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마신 술 잔의 수를 세고 기억한다. 이미 그 속에 사는 사람은 그런 것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 속에서 놀고 있다. 


내가 부러워하는 그림 잘그리는 사람을 그림쪽에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은 자신이 몇 장이나 그렸는지 그 그림 갯수를 셀 수 없을 만큼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 이미 그 속에 있는 사람은 반복 횟수가 몇 번인지 알 지 못한다. 다만 수백, 혹은 수천, 혹은 수만, 혹은 숱하게 많이라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답한 시도 횟수의 차이는 바로 그것을 접하고있는 생활과 그것을 하는 마음의 차이가 아닐까?


어제 스고자 파티를 준비하면서 집을 일찍 나서 살롱9에 가서 미나를 거들었다. 미나는 노트북을 앞에 두고 계속해서 노트북에 눈을 박고 클릭을 계속하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이미 테이블에는 프로그램 진행에 관한 프린트물이 3부가 있었고, 조금 빳빳한 종이에 출력한 게임을 위해 만든 카드가 여러장 쌓여 있었다. 미나의 친구 덕천은 계속해서 칼질을 하고 있었다. 한장에 4개씩 있는 인쇄된 것을 칼로 잘라서 50명 분의 카드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리고는 명찰을 잘라서 만들고 끼웠다. 종이가 부족해서 문구점에서 사와서 또 출력하고 다시 오리기를 반복했다.  


스고자 파티를 준비하면서 미나가 클릭을 몇 회나 했을까? 미나 친구 덕천이 칼을 몇 번이나 그었나? 페이스북에 파티를 알리는 홍보는 몇 번이나 했을까? 미나의 클릭은 '수만번'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덕천의 칼질은 수백번? 혹은 수천번일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준비한 명찰은 작은 상자 하나였고, 게임 카드는 겨우 두 손에 들어가는 한 뭉치의 종이덩어리였다. 미나의 며칠을, 덕천의 몇 시간의 결과물은  비닐봉지에 담으면 가뿐하게 한 봉지에 담길 분량이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수십번 혹은 수백번의 붓질이 필요하다. 준비물 하나 챙기는 데는 수천번, 수만번의 손길이 닿는다. 


뭔가를 만들어내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것의 시도 회수를 세지 않는다. 그저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는 중에 원하는 그것에 도달한다. 

행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중에 그 속에 살고 있다. 성공하는냐 실패하느냐를 나누고 싶다면 난 이렇게 답하고 싶다. 시도횟수를 묻어보면 된다고. 내가 막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 내게 막걸리를 권하며 얼마나 마셨냐고 물었던 선배처럼 묻고 싶다. 그때의 선배의 질문은 얼마나 마셨냐고 묻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 선배는 내가 그 자리에 그런 질문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채신 거였다. 


이런 질문은 어떨까?

"좋냐?"

그러면서 씩 웃으면서 잔을 들어서 부딪히는 거다. 


그 상황이되면 알 것이다. 그때는 이렇게 묻지 않아도 좋고, 답하지 않아도 안다. 그런데 꼭 물어야 한다면 이건 어떨까?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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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3 13:44:31 *.255.177.78

좋아하는 것에 회수가 중요하지 않지요.

중요한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다시 물어 보겠습니다. '죻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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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06:17:49 *.131.205.39

희동이님.... 우리도 술한잔 해요. 여러번 뵈었지만 술은 같이 못했네요. 

희동이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곧 뵐텐데..... 그때는 막걸리 한 병 사들고...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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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09:23:31 *.94.41.89

네, 금주 토요일 10기 데카상스 첫 오프모임을 살롱 9에서 가질 예정입니다.

아직 확정은 안되었지만 미리 알려드립니다. 막걸리 준비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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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3 23:12:34 *.134.232.179

39년을  하고도 좋고, 재미있다고 하니까 누군가 날 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더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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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06:10:15 *.131.205.39

하하하. 전 그런 미친 사람들이 좋더라구요. 

전 밥 먹을 때 숟가락 입에 넣고 조는 일은 있어도 그림 그릴 때는 밤늦게라도 졸리지 않더라구요. 그게 진짜 좋아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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