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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4일 23시 55분 등록

한참을 달렸다. 달리다 지치면 조금 걷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해진 길,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따라 꾸준히 달렸다. 달리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가야하는 걸까. 저기 보이는 저 골인지점일까 나는 왜 달리고 있을까. 몸을 휘감은 꽉찬 공허함.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내가 지나온 길. 얼마나 달렸는지도 모를 그 길. 나는 이 길을 달리고 싶은 것일까. 이 길에 내 발자국을 가볍게, 때론 꾹꾹 눌러가며 남겨야 하는 것일까.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옆을 돌아보았다. 우거진 나무들로 푸릇푸룻 상쾌해 보였지만 조금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 푸르름은 더욱 더 짙어졌다. 그리고 가장 먼 지점은 검인 빛깔을 띠고 있었다. 끝 모를 물 속 깊은 곳 같았다. 이 답답함을 벗어나고 싶었다. 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문득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샛길로 발을 옮겼다.

수풀을 밟고 불규칙적으로 내 눈앞을 막고 있는 나뭇가지들을 치우며 숲으로 들어갔다. 지난 밤 내린 비가 아직 마르지 않아 질퍽거리는 덕에 깨끗한 운동화가 진흙과 물로 더렵혀졌다. 양말도 축축해진 느낌이다. 에이 새 건데…… 이리로 오지 말걸……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꽤나 들어온 느낌이다. 들어온게 아까워서라도 더 들어가야 되겠다 싶었다. 나뭇가지가 내 몸에 흔적을 남겼다. 여기저기 긁혀 있는 나의 팔과 다리. 살아 있는 풀들을 밟아 신발에선 풀냄새가 진동했다. 그들의 피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고 이내 온몸으로 퍼졌다. 생명은 그렇게 죽으면서도 흔적을 남긴다.

숲의 한 가운데 들어왔다. 머리 정중앙 우에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공간은 숲 밖에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다양한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아름다운 아생화들도 풀쑥 풀쑥 튀어나와 있다. 수즙은 듯 수풀사이사이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숨긴 꽃들도 있었다. 자세히 보지 못하면 보이지 않은 그것들은 은밀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보이는 것보다 그렇게 보일 듯 말 듯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매력있으며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다. 수줍지만 교태롭게 숨어 있는 꽃을 발견하고 그 향을 맞는다. 달콤하지만은 않다. 향기롭지만도 않다. 하지만 뭔지 모를 아생의 생생함을 지닌 듯 기개가 예사롭지 않다. 잠시 잠깐 아생을 느끼고 숨을 고른 나는 또 다른 길 아닌 길로 나아갔다. 쉬며 걸으며 때론 뛰며, 빗물을 마시기도 하고 더덕이나 산딸기 같은 조그마한 과일들을 먹기도 했다. 잠시 잠깐 눈을 감도 선잠을 자기고 했다. 하지만 이내 내리는 비로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해도 지고 날은 어둑어둑해졌다. 나란 존재를 감싸도 있는 나무들은 순간 순간 어둠의 형상으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착각일 뿐이다. 내 마음이 그렇게 바라봤을 뿐 나무는 그저 나무였다. 움직이는 듯 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대지에 몸을 박고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렇게 한 참을 헤맨 뒤에야 나는 내가 출발한 그 곳, 옆을 바라보고 어두운 푸름을 향해 발을 옮긴 그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리는 힘이 풀려 더 이상 걷기 힘들어 보인다. 온몽은 자잘한 상처 투성이이다. 운동화와 운동복은 흙과 자연의 피로 얼룩져 있었다. 힘이 들어 잠시 잠깐 길가에 앉았다. 달리기가 싫어서 샛길로 빠졌는데 또 정신없이 달렸구나…… 사람들은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저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걸까. 왜 달리는 걸까.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 나는 달린 것도 고생을 자처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잠시 잠깐 쉬었을 뿐이다. 단조로운 코스를 벗어나 자연이 그 순리대로 자리잡은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간 것이다. 풀 냄새를 맞고 바람을 느끼고 수 많은 야생의 생명들을 만나고 온 것이다. 나는 달린 것이 아니라 잠시 잠깐 쉬었을 뿐이다. 쉬어야 할 때 쉬었을 뿐이다. 자연스러운 내면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긴 것 뿐이다. 진정 휴식이었구나.

곧 몸을 펴고 일어났다. 사람들은 여전히 달리고 있다. 나와 함께 달렸던 친구는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내가 쉰 만큼 더 달려가 있겠지. 숨을 들이마셨다. 자연의 냄새를 맡았다. 어깨와 발목을 돌리고 목을 이리저리 풀어주었다. 다시 한번 숨을 들이마셨다. ~ 내뱉고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조금은 달라질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난 1년간의 시간은 내 인생의 쉼표와 같은 시간이었다는 것. 인생을 돌아보고 숨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그런 쉼표.

다시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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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31 12:15:16 *.1.160.49

이길 저길을 기웃거리다보니 알게 된 게 있어요.

내가 다른 길을 그리워하는 대목의 상태가 비슷하다는 거.

어디서든 내 한계를 너머선 로드가 걸리면 내 선택을 부정하며 다른 길로 도망치곤 했다는 거.

 

물론 너무 힘들면 쉬어갈 필요도 있어요.

무리하게 버티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이 나보다 바보라서 버텼던 건 아니었다는 거.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기대했던 성과의 크기와 상관없이 길 '끝'에 도달해야 알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분명히 있어요.

어쩌면 우리가 달려왔던 이유는 바로 그 '무언가'였는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요.

 

그 '무언가'를 만나고 나면 어느 길을 걷더라도 전보다는 훨씬 더 가볍고 자유로워질 겁니다.

믿어도 좋아요!!

 

그럼, 마지막까지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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