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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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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5일 07시 33분 등록

제목: 나를 찾아 나서는 길, 인문 중독

키워드: 인문학, 직장인

키센텐스: 인문학의 고전을 읽으며 나를 일으켜 세울 힘을 얻는다.

 

 

샘플글 1.

 

나를 찾아 나서는 길

 

새벽 일찍 산길을 올라보신 적이 있으신지요안개 낀 새벽산길을 걸으면 나무도 꽃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하늘도 땅도 구분이 모호합니다다만 누군가 먼저 걸었던 길의 흔적을 따라 걸을 뿐입니다돌뿌리에 걸려 넘어 질 수도 있고얼굴을 할퀴는 나뭇가지나 돌연 튀어오르는 산짐승의 기척에 놀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동녘에서 해가 떠 오르면 안개는 어느 새 걷히기 시작합니다이제 시야도 점점 넓어지고저만치 아래로 마을도 보이고

산허리를 감싸 도는 구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모양새에 취해보기도 합니다무엇보다 나뭇잎의 푸르름에 취하고 한들거리는 꽃들에 반합니다얼굴과 전신이 땀으로 덮히지만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땀을 흘리는 만큼 바람을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흔히 등산에 비유합니다지리산 종주처럼 며칠 동안 걷고 또 걸어야 하는 큰 산행을 처음 떠나는 사람에게 산을 가본 사람은 누구나 말 합니다. “먼저 산을 가본 사람을 따라 가라따라가면서 산을 배워라그러면 언젠가 너도 다른 사람에게 산을 알려줄 수 있단다”인생이라는 산길을 가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 꼭 있습니다지금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그리고 여기가 어딘인지 돌연 방향감각이 사라지고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순간 우리는 당황합니다다시 길을 찾을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정말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이 주저앉아 버린 그 순간그러나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길이 바로 나의 인생 길입니다.

 

잃어버린 내 인생의 길잠시 자리에 앉아 먼저 길을 귀 기울입니다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검색하기 시작합니다오늘 점심 먹을 장소를 찾거나 주말에 보고 싶은 영화를 검색하는 수준이 아닙니다나의 내면 속 심연의 중심을 향해 밧줄 하나 허리에 묶고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는 심정으로 뛰어 듭니다.

 

일하는 목적과 하루 세끼 밥을 먹는 목적부터 다시 묻습니다목적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인생의 길을 잃어버립니다도대체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을 때 주저 앉아버립니다때론 분노로때론 무기력으로때론 일상을 망각하기 위해 알코올이나 혹은 의미 없는 사랑에 목을 매는 이런저런 중독으로 채워보려고도 합니다다 부질 없습니다그럴듯하게 화려해 보이면 꽃잎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디론가 쓸려 가는 낙엽 같은 인생이지만 바람에 흩날리기는 결국 똑같습니다.

 

거목이 아니어도 좋습니다눈에 띄지 않는 잡초여도 좋습니다내 땅에 뿌리를 내고 스스로 뿌리를 내고 싹을 틔우고 잎을 내어 그늘을 만들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바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거목으로 성장하면 좋겠지만바람에도 흔들려도 다시 몸을 곧추 세울 수 있는 풀이어도 좋습니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 땅에 떨어져야 합니다땅에 내려가 스스로 썩어야 비로소 씨앗이 되어 발아할 수 있습니다어느 땅에 떨어져 어떤 씨앗을 틔울 지는 잘 모릅니다내 속의 가치는 사실 나도 잘 모릅니다다만 진실로 썩어야 하는 게 우선입니다이제 나는 나를 애정 어리게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잘 썩어 잘 싹 틔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주어야 합니다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해 주고 햇볕을 쬐게 해주어야 합니다그러면 놀랍게도 그 어떤 무엇인가가 발아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나를 찾게 됩니다일그러지고 못생긴 괴물 같은 모습이 나와도 염려하지 마십시오놀랄 수도 있습니다당연합니다모르는 사람이 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모양새이니 놀라는 것이 당연합니다그러나 그 또한 내 모습이니 그대로 받아 주십시오상처받고 외로워 떨고 있는 나를 발견 하셨나요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담요를 덮어주고 불을 피워 불 옆에 앉히고 살포시 끌어 안아 주십시오나도 몰랐던 내 속의 나를 세상에 끌어내어 공원에 데려가 꽃구경도 시켜주고 이어폰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도 들려주십시오또 책을 골라 손에 들려 주십시오은하계의 법칙을 다루는 물리학 책이 좋겠습니다아니면 존재와 존재 사이에 흐르는 파장을 글자로 담아 낸 시집이어도 좋습니다내 자신에게 에게 선물하십시오궁극적이며 무한한 저 너머 바로 존재의 근원을 묻는 이야기일수록 더욱 좋습니다무엇보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땀을 흘려주고 근육을 키워주는 헬스트레이너가 되십시오이 모든 대상이자 고객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진정 내 안에 아직 살아 있는 꿈을 찾아 보십시오욕망이라고 표현해도 좋습니다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어린 시절 혹은 청춘의 시절에 몸을 불살랐던 꿈과 열정을 다시 기억해 내십시오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과 자원이 무한정 공급될 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봐도 좋습니다이렇게 묻고 또 물어도 내 안의 욕망이나 꿈이 잘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당연합니다그 동안 절제하고 억제하는 훈련만 수십 년을 해 왔는데 모습을 잘 드러내 보이는 것이 이상한 것 입니다당연합니다내 안에 어딘가 살아있는 꿈이라는 짐승을 찾으러 떠나야 합니다.

 

목표는 내 안의 ‘꿈’ 혹은 ‘욕망’으로 불리는 그것을 찾으러 가는 겁니다저는 내 안의 ‘짐승’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혹은 ‘녀석’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느낌이 살아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짐승의 발자국을 찾아 보십시오이제 녀석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십시오자주 드나드는 길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이제는 매복하십시오몽둥이 혹은 올가미도 필요하지만 녀석이 군침을 흘릴만한 먹이감도 함께 준비하십시오그래야 이 ‘짐승 녀석’을 사로 잡을 수 있습니다먹이감을 놓고 유인하여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올가미를 씌우고 몽둥이를 내리쳐서 잡으셔야 합니다한 두 번 실패했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결국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녀석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짐승을 잡으셨다면 울거나 말거나 코뚜레를 꿰야 합니다우리가 그 동안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던 이유는 남의 내 코뚜레를 꿰었기 때문입니다남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내 코에 코뚜레를 꿸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올라 타십시오이제 코뚜레를 꿰고 내 말을 듣는 ‘나’라는 짐승을 몰고 가십시오산으로 갈수도 있고 물가로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짐승이 진정 좋아하는 곳으로 가십시오. 녀석이 좋아하는 곳녀석이 진정 좋아하는 곳으로 가보십시오녀석이 가는 곳으로 녀석에게 몸을 맡기고 따라 가 보십시오두려우실 수도 있습니다낯선 길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녀석은 내가 몰랐던 놀라운 세계를 나에게 보여 줄 것입니다.

 

풀고 싶어도 풀리지 않는 인생. 그러나 풀어야만 하는 나의 인생. 누구나 당면한 숙제입니다. 이 숙제를 하지 않고 방치해 놓으면 물론 잠시나마 해방감이나 자유로움을 맛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아름다워 지지는 않습니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주변을 살피고 나를 살피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내 인생은 아름다워 집니다. 

 

 

 

샘플 글 2

 

나는 별이다

 

인문학 독서를 하는 이유는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나는 별이었고, 지금도 내 안에는 별이 존재합니다. 내 안의 별이 빛과 열기를 잃지 않게 하려면 꾸준하게 땔감을 넣어 주고 녹과 이끼를 닦아내야 합니다. 그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누구나 맑고 투명한 물을 통해 물 속을 들여다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 맑고 투명한 햇살이 거실 창으로 들어 오는 풍경도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맑은 물처럼, 투명한 햇살처럼, 내 마음이 닦여 있을 때 비로소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글을 읽는 내가 보이고, 나를 둘러싼 주변이 보입니다. 맑은 물 속에 보이는 이끼처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봄볕에 먼지 알갱이가 보이는 것처럼, 독서를 통해 나와 주변이 맑고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내 안과 내 주변의 이끼와 먼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시작합니다. 결국,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다시 맑고 투명하게 닦을 수 있습니다. 내가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사이 책이 나를 읽고 있습니다. 행복하면 웃는 것처럼, 웃다보면 행복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답 보다 중요한 것이 질문입니다. 질문은 나를 움직입니다. 인문학의 역사는 곧 질문의 역사였습니다. 수 많은 질문의 한가운데는 늘 가 등장합니다. 요컨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의 역사가 바로 인문학의 역사였습니다. 인문학의 역사에서 질문을 하는 수 많은 들은 결국 별이 되었습니다. 이 별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눈을 닦고 마음을 닦아 드려다 보면 신비롭게도 가 보입니다. 한 두 번 보는 게 아닙니다. 수천 수만 번 어루만져 보고 또 보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별들의 질문에서 나를 움직이고 있는 괘도를 볼 수 있고 내가 위치한 좌표를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시공간을 찾아 나를 움직여줄 질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결국 인문학 독서를 통해 나를 확인하고 나를 움직이는 수 많은 질문을 만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을 하다 보면 연이어 이런 질문이 따라 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런 질문 앞에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질문을 구하고 답을 찾으며 좋은 스승이나 동지를 찾아보십시오. 인문학은 진정한 힘을 발휘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를 묻고 대답했던 들의 역사가 곧 인문학의 역사입니다. 그 별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 사이 내 안의 별이 보이고 그 별이 내뿜는 빛과 열기가 손톱만큼 자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맛에 취해 인문 고전을 다시 찾습니다.

 

빛과 열을 뿜어내는 ’, 이것이 본연의 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앞에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연습’, 이것이 인문학 독서입니다.

 

 

샘플 글 3

 

네 목을 쳐라

 

시인 박노해. 1957년 전라도에서 태어나 16세에 상경하여 현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1989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면서 80년대 민주화와 노동혁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89년 사노맹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하였고 기나긴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 되었고 무기징역에 처해졌습니다. 옥중에서 자신의 형 박기호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1993년 두번째 시집 <참된 시작>, 1997년 옥중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7 6개월의 감옥 생활 끝에 1998 8·15 특사로 석방되었습니다.

 

새 생명을 얻은 시인은 결코 자신의 과거 속에 묻혀 살지 않으려 합니다. 2000년부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쟁터에서 평화운동을 전개하며 생명/평화/나눔을 내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시인은 12년 만에 세상에 시뻘건 표지의 새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을 내놓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일곱 살 때 서당 훈장선생님에게 배운 첫 가르침의 떨림을 선명히 기억하며 진심으로 실천하고 살았노라 고백합니다.

 

그럼 길이 뭔 줄 아느냐?

길은 , 보아라

 

선생은 먹을 갈고 붓을 들어

비료 포대를 잘라 실로 꿴 공책 위에

글씨를 쓰셨다.

 

길 道는 머리 를 베어

으로 꿰들고 열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길은 무섭고도 잔인한 것이란다.

 

(중략)

 

너는 네 이름대로 평화의 터를 이루는 길을

어떻게 열어 가야 하느냐?

평화를 해치는 나쁜 사람들 목을 쳐야 하나요?

 

기평아

 

 

내가 먼저 평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은

평화의 세상을 이루어 갈 수 없단다

길을 잃거든 네 빳빳한 목을 쳐라!

그러면 평화다

 

어린 나는 온몸을 떨었다

 

내 나이 일곱 살 때 석달 배운 천자문

그보다 천배는 소중한 첫날의 가르침은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길이 되었으니

 

감옥에서 한 시대의 종언을 들으며

나는 침묵 삭발 절필로 내 굳은 목을 쳤고

자유의 몸이 되어 길을 잃고 길을 찾아 분투하면서

긴 침묵 정진으로 유명해진 내 이름 석 자의 목을 쳤고

국경 너머 전쟁터와 기아분쟁 현장으로 떠날 때마다

조용히 유서를 쓰면서 내 목을 쳐 왔으니

 

수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서당 입문 첫날

길을 잃거든 빳빳해진 네 목을 쳐라!

생생한 그 전율은 아직까지 내 안에 살아 있으니[1]

 

고대인들이 문자에 숨겨놓은 가르침은 수 천 년을 흘러 한 어린 아이의 가슴에서 내려 앉아 싹을 틔웠습니다. 그리고 혁명가의 삶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이처럼 고대인들의 가르침을 찾아내어 배우고 실천한다는 것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실로 위험천만한 선동임에 분명합니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는 저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에서 라는 글자의 의미를 해설하고 있습니다. 

 

道라는 글자는 길을 가다라는 의미의 과 인간의 머리를 의미하는 가 더해져 잘린 목을 들고 길을 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 무서운 행위가 道일까요?

 

다른 씨족이 있는 토지나 외계로 통하는 길은 사악한 영靈에 접촉하는 매우 위험한 곳이었는데, 를 갈 때 다른 종족의 목을 베어 그것을 손에 들어서 그 주술의 힘으로 사악한 영을 쫓아냈다. 그 부정을 씻어내는 것을 라 하며 부정이 씻긴 곳을 라고 하고 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것이다.[2]

 

 

동양의 에 담긴 의미를 서양의 고전적 조각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이 있는데, 첼리니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 메두사가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 여인의 나신으로 페르세우스의 발밑에 죽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얼굴이 대단히 흡사합니다.

 

조각가 첼리니는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얼굴을 정말 쌍둥이처럼 똑같이 표현하였습니다. 페르세우스가 목을 자른 메두사는 결국 자기 자신이었을까요? 목이 잘린 메두사의 미음을 그려봅니다.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단칼에 쳐 잘라낸 페르세우스가 고마웠을 것 같습니다.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시원했을 것 같습니다.

 

 구본형 작가는 <그리스 이야기>에서 신화속 메두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화 속의 메두사는 두 개의 대극적 가치를 모두 붙들어 품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메두사는 괴물이면서 동시에 매혹적인 여인이다. 죽음이면서 또한 부활이다. 희생된 자이면서 죽인 자와 결코 다르지 않은 동질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3]

 

신들마다 탐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 메두사는 운명의 굴레에서 가장 끔찍한 괴물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웅 페르세우스의 보검 앞에 목이 잘리고 맙니다. 그러나 메두사를 사랑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그녀를 그냥 죽게 놔두지 않습니다. 메두사의 잘린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천마 페가소스가 되었고 메두사의 영혼은 죽는 순간 하늘의 별이 되어 되살아 났습니다.

 

분노에 의해 괴물도 될 수 있고, 사랑에 의해 하늘의 별도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조각가 첼리니가 포착한 것처럼, 페르세우스가 벤 메두사의 머리는 괴물로 변했던 자기 자신의 모습입니다. 길이 막힐 때마다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베십시오. 사회주의 혁명가에서 평화운동가로 변화한 시인 박노해가 그렇습니다. 천마 페가수스의 탄생과 별이 된 메두사의 머리가 그러했습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샘플 글 4

자유 - 깨어있는 정신

 

인문학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에 대한 질문이 곧 인문학이라고 결론 짓다가도, ‘우리라는 관계 안에 존재일 수 밖에 없는 를 되돌아 보게 됩니다. 제 아무리 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아도 대체 우리라는 관계 안에서 내가 존재하는 이상, 그 어떤 인문학도 결국 공염불로 느껴지곤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인문학의 시작은 맞습니다. 인문학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기존의 를 속박시켰던 우리라는 틀을 벗어 던지는 연습입니다. ‘를 재구성하여 얽매이지 않은, 투명한 빛과 타오르는 열기를 간직한 를 발견하여 키워 나가야 합니다. 요건대 내가 곧 자유이며 우주임을 절감해야 합니다.

 

과거의 우리안에 얽매인 를 부정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행동을 바꾸어 나가다 보면, 이제 나는 껍데기를 벗고 온몸으로 세상과 마주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온몸으로 마주대하는 연습, 이것이 인문학입니다. 수많은 우리안에서 얽매인 를 스스로 깨어나게 하는 연습, 이것은 인문학이라고 표현하면서 동시에 기도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인문학 연습을 통해 물처럼 맑고 햇살처럼 투명하게 를 비추어 보면, 나의 허물과 나를 얽매는 일체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 나아가 역시 처럼 빛나는 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를 보기 시작하면 우리의 관계도 재설정됩니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슬픔이 너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쓸데없는 근심이 너의 날들을

뒤흔들게 내버려두지 말라.

책과 사랑하는 이의 입술을

풀밭의 향기를 저버리지 말라.

대지가 너를 그의 품에 안기 전에

어리석은 슬픔으로

너 자신을 너무 낭비하지 말라.

그 대신 축제를 열라.

불공정한 길 안에

정의의 예를 제공하라.

왜냐하면 이 세계의 끝은 무이니까.

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라.

그리고 자유롭다고.

 

- <중세기 회교도의 충고>[4] 오마르 카이얌[5]

 

슬픔과 근심의 무거운 납덩이를 잘라내고 자유로운 너의 영혼을 지켜내며 나아가 정의의 축제를 열라는 페르시아의 현자 오마르 카이얌의 잠언을 기억해 봅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를 위해 그 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는 않기 마련입니다. 좀더 단호하고 강렬한 일갈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중국 불교의 세계입니다. 중국 불교의 큰 스승 임제선사(?~867)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현재의 를 규정짓는 일체의 것을 부정하라고 외친다. <임제어록>을 통해 전해오는 임제의 가르침을 들어보자.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6]

 

인문학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를 뛰어 넘어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드넓은 자유의 세계로 한발한발 성숙하게 나아가는 자세. 이것이 진정한 인문학을 공부하는 자세입니다. 내속에 잠들어 있는 를 깨웁니다. 그러면 와 같이 소중한 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어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관계 지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가능하다고 용기를 내어 봅니다. ‘내가 만드는 나의 인생’ ‘내가 만드는 너와의 관계’, 결국 새롭게 바라보는 를 통해 우리의 관계 역시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옛 현자들은 기도를 통해 를 바꾸고 세계를 정의롭게 변혁할 수 있다고 하셨나 봅니다.

 

기도란 곧 깨어있는 정신입니다. 깨어있는 정신이란 곧 현재의 일체의 나를 둘러싼 관계를 말 그대로 깨뜨리고 내 속의 를 투명하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요건대 자유야 말로 진정 깨어있는 정신입니다.

 

상상해십시오. 한 명 한 명 깨어있는 정신을 가진 로 이루어진 사회. ‘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손을 잡고 서로 이끌어주는 사회. ‘너는 너로서 성장하고, ‘나는 나로서 성장하는 우리의 모습.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과 평화의 문화가 싹틀 수 있을 것입니다.

 



[1] 길을 잃거든 네 목을 쳐라,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012.

[2] 사이토 다카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2010.

[3] 구본형, <그리스인 이야기>, 생각정원, 2013.

[4]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시야, 너는 참 아름답구나!>, 뮤진트리, 2009.

[5] 오마르 카이얌 (1048-1123): 페르시아의 수학자, 천문학자, 철학자, 시인. 16세기에 나온 그레고리 달력보다 더 정확한 달력을 만들어 내었고, 3차방정식의 기하학적 해결을 연구하였다. 4행시집 <루바이야트>가 전해지는데, 후에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 졌다.

[6] 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2012.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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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8 13:27:21 *.169.218.58

우선, 여기 칼럼에 매주 올라오는 글들을 열심히 읽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

하지만, 이 컨셉과 기획안을 받아볼 편집자 혹은 출판사 관계자들도,,,

우리가 보여주는 기획안에 나온 내용 외에는 아는게 없는 상태로 글을 읽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어쩌면 그 간의 글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기획안을 보는 것이 좀 더 객관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 믿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용기를 내어 기획안과 컨셉에 대한 피드백을 올려 봅니다. ^^

그래도 저는 애정이 있기 때문에

기획안을 보다가 필요하면 예전 글들을 찾아서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훨씬 많이 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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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글?을 다시 보니 반갑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네요. ㅋ

나만큼이나 많이 웃는 형선오빠이기에. ^^

그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때론 마음이 앞서서 서둘러 표현되다보니

사람들이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어주지 못해

말하고 나서 더 답답해지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천천히 하나씩 내려놓아 보기로 해요. ^^

온 우주가 하나로 통하는 길, 그게 인문학 아니던가요. ㅋㅋㅋ

언젠가는 통하겠지요. ^^

 

 

1.

2월의 기획안을 같이 봤어요.

목차가 어떤 맥락을 갖고 있는지 파악이 어렵네요. 

1장 ~ 4장이,,,

두려움에서 경이로움으로 점점 다가가는 순서를 나타내는 것인지,

각각 다른 화두를 나타내는 것인지,

혹은 제 3의 어떤 규칙이 있는지 잘 잡히지 않아요.

그래서 전체적인 흐름이 꿰어지지가 않네요. ㅠ

 

 

2.

장르가 어떤건가요?

만약 인문학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인문학을 읽도록 하고 싶은 자기계발서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좀 더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겠어요.

선언적인 문체가 오빠의 특징이긴 하지만,,, 조금 풀어낼 필요는 있다고 보여져요.

이런 질문 앞에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질문을 구하고 답을 찾으며 좋은 스승이나 동지를 찾아보십시오.

이런 지시가 나열?되어 있는게 독자로서는 조금 부담스럽네요.

조금 기도문? 같은 느낌? ^^;;; ㅋ

오빠의 이야기에 조금 더 깊게 공감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했다면,,, 왜? 혹은 어떻게? 가 설명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십시오. 했다면,,, 왜? 혹은 어떻게? 가 이야기 되어야 해요.

첫번째 문장에 공감이 안 됐는데 두번째 세번째 문장이 이어져 나오니까 글이 조금 버거운 느낌이 들어요. ^^

 

 

3.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화두들이 막 던져지네요.

스케일이 너무 장엄해서 ㅠ 감히 따라잡기가 어려워요.

오빠도 100개를 쓰고 그 중 절반을 건져내는? 방식이 좋을 것 같아요. ^^;

쓴 글이 모두 책이 된다 생각하지 말고 일단 쏟아내기.

그리고 연결되는 것들끼리 묶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언뜻 보기에는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양질을 골라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지요. 

 

 

4.

인문중독이라는 제목이 아주 섹시하기는 하지만,,,

중독이 갖는 부정적 의미를 오빠가 글로 전복시킬 수 있을까요? ;;;

그 개념을 어떻게 잡고 있느냐가 관건일 것 같아요. 풀어야 할 숙제이지요.

 

 

5.

언젠가 써 먹으려고 했었는데,,,,, 오빠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라면 오빠가 쓰세요. ㅋ

[우리는 가르침이 아니라 깨달음이 필요하다.]

자세한 해석은 밥이나 술을 사 주시면 풀어 드려요. ㅎㅎㅎㅎㅎ

 

6.

혹시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읽으셨나요?

오빠와는 아주 다른 글이지만,,,,,

오빠의 주제와 어딘지 닿아 있는 것 같으니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듯해요.

필요하시면 밥이나 술 사실 때 갖다드림요.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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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8 18:38:03 *.62.180.118
날 잡지요. 빠를 수록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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