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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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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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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4일 01시 25분 등록

 

지금 백오산방에서는 명이나물이라 부르는 산마늘 수확이 한창입니다. 어제는 덕분에 무척 분주했습니다. 낮에는 주문이 들어온 양을 저울에 달고 포장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저녁이 가까웠을 때는 택배용 물량을 잘 포장하여 택배기사가 픽업하기로 한 장소에 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삐 청주로 향했습니다. 청주의 한 일식집에서 요청한 물량을 약속한 시간에 배달하고 그 참에 다른 가정집 한 곳에도 마저 배달을 했습니다. 저녁은 밤으로 바뀌었고 마지막 배달처인 아산의 어린이집에 정성껏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었습니다. 부엉이들 모두 잠들고 초승달도 어느새 서산으로 사라진 숲, 별이 참 좋은 밤이었습니다.

 

오늘은 늦게 일어나 잡히지 않는 책 몇 쪽을 읽다가 때려치우고 산마늘을 택배로 보낼 때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포장용 상자를 검색하여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전남 장성으로 향했습니다. 그곳 공공도서관과 약속한 강연 일정이 오늘 저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약속을 정할 때 너무 먼 거리여서 강연 뒤에 한 고택을 숙소로 정하여 묵는 일정으로 협의했으나 밤을 달려 그냥 돌아왔습니다. 오늘 보내야 하는 이 마음편지도 그렇고, 숲으로 찾아온다는 손님들도 그렇고, 산마늘 포장용 박스를 받아 주문해 주신 분들에게 배송하는 일도 서둘러야 겠고...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왕복 500km에 달하는 운전을 감수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밤 운전이 점점 편치 않은데 가는 길에도 오는 길에도 비까지 오락가락합니다. 게다가 계기판 숫자는 바깥 온도가 4도 까지 떨어졌다고 가리키고 다리 위에서는 차가 밀리는 느낌이 들 만큼 바람마저 강합니다. 그간 날씨가 따뜻해서 사흘 전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잔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제 구들장 온기는 다 사라졌을 텐데 자정을 넘긴 시간 서글픈 날씨에 장작불을 지피고 목요편지를 쓴 뒤 잠들 생각을 하니 자꾸 가속 페달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강연을 위해 차려 입은 럭셔리(?) 버전 옷을 벗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이 소란합니다. 서둘러 편한 옷을 입고 밖을 보니 자정을 넘긴 숲에 난데없이 우박이 퍼붓고 돌풍이 붑니다. 그래도 불은 지펴야지요. 따뜻한 구들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젖은 장작을 달래서 불을 지피고 있는데 우박 세례가 더 거세집니다. ‘아차, 어쩌나?!! 이 우박에 명이나물들은 괜찮을까? 유례없이 따뜻한 봄 날씨 탓에 평소보다 일찍 잎을 키워놓은 녀석들 저 우박에 멍이 들지 않을까?’ 불을 지피다 말고 어두운 숲 속 산마늘이 있는 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휴대폰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춰보니 산마늘 잎들이 아직은 굳세게 버티고 있습니다.

 

속이 타지만 어쩌겠습니까? 저 하늘을 가릴 수도 없고, 산마늘을 덮을 수도 없으니 다만 기도할 뿐! ‘산마늘들아! 고단하지? 삶이. 나도 오늘은 참 고단하구나. 그래도 어쩌겠느냐? 삶은 주어진 것이고 우리는 다만 살아야 하는 것을. 그것이 우리 생명 주어진 자들의 몫인 것을. 꺾이지 않으면 된다. 멈추지 않으면 된다. 다만 주어진 삶을 사랑하면 된다. 그래도 시들지 않는 사랑, 그것이야말로 삶을 숭고하게 하는 것이니까!!’

이제 우박은 잦아들었습니다. 메케한 연기 밤 숲 언저리로 퍼지고 있으니 곧 구들도 뜨거워질 것입니다. 그대에게도 보냅니다. ‘그래도 시들지 않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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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7 23:28:40 *.243.218.135

여기 고단한 산마늘 하나, 사랑하는 용기 한 조각 얻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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