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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0일 02시 00분 등록

입학여행 후기_그대 스스로 죽으라.

2014. 4. 8 정수일


일정: 2014. 4. 5(토) ~4. 6(일)

장소: 한국여성수련원(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목적: 변경연 연구원 총회 및 10기 환영 입학여행

주요행사: 10기 장례식, 연구원 총회


1부. 그대 스스로 죽으라.


프롤로그


면접여행 후 몇 주간 나는 매일토록 죽음 앞에 있었다. 이토록 오랫동안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죽음이란 명제를 다루어 본 적이 이 전엔 없었다.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써의 첫 번째 과제는 죽는 것이다. 익숙한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나를 탄생시키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죽음은 결별의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이 숭고한 의식을 앞에 두고 나는 유언장을 써야 한다. 신은 나를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 다시 10분의 시간을 주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세상과 소중한 이들에게 못 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허락된 것이다. 우리는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진실해 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때 가장 안타깝고 그리운 것이 내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안타깝고 그리운 이가 내게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들이다. 내가 무엇을 찾으려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죽음 앞에서 비교적 뚜렷해진다. 나는 이때를 상정하고 스스로의 행장을 썼다. 깊은 떨림이다. 회한과 설움이었지만 지난날의 내게 화해를 청했다. “욕 봤네. 이 사람아! 기특했느니…….”



장례식


지난 3주간 우리는 매우 부산스러웠다. 잠언록 준비에 깊은 밤을 보내야 했으며 장례식과 입학식 준비로 내내 수다스러웠다. 그러나 소란스럽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모두들 즐거웠으며 신비로웠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문상객들에게 뭘 대접해야 할지, 빈소는 어떻게 꾸릴 것인지...세상에나 자신들의 장례식을 스스로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헤벌쭉 즐거워서야 되겠는가.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가 부여하는 에너지는 신선하고 맑다. 시키지 않아도 척척, 손발이 맞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2014년 4월 5일, 이른 아침은 쌀쌀했다. 여름을 앞둔 날들이 몇 날 동안 계속 되더니 전일부터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었다. 이런 이변이 축하인지 애도인지 알 수 없지만 나쁘지 않다. 신탁이라도 받은 양 하지 않은가! 


‘딩동’ 06:41분 그예 카톡이 울었다. 

“굿모닝! 출발함다. 오늘도 소풍! _김종호”

“모닝콜 감사합니다. _정수일”

지난 면접여행이후 급격하게 친밀해진 데카상스 멤버들의 메시지들이 주렁주렁 열린다. 메시지의 향연이다. 이즈음 나는 막 버스정류장으로 나서려던 참이었다. 가능한 버스만 이용할 작정이었다. 나만의 의식이다. 좀 더 불편하게 함으로써 정성을 다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상 풍경을 천천히 낮은 곳에서 낮은 눈으로 보려했다. 기실 나는 웬만해선 시내?외를 막론하고 버스를 잘 타지 못한다. 멀미 때문이다. 하여 버스로 다니는 여행은 큰 맘 먹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도하다. 바람이 유난히 상쾌하다. 강릉행 버스를 타기위해 북부정류장으로 왔다. 직장이 있던 구미에서 소주라도 한잔하던 날이면 가뭄에 콩 나듯 이용하던 곳이다. 후줄근한 정류장 껍데기를 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추억처럼 떠오른다. 오뎅 집은 아직 열지 않았다. 아침은 이렇게 걸러야 할 모양이다. 출출하고 싸름한 속을 따뜻한 차로 축이며 강릉행 버스에 올랐다. 기대어 잠을 청해보지만 말똥말똥해질 뿐이다. 


12시 반경 버스는 강릉터미널에서 나를 뱉어놓았다. 처음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낯선 곳에서 하는 나만의 습관이다. 감지해 내려는 본능의 발로인지 알 수 없으나 이렇게 크게 숨을 들이키면서 몸속의 공기를 치환시킨다. 비로소 이 땅에 속한 것처럼 말이다. 여성수련원 직원은 상냥하게 말해 주었다. 여기선 바로 연계되는 교통편이 없다고 말이다. ‘남대천 정류소에서 1시 3분, 보라색, 110번, 옥계행 버스’를 타라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다. 바쁘다. 잠시 망설이다 택시를 타기로 했다. 버스를 고집하다가 이 버스를 놓치면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장례식에 지각할 순 없다.


여기는 남대천정류소, 허겁지겁 오다보니 이제야 민생고가 그립다. 시계를 보니 15분여 시간이 남는다. 눈앞에 바로 빵집이다. 단팥빵으로 제법 유명한 집인 모양이다. 한사람이 10개 이상 살 수 없단다. 게 눈 감추듯 두개를 삼키고 두개는 가방에 던져두었다. 아직 십여 분이 남았다. 뒤편에 재래시장이다. 몇 분 걸어보기로 한다. 다행히 시장은 생력이 있어 보여 맘이 놓인다. 나는 항상 낯선 곳에 닿으면 허락하는 한 재래시장을 찾는다. 그곳에 가면 그곳이 보이기 때문이다. 왁자지껄한 곳에서 표표히 행자의 걸음을 걷는다. 현실과 유리되어 걷다보면 문득 낯설음이 가시고 익숙하고 편안해지는 점에 이른다. 동네 시장에 온 듯이 호떡할매, 떡볶이 아줌마, 커피믹스 여사가 이웃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그 점이 나는 항상 흐뭇했다. 저만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사월의 날씨라고는 어울리지 않는 쌀쌀함에 발걸음이 저절로 김이 나는 곳으로 이끌어갔다. 강릉에서 원조부산오뎅이라니 어울리지 않지만 본능은 벌써 입안에 고인 침으로 말하고 있다. 시계를 보니 바쁘다. 뛰듯이 두개를 삼키고 정류장으로 날았다. 옥계로 향하는 40여분 동안 멍하니 오늘 있을 일들을 그려본다. 어떤 분들과 만나게 될 것인가! 생경하다. 무슨 일이 펼쳐질지 닿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감자사투리가 강원도임을 상기시켜 줄 무렵 110번 버스는 옥계면사무소에 닿았다. 상냥하던 그 아가씨는 여기서 택시를 타라고 안내해 주었지만 면소재지 앞은 황량하다. 버스에서 ‘여성수련원 2.5 km' 입간판을 봤던지라 그저 걷기로 한다. 아직 한 시간여 시간이 남았다. 진눈깨비인지 비인지 분간이 어렵다. 바람은 싸름하고 도로의 차들은 쌩쌩 내지른다.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문득 사람의 속도를 사람이 지키려 할 때 이것이 지켜질 수 있는 것인지 물음이 터졌다. 사람의 속도여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인데 이런 소박한 바람마저 공룡 같은 쇳덩어리에게 거세되어야 하는 것인지 묻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려 죽지 않으려면 피해야 했다. 아직 죽으면 안 된다. 같이 죽어야 할 동지들을 만나지 못했다. 아직 허락된 시간이 아니다. 난 그들과 함께 한날한시에 죽을 것이었다.


일행들은 약속시간을 한참 넘겨서 도착했다. 3주 만에 만난 그들이 반갑다. 그 사이 그리웠다면 어쩔텐가! 신속하게 죽음이 세팅 되었다. 여덟 개의 초와 하나의 향, 그리고 한 다발의 하얀 국화, 이 정도면 죽기에 나쁘지 않다. 이제 나는 죽을 것이다. 살고 싶은 삶을 건져내기 위해 나는 죽음의 자리로 간다. 기꺼이 죽을 것이다. 매일 죽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다운 삶을 데려올 것이다. 먼저 죽은 선배들이 둘러앉았다. 그들은 먼저 죽은 이들이었으니 공감해 줄 것이었다. 준비해온 유언장을 읽었다. 담담하다. 엄숙했으나 슬프지 않았다. 회한과 후회가 없을 수 없으나 나는 이미 유언장을 쓰면서 그때의 나와 화해했다. 오늘 이 죽음은 다짐과 같은 것이었다. 의식은 가치와 의미를 담는 그릇이다. 곱고 귀하게 담았다. 얼마간의 칠흑 같은 정적이 흐른다. 여운이다. 아직 흐르고 있지만 모두들 한 겹 탈피를 한 듯 홀가분해 보인다. 눈시울을 갈무리하는 그들에게서 벽을 허문자의 비범함을 보았다. 스스로 허물어낸 것이다.


전 과정을 함께한 오병곤 선배는 우리들의 장례식 뒤에 이런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내 자신의 유언장도 그렇고 어제 후배 연구원들의 그것도 공통적인 메시지가 드러난다. 나를 다 쓰고 갔느냐? 그대에게 주어진 재능의 크기를 탓하지 않고 하늘이 준만큼을 다 쓰고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나의 꿈을 찾아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느냐? 아니 꿈조차도 꾸지 못하고 남들이 정해준 궤적을 따라 그저 그렇게 흘러오지 않았느냐? 지금 주위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충분히 사랑했느냐? 너무나도 당연해서 사랑한다는 말조차도 하지 못하며 의무적인 관계로 살아오지 않았느냐? 미련은 늘 남고 눈물은 계속 흐르고 가슴엔 회한이 사무친다.”


이제 부활의 축배를 들자.


그대들! 욕봤네. 이제 함께 재생의 수련에 매진하세나.



부활의 축제


죽느라 지친 그대들 이제 다시 태어났으니 축제를 열어라. 삶 토록 가장 큰 세 가지의 사건은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이다. 한 순간에 두 가지의 큰 사건이 벌어진 마당에 축제가 없을 수 없다. 축제는 열정이고 흥분이다. 놀이이고 배설이며 충전이다. 나누고 섞이고 소통하는 것이다. 축제는 온전히 즐기는 자, 그들의 것이다. 밋밋하고 싱거운 모자람 보다 다소 넘치는 것이 축제의 미덕이다. 슬픔의 참담함도 기쁨의 열정도 가득 차면 쏟아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담을 수 있다. 배설과 충전이란 이런 것이다. 풍성한 음식과 술과 노래와 춤과 그리고 그대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삶이란 애시 당초 다른 생명을 죽여 먹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니 우리는 바다의 생명을 썰어 담아두고 부활의 의식을 거행한다. 먼저 죽은 선배들의 권주가 흥겹다. 마치 성인식을 치러주는 듯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을 축하해 주는 의식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육팀 선배들은 특히 더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음주가무의 향연을 절정으로 몰아갔다. 노래는 점점 멀어져 함성인지 주문인지 분간할 수 없고 춤들은 이제 격렬한 몸짓이다. 모두 한 덩어리로 엉켜 합창이 울려 퍼진다. 축제는 즐긴 자의 것이다.




여운


아침이 열렸다. 날씨가 아주 죽인다. 바닷바람이 피곤과 알코올을 씻어 내는 것만 같다. 문득 아내의 젖무덤에 깊이 묻혀 나른하게 졸고 싶었다. 아이들의 맨살을 부비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여주고 싶었다. 아내의 살 냄새가 해풍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냄새가 좋다. 동해바다와 꼭 닮았다. 조르바처럼 훌러덩 벗어던지고 아내의 바다로 뛰어들고 싶었다. 바람과 파도소리, 바다냄새, 따뜻한 햇살 모두가 관능적이고 충동적이다. 눈을 감고 한참을 서 있었다. 탐닉이다. 뾰족한 것들이 녹아 스며든다. 그래서 여자의 품속을 대지라고 했나보다. 배가 고프다. 허기가 진다. 그녀도 고프다. 욕망이 다시 꿈틀거린다. 바다의 품안에서 이렇게 삶이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에필로그


까만 밤에 별과 함께 돌아왔다. 이 후 며칠 동안 정신과 육신의 상태가 깨어나지 못하고 늘어져 있었다. 주옥같은 책이 읽혀지지 않는다. 사진을 정리하고 후기를 쓰는 일은 즐기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줄도 펜이 나가지 않았다. 쉼 없이 졸리고 생력이 없다. 뇌는 활동을 멈춰버려서 상상을 한다거나 창조적인 글쓰기 같은 것은 언감생심이다. 설명하려 했지만 마땅치 않고 마음만 급해질 뿐이다. 특강준비와 자문 제안을 구상해야 하고 미뤄두었던 몇 가지 일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손댈 수 없었다. 드디어 일들이 내일로 다가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어찌됐건 몸이 움직인다. 영감은 없다. 다만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누군가가 장례식 후유증이라고 귀띔을 해 준다. 그런 것인가! 나란 사람, 지금껏 떠나보내고 만나고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었던 것을 보니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추모의 의식이 몇 날 밤토록 치러지는 이유를 알았다. 내가 나를 보내는데 이 정도의 시간은 의식으로써 의리로써 지켜 마땅할 것이었다. 가여운 내 넋이여! 이제 온전히 죽으라. 그리고 평안히 쉬어라.




2부. 기록은 기억을 기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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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0 12:05:13 *.14.90.161

사진, 보이차, 글...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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