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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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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4일 10시 06분 등록

 

첫 수업 장례식 후기...

아직 죽지 못했습니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게 된 건 나지막한 소리들 때문이었다. 기차 밖 사위는 조용하고 어둡다.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발 아래로 쌀쌀한 공기가 전해져 오는 새벽, 아이 업은 아낙네는 새벽 내내 자리에 앉지 못하고 통로를 오간다. 소란스런 조용함이 부서진 건 바다가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다. 거친 파도가 바위를 내리찍는 광경에 정신이 아득하다.

지난 이 주 동안 나는 저 바위와 같았다. 나를 내리찍는 죽음에 어찌할 줄 모른 채 부서지고 깨지고서도 그 자리에 오롯이 서서 파도가 뿌리고 간 바닷물을 털어 내고 있었다. 바위는 파도가 오는 것을 보며 눈물부터 흘렸다. 최근 몇 년간의 삶으로 보건대 갑자기 파도와 데면데면할 삶이 아니었기에 이 눈물에 당혹스러웠다. 그대로 두었더니 다른 일은 하지 못한 채 그 상태로 2주를 흘려보냈다. 맘이 자꾸 가는 stay alive의 노랫가락을 귓가에 품은 채 유언장을 끄적였다. 2주째 한줄도 넘기지 못하고 비어 있던 페이지는 마감을 앞두고서야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도에 보답하듯 나는 만두까지 넣은 라면을 유언장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먹고 있었다. 커피며 과자며, 과일이며, 모니터 주위로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 갔다. 내 삶의 유언은 단 몇 줄이기를 바라왔건만 쓰레기만큼 페이지수가 늘어가기만 했다. 정동진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한껏 감흥에 도취된 듯 굴다가 이내 추워하며 돌아서던 때처럼.... 죽음과 삶은 그렇게 맞대어 있었다.

 

 옥계를 가야 한다. 그 곳에서 장례식이 있을 것이다. 나의 장례식이다. 나는 죽음을 유예하고 싶은 듯 멀리로 돌아서 길을 걸었다. 길치이기도 하지만, 입구부터서 헤매다 산길을 선택하고는 정말로 길을 잃어 버렸다. 걷기와 등산 열풍에도 그 시각 강원도 강릉의 산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손은 점점 얼어 갔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앞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눈을 달래며 주저앉았는데 가방 속 유언장이 생각났다. 웃음이 났다. 계속 길을 잃는다면, 이 상태로 나아가다 발을 헛디딘다면 나의 유언장이 확실히 빛을 발할 것이다. 홀로 극한의 상상을 했다가 달랬다 하며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내가 한껏 분위기를 잡았는지 핸드폰이 밥달라고 아우성이다. 현실을 깨우는 저 소리, , 내가 아직 할 말이 남았구나, 아직 가족에게 내 자신에게 할 말들이 더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가닥 남은 전력에 의지해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다는 동기들에게 마지막 존재를 알렸다. 바우길을 헤매는 중이라고. , 어찌 되면 정동진의 바우길이 단서가 되겠지.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길을 걸었다. 그때 내게 길잡이가 되어 준 것은 산악회에서 달아 놓은 리본이었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하얗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펄럭이는 리본을 의지하며 길을 걸었다. 저 리본에 의지한 채라니. 나는 산에서 펄럭이는 저 리본을 볼 때마다 무당의 신대가 생각나 꺼려했다.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늘 물러나 있었다. 그것에 새삼 의지하며 가려니, 우리가 혼자 모험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셉 캠벨의 말이 생각났다. 이미 시대의 영웅들이 앞서 이 여행을 했기에 그들이 깔아놓은 실을 붙들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그렇게 길을 뚫고 나온 나는 너무 멋쩍어졌다. 돌아보니 산은 깊지 않았고 비교적 편안하게 그곳을 벗어난 것이다. 이러한 멋쩍음은 이후 장례식에서도 경험하게 되는데, 10명의 장례식을 마치고 불이 켜지던 순간이 그러했다.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한껏 울었건만 모두 살아 있기에. 가상임을 인지하면서도 내가 그토록 그들을 철저하게 죽였었나. 그래놓고 내가 슬퍼했던 것이 그들의 죽음이었던가.

 돌아가, 언뜻 생각하면 지난 면접여행에서도 난 죽어 있었다. 인식이라는 것이, 의지라는 것이 그렇지 않으려 해도 정지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어느 순간, 그러했다. 나를 둘러싼 공기들이 숨쉴 틈을 주지 않고 돌고 있어 호흡이 멈추어버린 것처럼 나 홀로 정지한 그림이었다. 당연 어지러웠다. 이들의 에너지와 열정이 이글거리는구나. 같이 타오르는 불길이어야 하는데 홀로 이르게 소멸하는 불길이면 어쩌나. 저 불에 내가 타 버리지 않으려면 어찌해야만 하나. 내 몫의 자리가 아닌 곳에 발을 디뎠나. 그들의 에너지에 미치지 못한 작은 나의 불꽃이 꺼져갈듯 간당간당해질 즈음 살아남기 위해서 뒷걸음질 쳐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나의 장례식에서 그들을 보게 되는 것은 놀라움과 어색함이 함께했다. 그렇게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는 이들이 죽는다. 죽는구나. 안타까움으로 그들의 죽음의식을 쳐다보던 나는 어느새 그들이 되어 죽었고, 그들이 남겨둔 자식이 되어, 어버이가 되어, 남편이 되어, 아내가 되어 그들을 바라봤다. 그러하기에 내가 애도한 것은 그들의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들의 생에 경의를 표하며 또한 한껏 아린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삶은 타인의 죽음에 빗대어 더욱 견고해지는 모양이다. 그들의 삶도, 마지막 걱정거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음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지난 그들의 삶의 경험들은 내겐 또 다른 실들이 될 것이다. 더욱 더 단단하게 실패를 감은 실뭉치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기억한다. 산에서 길을 헤맬 때, 길을 인도해 준 그 리본으로 하여금 나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을. 그러나 길을 잃었다는 두려움 속에서 리본만을 찾느라 나는 산에서 울려나는 내음을 놓쳤던 것을.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지는 그 풍경을 놓쳤던 것을. 좀 더 온전히 하늘과 산과 바다와 나무들, 새들과 꽃들의 향연을 즐거이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초와 향이 타오르고 국화가 놓인 장례식장. 울음이 그윽한 그 곳에서, 되돌아보는 삶이 어떠했든 그 삶이 아름다웠더라도 후회는 남는 것,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즐거이 생을 살 것을 소멸의 그 순간이 주문하고 있었다. 조용조용 타오르던 초와 향이 으스러질때 한 의지가 느리지만 호흡을 다시 시작했다. 그래 아직,  거친 말들을 쏟아내기까진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서 이 거친 말들을 다 쏟아내고 단물이 다 빠진, 아니 욕물이 다 빠진 희고 깨끗한 빨래가 되어 가벼웁게 떠나가게 될 때까지. 적어도 그 때까지는, 나는 아직 죽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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