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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4일 21시 55분 등록

1.제목: 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

- 출판사: 21세기 북스

2.저자 : 조셉 캡벨 & 빌모이어스

 

-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 (1904~1987)


1904326일 뉴욕 출생

1925년 콜럼비아 대학교 졸업

1927년 콜럼비아 대학교 영문학 석사과정 수료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교수로 재직

1949<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발표

1959~1967<신의 가면> 1~4 권 집필

19871031일 호놀룰루에서 사망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로마 카톨릭 신앙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민담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관련서적을 탐독했으며, 맨하탄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즐겨 찾았다. 그 중 특히 박물관 한 켠에 있는 토템 기둥에 매료되었다.

다트머스 대학에서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했지만 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겨서 중세 영문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27년 캠벨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 이후 2년 동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공부한다. 영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는 동안 자신이 어렸을 적 즐겨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담과 아서 왕에 나오는 많은 주제들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캠벨은 콜롬비아 대학을 비롯한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특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선 중세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하였다.

1929년에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영문학 대신 인도 철학과 미술 쪽으로 공부를 계속하려 하지만, 대학 측의 반대로 결국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난다. 때마침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불황을 맞이한 상황에서, 캠벨은 이후 5년 가까이 칩거하며 독서와 사색, 그리고 습작에 몰두한다.

34세에 제자였던 22세의 진 어드만과 결혼했다. 39세에 첫 책을 냈다. 부부는 인생과 생활에 대해 소박한 가치관을 지녔으며 필요한 것만 소유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벡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며, 30세부터 68세까지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의 교수가 된 뒤 신화의 원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신화적 인물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캠벨은 어려서부터의 관심사였던 인류학과 민속학을 바탕으로, 비교종교학과 분석심리학 등의 이론을 이용하여 신화와 종교 연구를 지속해 명성을 얻는다. 그의 대표작인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1949)은 세계 각지의 신화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영웅의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주저인 4부작 <신의 가면>(1959-1968)을 비롯하여 <신화와 함께 하는 삶>(1972), <신화의 이미지>(1974), 그리고 최후의 역작인 총 25권의 <세계신화지도>(1983-1989) 등을 펴냈다.

하지만 조지프 캠벨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의 PBS 방송국에서 제작한 대담 프로그램 신화의 힘’(1988)이었다. 그의 생애 막바지에 제작되어 결국 사후에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서, 캠벨은 저명한 방송인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을 통해 신화가 현대에 지니는 의미에 관해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을 토대로 한 대담집은 오늘날까지도 신화에 관한 가장 훌륭한 개론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조지프 캠벨은 19871030,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후에 아내인 진은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조지프 캠벨 재단을 설립하고, 캠벨의 유고와 대담, 그리고 강의록 등을 정리, 출간하고 있다.

 

- 내가 생각하는 조셉 캠벨은 ?

자신의 천복을 발견한 영웅이다. 어렸을 때 보았던 인디언의 토탬 기둥과 가면에 매료당해서 거기서부터 시작된 호기심이 오늘날의 신화종교학자 조지 캠벨을 만들었다. 그리고 5년간 칩거기간동안 독서와 사색, 글쓰기를 통해서 영웅이 되어 돌아왔다.

문화 인류학, 생물학, 철학, 예술, 역사, 종료 책 속에 파묻혀 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가 갖는 공통된 요소들을 찾아내고, 다양한 문화적 체험과 여행을 통해서 종교간의 공통된 특성들과 차별점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에게 내리는 처방은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따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 하면 안됩니다. ” 라고 얘기한다.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1. 신화와 현대세계>>

 

-29.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共鳴)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 공명이 중요하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지만 실제 살아 있음 그 순간에 몰입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순간에 깨어 있어야 겠다.

 

-30.우주의 의미는 무엇이던가요? 벼룩의 의미는 무엇이던가요? 모두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지요. 그럽니다. 모이어스 씨, 당신이라는 분의 의미는 그저 거기에 있다는 것뿐입니다.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가치임을,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

 

-74.

모이어스: 그럼 신화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캠벨: 개인은 자기 삶과 관련된 신화의 측면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야 합니다. 신화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네가지 기능을 지닙니다. 첫 번째로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입니다.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지를 아는 순간,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존재인지를 아는 순간, 우리는 이 엄청난 신비앞에서 이미 경이를 경험합니다. 신화는 신비의 차원, 만물의 신비를 깨닫는 세계의 문을 엽니다. 그런 세계를 잃은 사람에게 신화는 있을 수 없지요. 만물에서 신비를 읽을 때, 우주는 한폭의 거룩한 그림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비록 이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도 초월의 신비로부터 끊임없이 메시지를 받으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신화의 두 번째 기능은 우주론적 차원을 연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관심을 두는 영역이 마로 이 차원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신화는 신비의 샘으로서의 우주를 보여줍니다. 현대인들에게는, 과학이 모든 답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자들은 해답은커녕 질문도 미처 다 하지 못했다. 우주가 어떻게 운행되는 가는 우리도 안다. 하지만 우주가 무엇인데?”하고 반문 합니다. 성냥을 켜면 불이입니다. 불이 무엇인지요? 산소가 연소되는 현상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으로는 불에 대해서 아무 설명도 안됩니다.

신화의 세 번째로 사회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한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그 질서를 유효하게 합니다. 신화가 곳에 따라 많이 다른 것은 바로 이 기능 때문입니다. 중혼의 신화도 있고, 단혼의 신화도 있는 것은 이 기능 때문입니다. 중혼이든 단혼이든 상관없습니다. 사는 곳에 따라 다르니까요. 신화의 기능중에서 우리 세계를 가장 폭넓게 지배하고 있는 기능이 바로 이 사회적 기능입니다. 시대착오적이죠. 네 번째로 오늘날 우리가 한번 음미해보아야 할 것이 바로 이 기능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그걸 가르쳐 줄 수 있어요.

 

 

 

<< 2. 내면으로의 여행>>

 

-87.내면을 들여다 보면 우리 자신이 바로 이 세상 잡사의 근원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91.신화가 지니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 조건을 와해 시키는 것이지요 .

 

-105.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의 자궁안에서 태아가 최초로 체허하는 것이랍니다.

 

-133. 선악의 개념은 원래 조로아스터교의 관념이었는데, 이것이 유태교와 기독교로 흘러들어 왔어요. 다른 종교의 전승에 따르면 선악은 우리의 입장에 따라서 상대적인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선한 것은 그 반대쪽에는 악한 것이지요. 인생이라는게 참혹한 것임을 알면 물러서지 않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해낼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만 알아서는 안됩니다. 이 참혹함이 바로 신비, 무섭고도 놀라운 신비의 바탕이라는 것까지 알야 합니다.

인생은 슬픈 것이다”, 이것은 석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입니다. 사실이지요.세속성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이대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134.제임스 조이스의 한마디가 기억납니다 그는 역사는 내가 헤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악몽이라고 했지요. 그러니가 이 악몽에서 헤어나는 길은, 두려워 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 자체가 만물을 창조한 무서운 힘의 현현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사상의 끝은 늘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그러나 고통또한 세상이 존재하는 까닭의 일부입니다.

 

 

 

<< 3.태초의 이야기꾼들 >>

 

-143.그렇기는 하지만 문제는 없어요. 육신이 그 힘의 정점에 올랐다가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중년의 문제는, 자기 자신을 그 나이의 육신과 동일시하지 않고 그 나이의 의식과 동일시 하는데 있어요. 문제는 여기에 있어요. 중년에 이르면 육신은 내리막길로 들어서지만, 육신이라는 수레에 실리는 의식은 그렇지 않아요. 나는 이 문제의 해답도 신화에서 배웠어요. 나는 무엇인가? 나는 빛을 내는 전구인가? 전구가 수레가 되어 실어 나르는 빛인가...나이를 먹어 갈 때 생기는 심리적인 문제는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죽음의 문을 한사코 거부해요. 그러나 육체는 의식의 수레와 같은 것입니.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식과 동일시하게 되면, 우리는 그 의식의 수레인 육신이 낡은 자동차처럼 부서져가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처음에는 범퍼가 내려앉고, 다음에는 타이어..그런식으로 하나씩 무너져가다 보면 이윽고 의식이 의식과 다시 만나는 대목이 옵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면 더 이상은 살아 있는 상황이 아니지요.

 

<< 4.희생과 천복 >>

 

 

-179.성소는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에게 절대 필요불가결한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여백, 혹은 여백같은 시간, 여백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그날 조간에 어떤 기사가 실려있는니도 모르고, 친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남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남이 나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모르는 그런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여백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인지, 장차 무엇일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여백이여말로 창조의 포란실입니다. 처음에는 이곳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성소로 삼게 되는 순간부터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179. 초원의 사냥꾼들에게는 세계 전체가 성소였어요. 그러나 우리 삶의 겨냥은 지나치게 경제화, 실용화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갈수록 순간 순간의 요구가 어찌나 집요한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도대체 어이데 있는지 우리가 참으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잊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이런 세태를 살다보면 우리는 늘 우리게에 요구된 일만 합니다. 우리 천복의 정거장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오디오를 틀어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시한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어도 좋겠지요. 바로 이 성소에서 다른 삶을 그대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겁니다. 초원에 살던 사람들이 이 세상의 만물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 말이지요.

 

-189: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아주 멋진 방법이랍니다.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이러저러한 게 궁금하다. 이러저러한 책을 읽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려서도 안됩니다.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 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그러나 이작가, 저작가로 옮겨다녀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하면 , 누가 언제 무엇을 썼는지는 줄줄 외고 다닐 수 있어도 ,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움은 안됩니다.

 

지금까지는 온갖 책을 체계 없이 읽었는데 죠셉 캠벨이 얘기한 방식대로 해서 책을 읽어봐야 겠다. 그래서 하나의 관점을 획득해보자.

 

-213. 우리는 육체적으로 죽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죽어야 하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 죽음을 통해서 더 큰 삶의 길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222.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 천복을 한번도 좇아보지 못하고 산 셈입니다. 천복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성공으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일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해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는 학생들에게 늘,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거라. 이런 소리를 합니다. 일단 이런 느낌이 생기면 이 느낌에 머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226. “ 내 의식이 제대로 된 의식인지, 아니면 엉터리 의식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존재가 제대로 된 존재인지, 아니면 엉터리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에 천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안다. 그래, 이 천복을 물고늘어지자. 이 천복이 내 존재와 의식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

 

그래, 이제는 천복을 물고 늘어지자. 그래서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자

 

-277. 천복을 쫓으면, 나는 창세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은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 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든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천복을 찾는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찾았다고 해도 좇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용기를 내야 하리라.

 

-227. 그게 어디가 되었든, 우리가 있는곳에 있습니다.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천복을 쫓으면서부터 이런 자연스런 삶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생명수를 마시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 5. 영웅의 모험>>

 

-229.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233. 영웅의 시련, 시험, 난관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굳이 말하자면, 이 사람이 정말 영웅인지 아닌지, 이 사람이 과연 이 일을 해낼수 있는지 여부, 정말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 용기, 지식,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누군가가 에비해놓은 어떤 관문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233. 자신을 버려서 자신을 더욱 높은 목적, 혹은 타인에게 준다는 겁니다. 이것만 알면 이 자체가 궁극적인 시련이라는 걸 깨달아 낼 수 있지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진정으로 참구한다면, 진정으로 자기를 보존할 방법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의식의 영웅적 변모의 과정에 든 거나 다름없습니다.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 전에는 이렇게 생각해왔지만 지금부터는 저렇게 생각해보는 것... 의식의 변모는 이로써 시작되느 것이지요.

 

-234. 의식은 어떻게 변모합니까?

스스로 부여하는 시련이나 계시를 통해서 변모하겠지요. 시련과 계시, 이것이 바로 변모의 열쇠입니다.

 

-262.나에게는 하나의 이론이 있어요. 어떤 젊은이가 모종의 장벽에 부딪쳤을 경우에는, 거기에 해당하는 특정 신화 대응물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젊은이의 경우는 문턱 넘기 의례와 관련된 신화 대응물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265. 다스베이더는 자기 인간성을 완전히 발달시키지 못했던 거지요. 그는 로봇입니다. 그는 자기의 뜻에 따라 사는게 아니라, 자기에게 강용되어 있는 조직의 뜻에 따라 사는 관료였던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우리 삶에 대한 위협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이 조직은 우리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인간성을 부정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조직이 과연 우리 인류의 목적을 이루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조직과 어떻게 관계 되어 있는가? 이 조직을 더 이상 섬기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생각의 체계에 맞게 이 조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이조직의 배후에 작용하는 역사적인 힘은, 그 정도의 행동은 의미도 없을 만큼 거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속한 시대의 역사를 사는 법을 익히는 일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만, 우리에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요.

어떤 방법으로요?

우리의 이상을 움켜안고, 루스 스카이 워커처럼, 조직이 가해오는 비인간적인 압제에 저항함으로써요.

 

바꿀 수 업는 것을 바꾸려했다. 우리가 시대의 역사를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의미있으리라

 

-271.우리는 우리안에 있는 포스를 찾아야 합니다. 동양의 영적인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자신있게 네 안에 있으니까 가서 찾아라라로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271. 모이어스:하지만 이 새로운 진실의 도전에 맞서고, 자기 삶을 여기에다 맞추어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 아니겠습니까?

캠벨: 천만에요! 그렇지가 않아요. 스승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야 소수겠지요. 그러나 내가 말한 것에 반응하는 건 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아이가 위험에 처할 경우,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나가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이와 같아요. 이런 능력은 우리 안에 있어요. 나날의 경제적 관심과 육신의 안락에 갇히지 않는, 진짜 삶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이런 능력이 있어요.

 

-272: 모이어스: 선생님의 이른바 드높은 영혼의 모험이란 무엇입니까?

캠벨: 내가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 내리는 처방은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는 겁니다.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 따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 하면 안됩니다.

모이어스: 우리의 일입니까? 삶입니까?

캠벨: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바로 그겁니다. 만일에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어? ” 이렇세 생각한다면 이게 바로 우리안에 갇혀있는 용입니다. “안돼,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거야.”라든지 나는 아무개가 하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을거야.” 이런다면 이게 바로 우리안에 갇혀있는 용입니다.

 

-273: 우리 자신을 구하면 세상도 구원됩니다. 생명력이 있는 인간의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영혼이 없는 세계는 황무지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무엇 무엇을 바꾸고, 법을 바꾸고 하다 보면 세상이 변할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천만에요! 어떤 세상이든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은 나름대로 유효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여기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입니다.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 생명이 우리 안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알아내어야 합니다. 연후에 우리 자신의 튼튼한 삶을 사는 겁니다.

 

자신을 구하지도 못하면서 많은 것을 남한테 미루고 남탓을 하면서 보냈는데,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고, 자신의 삶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273;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라도 좋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말해서, 마지막 일,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혼자해야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아에 속박된 자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용 우리에 갇혀 있어요. 분석 심리학은 용을 쳐부수고 무너뜨림으로써 우리를 더 넓은 관계의 마당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궁극적인 용은 우리안에 있어요. 우리를 엄중히 감시하고 있는 우리의 자아, 이게 바로 용입니다.

 

-273:우리의 자아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욕망하는 것, 우리가 믿으려고 하는 것, 우리가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사랑하려고 하는 것, 우리를 옥죄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 이게 바로 자아랍니다. 이건 아주 조그만 것일 수 있는데도, 어떨때는 우리를 아주 꼼짝 못하게 합니다. 이웃의 말에 따라 행동하다 보면 조만간 꼼짝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옵니다. 이 경우 이웃이 바로 우리의 내면에 비치는 용일 수 있어요.

 

-276: 젊은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가능성을 암시하는 을 만나는 일입니다. 니체는 인간은 병든 동물이다라고 했지요. 인간은, 그 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동물입니다.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삶입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할것인가.. 살아있는 신화는 우리에게 우리 시대에 알맞은 본을 제시합니다.

 

-277: 모이어스: “그대는 그대의 운명에 깨어 있는가?” 라고 물은 햄릿의 문제가 여기에 있군요?

캠벨: 햄릿의 문제는 자기의 운명에 깨어 있지 못했다는 거지요. 햄릿은 운명을, 너무 커서 도저히 다룰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운명이 햄릿을 다스려버렸던 거지요. 이런 일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어요.

 

-278;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인생은 전처럼 다시 즐거워 집니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죽음으로,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법입니다. 공포를 정복하면 용기있는 삶의 길이 열리지요. 모든 영웅이 경험하는 모험 중 아주 중요한 통과의례는 바고 공포의 극복입니다. 공포가 극복되어야 비로소 영웅적인 업적의 성취가 있는 거지요.

 

죽음은 삶과 별개가 아니라 죽음또한 삶의 일부이다. 그래야 살아 있음에 더 가치있고 의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

 

-286: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들떠서 행복한 상태, 흥분해서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진짜 행복한 상태, 그윽한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행복을 관찰하는데는 약간의 자기 분석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남이 뭐라고 하건 거기에 머물면 되는 겁니다. 내 식을 말하자면, ‘천복을 좇으면 되는겁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도 모른채 바삐 보내왔다. 아주 잠깐의 기쁨만을 누린채 보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천복을 찾아 진정으로 무엇이 즐겁게하는지를 잘 찾아야 겠다.

 

-296. 살면서도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신화는 읽어본 적이 없어요. 신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고, 다른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는 인생, 고통이 있어서는 안되는 인생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아요.

부처가 된 석가는 고통에서 헤어날 길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말하는 피난처가 바로 니르바나인데, 이 열반은 천국 같은 어떤 이 아니라, 욕망과 고통을 해탈한 마음의 심리적 상태를 말하지요.

 

-296: 고통도 해소되는 건가요?

그렇고 말고요. 부처는 보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보살이란 영생의 진리를 깨달으면서도 자진해서 이 세상에 내려와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이 세상의 슬픔에 참여하는 자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경험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남의 고통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자비라고 하는 것은 인간성이 지니는 자기 중심적인 수성에서 깨어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자비라는 말은 더불어 슬퍼한다는 뜻입니다.

 

-297: 니체에게 아주 중요한 개념이 있지요.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건데, ’운명에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운명이 곧 우리 삶이니 사랑하라는 겁니다.

 

-301; 깨달음이란, 만물을 통해 영원성의 찬연함을 인식하는 일이지요. 이 만물이라는 것은 이승에서 선한 것으로 판별될 수도 있고 악한 것으로 판별될 수도 있는 것인데, 바로 그 이면을 꿰뚫어보아 버리는 것이지요. 여기에 이르면 속세적 욕망이나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놓여납니다. 예수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블레이크는 , “지각의 문전이 깨끗하면 만물이 그 자체로 영원하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고 씁니다.

 

-365: 결혼에서 중요한 성실이란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진심을 다하는 것.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속이지 않는 태도, 약점을 따지지 않는 태도...이런걸 성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373:모이어스:사랑에는 기쁨만 있는 게 아니라 슬픔도 깃들여 있다는 것이군요.

캠벨: 사랑은 인생의 발화점이지요. 인생이라는게 슬픈것이기 때문에 사랑도 종국은 슬픈 겁니다. 사랑이 깊으면 괴로움도 깊은 법이지요.

모이어스: 하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캠벨: 사랑 자체가 고통, 혹은 진정하게 살아 있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요.

 

-387: 그럼 삶의 본원은 무엇입니까?

남의 삶에서 의 삶을 인식하는 것, ‘와 남은 둘이지만 살고 있는 삶은 하나임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하겠지요. 신은 그 하나의 삶을 표상하는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 하나의 삶이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는 질문을 자주 던지지요. 사람의 현상을 놓고 자꾸만 그러한 현상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 하느님이 만드신 거야이러고 말겠지요. 이런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삶의 본원인 겁니다.

 

남의 삶에서 나의 삶을 인식한다? 나와 남은 둘이지만 살고 있는 삶은 하나임을 인식한다는 것이 서로가 같은 방향을 표방할 때 가능해 보인다.

 

-412: 누가 나에게 그럼 당신은 그 잠재력을 어떻게 사오?”라고 묻겠지요. 내 대답은, ‘천복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에는, 우리가 중심에 이르렀을때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우리가 바른 궤도에 들어섰는지, 혹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만일에 돈을 벌기 위해 그 궤도를 이탈한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잃는 겁니다. 중심에 머물기 위해 돈 버는 일을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천복을 얻는 것입니다.

 

카를프리트 그라프 뒤르크하임은, “여행을 하고 있는데, 그 목적지가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때 여행의 목적지가 바로 여행임을 깨닫는 수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있어요.

 

-413:고통과 슬픔, 죽음과 폭력이 있는 이 세상이 에덴이라고요?

그렇게 보일뿐이지요. 그러나 이게 바로 그겁니다. 이게 바로 에덴입니다. 이 세상 도처에 왕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때까지 이 세상을 살던 방식을 버립니다. 이 버리는 순간, 이 순간이 바로 세상의 종말입니다. 이 세상의 종말은 미래의 어떤 순간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변화가 오는 순간, 세계를 보는 방법이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이런 순간을 경험하면 이 세상은 물질의 세상이 아닌, 빛의 세상이 될것입니다.

 

-415:캠벨: 말이라는 것에는 조건이 있고 제한이 있어요.

모이어스 : 그런데도 우리 이 하잘 것 없는 인간은 이 하찮은 언어에 머무는 군요. 아름답기는 하나 모자라서, 그리려고 해도 그리려고 해도...

캠벨: 그래서 절정의 순간은 이 언어 밖에 없는 것, 이 한마디, “....” 이 한마디 밖에는 할 수 없는 데 있는 것이지요.

 

언어의 제약을 받지 않고, 틀을 넘어서 보는 것이 중요하리라.

 

4.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조지 캠벨과 빌모이어스의 대담을 나눈 현대판 괴테와의 대화이다. 신화와 종교에 대한 용기있는 대담이 아닐까 싶다. 이윤기씨는 번역만 했는데도 친구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영웅이냐? 예수님이 어떻게 영웅들중의 하나로 비교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냐? ” 하는 호된 비판을 받았는데, 조지 캠벨이 생전에 방송이 되었다면 많은 비판들이 쏟아졌을 것이다. 물론 비판이 쏟아졌어도 조지캠벨은 이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 같다.

보통 신화라고 하면 원시시대의 얘기를 다룬것이고 그때와 지금은 많은 시간이 지났기에 그속에서 연관성을 찾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설령 있다하더라도 책속에서만 존재하는 전설로만 생각했다.

내게 신화는 단군신화, 그리스로마 신화가 다였고, 사실 자세한 얘기도 모른다. 그리고, 이공계이다보니 그런 신화들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신화의 힘?

둘의 대담을 통해서 펼쳐지는 신화의 힘은 정말 놀라웠다. 그동안 구본형 선생님이 왜 조지캠벨을 말씀하셨고, 시처럼 살고 싶었는지 알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조지 캡벨이 구본형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5장의 영웅의 모험을 보면서 보통사람들이 천복을 찾아 떠나는 영웅의 모험이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를 알게 해준다. 진짜 자기를 만날 수 있기위해서 신화에서 가르치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은 신화 자체, 또는 영적인 지도자나 스승을 따르라 두 번째로, 자기가 다루고 있는 문제와 같은 것을 다루고 있다 싶은 책을 이용해서 배우는 겁니다. 책 역시 실마리를 던져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내 무의식속에 있는 진짜 나를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중에서 동양은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고, 서양은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생각하는 큰 틀에 영향을 미친다고 조지 캠벨이 얘기했듯이, 이런 사소한 차이가 개인이 생각하고 꿈꾸는 기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니 나의 관점보다는 조직의 입장에서 문제를 접근해야 했고, 거기서 괴리가 생김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리더라는 위치는 조직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다. 그것이 조직의 작동원리였다. 하지만 그 속의 개인들은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화가 왜 중요한지, 자신의 내면여행, 자신의 천직을 찾아가는 영웅의 모험, 사랑과 결혼, 우리의 영원에 대해서 순차적으로 얘기한다.

이 책은 8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목차 >

 

-빌 모이어스의 서문

 

1.신화와 현대세계

2.내면으로의 여행

3.태초의 이야기꾼들

4.희생과 천복

5.영웅의 모험

6.조화여신의 은혜

7.사랑과 결혼이야기

8.영원의 가면

 

1.신화와 현대세계에서는

신화를 잃어버린 현대사회에 이성의 눈으로 다시 바라볼 것을 당부하며, 개인은 자기 삶과 관련된 신화의 측면을 찾을 것을 당부했다. 신화의 기능으로는 첫 번째로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 두 번째로, 우주론적 차원을 연다는 것, 세 번째로 사회적 기능, 네 번째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인데 이부분을 음미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안에서 공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장 내면으로의 여행은

신화의 심연의 바닥에 있는 구원의 모티브를 찾아서 자신의 본질인 원형적인 자기를 찾는것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3. 태초의 이야기꾼들은

태초의 동굴이 현대의 성당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샤먼은 시인, 사제자는 영화감독등을 통해서 역할이 수행되고 있으나 그 당시의 책임감은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에전에는 종교적 의례를 통해서 접신 상태, 망아 황홀 상태를 맛볼수 있으나 현대는 그것이 어렵기에 신화적 홀로서기를 강조했다.

 

4.희생과 천복은

천복의 중요성 및 천복을 찾을 것을 강조한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5.영웅의 모험은

영웅이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영웅의 행적에는 육체적인 행적과 정신적 행적이 있다. 출발, 성취, 귀환이라는 방식을 쫓으며, 석가나 예수도 영웅의 한범주로 설명을 하였다.

자신의 내적 원동력’, 즉 우리안에 있는 포스를 찾아 , 영웅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겨서 아모르 파티(운명에의 사랑)을 이룰 것을 강조했다.

 

6.조화여신의 은혜는

신화속에서 여신은 삶의 근원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어머니의 이미지를 승화한 것으로 설명.

 

7. 사랑과 결혼이야기는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신화적으로 풀어나갔다. 사랑이 깊으면 살아 있음의 고통도 커지고, 결혼에 있어서는 성실할 것을 강조했다.

 

8.영원의 가면은

내면에 있는 영적 잠재력 및 삶의 본원을 찾을 것을 강조하였으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의미는 결국 언어로 표현되는데 , 언어의 틀속에 국한되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보완점

신화에 대한 입문서이기도 하지만 저자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이 있으면 글을 이해하는데 보다 더 많은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담의 주제가 너무 광범위해서 신화에서 왜 이런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는지를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림 제목 밑에 책의 구절을 인용하는 것 대신 그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으면 그림과 글을 함께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의 대담집을 낼때는 <<괴테와의 대화1>>처럼 가능하면 그분이 살아계셨을 때 원고 내용도 서로 보면서 더 깊이 있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 한마디로?

<<신화의 힘>>은 신화는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투영해볼 수 있고, 미래를 나아갈수 있는 메타포다.

 

-키워드

공명, 의미 경험, 대극

의례, 의식의 변모, 자각, 육체, 미학, 접신, 망아,황홀, 신화적 자각

생명수, 모든 원형이미지는 마음(정신)을 상징

영웅, 시련과 계시, 난관, 관문, 벼랑, 내적 원동력, 포스, 천복을 따르다. 영웅의 모험, 아모르파티,낙타와 사자, 인식과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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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4 22:29:14 *.160.136.54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내 무의식속에 있는 진짜 나를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진짜를 찾는 작업. 그 작업은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신화의 힘은 영웅의 모험과 관련된 여정이 강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점은, 그 여정을 위해서는 내면으로의 여행과 천복을 쫓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구원 1년간의 과정은 김선형님의 진짜 나를 찾기 위한 길잡이가 되어줄 시간 입니다.

즐기시고 산을 올라갈 때의 기백으로 기대해 봅니다. 

 

p.s

: 과제를 제시간에 올리지 않은 사유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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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8 11:19:38 *.113.77.122

그동안 익숙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고, 저 자신의 내면여행과 천복을 찾는일을 같이 수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제를 제시간에 못한것은 그동안 책읽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내용을  좀 더 음미하고 전체적인 구조에서 다시 생각해보려고 하다보니 아직 이런것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시간 안배가 잘 안되었습니다. 

월요일 시간을 넘기기 마음만 급해지고,  어쨌든 시간안에 해나가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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