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장재용
  • 조회 수 1883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4년 4월 15일 11시 50분 등록

(지난 겨울, 후배들과 같이 올랐던 지리산에 대한 단상)

 

 2003년 여름, 지리산에 안긴 적 있다. 구례에서 성삼재로 버스를 타고 올랐었다.
임걸령에서 텐트를 쳤고 선비샘에서 야영을 한 뒤 다시 장터목에서 하루를 잤으니 참 느긋한 걸음이었다그때는 터질듯한 허벅지로 하루하루를 살았으니 만보도 그런 만보가 없었다. 그 해 지리산을 너무 깊이 흠향했던 지 이후 꽤 오랫동안 다시 찾지 못했다. 지리를 잊은 사이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내 다리도 부러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살던 집을 세 번이나 옮기며 나를 닮은 아들과 딸 하나씩을 낳았다.

 
이듬해 나는 직장엘 들어갔고 밥벌이에 정신 없는 사이 딱 10년이 훅하고 지났다. 겁나는 게 세월이요, 열린 문틈 사이로 고양이 지나는 찰나가 인생이라 했는가. 십년을 제쳐두고 어제 걷다 만 그 길을 다시 이어 붙여 가는 듯 오른다. 그러나, 내 모가지에 선명한 주름과는 무관하게 지리산은 아무렇지 않았다. 다만 장터목에 취사장이 새로 생겼고 내리막엔 데크가 깔렸고 때가 되면 입산과 산행을 통제하는 것이 조금 생소했을 뿐이다. 이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생소함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이노무 산은 얄밉게도 하나 변한 게 없다.

 
한때 지리산이 지겨운 적이 있었다. 매년 걸었고 어떤 때엔 일년에 서너번도 오른 적이 있었으니 토끼봉 오르는 계단길이 지겨워 세지 않으면 안되었었다. 세개의 도()가 점 하나로 합일된다는 삼도봉 삼각점도 대수롭지 않았고 연하천에만 가면 끊여 먹게 되는 라면 맛이 한 가지였다. 그땐 몰랐었다. 그 지겨움을 이리도 그리워할 줄. 나는 그때 이 산에 대해 못되먹은 마음을 먹어 제 스스로 간절할 때까지는 얼씬하지 말라는 벌을 지리산으로부터 받은 게다. 소중한 건 함부러 해선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리 마음조차 먹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몰랐던 후배들과 여물통에 라면 국물을 불어가며 마시는 사이, 잊어던 산가를 희미한 기억으로 이어붙이며 불러재끼는 사이, 스펠에 찰랑이는 소주를 부딪히는 사이, 굴곡진 메트리스 사이에 고인 물을 닦아내는 사이, 결국 우리는 같은 '코펠밥 먹는 사이'임을 확인한다. 이제사 나는 안다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일들은 그 어느 순간도 놓칠 수 없는 산이 주는 소중한 선물임을.

 
그러나, 백무동 그 긴 길과 중산리 내려서는 미친 내리막길을 하루만에 걷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10년 만에 찾은 지리산은 한 때 자신을 홀대한 만큼 나를 쉽게 용서하긴 싫었던 모양이다. 근데 아픈 허벅지가 왜 이리 기분 좋은가.

IP *.51.145.193

프로필 이미지
2014.04.15 21:44:23 *.62.180.122

8기 장재용 선배님과는 몇번 뵙지 못했지만 지리산 사랑 글을 뵈니 무척 가깝게 느껴집니다. 발걸음도 무거운 퇴근 길, 선배님 지리산 이야기 고개 끄덕여 가며 읽습니다. 지난 이십년 동안 17~18번 쯤 지리산 다녀왔던 것 같습니다. 근 몇 년 찾지 못했더니 요즘 부쩍 지리산 향수병이 도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겨울 새로 구입한 아이젠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또 봄을 맞이했네요. 이젠 텐트도 함부로 못치고 인터넷 대피소 예약도 3초 만에 끝나버리는 시대라 더더욱 지리산 종주가 요원해 집니다.


가슴 깊숙히 꾹꾹 담아 놓았던 속마음이 굳이 세치 혀를 빌리지 않아도 풀어제쳐져 펼쳐지는 체험을 선물해 주던 지리산 종주. 아스팔트로 뒤덮힌 도시 속에서 이렇게 변경연 울타리를 통해서라도 글로써 마음을 펼쳐 나눌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게다가 함께 뛰어줄 분이 히말라야 다녀오신 분이시기에 더욱 힘이 납니다. 저도 걸음 재촉하며 뒤따라 가보겠습니다. ^^

프로필 이미지
2014.04.16 18:27:02 *.51.145.193

헐레벌떡 올린 글이라 부끄럽습니다.

자주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항상 밝으신 모습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4.15 22:35:14 *.153.23.18

재용 짧고 깊어요. 재용 고마워요.  

프로필 이미지
2014.04.16 18:28:21 *.51.145.193

다음 주에도 누님의 기운이 저에게 전해져야 될텐데요...

프로필 이미지
2014.04.17 10:14:32 *.153.23.18

재용

 

지난 주에 친구 어머님 상으로 고향집에 갔다.

아버지가 밭 옆에 샘 하나를 새로 파셨더라고.

500은 자비, 500은 정부보조.

자비라 해도 월급이 없는 농사꾼한테는 다 빚이다. 영농자금.

 

수맥잡는 이를 부르고 600m를 파내려가서 샘을 하나 팠댄다.

농로에 공기로 구멍 뚫는다는 차가 서 있었어.

근데 새로 판 샘은 물길이 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동안 매일 일부러 물을 퍼 내서 버려야 한댔어.

엄마의 잔소리를 뚫고 매일 물을 버리러 가셨어.  

나는 아부지 농사트럭에 올라타고 물 버리는 걸 보러 갔었어.

전기 넣고 양수기로 퍼내더라. 물은 안 맑았어.

 

재용. 우리에게도 이미 샘은 있다. 

우리는 2012년에 제 대가리를 시추공 삼아 생땅을 팠다.

 

재용한테 사부님이 '그는 큰 산에 갔다왔다. 그도 큰 산이 될 것이다' 하셨잖아.

나로선 그 가늠을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분이 미리 보고, 그리 믿고, 공언했으니 사실일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재용의 한자가 뭔지 모르지만 '내 안에 용(dragon) 있다'로 읽는다.

용용 일 때는 '용 두마리', 용의 강조용법으로 읽는다.

 

콩새도 날고 용도 날자.

나는 용이 뱀이었을 때는 부리로 주변 낱알을 콕콕 먹고,

날개를 달았을 때는 겨드랑이에 낑겨 볼라고 한다.

고산의 낙락장송 옆에는 수많은 바람방향 잡목들이 있다.

같이 하고, 매일 하면 오래 흐를 수 있지 않을까?

내는 혼자 못해서 도움을 청한다요. 재용. 잘 부탁해요.

어제 진도에서 배가 침몰했다. 재용은 우릴 버리고 가진 않을 거다요.

내가 끈적끈적 들러붙네. 용용 죽겠지~~~~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52 MeStory(6) : 나는 왜 길을 잃고 헤매는가? [2] 타오 한정화 2014.04.02 2140
1251 유언장 - 데카상스 희동이 [2] 희동이 2014.04.08 1916
1250 강릉 입학여행 스케치 file [2] 구름에달가듯이 2014.04.08 2095
1249 #1 그대 스스로 죽으라_정수일 file [1] 정수일 2014.04.10 1969
1248 #1_1 부활의 축제 file [4] 정수일 2014.04.10 1864
1247 #1_2 에필로그 file [3] 정수일 2014.04.10 2112
1246 장례식:나의 부활의 소명(왕참치) [6] 왕참치 2014.04.10 2198
1245 나의 장례식 [6] 앨리스 2014.04.10 2121
1244 [DS1] 죽음은 생명을 낳는다 ( 태백산에 오르다. 생명을 만나다) [2] 땟쑤나무 2014.04.13 1888
1243 장례식을 마치고_10기 박윤영 녕이~ 2014.04.14 1932
1242 데카상스 첫 수업 - 장례식 후기 [1] 희동이 2014.04.14 2092
1241 세 번 죽는 여자-10기 구해언 장례식 후기 어니언 2014.04.14 1949
1240 아직 죽지 못했습니다-장례식 후기 에움길~ 2014.04.14 1953
1239 나의 장례식 _찰나 찰나 2014.04.14 2309
1238 우리들의 다정한 장례식 - 강종희 [2] 종종걸음 2014.04.14 1961
1237 10기 페이스메이커 함께 해요 [5] 유형선 2014.04.15 1875
» 그 겨울, 지리산 [5] 장재용 2014.04.15 1883
1235 3-1. 결혼기념일 여행 주간 [7] 콩두 2014.04.15 3193
1234 간절함에 대하여... [4] 정산...^^ 2014.04.15 2441
1233 추억여행 (구달칼럼#1) file 구름에달가듯이 2014.04.15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