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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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말부터 한 달에 세 번씩 나는 같은 요일에 같은 장소로 출장을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업의 하나인 강의를 위한 방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일부러라도 가보고 싶어 하는 즐거운 여행이기도 합니다. 나는 매주 그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내가 찾아가는 그 장소는 이천에 소재한 아주 멋진 식물원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60여 명의 직장인들에게 숲과 생명, 즉 자연을 통해 우리가 더 깊고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향기로운 삶을 사는 지혜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50여 주 동안 거의 매주 그 기업의 임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이미 숲 인문학을 강의한 바 있습니다. 당초 요청은 -다른 곳 대부분의 요청도 그렇듯- 피로를 입은 직장인들에게 숲 이야기를 통해 힐링의 시간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실내 특강 절반, 야외 강의 절반의 형태였고 할애된 시간은 90분이었습니다. 이 조건을 맞춰 진행하기 위해 나는 정말 주마간산으로 숲과 삶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몇 주 지나지 않아 교육 담당자는 내게 오전 시간 전부를 강의할 수 있도록 할애했습니다. 엔지니어가 대부분인 그 기업의 임직원들은 때로 점심을 먹는 시간을 늦춰가며 나의 강의를 즐겨주었습니다.
그렇게 전 임직원이 한 순배 강의를 듣는데 햇수로 2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올 해부터 새롭게 시작된 그 기업의 임직원 연수과정에 나는 다시 초대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총 5시간을 할애해서 그중 세 시간여를 그곳 식물원에서 보냅니다. 나는 그 제안을 받고 참 고맙고 기뻤습니다. 처자식 생계비에 보탬이 될 강사료 생각에도 고마웠지만, 더 기뻤던 점은 그들이 숲 인문학을 더 깊게 마주하고 싶어 한다는 그 자체였습니다. 경험적으로 엔지니어들에게 인문적 강의를 깊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엔지니어들은 고유의 인식 및 사고 체계를 습관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계와 장비, 건축과 토목의 공법을 익혀온 사람들, 그들의 가슴을 열려면 먼저 그들의 엄밀하고 검증적인 사고(머리)를 무사히 통과해야 합니다.
나의 숲 인문학 강의는 사고라는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이라는 감정이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기관이라는 인식론적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해서 오랫동안 집중하고 익숙해져 있는 그들 머리의 검열을 통과하지 않고는 그 목적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난 과정을 통해 기꺼이 가슴을 열어젖혔고 다시 더 깊게 숲을 통해 삶과 경영을 바라보고 싶다는 것이니 내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 출장 강연이 내게 주는 기쁨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매주 그 아름다운 식물원을 거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범 강연을 시작하던 3월 초, 식물원에서 나는 복수초며 처녀치마, 앉은부채, 히어리 같은 이른 꽃들을 만났습니다. 4월로 바뀐 식물원은 온갖 식물들이 꽃잔치를 벌이며 그 눈부신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주부터 나는 처음에는 챙기지 않았던 카메라를 챙겨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우리나라 다양한 식물들이 사계절 변화해 가는 모습을 마주하고 기록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기쁨은 덤이지만, 덤 수준을 넘습니다.
숲을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종종 조심스레 묻습니다. “세속한 질문인데요, 저- 숲을 공부하면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나요?” 나는 늘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시선으로 숲을 대하느냐가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잘 통과하고 나면 숲을 통해 돈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무엇만은 분명히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충만한 삶’입니다.”
밥 먹고 살면서 깊고 충만한 삶을 누릴 수도 있다고 내가 주장하는 숲, 그것의 첫 번째 관문인 숲을 대하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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