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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0일 19시 46분 등록

4월 신화, 내 원형을 찾아서

2014. 4. 20 정수일

변신이야기 1, 2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 / 민음사



1. 저자에 대하여


오비디우스(BC 43년 ~ AD 17년) : 시인


오비디우스는 기원전 43년 로마의 술모(이탈리아 술모나)에서 부유한 기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기사계급은 정치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계층으로 주류에서 정치적 영향력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급이었다. 여느 귀족들의 자제들과 마찬가지로 관리로 성장하고 성공하기 위하여 수사학과 법률을 배웠다. 그러나 그의 따고난 재능과 끼는 그를 따분한 관리 노릇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시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삶에 비하면 관리로써의 삶은 너무나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풍족한 유산과 탁월한 재능으로 문단으로 진출하여 얼마지 지나지 않아 문단과 사교계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이 무렵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존귀한 자)에 의해 팍스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가 꽃피던 시절이었다. 신분질서가 정리되고 치안과 식량문제는 안정적이었으며 학문과 문화를 부흥시키는 평화롭고 풍족한 세상이었다. 문단은 젊은 문학 지망생들을 고무하여 현실적인 근심걱정에 구애되지 않은 채 문학적인 재능을 갈고 닦을 수 있게 해주던 바야흐로 황금의 시대였던 것이다. 더불어 실제적으로 황제나 다름없던 아우구스투스는 풍속을 정비한다는 미명아래 로마의 여인들에게 검투장 출입을 금지시키고 50세 이항의 모든 여성에게는 결혼과 출산의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여성들의 자유분방함을 지극히 제한하였다.


이 시절 오비디우스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준 저 유명한 저서가 바로 <사랑의 기술>이다. 그는 이 책에서 “보아주는 이 없는데 곱게 핀 꽃이 무슨 소용이랴.”라고 하면서 금욕을 강요당하고 있던 당시 로마인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로마의 사교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명성을 구가하던 오비디우스는 급기야 황제의 손녀 율리아(어머니 율리아와 동명)의 애인이 되어 화려하지만 위태로운 애정행각의 동반자가 되었다. 율리아는 그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투스의 추상같은 유신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여인이었던 모양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설치고 다니던 율리아는 로마의 많은 호걸들을 사랑하였는데 그들 가운데 오비디우스도 있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풍속을 정비하려는 의지로 강력한 정책을 펼치던 아우구스투스에게 방탕한 자신의 딸을 찬양하고 또 그의 손녀와 놀아나며 사랑의 기술을 로마 전역에 전파하는 오비디우스가 마뜩치 않았음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황제는 오비디우스를 토미스라는 땅으로 귀양을 보내게 된다. 오비디우스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꿈은 이렇게 종말을 고하였다.


유배지에서 오비디우스는 이제 한가하게 사랑타령이나 꽃노래를 부르고 있을 형편이 아니게 되었다. 황제의 진노를 풀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야 했으니 말이다. 관능적인 도시, 평화로운 도시, 유혹의 도시로 돌아가 시인으로서 누리던 명성과 윤택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었다. 리비우스가 <로마 건국사>를 쓰고, 호라티우스가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기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던 시절이었고, 베르길리우스가 대작 <아에네이스>를 써서 로마 황제에게 신성을 부여하려고 하던 시절에 오비디우스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수많은 영웅들이 그들의 정통성과 고귀함을 엮어내기 위해 신에게 족보를 대던 시절이었으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명확했다. <변신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베르길리우스가 <아에네이스>를 통하여 트로이아의 유민 아이네이아스를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되면 로마인의 조상은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거쳐 아이네이아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따라서 아프로디테를 거쳐 우라노스까지 자연스럽게 소급되게 되면서 로마의 지배자들은 결국 신의 자손이라는 신통성과 고귀함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오비디우스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방대한 그리스 신화는 물론이고 당시에 떠돌던 소아시아의 설화, 트로이아 전사, 로마의 건국신화까지 줄줄이 한 꿰미에 꿰어 카이사르에게 신성을 부여하고 그의 양아들인 아우구스투스까지 자연스럽게 신성이 이어지게 하였다. 심지어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관계를 크로노스와 제우스의 관계에 비유하면서 아우구스투스를 지극히 치켜세웠다. 하늘에는 제우스, 땅에는 아우구스투스가 아버지이자 지배자라고 하면서 말이다. 빤하게 들여다보이는 의도가 궁색하고 황당하지만 당시 오비디우스의 처지와 시대상황을 함께 견주어 본다면 마뜩치 못한 대목들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로마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력은 그를 로마로 데려가지 못했다. 화려한 도시, 유혹과 사랑이 넘치는 도시를 갈망했지만 오비디우스는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변신 이야기>가 아우구스투스의 마음을 녹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방대한 저작은 중세를 기독교와 오비디우스의 시대라고 부를 만큼 후대에 지극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그려낸 신화의 세계는 후대의 작가들과 시인,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들의 붓끝을 인도했다. 아울러 수천 년의 시공을 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그의 공헌이 깊고도 높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로 인하여 까마득한 시원의 인류가 오늘에 이어져 펼쳐질 수 있으니 그의 공헌이 사뭇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6. 이 카오스는 형상도 질서도 없는 하나의 덩어리에 지나지 못했다. 말하자면 생명이 없는 퇴적물, 사물로 굳어지지 못한 모든 요소가 구획도 없이 밀치락달치락하고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

-> 나는 문득 문득 기원이후 인간의 문명이 단 한 발짝이라도 발전한 것인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등등 이 무렵의 사고체계에서 나아간 것이 무엇인가! 벌써 이 시대에 사람들이 진리를 탐구하고 체계를 세웠다는 것이 항상 놀랍기만 하다.


16. 이 같은 반목(카오스)에 종지부를 직은 이는, 이런 요소들보다는 훨씬 빼어난 자연이라는 신이었다. 신에 다름 아닌 이 자연은 하늘로부터는 땅을, 땅으로부터는 물을, 무주룩한 대기로부터는 맑은 하늘을 떼어놓았다. 자연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지경에서 이들을 떼어내고는 서로 다른 자리를 주어 평화와 우애를 누리게 했다.


19. 빈 곳이 있으면 거기에 사는 것이 있어야 마땅한 법이다. 


19. 이 인간은 세계의 시원이자 만물의 조물주인 신이, 신의 씨앗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고, 이아페토스의 아들 프로메테오스가 천공에서 갓 떨어져 나온, 따라서 그때까지는 여전히 천상적인 것이 조금은 남아 있는 흙덩어리를 강물에다 이겨, 만물을 다스리는 조물주와 그 모양이 비슷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 직립 보행하는 인간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신비롭고 경이롭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과학의 주장보다 신의 형상을 한 인간을 신이 직접 만들어 만물을 다스리게 했다는 주장을 긍정한다. 조상이 원숭이인 것 보다 신의 피조물이 되는 것이 훨씬 존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내가 돌아가지 못한 신의 핏줄인지도...그래서 필연적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영웅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을지 어찌 알겠는가.


21. 사투르누스는 시간을 상징한다. 그리스어 크로노스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크로노스는 자식을 낳은 족족 잡아먹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크로노스의 이러한 속성은 태어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 자체의 속성을 상징한다. 사투르누스는 자기 자식인 유피테르 6남매도 모조리 삼켰다가 다시 토해 낸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유피테르 6남매가 이로써 시간을 극복했음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뱃속에서 놓여난 유피테르는 아버지 사투르누스를 무한 지옥에다 가두어 버린다. 

-> 놀랍고 신비로운 은유다. 필멸하는 인간의 구원을 이토록 멋들어지게 풀어낸 이들의 상상력이 아름다울 뿐이다. 자신의 시원을 죽여 자신이 사는 것이다.


21~24. (금, 은, 동, 철의 시대) (......) 이로써 유해한 철과, 철보다도 더 위험한 황금이 속속 인간의 손안으로 들어 같다. 금속이 나돌자 사사로운 싸움은 곧 전쟁으로 번졌다. 전쟁이 터지자 사람들은 피 묻은 손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삼도 생겨났다. (......)

-> 금, 은, 동, 철의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를 너무나도 절묘하게 비유했다. 이 이야기가 기록된 지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철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인간은 순결, 정직, 성실성 같은 덕목을 기피하고 오로지 기만과 부실과 배반과 폭력과 탐욕만을 좇았다. 오싹하리만치 섬뜩한 통찰이다. 옛사람들의 지혜와 고전의 힘을 고스란히 느낀다. 


33. 고삐에서 풀려난 바다는 고삐에 묶인 산을 유린했고 파도는 그런 산의 봉우리를 어루만졌다.


34. 하늘에서는 땅이, 땅에서는 바다가 보이게 하였다.

-> ‘날씨가 개었다.’는 표현을 이렇게나 윤기 있게 표현하였다. 따라할 것이다. 이런 것은.


39. 이러한 피조물들은, 온기와 습기가 알맞게 어울리는 환경에서만 그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만물이 이 두 가지 요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었다. 물과 불은 비록 상극이기는 하나 습윤한 온기는 만물의 근원이었다. 말하자면 물인 습기와 불인 온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 자고로 그러하다 생명이란 것이 물과 불의 조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46. 정신없이 달아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다프네의 모습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바람은 달아나는 다프네의 옷자락을 날려 사지를 드러나게 하고 있었다.

-> 사랑의 불길을 이렇게 부질없이 타오른다. 먹지 못하는 사과가 더 붉은 것은 어떤 연유인가. 달아나는 여인의 모습이 바람에 나부끼며 절정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쫓는 사랑의 사냥꾼은 더욱 불타오를 수밖에...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


49~59. 암소가 된 이오

-> 그녀는 행복했는가. 사랑도 폭력일 수 있는가. 


64. 네 힘, 네 나이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때가 되면 죽을 팔자를 타고난 인간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은 필멸의 팔자를 타고난 인간에게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 이것은 명예가 아니고 파멸의 씨앗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이 은혜가 아니고 파멸이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 미숙한 너에게 하늘로 오르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

-> 인간의 한계, 만용의 경고, 준비 없는 자에게 닥친 기회는 재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도전


81. 파에톤의 아버지인 태양신은 일식 때 그렇듯이 늘 슬픔에 잠긴 채 기가 죽어지냈다. 

(......) “나도 운명의 여신이 내게 맡긴 일을 이만하면 어지간히 한 셈이다. 이 일 때문에 나는 천지창조 이래로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밑도 끝도 없는 이 일, 이제 신물이 난다.”

-> 아들을 잃은 헬리오스는 꿀꿀한 날들을 보낸다. 그간 열심히 해오던 일들이 문득 혐오스럽고 권태롭다. 무슨 복을 누릴 것이라고 알아주지도 않는 이 고생을 이토록 정성스럽게 열심히 해 왔단 말인가! 오늘 날 열심히 일한 중년들이 느끼는 박탈과 공허함이다. 단지 먹고 마시기 위해 일해 왔던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리오스는 다시 고삐를 잡았다.


84. 여기에서 일을 벌이면 내 아내가 무슨 수로 알아내랴만, 알아낸들 어떠냐, 저 정도면 취하고 나서 아내의 잔소리쯤은 들을 만하지 않은가.

-> 칼리스토를 범할 작정을 한 제우스가 한 말이다. 제우스는 남자들의 이상과 욕망을 모두 모아서 탄생했다. 힘과 욕망을 가졌으며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 그러나 정실부인에게만은 꼼짝하지 못한다. 모든 남자들은 제우스가 되고 싶다. 그런 꿈을 꾸는 것이다. 


86.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로구나. 자식을 배는 것부터가 나를 능욕하는 처사인데 그 자식을 낳기까지 해서 나를 또 한번 능욕하고 내 지아비가 저지른 난봉의 증거로 삼아? 네가 무슨 수로 이 징벌을 피하겠느냐? 이 호난 계집아. 너와 내 남편을 시시덕거리게 만든 너의 그 아름다움을 빼앗아버릴 터이니 그리 알아라.

-> 칼리스토가 도대체 무슨 죄. 질투의 화신 유노는 여인들의 욕망이 모인 결정체다. 칼리스토는 유노의 분노로 곰이 되어 온갖 고초를 겪었다. 곰이 된 칼리스토는 아를 아르카스와 만났다. 물론 곰의 모습으로 사람인 아들을 만난 것이므로 아들은 어미를 알아 볼 리 없다. 아차 하는 순간 살모의 불행이 일어날 판이었다. 유피테르는 이를 가엽게 여겨 이들 모자를 하늘의 별로 만들어 주었다. 질투의 화신 유노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아! 여인의 질투는 무섭고도 집요하다.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는가!


94. 큰 까마귀는 기어이 포에부스에게 날아가 코로니스가 젊은 테살리아 사내와 나란히 누워있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 미리 경고의 메시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자질 하는 우를 범한 큰 까마귀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벌을 받고 말았다. 아는 것을 함부로 떠들지 말라. 


105. 인비디아는 잠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밤이고 낮이고 근심 걱정에 좇기고, 남의 좋은 꼴을 보면 속이 상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나날이 여위어가는 것이 인비디아였다. 남을 고통스럽게 하면 하는 대로, 자신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저 자신만 녹아나는 게 바로 이 인비디아였다.

-> 인비디아는 질투의 여신이다. 질투의 모양을 한 인비디아의 모습에서 질투의 실체를 만난다. 결국 저 자신만 녹아나는 게 바로 질투였다. 


117. 이렇게 선 도시가 바로 테바이다. 카드모스는 결과적으로 보면, 아버지로부터 추방당함으로써 축복을 받은 셈이다. (......) 그러나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힐 날이 되어봐야, 그 한살이가 행복한 한살이였는지 복복한 한살이였는지, 드러나는 법이다.

-> 카드모스 역시 전형적인 영웅의 시놉시스를 따르고 있다. 아버지에게 버림 받고 누이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가 우연한 기회에 신탁을 받고 괴물을 물리치면서 자신의 땅을 건설한다. 영웅은 떠나고 고행하고 이룬다.


118. (디아나와 악타이온) 

-> 악타이온은 그가 기르던 사냥개에게 물어 뜯겨 죽었다. 사슴으로 변한 채, 디아나의 벗을 몸을 본 것이 화근이었다. 


124. 입으로 아무리 악담해 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야? 이번에는 내 손으로 이 계집을 결단 내어야겠다.

-> 남편이 바람피운 여자에게 복수하는 것이 유노의 본업인 듯 하다. 복수를 하려거든 유피테르에게 할 일이지. 화가 나기도 하겠다만 어쩌겠는가! 일면, 유피테르가 내내 밖으로 도는 것은 어쩌면 표독스런 아내에게서의 탈출?

그녀 스스로도 밖에서 나은 자식이 있으면서 말이다.


127. 거듭 태어난 박쿠스

-> 박쿠스는 어머니의 몸에서 그리고 남은 달은 아버지의 허벅지에서 자랐다. 거듭 태어난 박쿠스라니...역시 술은 사람을 거듭 태어나게 한다. 숨은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술이다.


136. 이 일을 어쩔꼬.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구나,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불길에 타고 있었구나. 나를 태우던 불길, 내가 견디어야 했던 그 불... 그 불을 지른 자는 바로 나였구나, 아. 이 일을 어쩔꼬. (......) 내게 넉넉한 것이 나를 가난하게 하는구나. 

-> 우리의 사랑이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닮은 타인, 즉 또 다른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태초에 남녀가 한 몸이었다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래서 그 타인에게 ‘자기’라고 하는 것이다. 물에 비친 내 모습에 손을 뻗으면 뻗을수록 닿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도 결국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나르키소스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142. 장애물이 없을 때는 조용히 부드럽게 산 아래로 잘 흘러가던 시냇물이, 나무나 바위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포말을 날리고 소용돌이치면서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160. 당신의 손,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죽였군요. 이만한 일을 할 손이라면 내게도 있어요.

-> 어찌하여 이야기 속의 사랑은 항상 어처구니없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마는가! 사람들이 비극,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해서인가 그들의 사랑을 시기해서 인가. 이승에서 맺어주면 좋을 것인데 하필이면 왜 죽어서 맺어지는 것인가. 그것 참!


168. 그러자 신주에 젖은 레우코토에의 몸이 스르르 녹으면서 주위로 향기가 퍼져나갔다지. 이윽고 그 흙에 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면서...

-> 신화에서 의미 있는 죽음의 자리에서 나무가 자라거나 꽃이 자란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180. 바다가 세상의 강이라는 강은 모조리 받아들이듯이


181.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티튀오스, 물이 가까이 있으나 이 물이 자꾸만 도망치는 바람에 영원히 물을 마실 수 없고, 과일나무 가지가 머리위에 있으나 손을 내밀면 과일이 도망치는 바람에 영원히 과일을 먹을 수 없는 탄탈로스, 굴려 올려놓으면 순식간에 굴러 내려온 바위와 영원히 씨름하는 벌을 받고 있는 시쉬포스, 영원히 불바퀴를 돌리는 벌을 받고 있는 익시온, 밑 빠진 독에다 영원히 물을 길어다 부어야 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 벨로수의 손녀들.


199. 박쿠스의 은혜 = 포도주


225. 시리얼은 케레스(데메테르)의 영어식 발음인 ‘시어리스’에서 나온 말


230. 그대가 이렇게 우기니 프로세르피나를 마땅히 천궁으로 데려와야 할 일이기는 하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곳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야 하오.

->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저 생기는 것도 없으며, 바란다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신화의 이야기 구조에는 반드시 이런 금제가 작동한다. 


231. 프로세르피나(페르세포네)가 석류알을 먹었다는 말은, 사랑을 나누었음을 상징하는 듯 하다. (역자 주)


237. 노래를 겨루자고 부득부득 우겨 우리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죄만 해도 적지 않은데 우리가 입은 상처에 침 까지 뱉어? 우리 어디까지 참을 줄 알았더냐? 이제 너희들에게 우리를 욕보인 죗값을 물릴 수밖에 없다.

-> 인과응보, 공을 이루면 보상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 구조는 어김없다.


242. 아라크네는 제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오직 이길 수 있다는 일념으로 제 운명과 맞서려 할 뿐이었다.

-> 삼갈 줄 모르면 반드시 치욕을 당한다. 주제(자신, 자신의 위치)를 모르고 날 뛰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치욕을 벗을 기회를 굴욕으로 여긴 오만은 반드시 재앙으로 돌아온다. 

교만의 화신 니오베, 개구리가 된 사악하고 교만한 소인배 뤼키아 농부들, 산체로 껍질이 벗겨진 마르쉬아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운명에 맞서 금제를 열고 밖으로 나서야 한다.


242. 무지개가 지닌 여러 가지 색깔이 띠는, 맞물리는 곳에서는 하나로 보이지만 여기에서 조금만 떨어지면 전혀 다른 색깔로 보이는 법이다.


264. (프로크네와 필로멜라) 이들의 복수는 참으로 잔혹하다. 차마 인간이 할 수 없는 잔혹한 이야기의 복선은 무엇인가. 아귀지옥이 바로 이곳이란 말인가?


282. 무서운 여자 메데이아.


308. (아이코스와 개미 족) 오이노피아(= 아이기나) 왕국에 닥친 역질의 참혹함은 그 당시 또는 그 이전에 창궐했던 전염병의 무서움을 끌어와 이야기로 만들었을 것이다. 뻑 하면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이는 통치자들의 존엄을 확보하는데 신성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며 기왕에 끌어 오는 것, 신들의 왕 제우스를 끌어와 그와 피로 맺어진 관계로 설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연유로(제우스와 연결 되려면 제우스가 바람이 나지 않으면 안 되고) 결국 헤라의 미움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여 닥치는 모든 재앙이 헤라의 질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327. “오라 아우라(=미풍)여, 내 가슴으로 오라, 사랑하는 길손이여, 와서 내 가슴을 달래어다오. 내 소원 들어, 뜨거운 이 가슴 식혀다오.”

->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슬픈 이야기는 처연하다. 사랑이 깊으면 눈을 가리는 모양이다. 끊임없이 시험하고 싶고 이 사랑이 도망갈까 걱정한다. 결국 그 자리에 오해와 질투가 움트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괴물이 자신에게서 자라나고 어느 순간 그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우리가 나눈 혼인의 서약에 걸고,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신들의 이름에 걸고 나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사랑에다 걸고 약속해 주세요. 이렇게 죽어가면서 드리는 부탁이니 약속해 주세요. 내가 그대에게 모자라는 아내였더라도 나 죽은 뒤에라도 아우라를 아내로 삼지는 말아주세요.” 그녀는 죽어가면서도 집착이라는 괴물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이야기 한 두 편쯤은 주변에서 봤거나 익히 들었을 법 한 이야기다. 혹시 이들이 의처증, 의부증의 시조들인가!


335. 아, 아버지만 계시지 않는다면......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저 자신의 신이 디어 저 자신의 뜻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의 여신은, 행동하는 인간을 돌보실 뿐, 기도만 하고 있는 인간은 돌보시지 않는다. 누군들 나와 같이하려 하지 않겠는가. 욕망이 내 욕망만큼 강렬하다면 누군들 사랑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깨뜨리지 않겠는가.

-> 아~~이 가여운 여인 스퀼라야! 니 말은 지극히 온당하다만 깨뜨려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분간하지 못하느냐! 가슴이 때론 어처구니없는 것을 시키기도 하는구나. 이성이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분별하지 못하면 결국 또 죽는다. 믿음을 배신하지 마라


335. 인간의 근심을 치료하는 전능한 의원인 밤이 찾아왔다.

-> 밤은 인간을 담대하게 한다. 잠이, 인간의 가슴에 깃들인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재우는 평화로운 시간이다.


344. “이카로스, 내 아들아. 내 단단히 일러두거니와 하늘과 땅의 한 중간을 겨냥하여 반드시 그 사이로만 날아야 한다. 너무 올라가면 태양의 열기에 깃이 타버릴 것이요, 너무 낮게 날면 바닷물에 젖어 깃이 무거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늘과 바다 한 중간을 날도록 하여라.”

(......) 빈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힌 그는 아버지 곁은 떠나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348.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 칼뤼돈의 왕 오이네우스는 어느 해 풍년이 들어 신들께 두루 예물을 올리고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그런데 유독 디아나 여신만 쏙 빼 놓고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이 때문에 화가 난 디아나 여신은 멧돼지를 보내 칼뤼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이야기를 통해 감사의 표시를 할 때도 삼가고 공손해야 함을 생각한다. 아쉬울 때 보다 감사의 표시를 할 때 소홀하기 쉬움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받을 것이 있는 사람은 줄 것이 있는 사람보다 명확하다. 그리고 더 소심해 있다.


366. 신들이 힘을 누가 장차 측량하랴. 신들께서는 능하지 않은 바가 없으시다네. 신들께서는, 당신들께서 바라시는 바는 언제든지 어디서든 이루어지게 하신다네.

-> 내 안의 힘을 누가 장차 측량하랴. 내 안의 나는 능하지 않은 바가 없다. 나는 내가 바라는 바 언제든지 어디서든 이루어지게 한다.


371. 용감한 영웅 중에서도 출중하신 테세우스시여. 모습을 바꾸는 데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 한번 그 모습이 바뀌면 영원히 그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 변신이 있고 수시로 그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둔갑이 그것입니다.

-> 의무를 다한, 착한, 의로운 사람은 그들대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을 지은 사람은 또 그들대로 변신한다. 나무로 물로 신으로 별로 새로 동물로 바다로 산으로 그리고 괴물로 변한다. 무엇으로 어떻게 변하는지는 과거와 현재가 결정한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좋은 업보를 쌓으면 좋게, 고약한 업보를 쌓으면 또 그렇게 신화의 이야기는 변신의 연속이다.


371. (아구병에 걸린 에뤼식톤) 신을 우습게 여긴 에뤼식톤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아구병에 걸렸다. 딸까지 팔아 배를 채우던 에뤼식톤은 종국에 제 몸을 모두 뜯어 먹고서야 끝이났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탐욕을 경계한다. 탐욕이 결국 자신을 다 삼키고 나서야 끝이 나고 마는 인간의 탐욕을 빗대어 에뤼식톤을 탄생시킨 것이다.


[2권]


31. 뱀이 낡은 껍질을 벗고 새 비늘이 반짝이는 새 껍질로 거듭나듯이 티륀스의 영웅도 필멸의 육체를 벗고 불사의 몸으로 거듭났다.


41. (뷔블리스와 카우노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하늘에는 하늘의 법도가 따로 있다고 하실 테지요만, 하늘에 하늘의 법도 따로 있고 땅에 땅의 법도가 따로 있다면, 하늘의 법도로 인간을 다스리시려 하시는 것에 장차 무슨 뜻이 있겠습니까? 

-> 남매간의 금지된 사랑이다. 넘지 말아야할 선에 대한 교훈이 있다.


67. 아내가 혹시나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 염려하던 오르페우스는 근심과 걱정과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 순간 에우뤼디케는 다시 저승 땅으로 떨어졌다.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손을 잡으려고 자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의 손끝에 닿는 것은 싸늘한 바람뿐이었다.

-> 상실이다. 손끝에 닿는 것이 싸늘한 바람뿐인 것 같은 것.


114. “제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황금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박쿠스 신은, 그보다 나은 소원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 황금이 전부가 아닐텐데......결국 미다스왕은 황금 때문에 고통을 얻었다.


178. (아킬레오스의 죽음) 수많은 트로이아 영웅들을 이겨내었던 저 유명한 영웅 아킬레오스는 이렇게 해서, 그리스 땅에서 남의 아내를 꼬드겨온 비겁한 자의 손에 죽었다. 아킬레오스는 자신이 여자만도 못한 파리스 같은 자의 손에 죽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터였다.

-> 영웅 아킬레오스의 죽음은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찬 삶을 비유하고 있는 듯 하다. 영웅적인 삶과 황당한 죽음은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필멸의 인간과 겸손과 삼가의 미덕을 말해준다.


207. 아이아스는 분노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슬픔과 분노가 어느 누구도 정복하지 못하던 아이아스를 정복한 것이었다.

-> 슬픔과 분노가 나를 정복하게 하지 말라. 이것들이 나를 정복하는 순간 나는 내 주인이 아니다. 


220. 이 아우로라는 지금도 온 세상에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눈물을 뿌리고 있다.

-> 새벽이슬이 아우로라의 눈물이었다.


298. 인간은, 대지가 베풀어주는 곡식을 먹을 자격도 없는, 참으로 배은망덕한 동물이 아닙니까? 소의 목에다 쟁기 띠를 매어 굳은 재지를 갈고, 여기에서 곡식을 수확한 인간이, 이번에는 그 쟁기 띠를 벗기고 그 벗긴 자리를 도끼로 내려칩니다. 이런 인간이 배은망덕한 동물이 아닙니까?

-> 산 것을 죽여서 먹어야 살 수 있는 인간은 모순과 역설을 애시 당초 잉태하여 태어났다. 


300. (퓌타고라스의 가르침) 모든 것은 변할 뿐입니다.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혼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알맞은 형상이 있으면 거기에 깃들입니다. 짐승의 육체에 있다가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에 있다가 짐승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고 돌 뿐,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드러난 것은 단지 찰나적인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항상 흐릅니다. 강처럼 흐릅니다. 강물에, 어디 가만히 정지해 있는 순간이 있던가요? 물결은 다른 물결에 밀립니다. 

(......)

처음의 모양대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조화는 끊임없이 이 물건으로 저 물건을 지어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 우주에 소멸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뿐입니다. 새로운 형상을 취할 뿐입니다. ‘태어남’이라는 말은, 하나의 물상이 원래의 형상을 버리고 새 형상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 형상대로 있기를 그만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변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변하여 이것이 될지언정 그 합은 변하지 않습니다.

(......)

나지막하게 우는 송아지의 목을 칼로 도리고, 어린아이처럼 우는 어린양을 죽이고, 제 손으로 기르던 새를 잡아먹는 인간이...이 얼마나 못된 버릇입니까? 같은 인간의 피를 보려고 예행연습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러한 인간에게 살인은 짓기 어려운 죄가 아닙니다. 자, 이런 식으로 가다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

그는 이렇게 가르쳤으나 사람들은 그의 귀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 자, 이런 식으로 가다가 어떻게 되겠는가!


336. (결사) 이제 내 일은 끝났다. (......) 그러나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그 땅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 시인의 예감은 적중했다. 수천 년의 시공을 건너와 오늘 이렇게 살이 있으니 말이다.



3. 내가 저자라면


그나마 내가 쉽게(?) 읽었던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로마 신화>의 원전이 바로 이 책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 였다고 하니 원전을 읽은 셈이다. 나는 아직 신화가 어렵다. 문체가 낯설고 신들과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지명들이 어렵다. 유럽의 역사에 대해 아직은 깊이가 얕은 것도 신화를 읽어내는데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은유와 교훈을 건져내는 것은 아직 언감생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귀한 인연이다. 무릇 이야기라는 것은 마음이 열리고 느긋할 때 다가오는 것이다. 마음이 팥죽을 끓이는데 이야기가 읽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나 문학적 감성이나 시적 감각이 없이는 더더욱 신화라는 종목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에이~~~그런게 어딨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신화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황당한 옛날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악몽 같은 사건’이 있었고 늘 따라다니는 개인적인 다망한 일들이 꿀꿀하게 얽혀 있었다. 읽다가 막히면 한발 물러서고 또 막히면 한발 물러서고를 했지만 여전히 무겁고 갑갑했으며 분노로 여러 밤을 보내야만 했다. 사정이 이러할 진데 이야기가 제대로 녹아들어 올 리 없다. 꾸역꾸역 성실만이 미덕인양 엉덩이를 붙이고 책장을 넘길 도리밖에 ... 하여 이 책은 반드시 다시 읽어내야 할 책이 되고 말았다.



[책의 구성]


이 책의 본문은 저자의 서사(여는 글)와 결사(맺음 글)로 끝나지만 본문은 연대기에 가깝다. 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아우구스투스에게 신성을 부여하면서 책을 맺고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책의 저작 목적이 시대에 부역하는 것이었으므로 방점은 아우구스투스의 신성부여에 있을 것이다. 이 한마디를 하기위해 이토록 많은 이야기로 변죽을 울렸으니 저자의 정성이 대단하다. 그러나 저자는 그의 세속적 의도와 욕심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전편에 걸쳐 은유와 통찰이 번뜩인다. 특히 <제15부, 2. 퓌타고라스의 가르침.>에서는 이 이야기가 퓌타고라스의 가르침인지 퓌타고라스의 입을 빌어 저자의 주장을 한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처음엔 무슨 신탁이라도 받으려는 냥 숨겨진 은유와 가르침을 담으려고 긴장하며 꼼꼼히 읽었다. 그러나 이렇게는 도저히 못 읽겠다. 읽을 수 없었다. 잡고 있던 것을 놓았다.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책을 읽는 듯 그렇게 읽었다. 비로소 페이지가 넘어간다.


- 신들과 그들의 피를 받은 반신반인의 혈족들과 그들의 사랑을 받은 인간들은 주어진 일, 즉 천직을 수행한다. 만약 이 천직을 버리거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천벌을 받는다. 우리도 우리의 천직을 찾아야 할 모양이다. 천벌 안 받으려면 말이다.


- 수천 년 전에 이렇게 정교하고 방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수많은 캐릭터와 사건들로 엮은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에 담긴 은유와 통찰은 신비하다. 특히 원소에 대한 이야기, 자연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 퓌타고라스의 통찰 등은 시공을 넘어 빛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동양의 그것들과 흡사한 대목들을 만나는 일은 새로운 꺼리를 만나는 괴로운 행운이다.


- 각주가 아주 훌륭하다.

저자의 일러두기에서 밝혔듯이 신들의 이름을 로마식으로 표기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식을 별도로 각주로 달아 둔 것은 신의 한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이들의 이름과 족보가 마치 미궁과도 같다. 


오비디우스는 결사에서 자신의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소망했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시인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가 소망하던 대로 그의 이름은 그의 이야기와 함께 수천 년의 시공을 건너와 오늘 이렇게 살이 있으니 말이다. 



[감동적이었던 장과 절]


21~24. (금, 은, 동, 철의 시대) (......) 이로써 유해한 철과, 철보다도 더 위험한 황금이 속속 인간의 손안으로 들어 같다. 금속이 나돌자 사사로운 싸움은 곧 전쟁으로 번졌다. 전쟁이 터지자 사람들은 피 묻은 손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삼도 생겨났다. (......)

-> 금, 은, 동, 철의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를 너무나도 절묘하게 비유했다. 이 이야기가 기록된 지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철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인간은 순결, 정직, 성실성 같은 덕목을 기피하고 오로지 기만과 부실과 배반과 폭력과 탐욕만을 좇았다. 오싹하리만치 섬뜩한 통찰이다. 옛사람들의 지혜와 고전의 힘을 고스란히 느낀다. 


300. (퓌타고라스의 가르침) 모든 것은 변할 뿐입니다.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혼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알맞은 형상이 있으면 거기에 깃들입니다. 짐승의 육체에 있다가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에 있다가 짐승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고 돌 뿐,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드러난 것은 단지 찰나적인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항상 흐릅니다. 강처럼 흐릅니다. 강물에, 어디 가만히 정지해 있는 순간이 있던가요? 물결은 다른 물결에 밀립니다. 

(......)

처음의 모양대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조화는 끊임없이 이 물건으로 저 물건을 지어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 우주에 소멸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뿐입니다. 새로운 형상을 취할 뿐입니다. ‘태어남’이라는 말은, 하나의 물상이 원래의 형상을 버리고 새 형상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 형상대로 있기를 그만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변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변하여 이것이 될지언정 그 합은 변하지 않습니다.

(......)

나지막하게 우는 송아지의 목을 칼로 도리고, 어린아이처럼 우는 어린양을 죽이고, 제 손으로 기르던 새를 잡아먹는 인간이...이 얼마나 못된 버릇입니까? 같은 인간의 피를 보려고 예행연습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러한 인간에게 살인은 짓기 어려운 죄가 아닙니다. 자, 이런 식으로 가다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

그는 이렇게 가르쳤으나 사람들은 그의 귀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 자, 이런 식으로 가다가 어떻게 되겠는가!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인류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가르쳤으나 사람들은 그 귀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


[보완점]


탁월한 한 사람의 일생을 고스란히 바친 한권의 책을 며칠에 걸쳐 읽으면서 콩이야 팥이야 할 깜냥이 되지 않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례를 범하지 않을 수 없으니 늘 삼갈 따름이다.


- 철저하게 시대에 부역하는 책이다. 때론 황당하고 궁색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이 책이 가지는 특징이며 저자와 시대상황과의 연계성을 이해하게 하는 연결고리로 이해할 수 있다면 장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 27. 저 불순한 무리들이 카에사르를 죽이고 이로써 이 땅에서 로마라는 이름을 지우고자 했을 때, 온 세상이, 온 인류가 이를 떨었듯이... 등 신화의 이야기 가운데 불쑥불쑥 끼어드는 현실정치에 대한 이야기들은 안타깝기도 하고 귀하기도 하다.


- 4장 등에서와 같이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는 이야기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물론 이 책을 어렵게 느끼는 하수의 경우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전체에 걸친 사항이겠으나 판형과 글자 크기를 조금 키웠으면 좋겠다.


- 오비디우스가 로마인이었으니 오비디우스의 관점으로 신들의 이름과 영웅들의 이름을 로마식으로 표기한다는 역자의 코멘트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그리스 이름이 그립고 그리웠다. 각주로 병기하고 있었으나 집중해서 읽을 수 없었느니 결국 내가 공력이 짧음을 탓할 밖에...


- 2인칭 운문으로 되어있는 원문을 3인칭의 산문으로 바꾸면서 번역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익숙한 문체는 아니다. 조금 더 현대식 표현으로 쉽게 읽히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 방대한 이야기에 엄청난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은 마치 미궁과도 같다. 계보를 따로 엮어 정리해 주는 친절함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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