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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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지도 이야기 구달칼럼#2
집 주변에 걸어서 가서 쉴 만한 나만의 아지트를 구축하는 것은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저녁을 먹고 아내와 어디 산책이라도 하고 싶어도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어 망설일 때가 많다. 막상 집을 나서서 산책을 할 때도 “아! 바로 이곳이야, 우리의 아지트!” 이렇게 외칠만한 장소를 찾지 못하여 그냥 빙빙 돌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기가 일쑤다.
그래서 작심하고 홀로 나왔다. 주로 가던 길을 벗어나 뒷길로 가다가 우연히 숲으로 둘러 싸이고 정면으로 가로등과 달을 감상할 수 있는 좀 호젓하면서도 푸근한 벤치를 발견했다. 벤치3개가 곡선으로 놓였는데 제일 안쪽의 벤치는 이미 한 젊은 커플이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다. 얼마나 안온한 곳인지 좀 오래 앉아 있어 보기로 한다. 휴대폰을 꺼내어 최백호의 노래 몇 곡을 다운받아 들어본다. 간간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구름이 꽤 끼어 있었지만 괴괴한 달빛 아래 듣는 완숙한 최백호의 노래는 달빛과 함께 내 몸에 녹아 든다. 아예 벤치에 깊숙이 들어 앉아 신발을 벗고 평발을 치고 작정하고 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내 아지트로 삼아도 좋겠다. 아내도 충분히 좋아할만한 곳이다. 이런 곳을 많이 만들어 두고 매번 코스를 바꾸어 들린다면 훨씬 다양한 재미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곳들이 많이 쌓이면 내가 좋아하는 곳들을 엮어서 지도를 그리고 코스마다 이름을 붙여서 친구들을 초대하여 함께 방문하며 순례기를 써도 좋겠다. 김휴림이란 분이 운영하는 '아름다운 여행'이란 버스여행 클럽이 있다. 이 곳은 처음에는 국내 도보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동아리로 시작했는데 좋은 코스가 계발되고 회원이 늘어나자 주 2~3회 전국을 커버하는 여행사가 되었다. 당일 혹은 하루 이틀 묵어가며 걷기에 좋은 길을 선별했다. 볼거리 먹거리까지 세심하게 배려하여 한 달치 여행코스를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공고를 하는데 가히 작품 수준이다.
사진가 윤광준도 한국의 재발견이란 코드를 가지고 1박2일의 테마여행을 하는데 여기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 윤광준의 사진강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매번 가야금이나 창의 명인 같은 테마에 어울리는 예인을 초빙하여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이 여행의 특징이다.
이렇듯 무언가 주제를 갖고 그에 맞는 장소를 결부시켜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을 정하여 실행에 옮기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 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인데 여태껏 찍어온 사진을 보노라면 필연적으로 머문 장소가 따라 붙는다. 특히 추억이 깃든 옛날 사진들을 엮어서 파노라마 영상을 만든다면 내가 즐겨 찾던 곳들도 자연 나타날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친구와 청계천 버드나무 아래서 만나 김밥과 맥주를 마시고 나와 광교 아래 전시된 아마추어 사진작품들을 감상하고, 서울도서관 5층 옥상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 바로 아래 도서관에서 찾던 자료를 열람하고 왔다면 머무르는 곳마다 찍어온 사진을 펼쳐본다. 청계천 버드나무 아래 - 광교 전시관 - 옥상카페 - 서울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점심 산책코스가 그려진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평소 즐겨 들리는 곳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 내게는 나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나 진배없다. 자기의 신화라는 것이 결국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든가? 오비디우스도 변신 이야기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의 작품, 즉 자신의 이야기가 대대손손 읽히면서 이를 통해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소망은 실제로 이루어 졌다. 이천 년 후 동방의 나그네 손에서도 그의 작품은 읽히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나만의 지도도 쓴 이야기로 오비디우스의 꿈을 꾸어 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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