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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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1.
칼리스토를 위하여
문명과 원시의 삶
내가 살고 있는 세계, 그리고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같은가.
우리는 지금 기원(紀元) 후 2014년을 살고 있다. 생각해도 아득한 2천 년 전 씌어진, 그보다 더 아득한 시대의 이야기를 읽으며 살고 있다. 이때의 이야기는 거칠고 야만적이다. 모든 문명이 원시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원시는 문명 속에 공존하고 있다. 의식세계 역시도 -구본형의 말처럼- 문명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무의식은 아직도 문명에 의해 순치되지 않은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 우리의 현실적인 토대와 가치는 여전히 암흑과 원시를 품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나의 세계와 당신의 세계는 다를 지도, 같을 지도 모른다.
신화의 세계 속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던 사랑, 질투, 분노, 보복, 증오는 신으로서의 위치에서 내려와 우리 주위를 맴돌며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있다. 변신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이름으로 바꾸어 보자. 문명 이전의 원시 시대의 이야기라 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이야기가 눈앞에 있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며 앞으로도 이어질 이야기이다. 우리의 의식세계 현실세계에 여전히 존재하는 이야기이다. 집단이 꾸는 원형적 꿈으로서의 신화의 세계는 단지 ‘옛이야기’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낼 것인가를 알려 준다. 우리가 품고 있는 하나의 세계가 현실적 세계의 삶을 이끌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천 년 전, 문명이 시작되기도 전의 야만의 시대라서 그때는 그렇지,라고 넘기지 못하고 현실의 바탕 위에서 변신이야기를 본다. 오늘날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듯이 지독히도 닮아 있는 ‘사건’으로서 본다. ‘사건’이 일어났기에 분노하며 감정을 다스리기 벅차지만 좀더 이성적으로 돌아와 ‘문제’로서 ‘사건’을 본다. 다시 이 문제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에.
유피테르는 바람둥이가 아니다
변신이야기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대단한 권능과 권력을 가진 유피테르는 바람둥이로 묘사된다. 본처 유노를 두고서도 버젓이 여신과 수많은 님프와 인간들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세상의 진정한 바람둥이들이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다. 유피테르와 동격으로 취급받는 데 분노할지 모른다. 그는 바람둥이가 아니다. 바람둥이가 될 수 없다. 그저 성폭력범죄자일 뿐이다. 그것도 ‘상습적’ 성폭력범이자 ‘권력적’ 성폭력범이다.
전지전능한 신은 늘 둔갑한다. 철저하게 희생자를 위한 맞춤형이다. 그래야 희생자에게 쉽고 빠르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뛰어나다는 능력이 그 방면의 탁월성을 말함인지 어떤 위험도 불사하고 화려한 둔갑술로 쉽게 목표를 이뤄낸다. 그가 단지 바람둥이라면 그가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그 장점으로 여성들을 유혹하는 것이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마음을 가진 요정이나 여신, 인간이 있다면 그야말로 그는 바람둥이가 되는 것이다. 어쨌든 바람둥이라 욕할지라도 그저 욕으로서 끝날 수 있는 일이다. 어쩌겠는가. 다른 여인들을 무수히 사랑했을지라도 그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여인네들의 자발적 마음이 있다면야 비난은 할지언정 법적인 대응을 할 수는 없잖은가.
그는 세계를 통치하는 지배자로서 범죄자를 처벌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세상의 인간들이 너무나 사악해지는데 분노하며 그들을 벌하기 위해 친히 대홍수로서 인간들의 악함을 평정하기까지 한 참으로 ‘정의’로운 신이였다. 그러나 유피테르는 자주 여성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완력을 행사해 여성을 겁탈하는 놈이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칼리스토이다. 칼리스토 이전에도 이오를 겁탈한 전력이 있다. 더구나 칼리스토를 겁탈하기 위한 그의 전략은 매우 치밀하다. 성폭행을 보다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여장한 남성들이 기사를 장식한 일이 있는데, 아마도 변신이야기를 잘 읽은 모방범죄인 듯하다. 유피테르는 칼리스토가 따르는 여신 디아나의 모습을 변장하여 성폭행에 성공했다. 성폭행을 더욱 잘 하기 위해 여자로까지 둔갑한 이 전지전능하신 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말로 유능하신 바람둥이로 봐야 할까. 더구나 디아나는 그의 딸이다. 친구 딸을 성폭행하는 아빠들 얘기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사건이다. 무엇보다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그가 가진 사고방식이다. 기본적인 양심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사고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심각한 문제다. 그도 생각은 있는지 잠시 생각한다.
여기에서 일을 벌이면 내 아내가 무슨 수로 알아내랴만, 알아낸들 어떠냐. 저 정도면 취하고 나서 아내의 잔소리쯤은 들을 만하지 않은가. -오비디우스, 변신이이야기, p84.
이미 처벌받지 않은 전과를 가진 그는 또다시 사건을 만든다. 합당하게 내려지지 않은 처벌이 가져온 비극이다. 그를 욕한 이는 오로지 아내뿐, 그가 걱정하는 것 역시도 아내의 잔소리뿐이다. 이유야 다를진대 유일하게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아내를 생각하지만 행동에 대한 반성이나 고려로서가 아니다. 자신이 얻을 성취와 아내의 잔소리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목적’에 충실한 사고를 한다. 여성에 대해 가지는 사고방식이 그가 가진 권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름조차도 가장 아름다운이란 뜻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기에 자신의 성적 욕구를 발산하고 ‘정복’하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여성을 수단과 도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칼리스토, 사랑을 나누었다 말하지 말라
여기,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불행히도 아름다움으로 만인의 사랑을 불타오르게 한 이 여인은 처녀이고자 했다. 그녀는 디아나를 섬겼기 때문이다. 디아나를 섬기지 않고 순결을 맹세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비극적 고통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조금은 덜 고통받았을 것이다. 권력자에게 아부하게끔 되어 있는 이 사회의 기록은 이 사건을 칼리스토가 유피테르와 ‘사랑을 나누었다’라 한다. 이 사건만큼‘사랑’이란 단어가 왜곡되어 사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처녀는 여자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저항했다. 유노가 아무리 질투심이 강하나 여신이라고 하더라도 이 장면을 직접 보았더라면 처녀를 잔혹하게 벌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처녀의 몸으로 여느 남정네 이기기도 어려운 터에, 무슨 수로 신들의 지배자인 이 유피테르를 이길 수 있으랴. 처녀는 꺾였고, 유피테르는 뜻을 이르고는 천계로 올라가버렸다. 요정은, 자기가 당하는 꼴을 목격한 그 숲이 싫어서 견딜 수 없어 그곳을 떠났다.
- 오비디우스, 변신이이야기, p84-85.
다시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칼리스토는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확실한 거부 의사를 밝혔고 본인이 가진 최대한의 힘을 다해 저항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주 쉽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한다. 남녀 사이는 모르는 일이라며 그녀의 노력을, 그 처참한 일들을 가볍게 치부하거나 어떤 행실을 하고 다녔느냐는 비난을 칼리스토에게 던진다. 결국 죽을힘을 다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한다.
칼리스토는 무슨 잘못을 했는가. 당연 인간은 종족 번영의 의무를 지었건만 이를 거부해서인가.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한 죄, ‘여성들이여 아이를 낳아 종신토록 고통받으라’는 처벌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서인가. 그러나 결국 칼리스토는 아이를 낳게 되었다.
사랑을 나누었다고 말하지 말라. 아무리 우겨대고 포장해대도 그것은 폭력이다. 칼리스토에게 꼬리쳤다라고 말하지 말라. 나약한 인간은 둔갑할 능력따윈 없다. 나약한 여성은 마음으로 정하지 않은 이를 위해 꼬리를 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목숨을 다해 저항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다니! 당신 같으면 돈 안주면 죽인다는 놈한테 돈을 주랴, 목숨을 주랴?
디아나, 본질을 잃은 너의 눈이 답답하다
꺼져버려라! 이 거룩한 시냇물을 더럽히지 말고 꺼져버려라.
- 오비디우스, 변신이이야기, p88.
사랑하는 가족에게서, 친구들에게서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을 듣는 것은 현실 사회에서도 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칼리스토와 같은 피해자는 디아나처럼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위로 대신 욕설과 비난을 더 듣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적인 것은 디아나가 ‘순결’을 숭배한다는 데 있다. 디아나에게 ‘순결’이란 너무도 고결한 상징인지라 ‘순결’을 잃은 칼리스토는 무조건적인 배척의 대상이 된다. 이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이 순결주의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왜곡된 ‘성 이미지’를 여성과 남성에게 이중적 잣대로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성’에 대한 가치를 오로지 ‘처녀성’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이 디아나의 사고방식은 본질을 망각한 것이다. 본인의 가치가 ‘순결’에 우선하는 것이라니 그러한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려는 의지는 충분히 인정하고 공감해 주련다. 그러나, ‘순결’에 집착한 나머지 인간의 가치를 외면하고 상황을 사려깊게 헤아려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이 땅의 어머니들이 성폭행당한 딸을 두고 오히려 ‘같이 죽자’고 비탄해하던 일들은 이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이 순결주의로 인한 문제이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순결의 강요는 남성에게는 다르게 적용된다. 오히려 남성은 동정인 것이 부끄러운 일로 간주되며 성에 있어서의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을 주문한다. 또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성폭행에 대해서도 심각한 범죄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남자가 그럴 수 있지’라는 사고방식으로 대처한다. 그러므로 피해자는 엄연한 피해자로서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치부되어 디아나가 했듯이 가족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쫓겨나는 것이다.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순결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므로 이미 처녀성을 잃은 여성은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성폭력 사건에서 남성중심의 가부장 문화와 더불어 가족중심 문화가 피해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가족간, 친촉간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폭력 역시도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이 허다하다. 또한 당연 사회적인 낙인을 피하고자 하기에 사건을 감추고 덮으려 한다. 게다가 가해자가 법적인 처벌에 이르게 되면 그 역시 가족이기에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를 걱정하고 처벌을 주장하다가도 당장 교도소에 가게 될 가해자에 대한 적극적 구제로 돌아서는 것이다.
디아나의 요정들, 침묵하는 그대들이 두렵다
이와 같이 가족과 친족들에게서 받는 모멸적인 처사는 사회로 나가면 더욱 더 확장된다. 불행히도 칼리스토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과 고난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불행을 안고 스스로에게 죄의식을 가지며 살아야 했다. 달이 아홉달을 차고 기우는 동안 그녀는 그렇게 고통 속에서 홀로 견뎌야 했다. 정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고통을 아고서 말이다. 만약 그녀의 고통을 헤아려 주는 이가 있었다면, 역시나 그녀의 고통이 덜 했을까.
아르카디아 요정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뿐만 아니었다. 이 요정은, 어느 때와는 달리 디아나 여신 앞으로 나서지도 못했고, 선두에서 요정들을 선도하지도 못하는 채 그저 다소곳이 서 있기만 했다. 그러나 이 요정은 속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붉어진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디아나 여신 자신이 만일에 처녀가 아니었더라면, 이 아르카디아의 요정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첫눈에 눈치챘으리라.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다른 요정들은 모두 그 눈치를 챘었다고 한다.
- 오비디우스, 변신이이야기, p85.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우습게도 위의 구절들을 보면서 역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디아나 여신은 칼리스토의 아픔을 알지 못했다. 같이 지내면서도 칼리스토의 슬픔과 고통을 알아주지 못했고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 어떤 설명을 듣거나 헤아림 없이 분노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디아나 여신은 끝끝내 몰랐다하더라도 그 많은 다른 요정들은 왜 침묵했을까.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들은 눈치를 챘었다고 하니 사려가 깊다고 해야 하나, 그저 경험자일 뿐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이 칼리스토의 상황을 눈치를 채고서도 침묵하고 있던 것은 그들의 일들이 알려질까 두려워했던 것일까. 그런 이유로 아홉달이 지나서도 칼리스토를 감싸주지 못했던 것일까.
달이 아홉 번 차고 기운 뒤 다른 요정들이 달려들어 이 요정의 옷을 벗겼다.
- 오비디우스, 변신이이야기, p85.
어느 누구도 성폭력 피해자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심정을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현실, 분명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죄책감과 수치스러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고통을 말이다. 벗어날 수 없는 암흑의 시간은 언제 끝이 날지 모른다. 더구나 칼리스토처럼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이 되면 또다른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얻지 못할 때 사회로부터 외면받을 때 현실적으로 칼리스토와 같은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어떠한 결정이든 고통인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무수한 디아나의 요정들만이 있다면 세상은 더욱 더 힘들 것이다. 마치 제 잘못을 감추기 위해 희생제물을 삼듯 요정들은 하나같이 칼리스토의 상황을 외면했다. 알면서도 무심하였고 또한 도움이 필요할 땐 적극적으로 그녀의 상황을 까발리고자 했다. 질투심으로 평소 사랑받는 칼리스토의 비극을 즐겼던 것일까. 그저 남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세상 살기에 편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행동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어쩌면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는 디아나의 요정들, 그런 가정들을 넘어서고서라도 인간으로서의 애정과 연민을 기대하는 그대들에게, 모든 것을 알고서도 침묵하는 그들과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참 두렵다.
유노, 머리채를 쥐어 잡는 당신의 손이 부끄럽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로구나. 자식을 배는 것부터가 능욕하는 처사인데 그 자식을 낳기까지 해서 나를 또한번 능욕하고 내 지아비가 저지른 난봉의 증거로 삼아? 네가 무슨 수로 이 징벌을 피하겠느냐? 이 호난 계집아, 너와 내 남편을 시시덕거리게 만든 너의 그 아름다움을 빼앗아버릴 터이니 그리 알아라.
이 말 끝에 유노는 연적인 이 요정의 머리채를 잡아 땅바닥에 내굴렸다. 요정은, 땅바닥에 쓰러지자 유노에게 빌 요량으로 두 팔을 벌렸다.
- 오비디우스, 변신이이야기, p86~87.
갈 곳 없는 칼리스토는 어느 산 속 동굴에서 아이를 낳는다. 그러자마자 달려든 저 포악스러운 여인네는 성폭력범죄자의 본처라 하는 유노다. 세상은 어찌 이다지도 모순적이고 불공정한가. 진정 빌고 있는 사람이 칼리스토인가. 유노의 저 진정되지 않는 분노가 정녕 칼리스토를 향하는 것이 정당한가.
천지분간을 못하는 유노는 얼마 전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청부살인 사건의 사모님 모습과 오버랩된다. 그 사모님께서는 본인의 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으나, 저 머리채를 쥐어잡는 손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는 건가. 유노는 자신이 법적으로 유피테르의 아내라는 점만을 들어 이 사건을 ‘간통’과 같이 취급하고 있다. 본인의 질투와 위상에 대한 분노로 사건을 파악하고 있다. 더구나 이미 수차례 남편이 벌인 일들을 보아왔다면 저 분노의 화살은 남편인 유피테르로 향해야 하며 머리채를 쥐어잡은 손은 가지런하게 모으고 칼리스토를 향해 머리 숙여 빌어야 한다. 유노는 자신이 남을 벌할 위치에 있지 않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권력을 쥐고 있으면 죄가 사해지고 타인을 자기감정에 의해 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불행하게도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늘 가해자로 취급받는다. 역시 가해자의 부인은 사건의 심각성을 모른 채 피해자를 잘난 남편을 유혹하는 여인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도 인지하고 있듯이 이미 유피테르는 상습범이다. 그런데도 유노는 늘 ‘남편’이 아니라 불쌍한 여인들들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남편으로 인한 상처가 큰 탓에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듯하니 정신과적 상담이 필요할 듯도 보인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유피테르는 상습적인 성폭력범이다. 전자발찌도 필요하고 가해자 격리가 매우 필요하다. 그럼에도 본처라는 이유만으로 행하는 유노 여신의 이 어리석고 이기적인 비난을 봐라. 이 땅의 아내들이 이러하다. 남편의 성폭력범죄에 관한 한 자신이 아내가 될 때에는 여성임을 잊는다.
남신과 남성, 가재는 게 편, 유유상종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위세당당하다. 하나의 사건이 가져온 결과에 힘입어 그들의 의식 속에는 당연, 별거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는다. 그까짓 거 조금 귀찮으면 그만인 것이고 유피테르가 그러했듯이 미래의 작은 처벌의 위협보다 당장의 성폭행을 통한 자신들의 욕구 충족과 정복했다는 만족감을 더욱 더 중시한다. 더구나 칼리스토와 같은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더욱 죽을 힘을 다해 애를 쓰고 타인의 일이라면 심지어 부러워 죽으려 한다.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은 하나. 이 사회가 성폭력범죄자들에게 가하는 이중적 잣대를 알고 있음이다. 맹비난하는 듯이 보여도 처벌의 수위는 낮고, 피해자와의 합의만 한다면 공소권 자체가 없다. 피해자와의 합의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어라 쫓아다니며 합의해달라 졸라대면 되고, 여차하면 꽃뱀에게 당했다고 하면 된다, 아니, 정말로 여성이 거부하지 않았다고 하면 된다. 그저 우리는 사랑을 나누었다고 여자도 적극적이었다고 하면 된다. 이 얼마나 위험을 무릅쓸만한가.
이 땅에서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있어야만 하는 친고죄는 앞서 이야기했듯 이 사회의 순결이데올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서 성폭행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피해자에게는 불리한 일이니 명예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친고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까짓거 당사자들이 해결할 일이고 원만히 잘 해결하여 가해자에게도 용서의 기회를 주라는 참 관용적인 법적 작용이다. 피해자가 형사절차를 밟고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로 인한 공익보다 피해자가 형사소추를 피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보호가 더 크다는 이유로 비참하게도 이날까지 유지되어 왔다.
이로 인해 수많은 가해자가 처벌의 문턱을 오르내리다 결국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둔갑하여 제 생활을 잘 이어갔다. 그러다 여차하면 또 사건을 저지르고. 고소기간도 공소시효도 짧은 이 성폭력 범죄는 지극히도 오래전부터 박혀온 가부장적 성문화로 인한 것이기에 법적인 제재를 통해 이 인식을 제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와 같이 성폭력범죄가 가부장적 성문화로 인한 것이고 남성들을 비롯한 왜곡된 성문화와 권력탓이라 말하면 다들 일어나 한마디 한다. 저 페미년들, 아가리 닥쳐!
별자리, 그곳도 안식처는 아니었다
요정은 곰으로 둔갑했다. 곰으로 살면서도 다른 짐승들을 보면 피하고 숨었다.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한 저 변신은 성폭행피해자들이 자기가 살던 곳에서 벗어나 숨어 사는 모습과 닮아 있다. 그들이 낯선 곳에서 낯선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다른 이들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행복과 축복으로 생겨나지는 않았으나 아홉달을 품어 세상에 나온 아들은 키워보지도 못한 채 남의 손에서 자라야 했고 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들이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원수가 아님에도 아들이 어미를 죽이려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유피테르는 이들 모자를 하늘의 별자리로 박아준다. 좋게 해석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다. 결국 장래가 남아 있는 어린 청춘을, 제 아들마저 죽인다는 이야기 아닌가? 안타까움에 아비로서 한 일이긴 하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제 15세가 된 소년이 엄마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곰’으로 변하였다가 문도 모른 채 영구박제가 되어 버린 사건이 아닌가. 더구나 질투심 강한 유노는 죽어 하늘로 사라진 이 모습도 참아내지 못하여 제 부모에게 닦달한다. 제발 저들을 내 주위에서 ‘치워’달라고. 꼴보기 싫다고. 전능하신지 자식을 사랑함에 표본이 되시는지 이들은 제 딸의 과한 요구를 꾸짖기는커녕 당장 이 요구를 받아 칼리스토 모자를 박해한다.
마치 이 땅의 미혼모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본인의 힘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가 없어 다른 이에게 입양되어야 하고, 세월이 흘러 만났을 때는 자식을 버린 어미라 외면받는 상황들. 그리고 또한 이들을 괴롭히는 끊임없는 ‘문화’라 불리는 사회의 편견들. 성폭력 범죄자들에게 영원토록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은 단지 그러한 일을 당했다는 안타까움의 마음도 있지만, ‘어떠한 문란한 행동을 하고 다녔기에’라고 하는 잘못된 인식이 함께 한다. 그리고 성인도 물론이지만 아동과 청소년 피해자와 같이 어린 이들에게는 더욱 더 감당하기 힘든 요인이 된다. 그들의 사건은 종결된듯 보이지만 영원히 끝난 것이 아니다. 어디서든 그들을 괴롭히는 시선, 그들은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나가야 하나.
이 땅의 칼리스토들이여!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인간을 떠나자 마지막까지 이 땅에 남아 있던 불사(不死)의 처녀신 아스트라이아도 머리를 풀고 이 피 묻은 땅을 떠났다.
-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p23.
안타깝게도 그 모든 악행이 이어지고 혼란스러운 그때, 마지막까지 인간에게 달라붙어 있어야 했던 것이 처녀신이어야만 했는가. 물론 아스트라이아는 정의의 여신이기도 하다. 그저 이 문구를 보았을 때 온갖 폭행과 악행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지켜져야 하는 것이 순결일까,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 순결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자꾸 꼬아보게 된다.
다행히도 페미년들이라 욕을 먹으면서도 끝까지 노력한 이들 덕분에 2013년 6월 친고죄는 폐지되었다. 그리고 이제 반년쯤 된 시점에서(2014.2.25) 어떤 신문은 친고죄 폐지로 비로소 꽃뱀이 줄었다는 기사를 게재한다. 여전한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인식이다. 친고죄가 마치 ‘돈’을 노린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악의적으로 이용되었다는 투다. 그러나 친고죄로 인한 괴롭힘과 이용은 가해자들이 줄기차게 해 온 일들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합의’는 사건에 대해 다시는 법적인 처벌을 묻도록 고소하지 않겠다는 ‘대가’가 아니라 가해자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배상이다. 피해자가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을 잘못 생각하고 적용하는 가해자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성폭행을 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죽을 힘을 다해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종용하며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며 괴롭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합의금을 고서 취하의 대가로 여기고 있고, 여성들의 성폭행 신고가 돈을 노린 제스쳐라고 말하다니.
나는 감히 칼리스토를 위로할 수가 없다. 이러한 세상에서 이 땅의 수많은 칼리스토에게 건네는 위로가 지속적인 힘을 내는 동기부여가 될까. 그렇다. 모두 다 위로를 지껄일 필요가 없다. 이미 수천년 동안 그놈의 쯧쯧을 단 위로는 많이 해왔다. 더불어 이들에 대한 악플도 지속적이게 있어 왔다. 우리의 위로는 악플과 다를까. 위로는 힘을 북돋워주고 악플은 그렇지 않다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모자라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일까. 누차 강조했듯이 성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과 지식 결여, 가부장적 가치관과 집단적 조직 문화들이 원인이라면 이것을 부추기는 것은 무언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확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찌감치 학교에서도 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급속하게 전파되는 동영상들. 왜곡된 성에 대한 이미지를 전환할 길 없는 이 시대....잘못된 인식은 잘못된 행동을 이끈다.
시대는 변화했다.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힘이 없다. 사고 체계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사고와 문화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제도적 장치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성 있는 위로 따위로 진정될 이야기가 아니다. 수천년 동안 반복된 칼리스토에게 힘들지만 그대들의 변신도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잠재적 칼리스토에게도 변신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힘이 없고 나약할지라도 곰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동원해 인식과 편견을 깨고 제도적 정비를 갖추어야 한다.
어쨌든 지금, 성폭력은 정부에 의해 4대 악으로 규정되고 있다. 4대 악에 불량식품을 포함함으로써 불량식품의 위상을 성폭력의 심각성만큼 끌어올렸는지, 성폭력의 심각성을 불량식품만큼으로 하락시켰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정쩡하게 된 바 없진 않으나 어쨌든 4대악 척결을 주창하니 만큼 성폭력에 관해서만큼은 팔짱끼고 보는 것을 접고 정부의 노력에 동참 해보려 한다. 부디 용두사미가 되지 않고 체계적이고 세심한 방안을 강구하여 칼리스토가 울지 않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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