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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1일 11시 50분 등록

변신 이야기                                                                                        구달리뷰#2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                                                                                             2014.4.21.

 

I. 저자에 대해서

오비디우스는 기원전 43년 지금의 이탈리아의 술모나에서 태어났다. 기사 계급 집안 출신으로 로마에서 관리가 되기위해 수사학과 법률을 수학했으나 기질상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끼와 재주, 유쾌한 성정이 따분하게 앉아서 관리일을 하기에는 너무 뛰어났다. , 시인으로 누리는 명예에 비하면 관리의 영달이 참으로 우습게 보인 것이다.

결국 오비디우스는 그의 천복에 따라 문단으로 진출한다. 거기서 그는 물만난 물고기처럼 빛나는 기지와 달통한 사교술 등의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여 문단과 사교계의 떠오르는 별이 된다.

이 시절 그가 쓴 책이 <사랑의 기술>이라고 하는데, 제목 그대로 남녀간 연애와 사랑의 구체적 기술을 가르치는 교본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때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의 미풍양속을 바로 세우기 위해 사회정화령을 시행하고 있었다. 가령, 로마 여성들의 검투장 출입금지라든지 5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의무화 하는 법령을 반포한 것이다. 이를 보면 그당시 로마 사회가 상당히 관능적이었던 것 같다. 하여튼 이 시기에 나온 <사랑의 기술>이란 책은 로마 사회에 한바탕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황제의 눈밖에 난 오비디우스는 오지인 토미스(지금의 루마니아)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그 이유를 <어떤 시구와 어떤 과실> 때문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어떤 시구는 황제의 외동딸 율리아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찬양한 시이고, “어떤 과실이란 황제의 손녀 율리아(그 어머니의 그 딸이라고, 로마의 불나비)의 애인 노릇을 한 죄라는 것이다. 여하튼 이 두 율리아는 황제의 미풍양속 개혁정치를 비웃으며 보란듯이 로마 사교계를 휘젓고 다닙니다. 결국 황제는 정적들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여 딸을 오지 섬으로 귀양보내게 된다. 이 때 오비디우스도 함께 놀아난 죄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든 오비디우스가 유배지에서 쓴 책이 <메타모르포시스(변화 이야기)>이다. 그리이스 신화는 물론이고 소아시아 설화, 트로이아 전사, 로마의 건국신화까지 끌어와서 로마황제에게 신통성을 부여한 책이다. 사실 로마신화란 것도 그리스 신화의 신들의 이름만 바뀌었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런 그리스 신화를 축으로 트로이아 전쟁 유민인 아이네이아스가 로마로 이주하면서 로마가 건설된다. 이 아이네이아스가 여신 베누스의 아들이니 결국 로마황제는 신의 혈통이라는 것이다.

중세를 <기독교와 오비디우스의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말은 오비디우스가 그려낸 그리스 로마 신화체계가 그 이후의 수많은 작가, 화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초기의 작품을 대표하는 <사랑도 가지가지 Amores>는 한 여성을 향한 여러 가지 연애와 사랑의 노래가 실려 있으며, 저자의 기교적 측면이 강하다.  옛 이야기 속의 유명한 여성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여류의 편지 Heroides>, 신화적인 요소에 세속적인 풍습을 가미하여 재미를 더하고 있으며, 이것은 저자가 출입하던 당시 로마 상류사회의 풍습의 양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흑해 연안 오지로 추방당한 뒤 쓴 작품으로는, <비가 Tristia><흑해로부터의 편지 Epistulae ex Ponto>가 있다. 유배된 저자의 불행과 로마로의 귀환을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끝내 귀국은 허락되지 않았다. 저자의 작품들은 남녀간의 사랑과 연애를 노래한 낭만적 시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사상적인 깊이는 없어도 세련된 감각과 수사(修辭)가 풍부하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를 비롯하여 후대에도 많이 읽혔다.

 

II. 내 마음을 움직인 글들

 

첨부한 파일 참조.

 

 

III. 내가 저자라면

 

이번 주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1~2 700페이지를 읽느라고 나도 변신한 것 같다. 화장실에서건 목욕탕에서건 전철에서건 주야장천 틈만 나면 이 책과 씨름을 했으니 내가 변신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라니.. 스스로 봐도 기이하게 변했다.

 

공부를 놀이로 만드는 게 금년의 목표인데 변신 이야기 덕분에 조금 가까이 간 듯하다. 처음에는 신들 이름이 생소하고 배경 지식이 없어 지지부진하며 고생을 했다. 그러다 중반 이후부터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줄거리를 필사하느라고 한 주일을 모두 소모했다. 시간 안배가 문제였지 공부는 그런대로 할 만했다.

이 책을 키워드라는 채로 쳐서 걸러낸다면 몇가지 변신, 이야기, , 은유, 야성 사랑 따위를 들 수 있겠다. 저자는 피타고라스의 사상, 즉 만물은 변화하되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과 영혼도 담긴 그릇에 따라 변화하는 윤회설을 이 책의 철학적 기조로는 삼은 듯 하다. 그러다 보니 둔갑이나 변신과 같은 요술 같은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다. 물론 신화적 메타포로 읽지마는 자신도 모르게 꿈결 같은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불가사이한 매력이다.

 

저자는 변신 키워드를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책의 말미에 가서 로마황제의 핏줄이 신에 닿아있다고 다소 억지성 발언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유배생활 중인 저자의 권력자에 대한 아부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보다 거의 대부분의 책을 할애한 대목에서는 흥미진진한 인간과 신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인데다가 유배지에서의 적적함도 달래고, 무엇보다도 마지막 결사에서 밝혔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하여 영원히 살기를 희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서사시의 형식으로 쓰인 것은 저자가 시인이기도 하거니와 그 시대에는, 이야기 소스가 신화나 전설 뿐이었을 텐데 그나마 구전되어 오는 것들이었을 게다. 우리의 판소리나 가사문학이 그러하듯 구전 문학은 시적 운율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시대 문학은 시요 또 아울러 노래였을 것이다. 저자는 그 당시 구전되어 오던 신화와 전설을 문자로 집대성한 셈이다. 지금 가만 생각해보니 이 책을 읽는 동안 불가사이하게 나를 이야기로 몰입시킨 그 매력이 시적 운율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이 아름다운 건 신화의 시적 메타포, 즉 은유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은유라는 금고를 열면 본질이라는 보화를 건질 수 있다. 신화는 산문으로 읽으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운문으로 읽으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무한한 에너지를 담은 우주가 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가치는 기독교 사상이 서양에 들어오기  야성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신화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날 것 그대로의 숨결로 인간을 해방시킨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거의 모두 사랑 이야기로 도배를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천 년 전이나 오늘이나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요 이야기 거리가 사랑이라니 인간의 본성은 바뀔 수 없나보다. 그런데 이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있으랴? 헬레나라는 한 그리스 미인으로 인해 트로이아 전쟁이 발발하고 10년간이나 지속된 전쟁의 와중에 수많은 사람이 죽고 마침내 트로이아 성은 불바다가 된다. 그 후 늙어 쪼글쪼글 해진 헬레나가 거울을 보면서 한탄한다. “이렇게 될 걸, 뭐가 좋다고 두 번씩이나 유괴를 했을꼬?

 

내가 저자라면 이러한 키워드 중심으로 책을 쓰겠다. 이 책은 여러 신화나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다 수록하려고 하다보니 큰 장절에 들어가는 작은 글 꼭지들이 큰 제목에 잘 맞지않는 것들이 많다. 그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모아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작은 이야기끼리의 상호 연관성을 좀더 염두에 두었다면 보다 탄탄한 구성이 되었을 듯싶다.

 

마음을 끄는 장절:

1157.

아무도 이 비밀을 몰랐어. 고갯짓, 눈짓으로만 사랑을 나누었으니까. 감추면 감출수록 깊어가는 게 사랑이잖아? 속으로 속으로 타들어가는 섶 속의 불씨 같은 게 사랑이잖아?

 

2 300. 피타고라스의 사상

모든 것은 변할 뿐입니다.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혼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알맞은 형상이 있으면 거기에 깃들입닏. 짐승의 육체에 있다가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에 있다가 짐승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고 돌 뿐,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2 336. 오비디우스의 결사

이제 내 일은 끝났다. 유피테르 대신의 분노도 불길도 칼도 탐욕스러운 세월도 소멸시킬 수 없는 나의 일은 끝났다. 내 육체 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의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육체보다 더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그 땅이 어느 땅이든 백성들은 내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혜안이 참으로 놀랍다. 그가 확신했듯이 이천년 후의 동방 한 나그네가 그의 책을 보며 이렇게 긴 독후감을 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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