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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1일 11시 48분 등록

Colum 4 – 신화, 고대인들의 로고 테라피

강종희

2014 4 21

신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나 턱 써놓고 아침 내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지난주에는 신화 해석의 입문이라는 신화의 힘을 읽었다. 이번 주에는 현존하는 그리스로마 신화 최고의 텍스트라는 변신 이야기를 읽었다. 그 전에는 구본형 선생의 주석이 친절한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었다. 혹여 도움이 될까 하여 읽다 만 <황금가지>를 다시 들쳐 보았다. 역시나 읽다가 대출 기간이 만료되어 반납한 <예수는 신화다>를 주문하였으나 시간상 또 대충 훑다 말았다. 여튼 이토록 빵빵한 텍스트들을 읽거나 곁눈질이라도 하였으니 이번에는 신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해본다, 한번.

 

정의 1. 신화는 로맨틱SF액션호러 스토리다.

한마디로 마르지 않는 이야기 샘이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헤르메스의 날개달린 신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아폴론과 다프네, 제우스와 이오,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아테네와 아리아드네까지. 액션 히어로와 초능력자, 절세 미녀와 요정, 괴물들이 판치는 이야기보따리다. 신과 인간, 남신과 여신의 로맨스는 물론 골육상잔, 토막살인이 판치는 잔혹한 호러물이자, ‘복수는 나의 것을 외치는 가차없는 운명의 집행자들이 날뛰고, 육해공의 다양한 괴수들과 이에 대적하는 초능력 영웅들이 활약하는 액션어드벤처까지. 없는 게 없는 이야기보따리로서 신화는 내 어릴 적은 물론 요즈음의 어린이들에게도 꽤 인기 있는 텍스트다. 수년 전 그리스로마 신화가 만화로 제작되어 초등생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고, 다양한 신화의 모티프가 지금도 계속해서 영화화되고 있지 않나. 신화, 역시 쵝오다. 상징과 은유를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고도 신화는 충분히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가진 이야기의 보고다. 근데 참, 없어 보인다, 이 정의.

 

정의 2. 신화는 어떤 신격(神格)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전승적인 설화. 우주 및 세계의 창조, 신이나 영웅의 사적, 민족의 기원 따위의,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이다.

이건 국어 사전을 그대로 베낀 거다. 사전적 정의도 하나쯤 곱씹어 봐야겠기에 이렇게 적어보았다. 나아가 브리태니커 사전을 검색해보니 신화의 기능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있다. 그 설명에 의하면 신화는 진리와 지식의 보고로서, 우주를 지배하고 인간의 활동을 유효하게, 유의미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뭔가 신비하게 난해한데? 여튼 우주창조에 관한 신화는 대개 어떤 왕조나 왕의 정통성을 부여하고 강화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며, 우주의 기원 등에 대한 내용은 인간과 사회 제도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관련이 있기 마련이란다. 이건 훨씬 구체적이다. <변신 이야기>가 용비어천가로 마무리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신화가 권력층의 지배기반을 강화하는 논리로 쓰였다는 이야기다. 맞다고 생각한다. 또한 계급제도 등 사회지배의 원리를 지지하는 데도 유효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박정희 생가를 성지로 선포하자는 둥 하는 헛소리가 21세기 한국에서도 반복되는 게 아닌가. , 흥이 확 깨진다. 하지만! 그것이 신화의 태생적 정의라 할 수 있는가? 신화의 용도에 대한, How로 시작되는 질문에 답이 될 수는 있어도, why what에 대한 답이 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아무렴.

일단 아쉬운 김에 두 정의를 접합해본다. “신화는 로멘틱SF호러액션이 모두 담긴 이야기의 보고이고, 신격이 있는 전승 설화로서 우주 창조와 사회 구조 등등을 설명한다.” 대략 난감이다. 이렇게 만족할 수 없음이 명확하므로, 아까부터 머리를 뱅뱅 도는 생각을 일단 발설해야겠다.

정의 3. 신화는 고대인들의 로고 테라피다.

태초에, 자연이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떠는 인간이 있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 가차없이 닥쳐오는 자연의 조화에 속수무책 휘둘리는 인간, 매일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휘두르는 자연 앞에 납작 엎드린 인간이었다.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고, 다시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되거나 흙으로 돌아가 다른 식물의 자양분이 되는 인간은 애초에 다른 짐승들과 딱히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늘을 보며 걷는 유일한 존재다.

어쨌든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늘 시선을 땅에다 박고 다니는 데 비해 머리가 하늘로 솟아 있어서 별을 향하여 고개를 들 수도 있었다. 이로써 모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흙덩어리였던 대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 품 안에 거느리게 된 것이었다.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땅만 바라보고 살 수 없는, 하늘의 존재 이유를 궁금해하는, 오직 인간적일 뿐인 속성이 발현되면서, 인류는 다른 지구상의 종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인간이란 종이 밥만 먹고는 못 사는 특이한 동물이었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생존과 관계없는 일임에도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기에. 인간에게는 설명이 필요했다. 저토록 무자비하게, 가차없이 집행되는 자연의 힘, 모든 것을 소멸하게 하는 시간의 횡포를 이해할 수 있는 무엇, 그래서 납득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시도가 결국은 신화라는 형태로 모아졌으리라는 생각이, <변신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리잡았다.    

사투르누스(/크로노스) <시간>을 상징한다. 그리스어 <크로노스> <시간>이라는 뜻이다. 크로노스는 자식을 낳은 족족 잡아먹는 것으로 전해지는 데, 크로노스의 이러한 속성은 태어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 자체의 속성을 상징한다. 사투르누스는 자기 자식인 유피테르 6남매도 모조리 삼켰다가 다시 토해낸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유피테르 5남매가 이로써 시간을 극복했음을 상징한다.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인간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속성,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죽음, 인간의 가장 큰 공포인 죽음으로 끝맺는 자연의 섭리를 그냥 그런 것이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인간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존재가 신이다. 그러므로 최초로 사투르누스(시간)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유피테르와 그의 남매들이 불멸의 신으로 탄생하는 것은 신화의 의미에 대한 아주 의미심장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또한 <변신 이야기>는 만물의 유래, 사물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리하게 된 연유를 밝히는 변신의 에피소드로 가득차 있다. 변신, Metamorphosis의 개념을 설명하는 역자의 후기는 이렇게 말한다.  

341. 이 책의 원제인 <메타모포시스(변형(變形), 변신(變身)>는 사물이 비롯되는 정황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에는 창조설이 있듯이 많은 문화권의 신화나 설화는 나름의 창조설과 전신설(轉身設)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원숭이의 원덩이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빨갛게 되었다느니, 게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게걸음을 걷게 되었다느니, 수수 대궁이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피가 묻게 되었는데 그래서 수수대궁이는 빨갛다는 식입니다.

사실 <메타모포시스>라는 개념은, 세계의 모든 민족이 나름의 신화와 전설의 체계에서 자연과 인간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는 하나의 만병통치약 노릇을 해온 듯 합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는 만병통치약으로서 신화.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납득할 수 있는 대상으로 소화하기 위한 인간의 위대한 발명, 그것을 신화라 정의해본다. 그러므로 신화는 고대인들이 인간으로서 살아 가기 위해,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자연의 영향력 아래 훨씬 더 가혹했을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인간이기에 필요했을 의미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화는 고대인들의 로고테라피였던 것이다. 

‘로고테라피’ 혹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빈 제 3정신의학파’로 불리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분석하고 말고 할만 한 근거도 없는 헐거운 연계임을 안다. 하지만, 나 역시 이 고생스런 독서의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why의 인간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시도였음을 이해해주길. 어쨌든 나는 지난 몇 주간의 독서에서 끌어온 이 헐거운 연결고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얼토당토않은 희한한 변신의 에피소드들이 애초에 왜 생겨났을까? 왜 지금까지도 이토록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까? 이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던지는 상징 너머에 있는 의미들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 이 지난하면서도 즐거운 독서를 통해 내가 줄곧 붙잡고 가던 질문들은 이러하였다. 이제 그 의미를 나에게로 끌어내리기 위해, 또 다른 신화의 얼굴을 들여다 보기 위해 떠나는 한 주가 시작된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아, 게 섰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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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1 14:05:14 *.228.119.26

신화란 무엇인가(what) 라기 보다는 신화의 존재 이유(why)에 대한 칼럼(column)으로 보입니다. "변신" 속에 나오는 인간 중에 변신 후에 행복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징벌이나 가혹한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변신할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띕니다. 웬지 비극에서 카타르시스를 찾는 그리이스인들의 취향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로고 테라피라는 정신치료의 효과 또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서 나의 무사함에 대해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필요이상의 욕심과 신성모독이 빚는 불행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후 피타고라스나 엠페도클레스같은 철학자들이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하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을 보면 당시의 신에 대한 두려움은 그닥 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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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1 15:13:23 *.134.61.77

맞습니다! 쓰면서도 신화의 why와 what이 막 혼재하여 엄청 헷갈렸다는... 티가 확 나네요.


기독교가 심어놓은 유일신, 절대신으로서 '신'이라는 존재가 너무 뿌리깊게 자리잡은 현대라 그런지, 고대인들이 신을 바라보는 개념은 이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또한 '신'이라는 존재를 실체라기보다는 상징으로 보고 이해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또 들고요. 엄정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피타고라스가 실은 신비주의자였으며, 본인을 현자, 신처럼 간주하였다는 내용은 재미있기도 하고, 고대인들의 신에 대한 개념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이서 발견의 기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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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2 10:19:22 *.23.235.60

로고테라피~~익숙한 단어 나왔당..ㅋㅋ

나만의 신화의 정의를 생각해봤는뎅 이미 좋은 말들이 많아서^^

천의 얼굴에서 또다른 정의를 기대할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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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2 12:17:35 *.65.152.79

신화 정의 1,2,3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정의 1단계로 <변신 이야기>를 읽었네요.... 정의 1단계를 너머, 2단계, 3단계까지 정의내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처음 읽는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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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2 12:27:12 *.94.164.18

이 얼토당토않은 희한한 변신의 에피소드들이 애초에 왜 생겨났을까?

왜 지금까지도 이토록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까?

이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던지는 상징 너머에 있는 의미들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


신화를 읽는 사람은 들법한 질문인데...해답이 찾기가 만만치 않아요.

사유하면서 곱씹는 시간이 필요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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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4 11:22:03 *.196.54.42

신화에 관한 수많은 책을 보셨군요, 종종..님^^

그 책들을 통해 이렇게 한줄기 진주목걸이로 엮어 놓으니 참 빛납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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