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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2일 09시 36분 등록

                                              욕망과 에로스

머리말

 

회임에서 생산이

             생산에서 생각이

                          생각에서 기억이

                                        기억에서 의식이

                                                      의식에서 욕망이

                                                                    -뉴질랜드, 마오리족-

 

"인간은 욕망덩어리다"라는 말이 있듯이, 태어나는 순간 살고자 먹고자 사랑하는 욕망을 지니게 됩니다. 살아 숨쉬는 동안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 욕망이 자신을 위한 욕망인지, 타자의 욕망을 채우려하는 아바타같은 삶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익스피어는 말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풍경처럼 보이고 희극이다‘라고.

나는 비극을 희극처럼 웃으면서 다루고 싶었습니다. 신화를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무겁고 심각하면서도 진지한 삶을 약간은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살고 있는 자신들의 삶이 얼마든지 웃고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축복임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삶이 가벼워지면서 자유를 느낄 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진지한 신화에 딴지를 걸어 놨다 라고. 진지함은 무겁습니다. 무거우면 웃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인류전체의 무의식과 꿈이 담겨있는 신화에 웃음을 주고 싶었습니다 . 웃음은 긴장을 완화시키고 신화를 통해 자신의 무겁고 힘든 삶을 멀리서 자신을 보라고 권하고 싶었습니다. 가볍다고 경박하지 않으며, 무겁고 진지하다고 해서 진실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진지하면 할수록 거짓을 숨기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차라리 가벼우면서 웃음과 해학이 삶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기에 훨씬 적합하다고 할까요.

 

욕망은 일단 저주의 덫에 걸리는 것임을 일깨워줍니다. 저도 한때는 저주의 덫에 걸렸습니다. 이제는 나의 첫 책을 출판함으로써 내가 원한 강렬한 욕망이 실현되었습니다. 이 책이 출판되어 어느 독자의 손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독자가 이 책을 읽고 한바탕 웃고 힘들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순간이 있다면, 나에게 씌워졌던 저주의 덫은 마법처럼 풀러 축복이 될 것입니다.

 

삶은 저주도 축복의 경계를 구분짓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저주의 순간이 축복이고 축복의 순간이 저주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단지 저주와 축복을 구분 짓는 경계는 각자가 그 순간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려있으니까요. 그러니 부디 이 책을 읽으면서 실컷 웃고, 유머와 역설로 자신의 삶도 희화화할 수 있다는 것을요.

 

목표를 향해 앞만 달려가고 삶의 여유가 무엇인지 모를 때, 큰 나무 아래에서 쉬면서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유머는 가장 고차원적인 인간의 지성 중 하나입니다. "웃음을 아끼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웃음과 유머는 진지함을 넘어섭니다. 삶에서 자신의 삶을 희화화하고 풍자화 할 수 있다면, 더욱 풍요롭고 여유있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요.

그러니. 이 책을 잡은 독자들의 손에 축복이 깃들기를. 이 책으로 우리네 삶은 얼마든지 웃으면서 즐기고 내 삶도 진지함 이상으로 유머와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음을…….

 

프롤로그

 

1. 욕망은 삶의 에너지다

 

성욕은 정욕 중에서 가장 격심한 것으로 욕망 중의 욕망, 즉 우리의 모든 욕망의 집결체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성욕, 즉 어떤 특정한 개인을 대상으로 한 그 사람 고유의 성욕의 만족은 행복에의 결정이자, 하나의 왕관이며, 이것만 손에 넣으면 모든 것을 얻게 되는 것이고, 반면에 이것을 손에 넣지 못하면 모든 것에 실패한 듯이 생각되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중에서 -

 

우리 집에 키우는 수컷 강아지 복실이가 어느 덧 많이 성장하여 8개월이 지났다. 발정기가 되어 짝짓기를 서둘러 한다. 강아지 복실이는 더 이상 강아지가 아니라 성적으로 성숙해져 개가 되었다. 복실이는 성적인 결핍을 서둘러 짝짓기를 하여 성적으로 충족되었다. 이것을 "욕구"라 한다.

 

성춘향과 이도령은 어떨까. 이들도 성적으로 조숙한 16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복실이 개처럼 아무데서나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에로스의 체험이 이들에게 시작된다. 즉 이도령은 성춘향을, 성춘향은 이도령을 사로잡기 위해 전략과 전술을 쓴다. 성춘향은 그네띄기를 하여 이도령에게 환심을 산다. 이도령은 하인 방자를 시켜 쪽지를 전한다. 이도령이 성춘향에게 반하여 몸과의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그 욕구를 뒤로 미룰 수 있다, 일단 카톡으로 문자 메시지를 하루에도 수십번을 주고 받는다. 이도령은 성춘향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명품가방을 선물하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기까지 시간을 충분히 보낸다.

 

어느 날 이도령이 성춘향에게 1박 2일 동해바닷가로 여행가기를 제안한다. 성춘향도 이도령의 그간의 행동으로 믿음직하고 사귈만하다 싶으면 오케이다. 그들의 여행은 어떻까. 탁 트인 바닷가에서 성춘향이 "나 잡아봐라"를 외치면서 앞서 달려나가면, 이도령이 그녀를 잡고 백허그를 한다. 바닷가이니 회한접시와 술 몇잔이 들어간다.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무드를 잡고 애무와 키스를 나무면서 서로의 몸과 몸이 부딪치는 몸과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나눈다. 즉 인간은 이성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욕구의 충족을 뒤로 미룰 수 있는 것을 "욕망"이라고 정의한다.

 

요약하면, 욕구는 결핍된 것을 충족하면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충족을 위한 충동이다. 반면에, 욕망은 충족이 되어도 본질적으로 결핍이 계속 남아있는 상태다. 단순한 충족을 뒤로 연기하면서도 여전히 충족을 지향하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을 갖는다. 욕망은 모든 삶의 원초적 에너지다. 욕망하지 않는 인간은 살아있어도 살았다고 볼 수 없는 시체다. 사람은 누구나 타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의 욕구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남녀간의 사랑이다. 그들간의 애정은 서로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와 상관없는 제 3의 타자가 나와 가장 가까운 너로 다가올 때 사랑은 시작된다. 내 마음속에 네가 살아있고, 그 혹은 그녀 마음속에 내가 살아 숨쉬는 활동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에로스가 곁들인 에로티시즘이다.

 

인간은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욕망과 사랑의 감정에 사로 잡힌다 - 소크라테스-

 

우리는 성적인 존재로서 태어났다. 그것을 부인하는 순간 욕망은 억눌리고 삐뚤어지면서 왜곡된 삶을 살게 된다. 건강하게 발산하지 못한 성적인 욕망이 사람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병들게 한다. 사람이 살면서 숨길 수 없는 세가지가 있는데, - 감기, 가난, 사랑-이라고 했다. 이도령이 성춘향의 그네 띠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책을 봐도 밥을 먹어도 길을 걸어도 춘향이 얼굴이 시시때때로 아른거린다. 사랑할 나이가 되었음을 이도령의 몸이 말해준다. 이도령이 성춘향과 합방한 이후, 비로서야 이도령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성적인 욕망이 충족이 되고 실현이 되면, 그 다음 단계를 순조로이 갈 수 있다.

성적인 욕망이 잘 충족된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성공적인 삶을 이룬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푸코는 “성(性)은 숙명이 아니다. 성은 창조적인 삶을 위한 가능성이다. ” 이라고 말했듯이, 성적인 욕망의 실현은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자유로움은 인생의 행복을 맛보게 한다. 성적인 욕망의 결핍은 매사에 짜증과 신경질, 불안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우주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 사람의 인생도 생로병사의 순환을 거친다. 봄, 여름, 가을을 거쳐 겨울을 맞이하는 계절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다. 풋풋한 만남과 교제가 어느덧 불꽃튀는 몸의 만남으로 서로의 갈망이 충족된다. 가을 잎이 떨어지듯 충족된 만남은 시들해지고 이별을 하는 겨울이다. 언제까지만 싱싱하고 풍성한 사랑의 욕망을 나눌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때의 불꽃같은 사랑을 해봐야 인생의 정수인 묘미를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2. 신화 속 욕망은 현재 진행중

 

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내 세상만 가질 수 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지공계 떨어져도 좋다. -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는 모든 인류의 무의식의 총체적 집합이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 신화다.

있을수 있는 이야기나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신화다. 원초적 욕망이 가장 녹아있는 것이 신화다. 그렇다고 내가 사는 현실에서 원초적 욕망을 다 발산하고 살 수는 없다. 불타는 금요일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 갈려면 대리운전을 부른다. 내가 술을 취했지만 나의 차를 운전해주는 대리운전 기사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족도 대리만족이 있다. 마음껏 욕망을 풀어놓고 싶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모든 것을 접는다. 그럴 때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가 나의 욕망을 마음껏 풀어주었다.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짠맛을 아는 것이 아니니까.

 

3. 욕망, 색으로 표현되다

 

색의 아름다움에 빠졌었던 때가 있었다. 색색이 빛나는 모래그림이 할로겐 빛을 받으면서 햇빛에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그림자체가 빛이 나고 그라데이션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었다. 색에 대한 신비로움과 호기심으로 서양화가 선생님으로부터 색채심리를 배웠다. 이론적인 것을 넘어서 현실을 살아가는 내 무의식의 심리를 명확히 꿰뚫고 있었다. 놀라움과 의문으로 시작된 수업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거역할 수 없는 무의식의 표현이 색채였다.

 

색이 잠재된 무의식과 욕망을 표현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내면의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색채는 마법이었다.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색으로서 짐작해도 어렴풋하게나마 윤곽을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나는 욕망을 신화와 색으로 말할려고 했을까

인간의 모든 욕망을 말하는 신화, 칼라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 색은 인간의 무의식을 말해주는 원초적 욕망이다. 신화와 색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깊이 담고 있기에 나는 신화속에서 인간의 모든 욕망을 . 색 속에서 무의식적인 욕망을 표현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워크샾에서 한 영상을 보았다. 티벳 승려들이 커다란 테이블위에 그려진 만다라를 모래를 뿌리는 과정이었다. 하나하나의 조각 도형을 완성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정성스럽고 세심하게 모래로 만다라를 채워갔다. 다 완성이 되었을때 승려들은 잠깐의 완성된 작품을 감상한 후, 아름답고 신비로운 만다라를 미련없이 흐트려뜨렸다. 충격이었다. 흐트려뜨린 모든 모래들을 항아리에 깨끗이 쓸어 담았다. 승려들은 만다라를 채웠던 모래가 든 항아리를 가지고 갠지즈강에 가서 모두 부었다. 모래들은 강물에 떨어뜨리면서 강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게 인생이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유한한 삶의 무상함을 느꼈다.

 

화려한 색의 순간이 한 순간에 스러지듯, 삶 또한 그러한 수순을 밟는다. 그렇기에 현재 이 순간을 느끼고 삶의 희열을 맛보는 카르페디엠이 삶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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