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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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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2일 14시 13분 등록

* 오늘 ‘마음편지’를 보낼지 말지 오래 망설였습니다. 편지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도 고민했습니다. 화요일에 마음편지를 보내는 것은 제 자신과 한 약속이자 마음편지를 받아보시는 분들과의 약속이기에 편지를 보냅니다. 오늘 편지의 내용은 세월호 사고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닙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쓴 <말의 정의>를 읽으면서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겐자부로의 장남 오에 히카리입니다. 겐자부로는 히카리에 대해 쓰면서 매번 ‘머리에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말의 정의>는 겐자부로가 2006년 4월 18일부터 2012년 3월 12일까지 아사히신문 문화면에 ‘정의집(定議集)’이라는 제목으로 매달 한 번 연재한 글을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읽는 독자가 아닌 이들과 히카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히카리에 관한 설명을 한 것이라고 이해는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책에서도 같은 묘사를 반복하는 것은 ‘과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이런 내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지난 주 화요일 아버지가 수술을 받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지지난 주 토요일에 철봉에서 떨어져서 허벅지 뼈가 부러졌습니다. 나는 사고가 일어날 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눈앞에서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기에 나는 더 속상했습니다. 크게 위험한 수술은 아니지만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하는 수술인지라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 동안 속상함과 자괴감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중증 장애를 가진 아들과 사십 년 넘게 함께 한 오에 겐자부로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편협한지 깨우쳤습니다.


<말의 정의>에서 겐자부로는 자신이 읽은 책이나 ‘경애하는 사람들의 말’에서 울림을 주는 문장을 뽑아서 ‘자기만의 격언’과 ‘가정의 모토’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문장들은 그가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가령 그는 고등학교 시절 읽은 도스토옙스키가 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알료샤의 말 “단단히 기억하고 있읍시다!”를 ‘자신만의 격언’으로 삼았습니다. 또 일본의 극작가 기노시타 준지의 작품에 나오는 대사 “도전히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돌이키기 위해”를 ‘가정의 모토’로 가슴에 새겼습니다. 겐자부로는 히카리의 장애를 알고 절망했다고 합니다. 그의 입을 빌리면 “저는 뇌에 장애를 가진 히카리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고 비관하는 일이 있었고, 아내는 어떻게든 돌이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는 아내의 노력과 준지의 책에서 발견한 한 문장을 디딤돌삼아 절망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겐자부로에게 ‘자기만의 격언’과 ‘가정의 모토’가 있듯이 내게도 그런 잠언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잠언을 ‘삶의 주제가’라 부릅니다. 내게 삶의 주제가는 중요한 의사결정의 기준입니다. 동시에 살아가면서 지키고자 하는 가치입니다. 나는 큰 실수를 했을 때 삶의 주제가를 꺼내 봅니다. 스스로를 반성하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삶의 주제가를 들어봅니다. 무엇이 최선이고 차선인지, 그리고 최악은 무엇인지 가늠해 보는 나름의 과정입니다. 사는 게 힘겨울 때 삶의 주제가를 되새겨봅니다. 삶의 주제가에 귀 기울이는 것이 초심을 되새기는 나의 방법입니다.


아주 가끔은 삶의 주제가가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의사결정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고, 인생의 가치로서 의미가 퇴색할 때가 있습니다. 나란 존재와 삶의 주제가 사이에 끌림이 멈추고 울림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삶의 주제가를 점검하라는 신호입니다. 글쓰기에 고쳐 쓰기가 있듯이 삶의 주제가도 고치고 바꿔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 역시 자신과 삶을 성찰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정의집> 전체에서 자신의 소중한 말로 쓴 것은 중학생 때의 습관이 남아 있는, 아직 책이든 직접적이든 경애하는 사람들의 말로서 기억하고 있는 것의 인용이 주체였습니다. 만년의 제가 지금 만나고 있는(그리고 시대의 것이기도 한) 커다란 위기에 대해, 수련해온 소설의 언어로 자신만의 정의를 하고, 필시 최후가 될 시도를 시작하며 <정의집>을 닫습니다.”

- 오에 겐자부로, <말의 정의> 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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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저, 송태욱 역, 말의 정의, 뮤진트리,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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