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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7일 06시 19분 등록

영웅의 여정_ 구달칼럼#3

 

출발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2013.12.21., 이날은 내가 나의 영웅이 되기로 결심하고 긴 항해의 돛을 올린 날이다. 그 후 석 달의 여정은 지난한 길이었다. 연구원을 통하여 책을 쓰리라 작정하고 연구원 시험에 지원한 후 연구원이 되기까지의 도정은 한 마디로 나의 변신의 과정이었다.

 

그 날부터 나는 무조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은 글을 썼다. 새벽 열차로 출근하여 매일 런닝머쉬인을 뛰고 냉온교대욕을 마친 후 회사에 들어갔다. 이렇게 한 달을 하니 미스토리가 완성되었다. 무슨 일이든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데는 시동에너지가 만만치 않게 들었다. 매일 하는 운동은 이전부터 오래 계속해 왔지만 새벽4시에 일어나는 것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살이 빠지고 퇴근 할 때면 열차 안에서 졸다가 내릴 곳을 지나치기 일쑤였다.

 

다음 한 달간은 매주 책 리뷰와 칼럼을 쓸 때는 더더욱 시간이 모자랐다. 잠자는 시간 6시간과 회사 일하는 시간 빼고는 하루를 온통 이 일에 쏟아 부어야만 했다. 구정 연휴에 부산의 어머니가 올라 오셨는데도, 나는 시험 과제하느라 함께 해 드리지도 못했다. “애비가 무슨 고시 공부하나?”라는 어머니 말씀에 아내는 , 책 쓰기 연구원 고시 시험 공부한대요.” “무슨 고신지 모르지만, 저러다간 사람 잡겠다.”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여튼 연구원 시험 덕에 불효도 좀 했다.

 

시험의 대미를 장식한 북한산 면접여행은 즐거웠다. 일단 책 읽고 리뷰쓰기에서 해방될 수 있어 좋았고, 무엇보다 여기에 지원한 괴물들을 만난 기쁨이 가장 컸다. 시절도 좋아 만물의 기운이 움트는 3, 나는 호기롭게 60km자전거 길을 달려 수유리 북한산 자락을 찾았다. 잘 먹고, 잘 놀고, 석 달 만의 휴가를 마음껏 즐긴 느낌이었다. 연구원이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어찌 하겠는가? 논산 훈련소 훈련 마치고 가진 첫 휴가 같은 면접여행은 영웅의 출발로는 손색이 없었다.

 

입문

4 5, 강릉에서 거행된 연구원 첫 수업, 장례식은 완벽한 세팅이었다. 촛불로 원을 그리고, 향을 피우고, 하얀 국화 꽃다발도 함께 놓였다. 이 가운데서 불을 끄고 각자 준비한 유언장을 낭독했다. 완벽하게 죽음을 연출하기 위하여 데카상스 웨버와 총무가 무진 고생을 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르랴, 7인의 데카상스 귀부인들은 한결같이 흐느끼며 죽음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참으로 감정이입의 귀재들이었다. 나는 관동별곡 읊듯이 유장하게 유언장을 읊었다. 마치 영웅의 입문을 만방에 선포하듯이.

 

첫 수업을 자기 장례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심오한 뜻이 있었다.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새 삶을 살자는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어제와는 결별하고 완전 다른 존재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깊은 상징성이 있는 의례였다. 하여튼 천우신조로 다시 살아났으니 이제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야 한다. 덤으로 얻은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치열하게 다 쓰고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사람들을 더욱 사랑할지니. 이 장례식을 통하여 이전의 나는 죽고 이제 새롭게 태어났으니 이는 영웅의 입문 의례로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시련
참으로 괴로웠다. 지난주 2주차 칼럼을 제대로 준비를 못했기 때문이다. 연구원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데카상스와 교육팀을 대하랴!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읽고 리뷰를 쓰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한 것이다. 1, 2부 두 권을 합쳐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한 주일에 그냥 읽기만도 벅찬 분량인데, 무슨 귀신에 씌었든지 이 걸 요약해서 가족들에게 이야기해 줘야겠다는 이상한 만용을 부린 것이다.

 

읽고 요약하는데 일주일이 모자라 마지막 날 일요일에는 밤을 세우다시피 했다. 리뷰가 무려 59페이지에 육박했다. 리포트 마감일인 월요일 아침이 되었는데 리뷰의 저자에 대하여  내가 저자라면 부분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칼럼은 아예 손도 못 대고 있었다. 이 건 완전 실패였다.

 

지난 한 주간 나는 정말 열심히 했었다. 전철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심지어 목욕탕에도 책을 들고 들어갔고, 5~6시간 자고, 일하는 시간 빼고, 깨어있는 시간을 홀딱 이 책에만 들이부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내가 이래 뵈도 괴테와의 대화 1100페이지도 일주일 만에 해낸 사람인데, 이까지 거 700페이지 쯤이야…?” 하는 교만이 내 마음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는 듯 싶다. 그리고 그냥 신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던 게 탈이었다. 거기에 퐁당 빠져서 그걸 정리하느라고 주어진 시간을 다 써 버렸다. 다른 중요한 것들도 태산인데, 그들에 대한 시간 안배를 소홀히 한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찌 하겠는가? 칼럼은 마감 전에 제출해야 하니 이전에 써 놓았던 짧은 글을 조금 수정해서 올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도무지 연구원 칼럼 난에 올리기에는 남부끄러운 글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 뒤로는 연구원 홈페이지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데카상스와 교육팀의 따가운 눈초리가 뒤통수에 와 닿는 것 같았다.

 

이후 한 주간은 다급했다. 지난 주의 설욕을 위하여 책 읽기를 빨리 끝내고 칼럼부터 먼저 써야겠다는 강박감에 책을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더욱이 5월 초 연휴에 34일 일정으로 자전거 가족여행 스케줄이 잡혀있어 앞으로 2주 안에 3주치 분량을 해 치워야 했다. 이번 주는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란 조셉켐벨의 책이었다. 조셉켐벨 하면 낯익은 얼굴이다. 2주 전 신화의 힘 을 읽은 탓이다. 그런데 왠걸 이 책은 난해하기가 짝이 없었다. 도무지 한글 자체가 너무 어려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원서를 보고픈 심정이었다. 저자와 역자를 싸잡아 욕하다가 선배들은 이 책을 어찌 읽었을까 궁금해 졌다. 한 주일간 뒤도 안 돌아 보았던 연구원 사이트를 다시 찾았다. 아니나 다르랴, 선배들의 느낌도 나와 다를 바 없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난해한 책에서도 나름의 느낌과 감상, 책의 핵심을 잘 포착해 내고 있었다. 그래 온고이지신(溫故已知新) 이라고 했지. 키워드 추출을 하자. 선배들의 글 수십 편을 읽고 키워드 구름을 만들었다. 이를 분석해 보니 책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작업 후 책을 읽으니 확실히 달랐다. 책의 내용이 손아귀에 잡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해가 안되거나 뻔한 예시 이야기는 그냥 스킵하면서, 이틀 만에 책 읽기를 끝내고 쓰기에 치중했다. 쓰기도 우선 내가 저자라면 중심으로 리뷰를 정리해 갔다. 책을 읽을 때 생각나는 대로 메모해 둔 것들이 참으로 도움이 되었다. ‘, 리뷰를 쓴다는 것도 어느 한 순간 몰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읽으면서 리뷰도 동시에 쓰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칼럼은 한동안 무얼 쓸 것인지 제목을 정하지 못하여 헤매었다그러다가 구선생님이 영웅의 출발-입문-귀환으로 이어지는 이 책의 목차에서 영감을 얻어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집필하셨다는 대목에서, 내게도 반짝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래, 나도 책 쓰기를 목표로 연구원 과정에 지원했으니, 작은 영웅 아닌가? 그렇다면 이 과정을 칼럼으로 쓴다면? 영웅의 여정이 되겠네!

 

가슴이 뛰었다. 칼럼은 무얼 쓸 것인지 타겟과 뼈대만 서면 단숨에 몰아서 초안을 써 내는 게 좋다고 한다. 그때의 감흥과 영감이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칼럼 뼈대에다가 살을 붙이는 일은 출퇴근시 전철을 타고 이동할 때나 화장실에 앉았을 때 오히려 잘 되었다. 리뷰는 책상에 앉아서 독서메모와 수집한 자료를 참고하여 쓴다면, 칼럼은 이동할 때와 같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길 위에서 쓰는 것이 내게 맞는 방법이었다.

 

책 쓰기 영웅의 여정에 있어 고난과 시련이란 책이 잘 안 읽히고, 글이 제대로 쓰여지지 않을 때일 것이다. 특히 지난주처럼 마감의 초읽기에 몰릴 때는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앞으로 평생 이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늘 이렇다면 어찌 그 머나먼 길을 갈 수 있겠는가! 마감에 쫓겨서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이번에 실감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려면 미리 조금씩 써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긴 레이스에 있어서는 페이스 조절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내가 서울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국토 종주할 때였다. 6일 간의 총 여정 중 마지막 날 150km 정도의 가장 장거리를 달렸다. 보통 하루 평균 100km를 타는데 마지막 하루를 앞두고 갑자기 우포늪이 보고 싶어 옆길로 새는 바람에 그랬다설상가상으로 부산 종점이 가까워지자 마파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서 전체 여정을 망칠 뻔했다. 이처럼, 연구원의 여정도 규칙적인 페이스 조절이 승패의 관건일 것이다. 책 쓰기 영웅에게 시련이란 이러한 자기조절과 몸의 컨디션 관리가 제대로 잘 안될 때일 것이다. 결국, 영웅의 길이란 이 과정을 자신에게 최적화하여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일 게다.

 

그런데, 이렇게 험한 가시밭길을 불굴의 의지만으로 오래 계속 갈 수 있을까? 매주 리뷰와 칼럼을 한편씩 써 내는 것을 과제나 숙제로만 여긴다면, 월급에만 목 매달고 직장 생활하는 것과 무에 다르겠는가? 이 일을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면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영웅이 고난의 길을 갈 때, 의례 수호신이나 조력자가 따라붙어 그를 도와 사명을 완수하게 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의 수호신이라면 데카상스와 교육팀이 있다. 여기에 선배들의 페이스 메이커팀까지 조력자 대열에 합류했으니, 막강한 수호신 군단을 등에 업고 영웅의 길을 가는 셈이다.  영웅치고는 행운의 영웅이다.

 

귀환

영웅은 지난한 고난과 시련의 과정을 거치며 마침내 얻어낸 귀한 전리품을 가지고 자신의 동아리로 귀환하여 동아리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 그렇다면 영웅의 장도에 오른 연구원은 필히 자신의 혼이 담긴 책을 출간하여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때 나의 책은 영웅의 전리품이 되고, 나는 비로소 영웅이 될 것이다.

 

영웅의 귀환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고난의 길을 묵묵히 간다. 영웅이 그의 길을 가듯이.

 

IP *.7.19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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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0:02:24 *.104.9.186
이미 영웅이신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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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2:22:00 *.94.41.89

형님 그 좋아하시는 자전거를 그간 잘 못타셔서 어쩝니까?

당겨서 하시는 것도 좋지만 건강 잘 돌보십시오.

계획된 여행도 잘 다녀오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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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3:33:13 *.198.29.159

좋아요. 역시 구달님은 말로도 글로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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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5:13:23 *.218.176.39

저자욕과 역자욕을 한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군요.

저도 이번에 리뷰작업을 책을 읽으면서 했는데 속도는 느리지만 그게 훨씬 좋더라구요.

연구원 최적화 시스템....이 부분은 저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식으로 마감에 급급해서 가는 마감 인생은 앞으로 종 칠랍니다..

구달님 앞으로 쭉~~~ 같이 즐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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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16:18:33 *.113.77.122

영웅의 귀환이시군요 

멋지세요~


저도 영웅의 시리즈로 쓰고싶었는데 막판에 가서 몰리니 그렇게 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마감인생에서 이제는 벗어나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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