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에움길~
  • 조회 수 1686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4년 4월 28일 09시 19분 등록

칼럼2.

삶의 지랄탄을 재우고

 

 

  꽃과 향수, 그리고 키쓰~

  언제였는지, 그때 성년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 의식 속에 담겨 있다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성인됨을 의심하지 않던 스무살. 성년은 시간에 따라 자연히 찾아오는 것이고 내 자신 성인이 되지 못할 만큼 미성숙한 사고를 가진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나 성년식에 참가하지 못한 만큼 나의 성년으로의 통과는 길고, 지난했다. 내 안의 용을 무찌르지 못하고 더 나아가지도, 되돌아오지도 못한 채 심연에 갇혀 버렸다.

 

  그때 나는 광주에 있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그 해 518일의 광주는 격렬했다. 정부 주도의 기념식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그러했던 것일까. 구름이 파란 하늘을 유영하는 그때, 구름의 무게만큼 조용한 그곳을 뒤흔들게 만든 발단은 모르겠다. 나조차도 붉은 장미와 파란 하늘과 구름에 휩쓸려 잠시 방심을 했던 탓인지 그저 앉아 있었다. 소란스런 소리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는 물체 세 개를 본 것과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린 건 동시였다.

  나는 늘 대열 속에 있기보다는 밖으로 나돌았다. 처음 시작은 취재라는 명목이었지만 대열 속에 끼어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안과 밖, 전체적인 흐름과 상황을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대열에 끼어 있으면 시야가 가려진 채 보게 된다. 사방이 막혀 그저 구호를 따라 외치거나 달리라면 달리고 노래 부르라면 노래 부를 뿐이다. 하지만 한발 벗어나면 구호 속의 주장을 좀더 객관적으로 생각하며 듣게 되고 시위대를 보며 유인물을 받아드는 시민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 긴장감 가득한 사수대와 전경들의 대치를 보게 되는 선두열과 달리 후방에서는 시민이 전경과 시위대 학생들에게 술잔을 건네며 악수를 시키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선배들은 늘 대열 밖에서 먼저 달려가거나 뒤쳐지거나 하는 나를 내버려두었지만 상황이 험악해지면 대열 속으로 들어오기를 바랐다. 내가 너무 바깥으로만 도는 것 같아 대열 속으로 들어갔던 그 때였다.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의 대열이 막 자리를 잡으며 다 앉아 있던 그 시점, 페퍼포그의 굉음이 연이어진 것은.

  내 얼굴로 떨어진 지랄탄을 타인의 비명 소리로 알았다. 생각도 소리도 없던 내게 아픔도 없었어야 했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아픔을 느껴버렸다. 더불어 비참함도. 병원으로 가게 된 건 나 때문에 놀란 이들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내딛으며 병원으로 들어섰지만 뒷걸음질로 나왔다. 그날의 시위에서 다친 이들이 꽉 들어찬 병원에 대기자로 이름을 올릴 겨를도 없었다.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렇게 나오며 걷는 길에서 목을 죄는 최루가스를 맡으며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모습을 보았고 장미꽃이 붉게 핀 담벼락을 뛰어 넘는 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왜 방독면을 벗었던가. 그걸 쓰고 있을 때까진 전경이나 경찰, 백골단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걸 얼굴에서 벗겨냄과 동시에 그의 얼굴 전체를 흐르던 뻘건 피는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피 흘리던 이를 병원에서 보고 온 터였지만 그 모습은 또다시 충격이었다. 그가 메고 있는 카메라 가방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겪어 보지 않은 일을 무한히 상상해 봤지만 조금 겪은 일로 광주의 봄을 감히 느끼며 시간이 정지한 채로 휘돌던 그날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내 몸은 지리적으로는 그곳을 벗어났지만 정신은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타버린 모자를 보며 모자덕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은 좋을 리가 없었다. 당시 시위 도중 최루탄이나 날아온 물체로 인해 사망한 이들이 몇 있었고, 그리고 그들을 열사라 칭했으니, 지랄탄을 맞고 숨쉬고 있다는 것은 내가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길이었다. 나를 휘감았던 것은 분노의 감정도, 열렬한 투쟁 의지도 아니었다. 그저 변신할 수 있다면 변해버리고 싶은 너절너절한 패배의식과 부끄러움이었다. 누군가는 나를 운동권이라 말했고 누군가는 요주의 인물이라 말했다. 누군가는 나를 계속 이용하려 했고 누군가는 나를 말렸다. 불행하게도 최루탄 하나 맞은 일로 운동권의 영웅으로 회자된다는 건 끔찍스럽고 끔찍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민주화를 부르짖던 민주열사들의 희생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사회 속에 살던 나, 오로지 나, 말이다.

  중요한 건, 나의 사고와 의지였다. 그러나 나는 알아 버렸다. 내가 대열 속에 있지 않고 늘 겉으로 돌았던 이유가 신념이나 사고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을. 사회를 인식하는 방법과 그로 인한 나의 행동을 만들어 가는데 난 어정쩡한 상태였다. 한쪽 발을 걸치고 다른 한 발을 보태거나 빼거나를 반복하며 늘 그 자세로 있었다. 유신시대라면, 80년이었다면 이러한 고민이 없었을 텐데, 좀더 사회가 비정상적이고 억압적인 사회라면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를 부끄러이 여겼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변화의 흐름과 함께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과 그것에 대응하는 방법은 고민할 문제이며 보다 올곧게 내 가치와 신념을 정립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 않은가. 그저 집회현장을 쫓아다니면서도, 성년식을 앞두고도 그렇게 뚜렷한 사고와 신념을 확실히 만들어 놓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면 그렇다할 밖에.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그저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을 접하며 내 관점을 세우고 정립하려 하였을 뿐이다. 신념도 가치도 확고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행동하는 것은 그저 꼭두각시일 뿐, 더 진전된 행동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행동하기 위한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그냥 상황이 벌어졌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온몸으로 맞닥뜨리는 감정은 부끄럽고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기억뿐.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이 드러나게 된 건 말많은 이들 때문도 있었지만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탓이 컸다. 치료도 싫어 병원도 가지 않았고 수업도 듣지 않았지만 꼬박꼬박 일하러는 나갔다. 모자를 눌러 감췄지만 얼굴의 변화가 뚜렷했기에 내 얼굴에 대해 떠들어 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장학금을 받고 일을 해야 또 한 학기를 버티는 삶이었으니 눈뜨면 영혼없이 일을 했고 그렇게 지내며 생각도 영혼을 잃어버렸다. 옳고 그름에 대한 신념을 세우는 일도 무기력해질 수 있음을 느끼며 그 해 내내 모자를 벗지 못했다.

  돌아보니 내가 모자를 벗을 수 있었던 것은 민노래와 그해 겨울 만난 아이들 덕분이다. 늘 짧게 하던 머리카락이 의식도 못한 채 허리께까지 길어진 걸 보며 모든 아르바이트를 접고 심연의 나락에 있던 내 몸과 마음을 끄집어내어 장애아동들의 발달과 치료를 돕는 센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석달을 지내며 두 자폐아이를 만났고 문득 문득 그 두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만났다. 앳된 얼굴에 밤톨 머리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커가는 준이와 옷을 벗어 던지며 어디든 배설을 하면서 하수구 구멍의 물소리를 듣기 위해 발버둥치던 진이. 갇혀버린 자아를 가진, 우리들.

  캠벨이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중요하게 보이던 두 세계의 가치나 차이는, 지금까지 전혀 다른 것으로 인식하던 <타자><자아>를 동화시키는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라고. 글쎄, 어쩌면 돌아가야 할 시기였는지도…….

 

  시간이 되면 성년이 된다고 생각한 것처럼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 있다. 성년식을 치르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의 구조소식을 기다리며 그때, 용을 철저히 무찌르지 못하고 숨어 버린 내가 오늘날 이런 현실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지, 현재 이 사회에서 몹쓸 어른으로 자라났구나란 자각에 다시 부끄러워졌다. 열흘 넘게 이 나라가 벌여놓은 짓들을 보기 전에도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일상화된 분노로 무력하기만 한 어른이었다. 울분만을 토해내는 것이 싫으면서도 분노밖에 할 게 없지 않은가 했었다. 나는 그런 어른은 아니라고 보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있나 보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용을 무찌르진 못해도 나는 용을 어쨌든 재워두었음을 생각한다. 이 용을 계속 잠재워두며 차근차근 무엇부터 해야 할 지를 생각해 본다. 체제를 전복시킨다거나 사회를 혁명시킨다거나 하는 구호의 외침이 아니라 현실적인 뿌리를 둔 작은 행동들부터라도 시작해야 함을 생각한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나비효과들로 다시 사회의 변화를 꿈꾸며.

 

 

IP *.124.98.251

프로필 이미지
2014.04.28 10:00:13 *.104.9.186
나는 이 글들이 늘 좋습니다.
내게는 절대 없는 날카로운 연검 같아서 좋아요. 차갑고 예리한데 부드럽군요.

용을 때려잡을 수 있을까요?
프로필 이미지
2014.04.28 12:38:47 *.94.41.89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나비효과들로 다시 사회의 변화를 꿈꾸며"

 

응원합니다. 나비의 아름다운 춤을 기대하며.

프로필 이미지
2014.04.28 13:46:06 *.198.29.159

타자와 자아의일치. 너무 어렵지요...

프로필 이미지
2014.04.28 14:18:02 *.218.176.39

그런 스토리가 있었군요.


"신념도 가치도 확고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행동하는 것은 그저 꼭두각시일 뿐,

더 진전된 행동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부분이 보여질때마다 자신이 참 싫어지더라구요.

앞으로 더 나아지겠죠.


 





프로필 이미지
2014.04.29 16:42:51 *.113.77.122

체제를 전복시킨다거나 사회를 혁명시킨다거나 하는 구호의 외침이 아니라 현실적인 뿌리를 둔 작은 행동들부터라도 시작해야 함을 생각한다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나비효과들로 다시 사회의 변화를 꿈꾸며.


작은 움직임이 결국 큰 움직임의 시작이죠 ~ 같이 한번 좋은 사회 변화를 만들어나가시죠~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