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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8일 11시 55분 등록

1.제목: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 출판사: 민음사

- 이윤기 옮김

 

2.저자 : 조셉 캡벨 & 빌모이어스

-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 (1904~1987)


1904326일 뉴욕 출생

1925년 콜럼비아 대학교 졸업

1927년 콜럼비아 대학교 영문학 석사과정 수료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교수로 재직

1949<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발표

1959~1967<신의 가면> 1~4 권 집필

19871031일 호놀룰루에서 사망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로마 카톨릭 신앙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민담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관련서적을 탐독했으며, 맨하탄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즐겨 찾았다. 그 중 특히 박물관 한 켠에 있는 토템 기둥에 매료되었다.

다트머스 대학에서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했지만 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겨서 중세 영문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27년 캠벨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 이후 2년 동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공부한다. 영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는 동안 자신이 어렸을 적 즐겨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담과 아서 왕에 나오는 많은 주제들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캠벨은 콜롬비아 대학을 비롯한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특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선 중세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하였다.

1929년에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영문학 대신 인도 철학과 미술 쪽으로 공부를 계속하려 하지만, 대학 측의 반대로 결국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난다. 때마침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불황을 맞이한 상황에서, 캠벨은 이후 5년 가까이 칩거하며 독서와 사색, 그리고 습작에 몰두한다.

34세에 제자였던 22세의 진 어드만과 결혼했다. 39세에 첫 책을 냈다. 부부는 인생과 생활에 대해 소박한 가치관을 지녔으며 필요한 것만 소유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벡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며, 30세부터 68세까지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의 교수가 된 뒤 신화의 원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신화적 인물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캠벨은 어려서부터의 관심사였던 인류학과 민속학을 바탕으로, 비교종교학과 분석심리학 등의 이론을 이용하여 신화와 종교 연구를 지속해 명성을 얻는다. 그의 대표작인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1949)은 세계 각지의 신화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영웅의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주저인 4부작 <신의 가면>(1959-1968)을 비롯하여 <신화와 함께 하는 삶>(1972), <신화의 이미지>(1974), 그리고 최후의 역작인 총 25권의 <세계신화지도>(1983-1989) 등을 펴냈다.

하지만 조지프 캠벨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의 PBS 방송국에서 제작한 대담 프로그램 신화의 힘’(1988)이었다. 그의 생애 막바지에 제작되어 결국 사후에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서, 캠벨은 저명한 방송인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을 통해 신화가 현대에 지니는 의미에 관해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을 토대로 한 대담집은 오늘날까지도 신화에 관한 가장 훌륭한 개론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조지프 캠벨은 19871030,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후에 아내인 진은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조지프 캠벨 재단을 설립하고, 캠벨의 유고와 대담, 그리고 강의록 등을 정리, 출간하고 있다.

 

- 내가 생각하는 조셉 캠벨은 ?

자신의 천복을 발견한 영웅이다. 어렸을 때 보았던 인디언의 토탬 기둥과 가면에 매료당해서 거기서부터 시작된 호기심이 오늘날의 신화종교학자 조지 캠벨을 만들었다. 그리고 5년간 칩거기간동안 독서와 사색, 글쓰기를 통해서 영웅이 되어 돌아왔다.

문화 인류학, 생물학, 철학, 예술, 역사, 종료 책 속에 파묻혀 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가 갖는 공통된 요소들을 찾아내고, 다양한 문화적 체험과 여행을 통해서 종교간의 공통된 특성들과 차별점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에게 내리는 처방은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따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 하면 안됩니다. ” 라고 얘기한다.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

 

-6 이책의 목적은 종교화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데 있다.

 

>>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나라의 신화를 넘나드는 그의 지식의 해박함과 통찰력이 놀라울 뿐이다. 그것을 비교함으로써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놀랍다.

 

-6 저자가 바라기로는, 이러한 저자의 비교 해석이 이 세계의 통합을 결실시키려는 작품의 경향에 대해, 종교적 혹은 정치적 제국의 이름으로서가 아닌, 인류의 상호 이해라는 측면에서 그리 초라하지 않은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베다 경은 <진리는 하나되, 현자는 여러이름으로 이를 드러낸다>고 했다.

 

 

<<프롤로그: 1. 원질 신화 >>

 

1.신화와 꿈

 

-14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종교,철학, 예술, 선사 인류 및 유사 인류의 사회적 양식, 과학과 기술의 으뜸가는 발견, 바닥째 흔들어 수면을 엎어버리는 꿈, 신화의 불가사의한 고리... 모두가 이 은밀한 통로를 지나 인류의 문화로 현현한 것들이다.

 

-14 시간을 초월한 이 환상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신의 어느 심연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신화는 왜 어느 곳에서 채집된 것이든 그 다양한 의상 아래로는 똑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신화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23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25 우리는 자궁이라는 이름의 무덤 tomb of the womb에서 무덤이라는 이름의 자궁, womb of the tomb까지 완전한 순환 주기를 산다. 그것은, 꿈의 본질처럼 눈앞에서 곧 녹아버릴, 견고한 물질의 세계를 향한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흐름이다.

 

- 29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다.

 

>> 나는 무엇에 대해 복종하는가? 보이지 않는 무기력감 및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소통의 답답함을 크게 느꼈는데, 이제는 하나둘씩 풀어나가야 하리라

 

-29 오직 탄생(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닌,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죽음의 끈질긴 재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내부에, 사회적인 무리의 내부에 끊임없는 <탄생의 재현 palingenesia >(우리가 이땅에서 오래 잔존하게 되어 있다면)이 있어야 한다.

-30 창조작업의 회복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보다 높은 차원을 위한 위기가 따르는데, 토인비 교수는 이 위기를 묘사하는데 <해탈 detachment>과 변용< transfigu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첫단계, 즉 해탈 혹은 물러섬 withdrawal 과정은,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그 중심을 옮김으로써, 황무지의 절망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영원히 평화로운 영역으로 물러섬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을 통해 알게 되었듯이, 이 영역이 바로 유아기의 무의식이다.

 

-38 그런데도 우리는 혼자서는 이 모험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이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 왜 모험길을 혼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힘들게 하는것일까? 이제는 그 요소를 찾아 없애야 겠다.

 

 

2. 비극과 희극

 

-41 시공의 제약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의 하찮은 논리와 정서적 집착으로 찾아드는 죽음, 우리들이 흙으로 돌아가려 할 때 비로소 온몸을 흔들면서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보편적 생명에 대한 이러한 재인식, 이 생명을 향한 우리의 가파른 중심이동, 그리고 <운명에의 사랑 amor fati> 즉 필멸의 운명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비극적 예술의 체험을 구성한다. 그 기쁨, 구원의 황홀은 바로 그 안에 있다.

 

-44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이러한 영웅의 행위가 완성되면, 삶은 더 이상 도처에 도사린 재앙의 가혹한 단죄와 시간에 의한 마손이나 막막한 공간의 두려움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고통받는 일이 없게 된다.뿐인가, 공포는 눈앞에 여전히 보이고, 고뇌의 울부짖음은 여전히 귀에 들리나, 삶은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정복되지 않는 힘의 자각으로 다시 생기를 얻는다. 여느때에는 막막한 물질로 뒤덮인 생명의 심연에서 보이지 않게 타오르던 불길이 요란히 소리와 함께 빛이 되어 비치기 시작한다. 저 무서운 단죄의 손길은, 그제서야 우리들 마음속의 불멸하는 우주의 그림자로 비친다. 시간은 영광의 승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세계는 더할나위없이 천사적인, 더할나위 없이 단조롭고 요정의 노래처럼 매혹적인 하늘의 노래를 부른다. 행복한 가정이 다 그렇듯이, 소생한 신화와 세계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3.영웅과 신

 

-44.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분리>, <입문>, <회귀>의 확대판이다. 이 양식은 원질신화 (monomyth)의 핵심 nulear unit라고 할 수 있다. ,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런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장소가 어디 건, 그들의 관심(종교적, 정치적 혹은 개인적)이 어디에 있건 진정한 창조 행위는 죽어가는 것으로부터 세상으로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행위로 표현되며, 영웅의 부재중에 무슨일이 일어나든, 그가 거듭난 자, 위대한 자, 창조력을 얻어 돌아오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류역시 한 목소리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다시한번 확인 하기위해서는 보편적인 모험의 고전적인 단계를 두루 꿰는 수많은 영웅적인 인물을 따라가 보아야 할 듯하다. 이러한 작업은 당대의 삶과 관련된 이미지의 의미뿐만 아니라 야망, 권력, 영고 성쇠, 그리고 지혜로서의 인류 정신의 단일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 지금까지는 특정 어느 지역 또는 민족을 이해하고, 서양이 동양을 박해하고 무시하고 하였는데, 이제는 이런 편협성에서 벗어나서 인류 정신의 단일성을 이해해나가야 하리라.

 

-52.대개 동화속의 영웅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소우주적 승리를 거두고, 신화의 영웅은 세계사적, 대우주적 승리를 거두는게 보통이다. 또 전자(젊은이, 아니면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경멸 당하는 아이)는 자신을 압제하던 상대를 이겨내는 데 그치는 반면, 후자는 모험을 통하여 자기가 속한 사회 전체의 소생에 필요한 수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보잘 것 없는 영웅이든 탁원한 영웅이든, 그리스 영웅이든, 야만족의 영웅이든, 이방인의 영웅이든, 유태족의 영웅이든, 영웅의 행장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잣거리에 나도는 이야기는 영우의 행위를 주로 물리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고급 종교에서는 영웅의 행적이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모험의 형태, 등장인물의 역할, 마침내 얻은 승리의 내용물에는 놀라울 정도로 별 차이가 없다.

 

>> 동화속의 영웅이든, 신화속의 영웅이든 그속에 있는 이야기의 단일성을 찾아낸 조지 캠벨의 다양성과 깊이있는 지식에 놀라울 뿐이다.

 

4.세계의 배꼽

 

-54.세계의 배꼽은 도처에 있다. 그리고 이곳은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세상의 하고 많은 선과 악을 두루 산출한다. 추한 것, 아름다운 것, 죄악과 미덕, 쾌락과 고통이 모두 이 세계의 배꼽의 공평한 산물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르기를 <신에게는 모든 것이 공정하고 선하고, 정당하지만 인간은 어떤 것을 그르다고 하고, 어떤 것을 옳다고 한다>고 했다.

 

 

 

<<1: 영웅의 모험 : 1.출발 >>

 

 

1.영웅에의 소명

 

-71.프로이트가 밝혔듯이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이 주름의 골은 매우 깊다. 영혼 그 자체 만큼이나 깊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72.비의에서 알 수 있듯이, 전령관의 등장은 <자아의 각성>이라고 불리는 단계를 암시하고 있다. 동화에 나오는 공주의 경우, 전령관의 등장은 사춘기의 도래를 뜻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크든 작든, 삶의 단계나 정도가 어디에 이르러 있든, 이러한 소명은 언제나 변용의 신비 mystery of transfiguration, 완성되면 곧 죽음과 탄생에 이르는, 정신적 통과 의례 혹은 순간을 개막한다. 지금까지의 삶의 지평은 이제 너무 웃자라, 낡은 개념과 정서 패턴은 몸에 맞지 않는다. 바야흐로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 스스로의 각성이 이루어지는 정신적 통과의례를 통해서 사람들은 한차례 성숙을 하게 된다. 단계의 차이는 개인적으로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단계들을 통해서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2.소명의 거부

 

-81.현실 생활에서는 자주, 신화나 민간 전승에서도 드물지 않게 소명에 응하지 않는, 조금은 답답한 경우를 우리는 자주 만난다. 다른 데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소명에 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타성이나 힘에 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 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 모험의 주체가 누리던 화려한 세계는 메마른 돌맹이가 구를 뿐인 황무지가 되고, 그의 삶은 무의미해진다

 

>> 자신의 소명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 자신의 길이 조금씩은 보이게 된다. 그것을 일찍 발견하는 사람도 있고 늦게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거부나 부적응의 단계의 힘든 시간을 통해서 그사람의 성숙을 이루게 된다.

 

-87.인격이 이 새로운 힘을 흡수하고 통합할 수 있으면 당사자는 자기 의식의 초인간적인 단계 및 완전한 통제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인도 요가 수련의 기본적인 원리다.

 

>> 비우고 집중하고, 비우고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서 이러한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리라.

 

 

3.초자연적인 조력

 

-98.조력자를 맞는 영웅은, 소명에 응답한 영웅일 경우가 보통이다. 실제로 소명은, 통과제의의 사제가 접근하고 있음을 알리는 첫 번째 통고다

 

>>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마음만 굳건해지면, 뜻하지 않은 조력자를 키우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된다.

 

 

4.첫 관문의 통과

 

-105.자신을 안내하고 자신을 도와줄 운명을 인격화 함으로써 영웅은 모험의 영역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 이윽고 한단계 어려운 영역의 입구에서 <관문의 수호자>를 만나기에 이른다. 이러한 수호자는 영웅의 현재 상황, 혹은 삶의 지평의 한계를 상징하면서 사방에서(위 아래까지) 세계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105.집단의 보편적 믿음이, 미지의 땅으로 첫 출발을 내 딛으려 하는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 우리는 얼마나 이런 보편적 믿음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그래서 보면적 믿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근원적인 사고를 하는 노력들이 필요해서 사고를 깨우는 것이 필요하다

 

-111.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어느 시대든 마찬가지다. 이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의 수호자는 극히 위험한 존재다. 그들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안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과 용기를 갖춘 사람앞에서는 위험은 그 꼬리를 감추고 만다

 

>> 사람들은 현재와는 다른 무언가를 꿈꾸지만 막상 그렇게 되기 위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겁내는 경우가 많다. 하게 되면 큰일이 발생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현재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릴것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생각들이 자신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위험부담은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열린 마음으로 위험도 감수해낼 용기를 조금씩 내보이면 미지의 세계가 기지의 세계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120.한짝을 이루는 대립물(즉 존재와 비존재, 생과 사, 미와 추, 선과 악, 희망과 공포의 기능을 통합하고 방어와 습득 행위를 일으키는 기관을 연계시키는 그 밖의 양극성)은 여행자를 향해 서로 부딪쳐 오는 바위 symplegades이며, 영웅은 항상 이 길을 지난다.

 

-120. 태양문을 통하여 번제의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 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길을 가는 것이다.

 

 

5.고래의 배

 

-120. 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곧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관념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래의 배라는 자궁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웅은 그 관문을 지키는 세력을 정복하거나, 그 세력과 화해하는 대신, 그 미지의 힘에 빨려들어, 겉보기에 죽은 것으로 나타나고는 한다.

 

-122.세계 도처에서 채집되는 이러한 모티브는,관문의 통과가 자기적멸의 형태를 취한다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교훈은 쉼폴레가데스(충돌하는 바위 섬)의 모험에 이르러 한층 더 분명해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영웅이 외부로의 관문, 즉 가시적 세계의 한계를 넘는 대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이 들어감은 신도가 신전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일치한다. 신도는 신전안에서, 자신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티끌에 불과하다는 자기 정체를 깨닫게 된다. 신전 안, 고래의 배, 세계라는 한정된 공간 건너 위, 아래로 보이는 천상적 공간은 결국 하나다

 

>> 자기적멸의 단계는 필요하리라. 그래야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임할 수 있으리라.

 

-124 아난다 쿠마라스와미 박사는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고 써다.

 

>> 생각만으로 그냥되는 것은 없다. 자기 적멸의 단계를 통해서 높은 차원의 존재 획득이 가능해진다.

 

 

 

<< 2. 입문>>

 

 

1.시련의 길

 

-128.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신화와 모험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루는 부분도 바로 이 국면이다. 이 국면은 기적적인 시험과 시련을 다룬 세계의 문학을 창출해 왔다. 영웅은 거듭나느데 필요한 충고와 호부(액막이), 그리고 이 영역에 이르기전에 만났던 초자연적인 조력자의 밀사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어쩌면 모험 당사자가 자신의 초인간적 여행 도정의 도처에 자비로운 권능이 있어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인지도 모른다.

 

-132. 인간의 무리는 집단의 이상에 따라 행동하는 법인데, 이 집단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 유아기 상태란 성장의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수정되고 역전되다가 현실에 적용될 필요가 있을 때 재수정 된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거기에서 보이지 않는 생명충동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 유대가 없다면 인간의 집단은 존재할 수가 없다.

 

-133.따라서 주술사는 그 사회성원들의 심성에 내재하고 있는 상징적 환상 체계를 출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주술사란, 이러한 유아적 놀이를 주도하고, 공통의 근심거리를 밝혀내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방에서 성공하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잡귀와 대리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 현대에는 이런 주술사 역할을 하는 것이 리더라고 생각하는데, 잡귀들과 대리전쟁을 치룰 수 있게 주위환경을 바꾸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133.그러니까 우리 사회에 속하는 사람이든지, 고의적이로돈 타의에 의해서든 자기 정신의 미궁이라는 미로로 내려가 어둠속을 헤매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저 시베리아의 <푸닥>과 성산에 못지않는 상징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신비주의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것은 <자기 정화>에 이르는 길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된다. 즉 감각이 <정화되고 스스로를 낮추어> 모든 에너지와 관심이 <초월적인 것에 집중될>인 것이다. 굳이 현대적인 의미의 어휘를 쓰자면, 우리 개인이 가진 과거의 유아적 심상이 분리, 초월, 변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의 꿈에는 아직까지도 시대를 초월한 위험, 괴물, 시련, 정체불명의 조력자, 그리고 우리에게 유익한 인물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들의 형태에서 우리는 현재 상태의 모든 현상뿐만 아니라 그 현상을 이기기 위해 우리가 취할 행동의 단서도 굴절되고 있음을 본다.

 

-142. 수메르의 신화는 서구 세계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수메르의 신화는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페니키아 전통 및 성저 전통의 근원인 동시에 켈트인, 그리스인, 로마인,슬라브인,독일인의 이교적 종교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43.고대의 상징 체계에 따르면 빛과 어둠을 표상하는 자매, 즉 이난다와 에레쉬키갈은 두 얼굴의 한 여신이다. 그리고 그들의 반복은 어려운 시련의 길을 의미한다. 신이든, 여신이든, 남자든, 여자든 신화의 등장인물이든 꿈을 꾸는 사람이든, 영웅은 적재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뜻밖에도 그 자신의 자아)를 동화시킨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남과의 싸움인지 알고 열심히 매달리지만 자신의 싸움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리라.

 

 

2.여신과의 만남

 

-144.모든 장애물이 극복되고 도깨비가 퇴치되었을 때 영웅이 치르는 마지막 모험은, 승리한 영웅과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스러운 혼례로 표상된다. 이로써 영웅은 천저, 천정, 혹은 땅끝, 우주의 중심점, 신전의 성소, 혹은 마음속의 가장 어두운 방속에서 위기를 맞는다.

 

-145.잠자는 여성은 미인의 본보기 중의 본보기며, 모든 욕망에 대한 응답, 모든 영웅의 지상적, 비지상적 모험의 은혜로운 최종 목표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며, 누이며, 애인이며, 신부이기도 하다. 세상에 유혹하는 것, 기쁨을 약속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잠자는 여성이 지향하는 존재의 예조에 해당한다. 이러한 유혹과 약속은, 이 세상의 도시나 숲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찾아온다. 왜 찾아왔을까? 그녀의 존재가 바로 완정성이라는 약속의 화신이며, 조직화된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오랜 방황을 끝낸 영혼의 안식이며, 한때 인류가 맛보았다가 언젠가 다시 맛볼 은혜이기 때문이며, 위안과 자양, 그리고 아득한 옛날에 그 사랑을 받던 <좋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우리와 그녀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그녀는 영원한 잠에 빠져든 미녀처럼, 아직 우리의 속 영원의 바다 밑바닥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

 

>> 잠든 미녀가 결국에 스스로의 불완정성 또는 완벽해질 수 있는 그 기저라는 것이 놀랍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의 나는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마음은 자라지 않고, 생각만 커지니 그 사이에 서로간의 반목과 질투, 비난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잠들고 있는 나를 깨워야겠다. 그래서 진정한 나와의 만남을 가져봐야 겠다.

 

-152.수행을 통해 숭배자의 정신은 유치하고, 어울리지 않는 감상과 증오로부터 스스로를 정화하고 유치한 인간이 자신의 행, 불행에 연결지어 멋대로 가른 <><> 따위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법과 상으로 존재하는 불가해한 실재를 향해 그 마음을 열게 된다

 

>> 자신의 분별력으로 선과 악을 파악하는데 사물 그 자체는 착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판단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리라.

 

 

3.유혹자로서의 여성

 

-159.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즉 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웅의 궁극적인 체험과 행위의 예비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의 시련은, 자각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 자각이 위기를 통해 영웅의 의식은 증폭되고, 어머니 상의 파괴자, 즉 천생연분의 신부를 전적으로 받아들 일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과정을 거치면서 시련을 받는 당사자는 자기와 아버지가 동일하다는 사실과 자기가 곧 아버지의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4.아버지와의 화해

 

-177.한 아이가 자라, 어머니 품속의 목적인 자장가를 떠나 어른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될 때, 이 아기는 정신적으로 아버지와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의 상징이요, 딸에게 있어서는 미래 남편의 상징이다. 알든 모르든, 그리고 사회의 지위가 어떻든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더 넒은 세계로 나갈 때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 어머니가 그때까지 <><>을 표상하고 있었듯이, 지금부터는 아버지가 그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이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여기에 새로운 경쟁자적 요소가 틈입한다. 즉 아들은 세계를 섭렵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삼고 딸은 섭렵된 세계자체가 되는데 있어서 어머니를 경재자로 삼는 것이다.

입문에 대한 전통 인식은, 부모의 이미지에 대한 정서적 관련성을 철저하게 바로 잡아주면서 그가 살아갈 삶의 기술과 의무와 특권을 소개하려는 의도를 수렴하고 잇다. 비법 전수자(아버지 혹은 아버지를 대신하는 사람), 유아기의 부적당한 카텍시스, 리비도가 특수한 사람, 물건, 또는 관념을 향하여 집중 발현되는 현상)로부터 놓여난 입문자에게만 의식의 상징을 베풀게 되어 있다. 이런 입문자라야 자기 강화라는 무의식적(혹은 의식적,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동기나 개인적인 선호나 혹은 증오 때문에 정당하고 비개인적인 힘을 오용할 가능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입문의 영광을 입는 자는, 자기 인간성을 모두 박탈당하고, 비개인적인 우주적 힘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그는 이제 거듭난 자이며, 그 자신이 곧 아버지다. 그는 끊임없이 삶의 싸움판에 나서야 하고 입문의 사제, 안내자, 태양을 향한 문 노릇을 해야 한다. 요컨대, 선악에 대한 유아기 환상을 떨치고, 희망과 공포에서 놓여나 평화롭게 존재의 계시를 이해하고 우주 법칙을 엄숙하게 경험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입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192.창조의 역설, 영원으로부터의 시간이라는 양식의 도래는 아버지가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비밀이다. 이것은 설명될 수가 없다. 따라서 모든 신학 체계에는 배꼽, 즉 어머니인 생명의 손가락이 닿았던, 끝내 아무도 알 수 없는 아킬레스 건이 있는 법이다.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그가 속한 세계와 함께) 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약점)를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 이런 역설적인 일들이 일어나야 하다니, 자기몸에 박힌 가시를 통해서 삶을 초월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영웅이 일반인의 삶과는 다른 것이리라.

 

5.신격화 Apotheosis

 

-196.부처 자신처럼, 이 신과 같은 존재는 인간적인 영웅이 마지막 무지의 공포를 초월하고 획득하는 신적인 상태 divine state의 한 본보기다. <의식의 외피가 벗겨져 나가,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의 경계를 넘어 서게 된> 상태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해 있는 해탈의 상태이며, 영웅들이 됨으로써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상태다. <만물에는 불성이 있으니>, (같은 말을 달리하자면) <일체의 존재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200. 영웅의 모험이 막바지에 도달하여 낙원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신의 형상은 다시 나타나고, 지혜는 다시 원상으로 회복된다.

 

-215. 마지막으로 <미망과 욕망과 적의의 적멸> (즉 열반)과 더불어 마음은, 생각이 실체가 아님을 깨닫는다.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참된 경지에 들어간 마음은 안식을 얻는다. 상태는 육체가 사라질때까지 계속된다.

 

-217.삶에서 자유로워진 사람 jivan makta, 욕심이 없고 대자 대비하고현명한 사람이 요가로 자아를 통일하고 만사 평등하게 보면 일체 만유속에서 자아를 보고 자아를 통일하고 만사 평등하게 보면 일체 만유속에서 자아를 보고 자아 속에서 일체 만유를 본다

 

>> 이런 단계가 오면 좋겠다. 요즘 요가를 배우고 있지만 이런 단계에 이르러면 참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하리라 게으르지 않고, 나태하지 않고 계속 정진해나가다보면 가능해지리라.

 

-223. 신적인 차원의 언어로 일컬을 때 시간의 세계란 곧 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이다. 아버지에 의해 끼쳐진 생명은 그 안에서 어머니의 어둠과 아버지의 빛으로 합성된다.

우리는 어머니 안에서 배태되어, 아버지로부터 격리된 채 산다. 그러나 우리가 때가 와서 그 시간의 자궁으로 빠져나오면(영원으로의 탄생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손으로 넘어간다. 현명한 자는 그 자궁속에서도,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와서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안다. 그보다 더 현명한 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의 본체 안에 있다는 것 까지 안다.

 

>> 시간의 세계에 대한 멋진 표현이다. 시간을 어머니의 자궁에 표현하는 것이 훌륭한다.

 

-223.명상의 촉매를 보는 전통적인 시각 중의 한 시각에 따르면, 여성적 형상, 즉 티베트 어의 <yum>은 찰나로, , <yab>은 영원으로 보아야 한다. 이 양자의 결합은 이 세계를 창출한다. 이 안에서는 만물이 찰나적인 동시에 영원하며, 만물이 스스로를 아는 남성과 여성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다.

 

 

 

<< 6.홍익 >>

 

-226.샘은 세계의 배꼽이고, 불타는 물은 파괴할 수 없는 존재의 본질이며, 돌고 있는 침대는 세계의 축이다. 만상이 잠드는 성은 꼼속에서 의식이 도달하는 궁극의 심연이다. 꿈은 개인의 삶이 미분화 에너지 속으로 해소되는 지점이다. 해소되어 버리면 죽음이다. 불이 꺼진다는 것 역시 죽음을 상징한다.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음식은 끊임없이 생명을 부여하고 형체를 만드는 우주적 근원의 권능을 상징한다. 이 음식의 모티프(유아기의 환상에서 나온)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벌이는 <풍요한 잔치>이미지의 동화판 이야기이다. 여신과의 만남과, 불의 도둑질이라는 두 상징적 행위의 만남은 신화 영역에서의 신인 동형 동성의 능력을 선명하게 나타내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불멸하는 생명의 술, , 양식, , 그리고 영광의 수호자, 권화 혹은 시혜자까지 나타내고 있다.

 

-248.만물은 나아가고, 일어나고, 되돌아 온다. 나무는 꽃을 피우나 오직 뿌리로 되돌아가기 위함이다. 뿌리로 되돌아감은 정일을 찾음이다. 정일을 찾음은 천명으로 합일함이다. 천명에 합일함은 영원에 합일함이다. 영원을 아는 것은 깨달음이요, 영원을 깨닫지 못하면 혼란과 마가 인다.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아니다.

 

>> 깨달음을 얻고, 이해력이 넓어지고, 포용력이 넓어지고, 귀함을 얻게 되니 깨달음을 얻도록 노력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249.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든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누즌 가교인 것이다. 차례로 용을 쓰러뜨리고, 관문과 관문을 차례로 지남에 따라, 영웅이 고도로 갈망하는 신의 모습은 점점 커져, 이윽고 우주 전체에 가득차게 된다. 영웅의 마음은 마침내 우주의 벽을 깨뜨리고 모든 형상(모든 상징, 모든 신성))의 경험을 초월하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변의 공에 대한 자각이다.

 

 

 

<<3. 귀환>>

 

 

1.귀환의 거부

 

-253.근원을 투시함으로써, 혹은 남성이나 여성, 인간이나 동물로 화신한 자의 은혜를 입음으로써 영웅의 임무가 수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모험 당사자인 영웅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원질신화의 규준인 완전한 순환 체계는 영웅에게 지혜의 시문, 황금 양털, 혹은 잠자는 미녀를 인간의 왕국으로 데려오는 또 한번의 수고를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이 은혜가 사회, 국가, 그 전체 아니면 일만 세계를 재생시키는데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 영웅의 모험은 마지막까지도 쉽지 않다. 전리품을 들고 다시한번 모험을 해야 하기에...하지만 그런 모험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영웅으로서 돌아올 수 있는것이리라

 

 

4. 귀환 관문의 통과

 

-294.카마르 알 자만의 기나긴 이야기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운명이 일상의 삶으로 구체화되는 완만하면서도 놀라운 역사다. 그라나 이 운명이 모든 이에게 다 구체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안으로 뛰어들어 이를 체험하고, 반지를 얻어 다시 현실로 귀환한 영웅에게만 가능하다.

 

>> 살면서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 많이 있다. 오직 뛰어내릴 수 있을 때 결실을 맺고 귀환할 수 있으리라.

 

 

5. 두 세계의 스승

 

-305.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에 불과하다. 상징은, 그 언급하는 바의 궁극적인 의미, <진로>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또 인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상징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313. 그는 시간속의 엄연한 불변성을, 존재의 영속성으로 오해하지 않는다. 변화가 영속성을 파괴할 때도,다음 순간(혹은 <다른 사물>)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위대한 재생의 손길인 자연은 부단하게 형상을 만들어나간다. 온 우주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라. 오직 변화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생될 뿐인 것이다.>

 

 

>> 어느 한 순간도 동일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되고 그 속에 나 또한 있는 것이다. 그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존재로 있을것인가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해야 하리라.

 

-319. 이러한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제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암시를 읽어내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이 빈사 상태에 빠진 성화聖畵는 그 영원히 인간적인 의미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 신화에서 영감을 읽어야 하는데, 현재의 나의 눈높이의 기준으로 읽어나가려했다. 그러다보니 신화는 낯설기만 하고, 오래된 옛날 그림으로만 치부했다. 옛날 그림으로만 생각하면 그것은 더 이상 얘기할것이 없으나 그 속에서 많은 암시를 읽어내어야 그 가치를 더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22. 신화적 상징은 그 함축적인 의미 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 즉 수천년에 걸친 영혼의 모험을 유추에 의해 표상해 온 만큼 그 대응 관계의 전 체계를 섣불리 펼쳐보이기 이전에 그것이 지닌 모든 함축적 의미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 신화가 읽기 어려운 부분이 현대 시점으로 판단하고, 은유적인 표현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인데, 이런 은유적 표현에 대해서 다시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 2부 우주 발생적 순환 - 1. 유출 >>

 

 

1.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326. 신화가 꿈과 정확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화와 꿈은 같은 근원(즉 환상이라는 무의식의 샘)에서 유래하고 그 문법도 동일하다. 그러나 이 신화가 수면의 산물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이 양자는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신화의 패턴은 의식적으로 통제된다. 그리고 신화는 전통적인 지혜를 전달하기 위한 강력한 회화적 언어로 기능한다.

 

-330.분화되지 않았으면서도, 도처에서 개체화된 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식은, 바로 이를 인식해야 하는 기관에 의해 좌절당한다. 인간이 지닌 감각 능력의 형식과 인간이 지닌 생각의 범주는 이 권능의 현현 그 자체다

 

>> 인간의 인식은 감각기관에 의해서 제한을 받게 되는데 오히려 감각너머에 존재하는 인식이 중요한 것 같다.

 

-331.개인의 탄생, , 죽음은 무의식으로의 하강 및 회귀로 볼 수 있다. 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과정 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자다.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우주적 상징이 종잡기 어려운 역설로 표상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신의 왕국은 내재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외재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은 잠자는 공주, 즉 영혼을 깨우는 편의수단이다. 삶은 공주의 잠이고, 죽음은 공주의 깨어남이다. 자기 자신의 영혼을 깨우는 영웅은, 그 자신이 자기 소멸의 편의 수단일 뿐이다. 영혼을 깨우는 신은,그 영웅과 죽음을 함께 한다.

 

 

2.우주의 순환

 

-333. 우주 발생적 순환은 우주 자체의 반복, 즉 끝없는 세계로 표상된다. 각 순환의 주기 안에는 소멸의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삶이 잠과 깨어 있음의 주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38.우주 발생적 순환에 의해 설명되는 철학적 공식이란, 존재의 세 단계를 통한 의식의 순환을 말한다. 그 첫 단계는 깨어나는 체험의 단계, 즉 태양의 조명을 받고, 만물에 공통된 외계 우주의 험난하고 총체적인 사실들을 인식하는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꿈 체험의 단계, 즉 꿈을 꾸는 당사자와는 본질상 동일한 개인적 내부 세계의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를 인식하는 단계다. 세 번째 단계는 깊은 잠에 빠지는 단계, 꿈을 꾸지 않는 지복의 단계다.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삶에 관한 교훈적인 체험과 만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소화되어 꿈을 꾸는 당사자의 내적인 힘에 동화되면, 세 번째 단계에서는 내부적 통제자가 들어앉은 방 안, 모든 것의 근원이자 끝인 상태, <마음속에 있는 공간> 안에서 모든 것을 즐기고 의식할 수 있게 된다.

 

-339. 우주 발생적 순환은, 현현의 세계로 나아갔따가 미지의 침묵이 지배하는 비현현의 세계로 되돌아 온다. 힌두교에서는 성스러운 음절인 <AUM>으로 이 신비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A>는 깨어 있는 의식을 나타내고, <U>는 꿈 의식, <M>은 깊은 잠을 나타낸다. 이 음절을 둘러싸고 있는 침묵은 미지의 것으로, 그저 <네번째>로만 불린다. 이 음절 자체는, 창조자이자 수호자이며 파괴자인 신을 뜻하니, 침묵은 순환의 개방 및 폐새와 아무 상관이 없는 영원한 신이다.

 

보이지 않고, 말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추정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다.

의식 상태에 있는 만물이 공유하는, 자기 인식의 본질

현상계는 이 안에서 소멸한다.

이는 평화요, 행복이요, <둘이 아닌것>이다.

 

>> 침묵의 힘을 느낀다. 요즘은 워낙 주변에서 소리가 많이 나기에 침묵자체로 있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조용하면 왠지 어색한 감이 없지 않은데, 침묵속에서 자신의 소리에 더 귀기울일 수 있으리라.

 

-342.마이크로소포스는 <창조되지 않은 비실재 Uncreated uncreating>이며, 미크로프로소포스는 <창조되지 않는 실재 Uncreated Creating>이다. 그리고 이 양자는 각각 침묵과 거룩한 음절 <AUM>이며, 우주 발생적 순환속의 비현현과 내재적 실재다.

 

 

3.허공에서 -공간

 

-342 <우주의 끝을 헤아리고, 그 끝이 곧 시작임을 아는 자라야 현자라고 불릴 만하다>

모든 신화 체계의 기본 원리는, 끝과 시작이 함께 한다는 바로 이 원리다. 창조신화는,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모태가 된 불멸의 존재와 닿아 있음을 상기시키는 파멸의식과 함께 고루 퍼져있다.

 

-353. <공간은 넓게 펼쳐진 것이 아닌, 오목한 형상으로 끝이 없다. ‘존재하는 것존재하지 않는무한 위로 떠 있는 껍질이다>

현대의 물리학자가 1928년에 그가 본 세계를 그리는 이 간략한 표현은 신화 체계의 우주적 알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6.창조의 민화

-373.민간 신화들은 초자연적 발산물이 공간적 형식을 취해 돌입해 들어오는 순간에만 창조 설화를 흡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신화들은 인간의 상황을 평가한다는 본질적인 점에 있어서 위대한 신화들과 차이가 없다.

 

 

 

<< 2.처녀 잉태>>

 

 

1.어머니 우주

 

-374. 세계를 생성시키는 아버지의 정기는, 변용하는 매체를 통해 다수의 지상적 체험으로 변한다. 이 세계의 어머니는 <‘물 위에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고 창세기 12절에 언급된 원초적 요소의 화신이다. 힌두 신화에서 이 세계의 어머니는 여성적인 형상으로 등장하는데 자아가 모든 피조물을 생성시키는 것은 이 여성적 형상을 통해서다. 다소 추상적으로 이해하자면, 그녀는 세계의 경계를 이루는 틀, 즉 우주적 알의 껍질인 <공간, 시간, 그리고 인과>. 조금 더 추상적으로 말하면, 그녀는 자가번식하는 절대자를 움직여 창조의 행위를 유발하는 유혹자인 것이다.

창조자의 부성적 측면보다는 모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신화 체계에서 이 원초적 여성은 태초의 세계를 지배하면서, 남성에게 맡겨졌을 법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원초적 여성은, 배우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처녀다.

 

 

 

<< 3. 영웅의 변모 >>

 

 

1.최초의 영웅과 인간

 

-396.이제 우리는 두 단계를 거쳐왔다. 즉 첫째는, 비실재적 실재의 직접적인 유출에서 신화적 시대의 유동적이나 시간을 초월한 존재에 이르는 단계, 둘째는, 이 실재적 실재에서 인류역사의 영역에 이르는 단계다.........

우주 발생적 순환은, 보이지 않게 된 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갖춘 영웅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세계의 숙명은 이 영웅들을 통해 실현된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추방당한 뒤로 창세기가 그러했듯이, 창조 신화가 전설에 자리를 물려주어야 할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형이상학은 선사학先史學에 자리를 물린다. 이 선사학은, 처음에는 모호하고 불분명하나 차츰 그 형태가 자세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웅은 점차 우화적인 성격을 일탈하다가 다양한 지방적 전승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마침내 전설은, 기록되는 시대라는 빛의 세례를 받게 된다.

 

2.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400.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 말하자면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서 선함을 얻는> 것이 아니고 <이를 앎으로써 신이 되는것>이다.

 

 

3.전사로서의 영웅

 

-422.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어진> 사상의 옹호자가 아니라 <이루어지는> 사상의 옹호자다. 그의 손에 살해되는 용은, 현상이라는 괴물 바로 그것이니, 괴물은 쇠사슬 같은 과거의 옹호자이다.

 

 

4.애인으로서의 영웅

 

-428.적과 싸워서 장악하는 주도권, 괴물과 싸워서 획득하는 자유, 폭군의 족쇄에서 풀려난 에너지는 여성으로 상징된다. 이 여성은, 수많은 용을 죽인 영웅의 애인이며, 질투심이 강한 아버지로부터 유괴되어 온 신부이며, 부정한 애인으로부터 구출된 처녀다. <영웅과 영웅의 상대적인 여성은 곧 하나>이기 때문에, 처녀는 영웅 자신의 <다른 한쪽>이다. 영웅이 세계의 군주라면, 처녀는 세계이며, 영웅이 전사라면 처녀는 명예다. 처녀는, 영웅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영웅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다. 그러나 영웅이 자기 운명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사상에 현혹될 때, 영웅은 아무리 노력해도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다.

 

-431. 영웅이라는 당당한 존재 앞에서 갖가지 장벽, 족쇄, 깊은 구멍은 차례로 정복된다. 숙명적인 승리자의 눈은 어김없이 상황이라는 요새의 틈을 읽어내고, 그의 주먹은 그 틈을 출입구로 뚫어낼 수 있다.

-431.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에 대한 감상에 현혹되지 않고, 과감하게 자기 본성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자(니체의 말을 빌리면, <스스로 구르는 바퀴>인 사람)앞으로는 어려움이 비켜나고 뜻밖의 탄탄대로가 나타나는 법이다.

 

>> 이래서 자기본성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그것에 시달리게되기에 자신에 대한 본성을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6.구세주로서의 영웅

 

-440.크리슈나는 애곡하는 그들을 보고, 존재의 뿌리되는 지혜로 그들을 위로했다.

모두들 슬퍼하지 말아요. 죽지 않고 영생하는 인간은 있을 수 없어요.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부터가 틀린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과 사의 끊임없는 순환일 뿐입니다.”

 

 

7.성자로서의 영웅

 

-443. 삶의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할 영웅의 유형이 있다. , 성자, 고행자, 출가자로서의 영웅이다.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엄격하게 자아를 통제하고, 소리와 빛과 맛 같은 색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애증을 버리고, 고독안에서 살고, 소식하고, 말과 몸과 마음을 삼가고, 명상과 정신 집중에 전심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힘쓰고, 이기심과 권세, 자만심과 색욕, 분노와 편견을 떨치고, 마음 안에서 정일을 얻고,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능히 불멸의 존재에 값하는 사람이라 일러 무방하다. >

 

-444.그들은 형상의 영역을 떠나 고귀한 존재의 화신이 하강하는 곳, 보살이 머물렀던 곳, <거대한 얼굴>의 옆모습이 <현현하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신비에 싸여 있던> 옆얼굴이 드러나면, 신화는 부차적인 언어이며, 침묵이 궁극적인 언어가 된다. 정신이 신비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남는 것은 오직 침묵 뿐이다.

 

>> 정신이 신비속으로 빠져들 때 남는 것은 오직 침묵 뿐이다.. 침묵속에서

 

 

 

<< 에필로그 >>

 

 

1.변신 자재자

 

-478.신화 체계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고 했고, 뮐러는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라고 했고,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이라고 했으며,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이라고 했고,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 갖가지 판단은 판단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된다. 신화가 무엇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해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487. 오늘날의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 집중(20세기 문화 인류학과 심리학에서의), 인간의 경이라는 초점의 놀라운 이동로를 닦았다. 동물의 세계도 아니고, 식물의 세계도 아니고, 천체의 기적도 아닌, 이제는 오직 인간만이 결정적인 수수께끼다. 인간은 아득한 존재와 더불어 끝나야 하고, 이 아득한 존재를 통해 자아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해야 하며, 이 사회의 이미지 전체가 개선되어야 한다. 인간은 그러나 <>가 아닌 <>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족, 민족, 대륙, 사회적인 지위, 혹은 세기의 이상과 세속적 관심도 우리 모두의 내부에 살아 있는 불멸의 , 놀라운 신적인 존재의 척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감히 소명에 응하여, 우리의 운명을 화해시켜야 하는 존재의 거처를 찾아내는 현대적 인간인 현대의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된다. 니체는 <그날이 도래하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구세주의 십자가를 지는일)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

 

>>이제 스스로가 자신의 소명에 응하여, 그 날이 도래하듯이 살아가는 모습이 더욱 필요하리라. 사회가 해주기를, 누군가 해주기를 기다릴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적 영웅이 되어 고통의 시간을 겪어내어 관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해야 겠다.

 

-490.<시인적 본성은 심리학적 관심과 무관하지 않고, 심리학적 관심은 신화에의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토마스 만의, 참으로 무릎에 손이 가는 말이 있듯이, 인류 일반이 공유하고 있는 오리엔테이션의 현대적 양상이 바로 이 분야와 맥을 함께 하지 않을까 싶다.

 

 

4. 내가 저자라면

 

전 세계의 신화를 분석해서 영웅신화의 패턴을 찾아낸 조지 캠벨의 훌륭함을 다시한번 알게 되었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보편성을 찾기 위해서 다방면의 지식과 그것을 한권의 책으로 정리해나가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였다. 5년이라는 칩거기간이 없었다면 이 작업을 불가능했을 것이다.

저자가 물론 다방면의 지식을 공부한것도 있지만, 어렸을 때 토템 기둥에 대한 호기심이 이런 대작을 만들게 해주는 것을 보면 지속적인 호기심을 키워나가는 호기심의 힘을 알게 된다.

<<신화의 힘>>을 통해서 조지 캠벨을 처음 접했고, 이번이 두 번째여서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처음에 생각했다가,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좌절했다가 12부를 넘어가면서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접하지 않은 신화의 세계 앞에서 한차례 무릎 꿇었다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동안 이런책도 읽지 않고 뭐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지금이라도 이런 책을 보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위안을 삼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영웅 신화의 패턴을 하나둘씩 알게 되면서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인간이 갖는 보편적이면서도 공통적인 마음들을 시공간을 초월해서 동일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러한 마음의 일부는 현대까지도 계승되는것이라 생각된다.

그나마 <신화의 힘><변신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 책을 보았기에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1) 전체적인 뼈대와 목차

 

<프롤로그> 신화와 사람들 무의식속에 있는 꿈과의 동일성, 영웅들이 펼치는 여정을 소개하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어느나라에서든 존재한다는 세계의 배꼽이 도처에 있음을 설명한다. 향후 펼쳐질 목차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해주었다.

 

<1부 영웅의 모험 1.출발: Depature> 영웅이 자신의 소명을 받아 출바하게 되는지를 다양한 나라의 신화를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영웅이 자신의 소명을 받는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영웅은 그것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소명을 거부한다.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게 되니 힘든일을 겪게 되지만 조력자를 만나서 어려운 시련의 관문을 통과하거나 고래의 배 속으로 들어가 자기적멸을 통한 거듭나는 행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양한 나라의 신화를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키워드: 영웅, 소명, 조력자, 관문 , 고래의 배, 세계의 배꼽, 지상 낙원

 

<2.입문:Initiation> 영웅의 여정에 대해서 설명을 한 것으로, 초기에 영웅이 온갖 시련을 겪게 되고, 그 마지막에는 승리한 영웅과 세계의 여왕의 혼레를 맞이한다. 혼례를 함으로써 삶을 완성하게 되고, 어머니 품에만 있던 영웅이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여 영웅이 경쟁상대로만 있던 아버지와 화해를 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신성의 경험을 초월하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키워드: 시련, 주술사, 영웅, 여왕, 여성, 아버지, 신격화, 홍익, 초월, 자각

 

<3.귀환 : Return> 영웅이 귀환시에는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하는데 끊임없이 장애물을 던지는 등 탈출을 시도한다. 이승과 저승의 스승을 만나서 귀환 관문을 통과하여 자유를 얻는 것으로 귀환을 마무리 한다.

-키워드: 귀환, 거부, 불가사의한 탈출, 스승, 자유

 

<4.열쇠;The Keys> 신화를 전기,과학, 역사로 읽으면 과거와 미래는 끊어지지만, 신화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영웅들의 모험으로 암시와 함축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키워드 : 암시, 영혼의 모험, 함축적 의미

 

<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부 유출: Emanations> 심리학을 통해서 신화가 꿈의 패턴과 비슷한 것을 알게 되었고, 무의식이 형이상학이라는 공식을 도출해냈다. 우주는 우주자체의 반복, 소멸을 하는 순환 과정을 거치며, 허공에서 공간으로 공간에서 생명, 그리고 하나에서 여럿으로 분화되는 창조 과정을 여러 신화를 통해서 설명한다.

-키워드 : 무의식, 초의식,반복, 소멸,허공, 창조,혼돈,분화

 

<2부 처녀 잉태:The virgin birth> 모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신화 체계에서, 처녀를 통해서 세상을 창조해가는 신화 및 민화가 많이 발견된다.

-키워드: 피조물 생성, 창조, 유혹자, 생명과 죽음의 어머니, 자궁, 미혼모

 

<3부 영웅의 변모 : Transformation of the Hero> 비실재적 실재에서 실재적 실재의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으로 하강하면서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시절부터 해서 영웅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애인, 영웅, 황제, 폭군, 구세주, 성자로서의 영웅과 죽음마저도 화해할 수 있는 영웅의 변모되는 것을 설명했다.

- 키워드 : 권능, 원형적 인간, 초인간, 인간 정신, 성취, 운명 ,하강, 재발견, 재해석, 유출의 역사, 변환 자재자

 

<4부 소멸:Dissolutions> 개인이 소멸됨으로써 근원적인 깨달음으로 되돌아가는 소우주의 끝과 우주역시 소멸되는 대우주의 끝을 설명했다.

<에필로그> 신화가 무엇이냐는 것보다는 신화가 어떤 역할을 했고,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과학의 발전으로 신화가 주는 비의를 잃었지만 신화를 열쇠로 하여, 자아를 다시 부활할 필요한 있음을 강조하였다.

 

-목차

 

프롤로그 원질신화

1.신화와 꿈

2.비극과 희극

3.영웅과 신

4.세계의 배꼽

 

1부 영웅의 모험

1장 출발

1.영웅에의 소명

2.소명의 거부

3.초자연적인 조력

4.첫 관문의 통과

5.고래의 배

2장 입문

1.시련의 길

2.여신과의 만남

3.유혹자로서의 여성

4.아버지와의 화해

5.신격화

6.홍익

3장 귀환

1.귀환의 거부

2.불가사의한 탈출

3.외부로부터의 구조

4.귀환 관문의 통과

5.두 세계의 스승

6.삶의 자유

 

2부 영웅의 모험

1장 유출

1.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2.우주의 소환

3.허공에서 -공간

4.공간의 내부에서 - 생명

5.하나에서 여럿으로

6.창조의 민화

2장 처녀의 잉태

1.어머니 우주

2.운명적 모태

3.구세주를 낳는 자궁

5.미혼모의 민화

3장 영웅의 변모

1.최초의 영웅과 인간

2.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3.전사로서의 영웅

4.애인으로서의 영웅

5.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6.구세주로서의영웅

7.성자로서의 영웅

8.영웅의 죽음

4장 소멸

1.소우주의 끝

2.대우주의 끝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1.변신 자재자

2.신화,제의, 명상의 기능

3.오늘날의 영웅

 

 

2) 감동적인 장절

 

 

-6 이책의 목적은 종교화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데 있다.

 

-14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종교,철학, 예술, 선사 인류 및 유사 인류의 사회적 양식, 과학과 기술의 으뜸가는 발견, 바닥째 흔들어 수면을 엎어버리는 꿈, 신화의 불가사의한 고리... 모두가 이 은밀한 통로를 지나 인류의 문화로 현현한 것들이다.

 

-111.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어느 시대든 마찬가지다. 이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의 수호자는 극히 위험한 존재다. 그들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안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과 용기를 갖춘 사람앞에서는 위험은 그 꼬리를 감추고 만다

 

 

-319. 이러한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제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암시를 읽어내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이 빈사 상태에 빠진 성화聖畵는 그 영원히 인간적인 의미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487. 오늘날의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 집중(20세기 문화 인류학과 심리학에서의), 인간의 경이라는 초점의 놀라운 이동로를 닦았다. 동물의 세계도 아니고, 식물의 세계도 아니고, 천체의 기적도 아닌, 이제는 오직 인간만이 결정적인 수수께끼다. 인간은 아득한 존재와 더불어 끝나야 하고, 이 아득한 존재를 통해 자아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해야 하며, 이 사회의 이미지 전체가 개선되어야 한다. 인간은 그러나 <>가 아닌 <>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족, 민족, 대륙, 사회적인 지위, 혹은 세기의 이상과 세속적 관심도 우리 모두의 내부에 살아 있는 불멸의 , 놀라운 신적인 존재의 척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감히 소명에 응하여, 우리의 운명을 화해시켜야 하는 존재의 거처를 찾아내는 현대적 인간인 현대의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된다. 니체는 <그날이 도래하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구세주의 십자가를 지는일)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

 

3) 보완점

연구원 과제가 아니었다면 <프롤로그>를 넘기지 못하고 이렇게 좋은 책을 덮어버렸을 것 같다. 중요한 내용은 뒤에 있는데 프롤로그에서 너무 많이 에너지를 소비하게 하는데, 프롤로그는 전체 내용을 설명하되, 쉽게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오히려 본문과 에필로그쪽으로 비중을 옭기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림이 중간에 소개되기는 했지만, 편집상에서 사진만 따로 있는것보다는 설명과 내용의 연계성을 찾으면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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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4 17:04:58 *.160.136.124

작가는 동일한 대상을 또다른 시각으로의 연출을 표현할 수 있는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셉 캠벨.

저자에 대해 1주차 조사한 내용과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요?

동일한 대상을 다른 시각으로 표현하는 고민을 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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